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독일 수도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14일(현지시간) 수천 명이 참여한 가운데 인종차별과 사회적 불평등에 반대하는 '인간사슬'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 독일 브란덴부르크문 앞의 "인종차별 반대" 인간사슬 시위 독일 수도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14일(현지시간) 수천 명이 참여한 가운데 인종차별과 사회적 불평등에 반대하는 "인간사슬"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 연합뉴스/EPA

관련사진보기


요즘 독일 내무부 장관 세호퍼(Horst Seehofer)는 자신의 직을 걸고 독일의 좌파 성향의 매체인 TAZ의 칼럼니스트 약후비파라(Hengameh Yaghoobifarah)를 고소한다고 한바탕 "소동"을 피우고 있다.

약후비파라는 "모든 경찰은 무능하다"라는 제목의 지난 15일자 칼럼에서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 이후 미국 일부 지역에서 논의되는 경찰제도 폐지가 독일에서도 이루어질 경우 실업자가 될 경찰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하여 풍자적으로 논했다. 그런데 세호퍼가 이 글이 독일 경찰을 모독하여 결국 형법상의 '국민선동죄'(Volksverhetzung)를 저지른 것이니 고소하지 않을 수 없다고 나선 것이다.

독일 수상인 앙겔라 메르켈을 포함하여 독일 정계는 대부분 이를 적극 말리는 모양새다. 현재 세호퍼는 이 논란을 뒤로 하고 모든 일정을 취소한 채 이른바 '잠수'를 하면서 더 이상 가타부타 말이 없는 상태다. 

"독일 적대"라는 개념

이 문제는 언론의 표현의 자유의 보장과 증오 범죄의 법적 제재라는 두 가지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독일에 이주하여 살거나 이민 가정 출신으로 독일에서 태어나서 살고 있는 외국인들이 직접 '느끼는' 인종차별과 독일인들이 그런 소수자에 관한 인종차별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세호퍼는 왜 이런 소동을 벌이는 것일까? 그는 독일에서도 매우 보수적인 기사당(CSU)에서 40년 가까이 활동해 잔뼈가 굵다. 지지층의 호감을 사려는 정치적 의도가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이 아니라 내무부 장관직을 걸만큼 중대한 의미가 있다고 보는 데에는 독일의 제도적 지형과 관련이 있다.

2020년 5월 12일 독일 내무부에서 '2019년의 정치적 동기로 발생된 범죄'(Politisch motivierte Kriminalität im Jahr 2019)라는 제목의 경찰 관련 통계자료를 발표했다. 이 자료는 기본적으로 정치적 동기로 발생된 범죄를 그 주체에 따라 우파, 좌파, 외국 이데올로기, 종교 이데올로기 등 5개 범주로 나누어 통계를 내고 있다. 그런데 2019년 1월 1일부터는 2개의 새로운 범주가 추가되었다.

'외국인 적대'(Ausländerfeindlich)와 더불어 '독일 적대'(Deutschfeindlich)의 범주가 독일 경찰의 공식 문서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다. 사실 설문조사 결과에서 여전히 외국인 혐오의 비율이 비교적 높은 독일에서 그동안 '외국인 적대' 범죄를 이제야 따로 구분해서 통계를 내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독일 적대' 범죄를 굳이 따로 구분하고 있는 점이다. 실제로 2019년에 외국인 적대 범죄는 3703건이 발생했는데 그 가운데 97.9%에 이르는 3625건이 이른바 우파 성향의 사람들이 저질렀다. 반면에 같은 기간의 독일 적대 범죄는 총 132건에 불과하였다. 외국인에 대한 증오 범죄에 비하여 3.6%도 안 된다. 그럼에도 외국인 증오와 동등한 수준의 하나의 공식적인 범주가 생긴 것이다.

독일연방범죄국(BKA)에서 정의한 바로는 독일 적대는 "독일 국적의 개인을 상대로 한 범죄로 그 개인이 실제로 그런 국적이 있는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어떤 사람이 독일인이기에, 또는 범인이 그와 같이 생각했기에 모욕이나 공격을 당했을 경우에 그것이 독일 혐오 범죄로 정의된다. 그러나 슈피겔지의 자매 매체인 벤토(bento)의 뢰릭 기자(Marc Röhlig)는 이러한 범주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개념은 이미 독일 극우세력이 즐겨 사용해온 것으로 정작 인종차별의 피해 당사자들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개념이 이제 독일 정부의 공식 문서에 정식 용어로 채택이 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사실 '독일 증오'의 개념은 20세기 초반부터 등장했다. 독일통합이민연구소 소장인 쇼만 박사(Dr. Yasemin Shooman)의 연구에 따르면 독일 극우세력은 독일의 자기파괴적인 (좌파) 엘리트와 소수자들이 '진짜' 독일민족을 독일에서 몰아내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들은 여기에서 독일민족이 참다운 희생자라는 신화를 만들어내어 '반독일주의'(Anti-Germanismus), '독일증오'(Deutschenhass), 그리고 '독일적대'(Deutschenfeindlichkeit)라는 개념들을 사용해 온 것이다.

독일의 극우 역사학자인 시켈슈미트(Gustav Sichelschmidt)는 <영원한 독일 증오>라는 책에서 독일 적대 세력은 독일의 이웃 국가들, 곧 프랑스, 영국, 폴란드만이 아니라 러시아와 미국 그리고 더 나아가 독일 안에도 존재하며 독일 민족에 대한 증오가 국내외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독일 국내에서 이 증오는 좌파 지식인, 안티파(Antifa) 단원, 외국인 단체가 조장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과거 나치 정권의 우생학자였던 귄터(Hans Friedrich Karl Günther)의 인종주의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그의 인종차별적 논리는 대부분 나치 정권에 수용되어 결국 유대인 학살의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그래서 나치의 빚이 있는 독일은 이러한 인종차별적 주장, 특히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한 인종차별은 여전히 매우 엄격하게 통제해 왔다. 그러나 독일에서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는 '차별' 의식은 여전히 언제든 그 모습을 구체적으로 드러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언제든 제도를 통해서도 말이다.

독일 남부의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연방참사원 담당장관인 기민당 소속 라인하르트(Wolfgang Reinhart)는 얼마 전 독일 '빌트지'(Bild)와의 회견에서 예를 들어 누군가 '거지같은 독일!'(Scheiß Deutschland!) 같은 구호를 외치기만 해도 법적 처벌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이러한 구호가 독일 국민들에게 증오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임에도 지금까지 제재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면서 이를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독일 형법 130조에는 국민선동죄(Volksverhetzung) 항목이 있다. 이에 따르면 인족, 종족, 출신 국가가 다른 특정 집단이나 개인, 또는 국민의 일부에 대하여 증오를 불러일으키거나 폭력 또는 자의적 수단을 사용하여 공공의 평화를 해치는 경우 3개월에서 5년까지 금고형에 처할 수 있다. 라인하르트의 대변인인 클로스터마이어(Claus-Peter Clostermeyer)는 법조항에서 '국민의 일부에 대한 증오'(Hass gegen Teile der Bevölkerung)가 아니라 '모든 국민에 대한 증오'(Hass gegen die Bevölkerung)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해 안에는 법개정 작업을 시작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사실 이는 그동안 외국인들을 비롯한 소수자에 대한 증오를 강조한 것인데 이를 확대 해석하여 독일과 독일인에 대한 증오의 표현도 법적 제재의 대상으로 삼으며 결국 이 법의 소수자를 보호라는 근본 취지를 희석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있어 보이는 주장이다.

이것이 독일의 현주소

이러한 법개정 논의가 나오게 된 직접적 배경은 얼마 전에 '베를린 신문'(Berliner Zeitung)에 보도된 기사 때문이다. 이 보도에 따르면 터키나 레바논 출신 청년들이 독일 사람들을 지칭하면서 '돼지를 X먹는 X들!'(Schweinefresser)이나 '거지같은 독일X들!'(Scheiß-Deutsche)이라는 욕을 공개적으로 자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이에 대하여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고 한다. 법적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법을 개정해서라도 이러한 상황에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 클로스터마이어의 주장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특히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처벌을 강화하는 법개정에 대하여 기사당(CSU) 사무총장인 하더르트하우어(Christine Haderthauer), 헤센주의 주지사 코흐(Roland Koch), 전임 바이에른 주지사이며 기사당 명예 당대표인 슈토이버(Edmund Stoiber)와 같은 여당의 주요 보수 인사들도 동조하고 나서고 있다. 물론 야당인 녹색당과 좌파당은 물론 기민당/기사당 연합과 대연정을 이루고 있는 사민당도 이를 반대하고 있기는 하다.

얼마 전에 독일 베를린 시의회는 반차별법을 제정하여 경찰이 공무 집행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차별적 행위를 한 경우 국가를 상대로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그럼에도 이번 세호퍼의 '소동'에서 볼 수 있듯이 독일 사회에서의 차별 극복의 길은 아직도 멀기만 한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애국주의적인' 보수 세력도 만만치 않은 세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치의 홀로코스트 만행에 대한 부채 의식이 강하게 남아 있는 독일 사회에서 인종차별을 비롯한 모든 차별의 금지를 향한 길을 멈출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태그:#차별, #국민선동죄, #세호퍼, #독일의 인종차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