현 UFC 라이트급 챔피언 '독수리(The Eagle)' 하빕 누르마고메도프(31·러시아)는 이견의 여지가 없는 체급 최강자다. 27전을 소화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패배를 허용하지 않았으며 대부분 경기를 압도적으로 잡아냈다. 현역을 넘어 라이트급 역대 최강자로 꼽아도 전혀 무리가 없다.

익히 잘 알려진 데로 누르마고메도프는 파워 그래플러다. 압도적 완력과 탄탄한 테크닉이 잘 조화된 그래플링을 앞세워 타격가, 주짓떼로, 레슬러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데로 내던지고 굴리고 압박한다. 원체 힘과 감각이 좋은지라 살짝 그립을 잡은 것 만으로 어렵지 않게 테이크다운을 성공시키고 이후 포지션을 옮겨가며 상대의 퇴로를 봉쇄해버린다. 상대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멘탈붕괴가 올 수밖에 없다.

워낙 그라운드가 강하다보니 타격전에서 얻는 반사 이익도 상당하다. 가볍게 태클 훼이크를 주는 정도에도 상대의 중심은 흔들리고 누르마고메도프는 자신 있게 풀스윙으로 펀치를 휘두르는게 가능해진다. 이래저래 자신이 페이스를 잡고 경기를 리드해나가는 이유다.

누르마고메도프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남다른 관심 속에서 혹독한 훈련을 견디며 자유형 레슬링, 코만도 삼보 등을 익힌 것을 비롯 기량이 올라온 뒤로는 명문팀 'AKA(아메리칸 킥복싱 아카데미)'에서 쟁쟁한 파트너들과 함께 진화를 거듭했다. 타고난 자질과 노력 거기에 환경까지 받쳐줬던지라 세계 최강의 라이트급 황제로 도약할 수 있었다는 평가다.
 
 UFC 라이트급 챔피언 '독수리(The Eagle)' 하빕 누르마고메도프

UFC 라이트급 챔피언 '독수리(The Eagle)' 하빕 누르마고메도프 ⓒ UFC

 
시도 때도 없이 으르렁! 감정적 라이벌 맥그리거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누르마고메도프의 아성을 흔들어볼 수 있는 라이벌로는 누가 있을까. 일단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는 1988년생 동갑내기 '악명 높은(Notorious)' 코너 맥그리거(31·아일랜드)가 가장 눈에 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현 시점에서의 맥그리거는 누르마고메도프의 라이벌이 되기에는 2% 부족하다. 인기, 상품성 등만 놓고 봤을 때는 외려 우위에 있을 수도 있겠으나 문제는 지난해 있었던 맞대결에서 참패를 당했다는 부분이다. 당시 맥그리거는 경기 전 심하게 대립각을 세웠던 것과 비교해 무기력하게 무너지며 이른바 '전력의 차이'를 톡톡하게 실감해야 했다.

물론 캐릭터적인 면만 놓고 봤을 때는 충분히 라이벌 관계가 형성된다. 둘은 격투계 소문난 앙숙이다. 맞대결 이전 맥그리거의 버스테러사건으로 인해 감정이 극에 달했고 잔뜩 화가 난 누르마고메도프 경기에서 승리한 직후 난투극을 발발시키며 서로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상태다.

현재 누르마고메도프와 맥그리거는 서로에게 매우 불편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각종 인터뷰 등에서의 독설 배틀은 물론 SNS를 통한 상호비방이 멈출 줄을 모른다. 홍보, 영업을 가장한 큰 그림으로 보기에는 정도가 지나치다. 진짜로 서로를 싫어하는 티가 팍팍 난다.

최근에도 둘은 SNS에서 위험한 글들을 쉴새없이 주고받았다. 맥그리거는 지난 3일 자신의 SNS를 통해 누르마고메도프의 아내에게 '타월'이라는 표현을 썼다. 누르마고메도프의 아내가 결혼식에서 이슬람 율법에 따라 얼굴을 완전히 가린 전통 의상을 입은 것을 놓고 타월에 빗대 비아냥거린 것이다. 누르마고메도프의 가족과 종교를 모두 모욕했다고 볼 수 있다.

맥그리거 역시 지나쳤다고 생각했는지 15분 만에 삭제했으나 해당 게시글은 이미 많은 이들이 봤고 여기저기 캡쳐본까지 돌아다녔다. 그렇지 않아도 감정이 좋지 않은 누르마고메도프가 가만히 있을리 없었다. 자신의 SNS에 맥그리거가 현 여자친구가 아닌 다른 여성과 함께 있는 외설적인 사진을 올린 뒤 최근 있었던 성폭행 혐의를 빗대 '강간범'이라고 조롱했다.

정도를 넘어선 진흙탕 싸움에 UFC 주최측까지 나서서 만류할 뜻을 밝히고 있다. 그야말로 앙숙도 이런 앙숙이 없다.
 
 빼어난 신체조건에 맷집, 체력을 앞세워 연승 행진을 달리고 있는 퍼거슨은 라이트급 최고의 싸움꾼으로 불린다.

빼어난 신체조건에 맷집, 체력을 앞세워 연승 행진을 달리고 있는 퍼거슨은 라이트급 최고의 싸움꾼으로 불린다. ⓒ UFC

 
4번의 불발, 붙지 않은 라이벌 퍼거슨
 
체급 내에서 무적으로 군림하는 누르마고메도프를 그나마 잡아낼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는 파이터가 한명 있다. 다름아닌 토니 퍼거슨(35·미국)이다. 빼어난 신체조건에 맷집, 체력을 앞세워 11연승 행진을 달리고 있는 그는 라이트급 최고의 싸움꾼으로 불린다.

초반 밀리는 듯 하다가도 경기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서히 페이스를 빼앗아오다가 결국 상대를 잡아 먹어버린다. 사냥 방식도 독특하다. 다소 지루하더라도 전략적으로 약점을 집요하게 노리는 상당수 파이터와 달리 화끈하게 들이대면서 상대를 질리게 하고 숨통을 끊어버리는 유형이다. 본능에 충실한 '좀비형' 같으면서도 영리한 사냥꾼 같다.

때문에 퍼거슨의 경기는 늘 흥미롭다. 특유의 '똘기(?)'를 바탕으로 타격이 강한 상대에게 타격으로 맞불을 놓는가하면 그래플러와 그라운드 진검승부도 피하지 않는다. 때문에 상대 입장에서는 경기 초반 해볼 만하다는 생각을 하기 십상인데 경기가 진행될수록 페이스가 꼬이고 그 순간 퍼거슨은 악마의 이빨을 드러낸다. '엘쿠쿠이(El Cucuy)'라는 닉네임처럼 '꿈속의 괴물'로 변신해 상대에게 악몽을 선사한다.

퍼거슨은 싸움꾼 특유의 감각을 통해 상대의 패턴을 경기 중에 읽어내고 어느 정도 파악됐다 싶으면 빈틈을 파고들어 가속을 올린다. 상대가 어떤 유형인지는 경기 전에 당연히 알고 나왔겠으나 직접 몸을 섞어보며 타이밍, 거리감을 느끼고 더불어 무한체력으로 기를 죽여 가며 흐름을 빼앗아버린다.

때문에 누르마고메도프가 챔피언에 오르기 이전부터 많은 이들은 퍼거슨과의 한판승부를 기대했다. 누르마고메도프가 특유의 파워그래플링으로 경기 내내 퍼거슨을 눌러놓는 그림도 그려지지만, 반대로 퍼거슨의 체력을 앞세운 미친 하위움직임이 만들어낼 변수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누르마고메도프를 이긴다면 퍼거슨이 될 것이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아쉽게도 둘 사이의 드림매치는 지금까지도 펼쳐지지 않고 있다. 누르마고메도프가 괜찮으면 퍼거슨이, 퍼거슨이 괜찮으면 누르마고메도프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부상, 감량 실패 등으로 4번이나 매치업이 무산됐다. 팬들도 주최 측도 지쳐버렸다.

이제와서 다시 매치업을 짜기에는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다. 챔피언에 오른 누르마고메도프 입장에서 까다롭기만 하고 흥행성은 높지 않은 퍼거슨은 더 이상 매력적인 도전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누르마고메도프는 '더 다이아몬드' 더스틴 포이리에(31·미국)-'블레시드(Blessed)' 맥스 할로웨이(29·미국) 승자와 9월 아부다비에서 붙고 싶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여전히 많은 팬과 관계자들 사이에서 퍼거슨은 누르마고메도프의 대항마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차일피일 빅매치가 미뤄질수록 퍼거슨은 나이만 먹게 되고 결국에 '서로 한번도 붙지 않은 관계'로 라이벌 구도가 마무리 지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외려 페더급 제왕 할로웨이가 포이리에를 꺾고 누르마고메도프와의 경기에서마저 엄청난 명 경기를 연출한다면 퍼거슨과의 라이벌 이미지는 옅어질 공산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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