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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서울에 위치한 한 아이스크림 할인점에서는 빙그레의 메로나와 롯데푸드의 메로메로를 함께 판매되고 있었다.
 30일 서울에 위치한 한 아이스크림 할인점에서는 빙그레의 메로나와 롯데푸드의 메로메로를 함께 판매되고 있었다.
ⓒ 류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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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Me too) 제품'이라는 말이 있다. 대중들에게 인기를 끄는 브랜드 제품과 맛·생김새가 비슷한 제품이 시장에 나올 때 흔히 붙는 수식어다. 신조어지만 누리꾼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단어다. 지난 10월 초, 소상공인이 만든 메뉴 '덮죽'을 한 프랜차이즈 업체가 빼앗아간 일명 '덮죽 사태' 때문이다.

해당 프랜차이즈 업체는 지난 7월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통해 방영된 소상공인의 메뉴를 표절해 '덮죽덮죽'으로 상표를 등록한 뒤 음식을 판매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대중들은 크게 분노했다. 며칠 간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는 관련 단어들로 도배됐고 식품 표절을 문제삼는 보도들도 쏟아졌다. 결국 해당 업체는 프랜차이즈 사업을 접겠다고 밝히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번 논란이 오히려 특별한 이유는 식품업계에서 표절은 꽤나 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대만의 밀크티 프랜차이즈인 '타이거 슈가'가 흑당 버블티를 국내에 들여와 인기몰이를 했던 지난해, 밀크티 프랜차이즈인 공차뿐 아니라 커피 전문점인 이디야·빽다방·던킨도너츠 등도 앞다퉈 같은 메뉴를 출시했다.
  
'반짝 인기'를 자랑하는 제품들뿐 아니다. 국민 간식으로 사랑받는 스테디셀러도 표적이다. 빙그레의 메로나와 롯데푸드의 메로메로, 롯데제과의 멜로니아가 대표적이다.

1992년에 출시된 메로나는 초록색 사각 바 형태 아이스크림이다. 메로메로와 멜로니아 또한 그 형태가 비슷해 눈으로 차이를 구분하기는 어려울 정도다. 두 상품의 포장지 또한 초록 바탕에 검은 상표명으로 메로나와 닮아 있다. 롯데제과의 초코파이 또한 이름과 포장지 모두 '원조'인 오리온 초코파이와 닮은꼴이다.

식품업계에서는 왜 유독 메뉴 표절이 흔한 것일까? 또 '원조' 기업은 왜 자신들 제품과 포장지까지 닮은 타 기업의 제품을 내버려두는 것일까?

조리법은 '저작물'이 아니다... 특허를 등록할 순 있지만
 
30일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한 중소형 마트에서는 오리온 초코파이와 롯데제과의 초코파이가 함께 판매되고 있었다.
 30일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한 중소형 마트에서는 오리온 초코파이와 롯데제과의 초코파이가 함께 판매되고 있었다.
ⓒ 류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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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조리법을 따라해도 법적인 문제가 없어서'다. 조리법은 저작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작물이란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인데, 조리법은 하나의 아이디어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조리법을 담은 책은 저작권을 보호받을 수 있을 수 있지만 조리법은 그렇지 않다.

물론 레시피를 법적으로 보호받을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특허로 인정받으면 된다. 특허청은 널리 알려진 기술이 아니거나, 이미 있는 조리법이라 하더라도 그로부터 쉽게 생각해낼 수 없는 방법이라면 특허를 내준다. 즉석 김치찌개용 블록이나 환자용 고추장 양념 제조법 등이 그 예다.

문제는 특허를 등록하면 자동적으로 레시피가 모든 이들에게 공개돼 버린다는 데 있다. 실제로 특허청이 관리하는 웹사이트 '특허정보넷 키프리스'에는 특허를 받은 모든 기술들이 공개돼 있다. 게다가 특허를 받는다고 해도 20년의 법정 보호 기간이 끝나면 보호권도 사라진다. 또 특허로 등록돼 있는 조리법을 살짝 변형해 사용하면 특허 침해가 아니라서 법적으로 빠져나갈 구멍도 많다.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코카콜라는 아예 특허 등록을 하지 않고 레시피를 '영업 비밀'로 유지하고 있다.

유성원 지심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는 "최근 들어 음식 특허를 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특허는 원래 발명 가치에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맛이 좋다'는 정도로 요리 특허를 받기 쉽지 않은 데다, 특허를 받아도 레시피가 공개돼 영업비밀 유출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이유로 인해 식품업계에서의 다툼은 대부분 레시피가 아닌 상표나 포장지로 인해 불거진다. 미투 제품은 음식뿐 아니라 제품의 이름이나 외관까지 닮아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논란이 됐던 덮죽 사건도 '원조'였던 소상공인보다 프랜차이즈 기업이 상표 등록을 먼저 해 여론의 분노를 샀다.

하지만 일부에서 소송전이 진행된다 해도, 여전히 시중에는 언뜻 보기에도 서로를 베낀 것 같은 상표·디자인들 또한 많이 유통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특허청 관계자는 "상표 허가를 내줄 때는 이미 등록돼 있는 상표와 발음·호칭·외관이 비슷한지를 고려한다"며 "소비자가 원 제품과 미투 제품을 구분할 수 있는지 여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만약 특정 제품을 내놓은 업체에서 미투 제품을 낸 업체를 상대로 '상표 자체는 다르지만 비슷한 외관으로 인해 권리를 침해받고 있다'고 문제 제기를 한다면, 상품 등록 단계가 아니라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부정경쟁방지법)에 따라 법적으로 처리돼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원조가 베낀 제품을 차라리 내버려두기도
 
30일 서울에 위치한 한 아이스크림 할인점 냉동고에 빙그레의 메로나와 롯데푸드의 메로메로가 뒤섞여 진열돼 있다.
 30일 서울에 위치한 한 아이스크림 할인점 냉동고에 빙그레의 메로나와 롯데푸드의 메로메로가 뒤섞여 진열돼 있다.
ⓒ 류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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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원조 회사들이 모사 제품을 낸 업체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식품업계에서 미투 제품의 출시는 이미 하루 이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메로나 제조사 빙그레 관계자는 "메로메로나 멜로니아 같은 유사 제품들이 있지만 식품업계에 미투 제품이 워낙 많아 법적 공방을 하는 게 실익이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유성원 변리사도 "일반적으로 식품 회사들은 '나도 베끼고 너도 베끼고'다. 서로 베끼기 때문에 소송을 걸지 않는 것"이라며 "그러다가도 회사 매출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제품을 누군가 따라한다면 그제야 법적 다툼이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투 제품 제조사가) 아직은 시작하는 단계고 크게 (원조 회사) 매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손해 배상으로 받는 규모도 적다"며 "소송으로 거둬들일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이 들어가는 비용보다 크다고 판단했을 때만 소송을 진행한다"고 덧붙였다.

식품업계 내 베끼기가 퍼져 있는 이유는 빠른 유행 변화 때문이다. 수많은 유사 제품을 낳은 한 '원조 제품' 제조업체의 관계자는 "식품업계는 유행을 굉장히 많이 탄다. 음식은 잠깐 유행했다가 또 어느 순간 사라지기도 한다"며 "포장지라도 비슷하게 만들면 잠깐의 유행에서 시장 점유율(market share)을 확보할 수 있다, (미투 제품으로 소송까지 가지 않는 건) 관행처럼 굳어졌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애초에 레시피가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조리법 측면에서는 미투 제품이 모든 것을 베꼈다고 이야기하기도 어렵다"라며 "또 연구소에서는 사전에 정말 많은 레시피들을 개발해놓는다. 어떤 유행이 불어오면 그에 맞는 레시피를 내놓을 뿐"이라고 말했다.
 

태그:#덮죽, #미투제품, #메로나, #메로메로, #레시피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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