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파이럴> 포스터

영화 <스파이럴> 포스터 ⓒ ㈜올스타엔터테인먼트

 
아주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도덕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하지만 소소한 잘못 하나 하지 않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을 잘못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면 그냥 넘어가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잘못을 인지하고 사과를 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행동에 대한 판단은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를 수도 있다. 

이런 혼란을 줄이기 위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따라야 하는 법을 만들었고 사법기관은 판단을 내려준다. 이 일련의 과정은 수십 년 이상 인류가 사회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만든 체계다. 하지만 모든 잘못을 법이 다 잡아낼 수는 없다. 어떤 잘못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고 그 잘못을 아는 사람이 없어지면 그것도 자연스럽게 묻힌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영웅 같은 존재를 이상화한다. 경찰이나 검찰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의 잘못도 누군가가 바로 잡아 주길 원한다. 하지만 그 존재는 분명 인류가 만든 법의 테두리에서는 벗어나 있다.

영화 <스파이럴>은 법을 집행하는 경찰이 가지고 있는 잘못들을 바로잡는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를 다룬다. 경찰들의 잘못은 큰 것도 있고 사소한 것도 있지만 그들에게 내려진 형벌은 가혹하다. 공포 스릴러 <쏘우>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엔 극 중 유명한 연쇄살인범 직쏘(토빈 벨)는 등장하지 않지만 그 모방범을 등장시켜 비슷한 패턴의 연쇄살인을 묘사한다.

<쏘우> 시리즈의 스핀오프격인 이 작품에선 과거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희생자들이 잔인한 고문 기계에서 깨어나고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테스트를 받는다. 원작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특정 신체를 절단하는 것과 목숨을 구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인데 고민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으면서 잔인한 결과로 이어지고 이 장면들이 그대로 화면을 통해 관객에게 전해진다. 
 
 영화 <스파이럴> 장면

영화 <스파이럴> 장면 ⓒ ㈜올스타엔터테인먼트

 
비리 경찰을 처단하는 연쇄살인범 이야기

<스파이럴>은 돼지 머리 인형을 내세우는 직쏘 모방범과 그를 쫓는 지크 형사(크리스 록)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지크 형사는 동료들과 관계가 좋지 못하지만 꽤 도덕적이고 믿을 수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과거 경찰서장이었던 마커스(사무엘 잭슨)의 아들인 지크 형사는 동료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고, 새로 온 신참 파트너 윌리엄(맥스 밍겔라)만이 그를 따르고 있을 뿐이다. 그 상황에서 지크의 동료 형사들이 하나둘씩 직쏘 모방범에게 납치되어 살해당한다. 결국 연쇄살인범과 직접적으로 대결을 벌이게 되는 것 지크 형사뿐이다. 다른 형사들도 같이 추적을 해나가지만 왠지 모르게 지크와 협력하기보다는 독립적으로 수사를 하며 움직인다.

경찰은 범죄자를 처벌할 수 있는 집단이다. 그래서 그들이 가진 도덕적인 신념은 중요하다. 영화 속 지크 형사는 도덕적인 신념이 꽤 명확한 인물이다. 주변 동료를 챙기면서도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를 정확히 판단하고 동료라고 해도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직언을 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하지만 그런 성향은 그에게로부터 동료들이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된다. 지크 형사는 동료들이 연쇄살인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동료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것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어찌 보면 그는 경찰 내부에서 마지막 남은 최후의 보루라고도 볼 수 있다.

이전 시리즈가 그랬듯이 지크 형사는 늘 범인보다 한 발씩 늦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은 아주 잔혹한 묘사를 하는 시리즈의 특성을 조금은 완화시켜준다. 또한 범인의 단서를 추적해 나가는 과정도 어느 정도는 설득력이 있다. 과거 시리즈보다 속도감은 조금 떨어졌지만 논리적 서사를 보강했고, 무엇보다 지크 형사 캐릭터는 영화를 끝까지 흥미롭게 볼 수 있도록 한다. 그는 최대한 동료를 구하려고 뛰어다니고 단서를 찾아 결국 모든 살인의 범인을 찾아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클라이맥스엔 어떤 결정을 두고 딜레마에 빠지는데, 이 때문에 긴장감이 높아진다.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스파이럴>은 일그러진 영웅의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연쇄살인범 직쏘가 그랬던 것처럼 영화 속 모방범은 개인적인 원한으로 살인을 시작해 비리 경찰들에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형벌을 준다. 살인범의 형벌은 세상을 위한 정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죄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반론권이 전혀 주어지지 않으므로 올바른 정의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를 영웅으로 보기는 힘들다. 그 자신이 행하는 정의에 이유와 원칙을 가지고 있지만 보는 이의 입장에선 그저 잔혹한 악당으로만 보일 뿐이다.
 
 영화 <스파이럴> 장면

영화 <스파이럴> 장면 ⓒ ㈜올스타엔터테인먼트

 
기시감이 느껴지는 이야기지만,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기

영화 속 연쇄살인범은 돼지 가면과 인형을 이용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마스코트만 바뀌었을 뿐, 직쏘가 이용했던 방식 그대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살인범 역시 새로운 직쏘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동일한 방식과 메시지는 <스파이럴>이 <쏘우> 시리즈의 동어반복인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이미 했던 이야기를 다른 캐릭터를 가져와 재구성하여 풀어가기 때문에 스핀오프라기보다는 새로운 형태의 리부트로 보이기도 한다. 

메가폰을 잡은 대런 린 보우즈만은 공포영화 전문 감독으로 <쏘우 2> 편으로 연출 데뷔를 한 이후, <쏘우 3> <쏘우 4>까지 연출하여 <쏘우> 시리즈의 분위기를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이후 여러 가지 공포영화들을 연출하고 있지만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은 많지 않다. 이번 <스파이럴>로 다시 <쏘우> 시리즈의 연출을 맡게 되면서 자신이 가장 잘했던 영화를 다시 한 번 만들어냈고, 팬들이 만족할 만한 완성도를 보여줬다. 기시감은 느껴지지만 과거 시리즈의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고, 서사의 구멍도 그렇게 많지 않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스릴러라 볼 수 있다. 

영화 주인공 지크 형사를 연기한 크리스 록은 <쏘우> 시리즈의 팬으로 <스파이럴>의 기획 아이디어를 제공했고, 각본 작업에도 참여하여 이 시리즈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코미디 배우로 많이 알려져 우스꽝 스러운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게 되는데, 이번 <스파이럴>에서는 과거와 다르게 심각하고 진지한 모습을 보여준다. 배우를 비롯해 감독까지 시리즈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만든 영화 <스파이럴>은 여러 가지 단점을 보여주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시리즈를 이어갈 동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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