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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1일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열린 정세균계 의원 모임인 ‘광화문포럼’에서 정세균 전 총리가 기조 강연을 하고 있다.
 지난 5월 11일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열린 정세균계 의원 모임인 ‘광화문포럼’에서 정세균 전 총리가 기조 강연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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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당대표 선거에서 유력 후보로 떠오른 것에 대해) 고민도 많이 있을 거라고 봐요. 긍정적으로 보면 세대 새로운 신세대를 받아들이고 변화를 수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 사실 이게 대선 관리라고 하는 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거든요. 

경륜이 없이 이게 할 수 있겠는가. 꼭 물론 나이로만 가지고 따질 수는 없지만 그런 측면에서 아마 고민이 많을 거라고 보고요. 옛날에 영국에 밀리밴드라고 하는 39세짜리 당대표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마 그 당이 정권을 잡는 데 실패했을 거예요. 그리고 그 당대표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것으로 저는 기억이 되어서 아마...

거기다가 이제 당력을 하나로 집중시켜야 되는데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문화가 있지 않습니까? 장유유서, 이런 문화도 있고 그래서 저는 뭐 그런 변화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봅니다마는 (국민의힘이) 고민이 많을 것이다."


지난 25일 정세균 전 총리가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아래 뉴스공장)에 출연해 한 말이다. '장유유서' 발언이 논란이 되자 이준석 전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정 전 총리가 언급한 장유유서를 이야기하면서 이를 "젊은 세대를 배제하고 시작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전 최고위원에 대한 호오나 찬반을 떠나, 정 전 총리의 발언은 매우 부적절했다고 본다. 그의 말대로 경륜, 장유유서 같은 개념은 결국 청년들에게 권한을 주지 않겠다는 말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다음날인 26일 정 전 총리는 뉴스공장과의 전화통화에서 '젊은 후보가 제1야당인 보수정당의 대표 선거에서 여론조사 1위에 오른 것은 큰 변화고 그런 변화가 긍정적'이라고 평가를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전날에 말한 발언 전체의 맥락을 보면 한 부분만을 강조해서 논란을 만든 것이라고 보기에는 또 힘들지 않을까 한다. 

이준석과 정세균이 처한 역설
 
국민의힘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이준석 후보가 지난 5월 25일 서울 마포구 누리꿈스퀘어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1차 전당대회 비전발표회에서 비전발표를 하고 있다.
 국민의힘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이준석 후보가 지난 5월 25일 서울 마포구 누리꿈스퀘어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1차 전당대회 비전발표회에서 비전발표를 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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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처한 상황 역시 꽤 역설적이다.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의 당원과 지지자들이 30대 당대표를 실제로 용인할 것인지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원내경험도 없고 선수가 높은 선배 정치인들보다 많이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당대표가 돼야 할 이유를 설득해 나가야 할 상황이다. 그러니까 '젊음에도 불구하고 유능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 대표가 되면 각종 할당제를 폐지하겠다는 그의 발언을 이 상황과 겹쳐놓고 보면 '웃픈' 상황이 연출된다. 비록 제도로서의 할당제는 폐지한다 해도 청년에게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을 경선 때나 당선된 뒤에나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다.

기본적으로 할당제는 무능력해도 용인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이들에게 자신의 역량을 강화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것에 가깝다. 역량을 키워서 능력을 보일 기회조차 없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엔 여전히 많고, 정치권은 더더욱 그러하다. 

정 전 총리의 또 다른 문제는 에드워드 밀리밴드(Edward Samuel Miliband)를 언급했다는 점이다. 그는 밀리밴드가 영국 노동당의 최연소 당수로 당선된 뒤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정권 창출에 실패했다고 짚었다.

물론 밀리밴드가 2015년 당수직에서 물러난 이유는 총선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다. 당시 BBC를 비롯한 많은 외신이 "밀리밴드가 노동당의 실망스러운 총선 결과 때문에 당수직에서 물러났다(Ed Miliband has stepped down as Labour leader after his party's disappointing general election showing)"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는 선거 패배에 대해 정치세력이 책임지는 하나의 방식이었을 뿐이지 나이의 많고 적음의 문제는 아니었다. 같은 당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제레미 코빈 역시 총선에서 패배한 뒤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렇다면 이는 노년의 정치인이 당대표가 되지 않아야 할 근거로 제시돼야 하는 걸까?

30대 당대표가 나올 수 없는 이유

해당 방송에서 진행자 김어준씨가 해외에는 30대 총리도 있지 않으냐고 지적하자, 정 전 총리는 총리와 당대표는 다르다고 말한다. 물론 기능적인 측면에서 그 둘은 다르다. 그러나 공통점이라면 30대 총리든 30대 당대표든 그 배경에는 청년에게 권한을 흔쾌히 쥐여줄 수 있는 정치문화가 있다는 점이다.

정 전 총리의 발언을 보고 있자니 '30대 당대표'의 등장이 준비된 정당은 한국 정치권에는 아직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청년들의 삶을 대변해야 한다고 누구나 얘기하지만, 진짜로 청년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불편함을 내비치거나 편견을 숨기지 못한 기성세대의 '어른'들이 얼마나 많았나. 

정 전 총리 역시 국무총리실 산하에 청년정책조정위원회를 설치하면서 "우리 역사상 최초로 '청년을 위한 정책(for the youth)'를 넘어 '청년에 의한 정책(by the youth)'을 추진하게 될 것"이라는 인사말을 남겼다. 과연 다른 정당의 청년 정치인을 존중할 줄 모르는 태도에서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이렇듯 이 전 최고위원과 정 전 총리가 보여준 역설은 청년정치의 현재를 보여준다. 청년정치가 아직도 여기에 머물러 있는 건 할당제 때문도 아니고, 청년 정치인들이 어려서도 아니다. 툭하면 청년을 언급하지만 그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때는 들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이 청년의 정치 대표성이 확대되는 걸 막는 존재들이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청년들은 4년에 한 번씩 투표만 하면 되는 존재로 전락하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이에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19년 보고서 <청년여성의 정치의식과 정치세력화 방안에 관한 연구>를 인용하면서 글을 맺는다. 한국 정치권에서 청년정치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정당 내에서 청년의 지위와 역할에 대해서는 현재의 구조가 이들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기에는 불충분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청년을 중요시하는 것 같은 당의 이미지를 표방하고 있으나, 실제로 정당들은 청년에게 주변적인 위치만을 허용하고 이들의 발언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략)

따라서 당내의 평등 지향적인 소통구조,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적 환경, 당원 구성에서의 청년 비율 등의 상향 조건은 청년의 지위와 역할을 개선하는 데 우호적 환경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태그:#정세균, #이준석, #청년정치, #당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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