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프로축구에서는 베테랑 스트라이커 미우라 가즈요시의 경기 출전이 큰 화제가 됐다. 지난 5일 열린 요코하마FC와 사간 도스의 J리그컵 경기에서 미우라는 요코하마의 선발 공격수로 이름을 올렸다. 미우라는 이날 출전으로 J리그컵 역대 최고령 출전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미우라는 1967년 2월 26일생으로 올해 만 53세다. 한국으로 치면 은퇴 후 감독과 행정가 등으로 활약중인 황선홍(대전 감독, 68년생)-홍명보(대한축구협회 전무, 69년생)등과 동세대이고 나이는 오히려 조금 더 많다. 현재 일본축구 대표팀 감독인 모리야스 하지메도 미우라보다 1살 어리다. 심지어 현재 한국축구 K리그1 최고령 선수인 이동국(전북)과는 띠동갑이다.

세계축구로 범위를 넓히면 로베르토 바조(이탈리아) 폴 개스코인(잉글랜드) 클라우디오 카니자(아르헨티나), 위르겐 클롭(독일),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이탈리아) 등과 동갑이다. 이들 대부분이 1980~1990년대까지 주로 활약했던 선수들이고 당연히 현역은 한 명도 없다.

일본 국가대표로 A매치만 89경기에 출전

미우라는 한국 팬들에게도 상당히 친숙한 인물이다. 일본 국가대표로 A매치만 89경기에 출전하면서 1990년대 한일전에서는 상대팀 에이스로 자주 마주쳐야하는 숙적이었다. 브라질 유학파 출신으로 골을 넣고 오두방정에 가까운 삼바 춤을 추던 특유의 골세리머니 때문에 아직도 이름을 기억하는 올드팬들이 많다.

한국축구의 레전드인 박지성은 J리그 교토 퍼플상가에서 뛰던 시절 미우라와 한솥밥을 먹기도 했는데, 당시 그에게 존경심을 느꼈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근 미우라의 J리그컵 출전 소식이 큰 이슈가 되면서 국내에서도 '미우라가 아직도 뛰고 있었냐'라며 놀란 팬들이 적지 않다.

미우라는 당연히 일본축구의 최고령 관련 기록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다. 2017년 3월 J리그 2부에서 골을 넣어 세계 최고령 득점기록(정규리그)으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으며, 일본의 FA컵이라고 할 수 있는 일왕배 최고령 출전기록도 미우라의 것이다. 득점이나 출전기록 모두 최고령 부문 2위와는 최소한 10년 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미우라의 기록이 깨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동세대들이 모두 유니폼을 벗고 지도자나 행정가로서 제 2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지금은 아예 잊힌 인물들도 부지기수인데, 반백살을 넘긴 나이에 아직도 현역 타이틀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자기관리와 열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세월의 흔적은 속일 수 없어서 최근 미우라의 모습을 보면 얼굴 곳곳에 깊이 패인 주름에 머리에는 흰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들어서 있다. 그의 모습은 1990년대 날렵하고 혈기왕성하던 젊은 시절의 인상으로 남아있던 한국 팬들에게는 묘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물론 이러한 미우라의 최고령 도전을 바라보는 팬들의 시각이 모두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미우라의 도전이 선수 본인의 기록 욕심과 프로스포츠의 쇼비즈니스, 만들어진 영웅이라도 필요로 하는 일본 사회의 정서가 결합된 '쇼 이벤트'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미우라의 노력과 열정 자체를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 미우라는 40대 중반을 넘긴 시점부터 이미 프로 1군무대에서는 경쟁력을 논하는 게 무의미해진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0년대 이후 미우라의 시즌 기록을 살펴보면 선수등록은 해놨지만 경기출전은 고사하고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도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8년에는 J리그2에서 3경기 출전에 그쳤고, 2019년에는 9경기로 숫자는 늘어났지만 출전시간은 모두 합쳐도 60분도 되지 않았다. 포지션이 공격수인데도 1년에 평균 한 골도 넣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팀 전력에 전혀 보탬이 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나마 미우라가 경기에 나선 경우는 승패나 순위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이벤트성 출전이 사실상 전부였다. 이런 식이라면 1960~1970대까지도 선수생활을 이어가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이동국과 김병지 사례
 
이동국 '기분 최고' 6일 오후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1차전 전북 현대와 베이징 궈안의 경기. 전북 이동국이 역전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다.

▲ 이동국 '기분 최고' 지난해 3월 6일 오후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1차전 전북 현대와 베이징 궈안의 경기. 전북 이동국이 역전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노장의 진정한 투혼'이라는 타이틀은 오히려 이동국이나 김병지같은 사례가 더 어울린다. 김병지는 46세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가며 K리그 역대 최고령(45년 5개월 15일)-최다경기출전 기록(706경기 754실점)을 수립했다. 이동국은 올해 41세로 필드플레이어로는 역대 최고령이다. 2009년부터 10년 연속 두 자릿수 득점-2019년에도 9골 2도움을 기록했으며 올시즌도 디펜딩챔피언 전북에서 선발과 교체출전을 오가며 주축 공격수로 활약중이다.

김병지와 이동국의 가장 큰 공통점은 나이나 보여주기식이 아닌 오직 실력만으로 장수했다는 데 있다. 김병지는 40대를 넘긴 나이에도 국가대표에 발탁되기도 했으며 말년에 이르기까지 가는 팀마다 꾸준히 주전급으로 활약했고 기량도 크게 녹슬지 않았다. 이동국도 아직 특유의 위치선정이나 골결정력, 발리슛 능력 등은 리그의 공격수 후배들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다.

현대 스포츠가 체계적-과학적으로 발전하면서 선수들의 평균적인 운동수명도 과거에 비하여 크게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축구같이 격렬한 운동의 경우, 예전에는 30세만 넘겨도 노장소리를 듣거나 은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30대 중반을 넘어 40대까지도 당당히 현역생활을 이어가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미래에는 50대 선수들까지도 대거 등장하는 것이 꼭 불가능한 상상만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노장 선수들의 진정한 가치에 대하여 엇갈리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나이든 선수들이 은퇴하지 않고 오래 활동하고 있으면 '후배들의 앞길을 막는다', '그만큼 했으면 되지않느냐'는 식으로 눈총을 주는 시선이 존재한다. 이 과정에서 노장 선수들이 구단과 은퇴에 대한 시각차이로 불화를 빚거나 심지어 등떠밀려 강제 은퇴를 당하는 비극도 종종 발생한다.

미우라와 이동국의 사례는 노장 선수들의 장수에 대하여 각기 다른 생각을 할 여지를 남긴다. 나이든 선수들이 충분히 경쟁력이 있고 도전해볼 만한 동기부여가 남아있다면, 나이에 대한 선입견이 장애물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그저 '기록을 위한 기록만들기'이나 팀스포츠에서 개인의 욕심만을 충족하기 위한 현역 연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동국이나 김병지가 미우라와 같은 방식으로 50대~60대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간다고해서 그런 모습이 과연 박수를 받을 수 있을까. 결국 은퇴하기에 적정한 시기란 물리적인 나이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선수가 자신이 뛰고 있는 무대에서 얼마나 기여할수 있을 만한 경쟁력을 보여주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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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가즈요시 이동국 김병지 최고령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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