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연예대상' 김숙, 자신도 놀란 대상 김숙 코미디언이 24일 오후 비대면으로 열린 <2020 KBS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숙 코미디언이 24일 오후 비대면으로 열린 <2020 KBS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 KBS

 
희극인 김숙이 < 2020 KBS 연예대상 >에서 영예의 대상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김숙은 24일 방송된 연예대상에서 올해 KBS 2TV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옥탑방의 문제아들> 등 여러 프로그램에서 활약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상의 주인공으로 호명됐다.

김숙의 수상은 연예대상 최대의 이변으로 꼽힌다. 이경규, 전현무, 김종민, 샘 해밍턴 가족 등 쟁쟁한 남성 후보군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크게 주목받지못했던 김숙은, 자신의 이름이 대상으로 호명되자 예상하지 못했던 듯 한동안 놀란 표정을 짓다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김숙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사실 이곳이 제가 공채로 들어올 때 처음 상을 받았던 곳인데, 여기서 25년 만에 이런 큰 상을 다시 받게 돼서 너무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사실 저는 벌써 대상을 받은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작년에도 후보에 올랐을 때 KBS가 나한테 큰 기회를 많이 줬고 지금도 프로그램을 많이 하고 있어서 대상보다 더 값진 걸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이경규 선배님부터 이런 쟁쟁한 분들이 축하해주는 자리에서 대상을 받게 돼서 너무 감사하고 죄송하기도 하다"고 겸손함을 보였다.

김숙은 "상복이 없다고 늘 얘기했었는데 큰 상을 받으려고 지금까지 그랬나보다. 빈손으로 돌아갈까봐 가족들한테도 (수상 후보에 올랐다는) 이야기를 안 했다. 지금 너무 기뻐하고 있을 부산에 있는 아버지, 하늘에 계신 우리 엄마, 언니들 너무 감사하다. 코로나 때문에 힘들어하고 계신 의료진, 자영업자들,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모든 분들께 영광 돌리고 조금이라도 웃음 지을 수 있는 방송을 만들어 나가겠다"며 대상 수상 소감을 마무리했다.

김숙의 수상은 최근 그 위상이 점점 높아지고있는 여성 예능인의 우먼 파워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수십년에 걸친 지상파 방송의 연예대상 역사에서 여성 예능인이 대상을 수상한 경우는 김숙을 비롯하여 이영자, 박경림, 박나래 등 겨우 8명에 불과하다.

특히 KBS만 놓고보면 2018년 이영자에 이어 김숙이 2번째다. 2019년 MBC에서 연예대상을 수상한 박나래에 이어 최근 3년간 여성 연예대상 수상자가 배출되었다는 것도 주목할만하다. 유재석-이경규-강호동-신동엽-전현무 등 쟁쟁한 남성 예능인들이 오랫동안 장기집권하고 있는 국내 방송가에서 꾸준히 오래 살아남아 여성 예능인들의 입지를 개척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

1995년 KBS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김숙은 이른바 대기만성 스타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초기에는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했지만 크게 얼굴을 알리진 못했고 2000년대 초반부터 KBS 2TV <개그콘서트>의 대표 코너 '봉숭아학당'에서 '따귀 소녀'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불량 청소년을 형상화한 '따귀 소녀'는 오늘날까지 김숙이 방송에서 보여주는 걸크러시 이미지에 토대가 된 캐릭터라고 할 만하다.

이후로는 SBS로 이적하여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서 '난다 김'이라는 역할을 맡아 "사천만 땡겨주세요"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내며 우아한 사모님인 척 하지만 본색은 능청스럽게 돈을 구걸하는 반전 캐릭터를 소화하여 또 한번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2010년대부터는 공개 코미디를 벗어나 다양한 예능 장르에서 활동범위를 넓혔다. <무한걸스> <인간의 조건-여성특집> <언니들의 슬램덩크> 등 여성 위주의 버라어이티 예능에서 믿음직한 실세 캐릭터로 활약했고, <님과 함께>에서는 선배 희극인 윤정수와 가상부부 역할을 맡아 '비즈니스 커플' '가모장'이라는 유행어를 낳으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최근에는 <비디오스타> <동상이몽> <연애의 참견> <사장님 귀는 당나귀귀>, 팟캐스트 <비밀보장> 등에서 안정된 진행과 유쾌한 입담을 발휘하며 MC로서 더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보조 MC나 2인자의 이미지가 강해서 그동안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부분이지만, 김숙은 본업인 콩트 연기는 물론이고 토크쇼와 버라이어티, 관찰예능 등 어떤 장르에 투입해도 기복없이 항상 제 몫을 다해내는 전천후 예능인으로 꼽힌다. 현재 국내 여성 방송인 중에서는 정말로 찾기 힘든 유형의 인재라고 할 수 있다.

김숙과 비슷하게 성공한 여성 예능인으로 꼽히는 박미선이 중장년 위주의 토크쇼에 특화되어 있고, 송은이와 이영자, 김신영, 박나래 등은 자신만의 개성이 뚜렷하여 프로그램에 따라 호불호를 타게 되는 것과 달리, 김숙은 다양한 프로그램과 출연자들의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케미'가 최대의 장점으로 꼽힌다.

'쑥크러시' 등 겉보기에는 센 언니같은 이미지로 자주 비쳐지고 있지만, 정작 방송을 보면 김숙이 전면에 나서서 무언가를 강하게 주도하는듯한 모습은 의외로 많지 않다. 오히려 진행의 중심을 잡거나 다른 출연자들의 스토리를 살려주는 데 더 집중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김숙은 이미지와 달리 방송에서의 언행이나 태도와 관련된 구설수 등도 거의 없는 편이다.

방송인으로서 김숙의 가장 큰 매력은 남들이 뭐라하든 내 갈길만 가는 독특한 '마이페이스' 같지만, 정작 내 사람들에게는 항상 진심으로 필요한 말을 들려주는 '돌직구 언니'로 요약된다. 김구라나 서장훈같은 남성 독설가형 캐릭터와 비슷하면서도 김숙이 다른 점은, 상대적으로 약자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공감대와, 까칠해보이는 이면에 상대에 대한 따뜻함이 묻어나는 면모 때문이다.

<님과 함께>에서 가상 남편 윤정수를 향하여 '남자면 조신하게 살림이나 해'라고 일침을 놓는 가모장 캐릭터는 가부장적인 고정관념을 뒤집는 전복 구도로 웃음을 선사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 남자는 내가 먹여살릴 수 있다"는 자신감과 주눅들지말라는 애정의 또다른 표현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또한 <당나귀귀>에서 갑질하는 '보스'들을 향하여 "이게 정말 맞다고 생각하세요?"라고 일침을 놓거나 <연애의 참견>에서 힘겨운 연애로 고통받는 청춘들에게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할말은 하세요"라고 조언하는 것도 모두 '약자들의 입장'에 초점이 맞춰진 현실적인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이는 군기가 세기로 유명한 희극인들 사이에서도 초년병 시절부터 선배들에게 할 말은 다하고 후배들에게는 의리 있기로 유명했던 김숙 본인의 실제 성격이나 인생 이력과도 겹치며 시청자들에게 자연스러운 공감을 자아낼 수 있었다.

이처럼 김숙의 방송스타일은 자극적인 언어나 달변과는 오히려 거리가 있지만, 틀린 말은 하지 않고 주제의 핵심을 짚어내는 '직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MC로서의 김숙은 자신이 돋보이기 위하여 불필요한 말을 길게 하거나 웃음과 진행 욕심으로 무리수를 드는 스타일도 아니다. 그래서 여러 프로그램에 고정출연함에도 이미지 중복에 대한 지적도 없는 편이다. 여성 예능인이 장수하기 힘든 방송가에서 40대 중반을 넘긴 나이에 김숙이 뒤늦은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다.

김숙은 유재석이나 이경규같은 스타급 남성 예능인들처럼 메인 MC나 리더의 이미지가 강한 인물은 아니다. 그녀가 출연한 KBS 프로그램들도 사실 시청률이나 MC의 존재감에서 크게 부각되었던 프로그램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래서 김숙의 대상 수상은 조금 더 이례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오히려 SBS에서 대상을 수상한 김종국처럼, 올해의 연예대상은 '2인자'나 '주연급 조연'들의 재발견에 초점이 맞춰지는 분위기다. 굳이 화려한 1인자가 아닐지라도 자신만의 개성과 노력이 차곡차곡 쌓이다보면 언젠가는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음을 증명했다는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지 않을까.
김숙 KBS연예대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