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팀 인천 전자랜드 선수들의 모습.

프로농구팀 인천 전자랜드 선수들의 모습. ⓒ KBL


남자 프로농구(KBL) 인천 전자랜드가 2020-2021시즌을 끝으로 구단 운영을 포기하기로 한 사실이 알려지며 농구 팬들의 아쉬움을 사고 있다.

전자랜드는 최근 KBL에 2020-2021시즌까지만 팀을 운영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고 20일 열린 이사회 임시 총회에서도 타 구단들에게 같은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KBL 규정에 따르면 회원사가 리그에서 탈퇴할 경우에는 최소한 한 시즌 전에 이를 통보하도록 하고 있다.

전자랜드는 2003년 8월 인천 SK 빅스를 인수하여 프로농구에 뛰어들었다. 문태종, 정영삼, 서장훈, 박찬희, 리카르도 포웰 등 많은 스타급 선수들이 이 팀을 거쳤다. 아쉽게도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우승 경험은 한번도 없다. 2018-2019시즌 팀 창단 후 최초로 챔피언결정전까지 올라 준우승한 것이 최고 성적이다.

성적이나 위상으로 보면 명문과는 거리가 있지만, 전자랜드는 독특한 개성과 역사로 농구팬들 사이에서 나름 인기 있었던 팀이다. 초창기에는 기복심한 성적과 경기력으로 '도깨비팀'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면, 2010년대 이후로는 스타 선수 없이도 우승권 팀들을 끈질기게 괴롭히는 '언더독' 이미지를 구축했다. 10년째 장기집권중인 유도훈 감독이 부임한 이후에는 한두 시즌을 빼고 어엿한 6강 플레이오프 단골손님으로 자리매김했다.

사실 전자랜드가 프로농구 구단 운영을 포기하려고 한 것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전자랜드는 올해 이전에도 두 번이나 KBL에 구단 운영을 접겠다는 공문을 보냈다가 철회한 일이 있다. 실제로 구단이 해체 직전까지 간 2012-13시즌에는 KBL의 지원보조금을 받아 연명하기도 했다. 당시 전자랜드는 KBL로부터 지원받은 20억을 아직까지도 상환하지 않았다. 가뜩이나 자체적인 수익성이 떨어지는 프로농구 시장에서 중소기업인 전자랜드의 불안정한 재정 상태는 창단 초기부터 고질적인 문제로 거론되었던 만큼, 결국 언젠가 한번은 터질 사건이었던 셈이다.

전자랜드가 프로농구 구단 운영을 접기로 한 구체적인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번에도 결국 재정적인 부담이 가장 큰 원인으로 추측되고 있다. 과거에도 전자랜드가 구단 해체를 검토하다가 철회한 사례가 있는 만큼 조심스럽게 재고의 여지를 기대하는 여론도 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더 좋지 않다. 최근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매출 감소로 기업들이 줄줄이 직격탄을 맞았다. 가뜩이나 스포츠 구단 운영에 대한 의지가 그리 강하지 않았던 전자랜드로서는 더욱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래도 농구계와 연고지 인천에서 17년 가까운 역사를 이어온 것을 감안하면 전자랜드의 선택이 다소 아쉽다. 하지만 애초 여러 차례 팀운영을 포기하려고 했던만큼 의지가 없는 구단을 억지로 안고 가는 것도 한계가 있는 일이다. 씁쓸하지만 이는 구단만의 문제라기보다 현실적인 수익성이나 매력이 부족한 한국농구의 현실이기도 하다.

KBL에서는 일단 2021-2022시즌부터 전자랜드 구단을 인수할 새 주인 찾기에 나서야한다. 전자랜드가 예고한 대로 2021년에 매각이 현실화된다면 KBL 역사상 9번째이자 2005년 KGC(전 SBS), 동부(전 TG 삼보) 이후로는 무려 16년 만에 모기업이 바뀌는 사례가 된다. 참고로 KBL 10개 구단 중 창단 이래 모기업이 한 번도 바뀌지 않은 구단은 서울 삼성 썬더스, 고양 오리온, 창원 LG 3팀 뿐이다. 특히 전자랜드의 연고지인 인천은 프로 원년 대우증권 제우스를 시작으로 신세기 빅스-SK 빅스–전자랜드 블랙슬래머에서 엘리펀츠에 이어 또다시 새 주인을 찾아야하는 상황이 되며 KBL에서 모기업과 팀명이 가장 자주 바뀐 팀이라는 달갑지 않은 기록을 예약하게 됐다.

문제는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며 대기업들조차도 재정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터라 프로농구단을 인수할 만한 기업을 단기간에 찾기는 쉽지 않아보인다는 점이다. WKBL(여자프로농구) 2012년 신세계(현 부천 하나원큐), 2018년 구리 KDB생명(현 부산 BNK썸) 등의 사례처럼 해체 위기에 놓인 구단이 새 인수 기업을 찾을 때까지 연맹에서 위탁 운영하는 방안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방편일 뿐이다.

최악의 경우 내년 이후 20년 이상 지켜온 프로농구 10개 구단 체제가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프로농구는 출범 원년인 1997시즌에만 8개 구단 체제로 운영됐고, 1997-1998시즌부터 창원 LG와 서울 SK가 가세하며 10개 구단 체제가 정착됐다. 구단이 새 기업에 인수되지 못하고 해체 수순을 밟는다면 소속 선수들은 드래프트 형식을 통하여 타 구단으로 뿔뿔이 흩어질 수도 있다. 1990년대 여자농구 간판스타 정선민, 유영주, 김지윤 등을 보유했던 SK증권의 해체가 대표적인 사례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전자랜드의 사례가 자칫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 사태가 국가적 재난에 가깝게 장기화되면서 기존의 스포츠 구단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들도 어려움을 겪으며 갈수록 운영비 지출에 지갑을 닫고 있는 상황이다. 1990년대 IMF 금융위기 당시 13개 팀에 이르던 여자농구 실업팀들이 줄줄이 해체되며 5개팀으로까지 줄어든 사례도 있다.

심지어 농구와는 인기나 시장규모를 비교할 수 없는 프로야구에서조차 최고 인기팀인 두산 베어스를 둘러싼 매각설이 한때 야구계를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비록 당장은 아니더라도 남자프로농구나 다른 스포츠 종목 역시 안전지대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전자랜드의 해체를 안타까워할 틈도 없이, 출범 23년을 이어온 프로농구의 시스템이 또 한 번 시험무대에 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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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전자랜드해체 KBL 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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