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방영된 '놀면뭐하니' 방구석 콘서트편의 한 장면

지난 3월 21일 방영된 '놀면뭐하니' 방구석 콘서트편의 한 장면 ⓒ MBC

 
코로나19 발생 이후, 뮤지션들이 공연하는 장소가 크게 바뀌었다. 뮤지션들은 스타디움과 아레나 대신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트위치 등을 통해 '방구석' 팬들을 만났다. 존 레전드, 찰리 푸스, 크리스 마틴 등 쟁쟁한 팝스타들 역시 공연장 대신 자신의 집에서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선우정아, 10cm 등이 온라인 공간을 통해 자신의 라이브를 팬들에게 선보였다.
 
MBC 예능 <놀면 뭐 하니?>도 '방구석 콘서트'를 준비했다. 제작진은 많은 음악 팬들이 라이브 공연에 목 말라 있다는 사실을 잘 파악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다양한 예술가들을 모았고, 수천 석의 빈 객석은 유산슬의 응원봉 '짬봉'으로 채웠다. 마음만은 시청자, 음악 팬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코로나19로 인해 계획이 틀어진 것은 뮤지션들도 마찬가지였다. 투어 일정이 취소된 밴드 잔나비와 혁오는 자신들의 단독 콘서트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연출과 퍼포먼스를 시청자들에게 선보였다. 원곡에 새로운 파트를 추가하면서 밀도를 높인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의 새로운 버전 역시 전파를 탔다.
 
"긴긴 여름 밤은 가고 추운 겨울이 와도 /
여전히 음악은 우리의 마음에 위로가 되어요

미워하는 마음은 가릴 수 없는게 있지/
빛나는 음악과 잠 못 들던 밤들"


'공연의 대명사' 이승환 역시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았다.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를 부르면서 목소리의 힘을 드러내는 것은 물론, '슈퍼 히어로'를 부르면서 코로나 정국에서 헌신하고 있는 '우리 주변의 영웅'들을 응원했다. 싱어송 라이터 선우정아와 밴드 새소년은 자신들의 노래 '비온다'(선우정아)와 '긴 꿈'(새소년)을 매시 업(mash-up)해서 불렀다. 송가인이 출연할 때에는 트로트 잔치 한 마당으로 탈바꿈했다. 다양한 세대가 두루 볼 수 있는 '백화점식 구성'을 취했다.

'아무 노래'를 연초 최고의 히트곡으로 만든 지코, 힙합 레이블 AOMG의 뮤지션들도 등장했다. 단순히 인기 있는 뮤지션을 섭외한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구성에 있어 다양함을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다. '맘마미아'의 뮤지컬을 선보이면서 이 작품을 꾸려가는 많은 얼굴들을 한 번씩 비추어주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흘러 빨래가 마르는 것처럼 네 눈물도 마르는 거야"
 
지난 11일 '방구석 콘서트'의 피날레를 장식한 것은 배우 이정은과 정문성 등 다수의 배우들이 준비한 뮤지컬 <빨래>의 레퍼토리였다. 2005년에 초연한 이후, 2000년대 소시민의 삶을 그리며 연대와 사랑을 이야기한 이 작품은  2020년을 '살아내고 있는' 이들에게 위로로 다가가기에 충분했다.
 
모두가 주인공이다
 
 11일 방송된 MBC 예능 <놀면 뭐하니?> '방구석 콘서트'의 한 장면

11일 방송된 MBC 예능 <놀면 뭐하니?> '방구석 콘서트'의 한 장면 ⓒ MBC


<놀면 뭐 하니?>의 김태호 PD는 음악과 공연 예술에 대한 애정을 여러 차례 보여준 바 있다. 특히 무한도전의 인기 아이템이었던 '가요제'에서는 아이유, 지드래곤 등 대중가요의 톱스타들은 물론, 혁오나 10cm, 장미여관 등 주목받고 있는 인디 밴드들을 섭외했다. 만약 <무한도전>이 지금까지 방영되고 있었다면, 새소년이나 잔나비 같은 뮤지션들이 연이어 게스트로 출연하지 않았을까.
 
김태호 PD는 <놀면 뭐하니?>에서 음악을 다룰 때마다 다른 지점을 공략했다. 유고스타라는 페르소나를 탄생시킨 '유플래쉬'에서는 황소윤과 수민(SUMIN)처럼 트렌디하고 개성 있는 '요즘 뮤지션'들과 유고스타의 연주가 어우러지게 했다. 신해철 트리뷰트 무대를 통해서는 과거의 유산에 대한 짙은 존경심을 표하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의 상승 곡선을 만든 '뽕포유'에서는 젊은 세대들에게 잊힌 장르인 트로트를 아이템으로 삼았다. 유산슬(유재석)의 곡을 함께 만든 멤버들에게 '박토벤', '정차르트' 등의 캐릭터를 부여하는 한편, 젊은 대중들에게 생소한 신인 트로트 가수 역시 조명했다. 음악이 얼마나 많은 요소와 사람이 맞물리면서 완성되는지에 주목한 것이다. 
 
<나는 가수다>와 <불후의 명곡> 이후 음악 예능 프로그램은 주로 '경연'이라는 틀을 중심에 두고 움직이곤 했다. 인상적인 순간이 여럿 만들어졌지만, 결국 '누가 더 화려한 보컬을 보여주는가'로 귀결되곤 했다. 기발한 방식을 택했던 <복면 가왕> 역시 마찬가지였다. 김태호 PD는 음악을 아이템으로 다룰 때마다, 결코 한 명의 주인공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집중하지 않았다. 관습적인 방식과 꾸준히 거리를 두면서 음악에 대한 '덕심'을 녹여냈다. <놀면 뭐 하니?>는 지금까지 대중음악을 다룬 예능 프로그램 중 가장 앞서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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