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BIAF 2021.10.22~26)에서 명예공로상 수상자이자 한국단편 심사위원으로 입국한 한국계 벨기에 융(한국 이름 전정식) 감독. 그는 5살 때 벨기에로 입양되어 자신과 다른 외모의 가족들 속에서 정체성 고민에 빠졌던 성장기를 회상하며 그린 자전적 이야기를 만화로 옮겼고, 그렇게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피부색깔=꿀색>은 탄생하였다. 영화는 BIAF2013 개막작으로 한국에 처음으로 선보였다. 
 
융 헤넨 감독 그래픽 노블 <요수다>(1991)로 데뷔했고, 프랑스 문화권에서 여러 만화 작품을 출간했다.

▲ 융 헤넨 감독 그래픽 노블 <요수다>(1991)로 데뷔했고, 프랑스 문화권에서 여러 만화 작품을 출간했다. ⓒ 수피아

 
- 입양에 한정된 영화가 아니라, 세상 모든 이들의 성장에 관한 영화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느끼길 바랐는데 다행이다. 단지 입양에 대한 얘기만 아니라 청소년기를 갖고 있는 누군가의 가족 관계와 정체성 확립 등 보편적인 주제를 담으려 노력했다."

- 모두 본인의 얘기인건지?
"자전적 얘기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개인사인데 영화를 만든 이후 다른 입양아들의 얘기를 많이 들으면서 우리는 서로 거울과 같다고 느꼈다."

- 어릴 적 이야기들을 세세한 감정까지 다 기억한게 신기했다.
"따로 기록하진 않았고 기억나는 이야기들을 담았다. 더 기억나는 것도 있지만 인상깊었던 장면만 집약해서 담은 영화다. 입양 전 한국에 있었던 5살까지 얘기(고아원)는 거의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의 일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 영화 초반에 동생한테 활 쏘는 장면은 너무 공포스러웠다. 혹시나 양부모에게 크게 혼나진 않을까 해서.
"동생한테 활을 쏜 건 중세시대 배경의 영화에 나오는 장면을 보고 따라한 거였다. 어렸을 때 형과 함께 장난을 정말 많이 쳤다. 어린시절이 힘들었지만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좋았던 기억도 많다."

- 형제들과 연락하고 지내는지.
"그렇다. 난 프랑스에 산지 25년이고, 형제들은 벨기에에 있어서 자주 보지는 못한다. 한국 오기 바로 직전에 아버지가 저를 방문하기도 했다. 난 프랑스 니스 근처에 살고 있다. 여동생 코랄리는 포르투갈에 살고 있는데 한국 방문 이후 들를 예정이다. 형제 중에서도 가장 친했는데 지금도 가장 친하다. 영화에서 보면 한 줄로 세워놓고 뺨을 때리는데 저 대신 맞았던 동생이다.(웃음)"

- 영화 속에서 벨기에 엄마를 나타내는 '엄마는 사랑 표현에 서툰 사람이었다'라는 문장이 인상깊었다.
"<피부색깔=꿀색> 영화를 한국에 수입한 김영 PD를 보자마자 포옹을 했다. 그런데 (벨기에) 엄마와는 그런 적이 없었다. 아이들은 엄마 품이 그립고 찾게 되는데 저는 그런 기억이 없다. 다른 자식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엄마와 외할머니 관계를 보면, 벨기에 에서는 원래 인사로 볼에다 뽀뽀를 하는데 두 사람은 악수를 한다. 또 보통의 부모와 자식 간에 반말하는 데 두 사람은은 존댓말을 한다. 충격적이었다. 엄마도 그렇게 자라온 것이다."

- 영화 속 할머니는 외할머니인가?
"맞다. 영화 속에서처럼 손자들에게도 '안녕?'이라고만 얘기하고 딸과 악수만 한다. 이 장면을 통해서 왜 평소 엄마가 우리를 안아주지 않았는지 잘 보여준다. 지금도 어머니와 가끔 만나면 포옹을 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딱 한 번 저를 안아준 적이 있는데 영화에서처럼 내가 아픈 바람에 병원에서 돌아왔을 때 처음으로 안아줬다."

- 어머니의 삶에 관련해서 얘길 나눠본 적은 없었나?
"없었다. 하지만 좋은 생각 같다. 다음에 어머니와 얘길 나눠보겠다. 저에게 왜 애정을 주지 않았는지(표현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얘길 나눠본 적은 없다."
 
융 헤넨 감독과 김진희 불어 통역사 인터뷰 내내 통역사의 도움을 받았다.

▲ 융 헤넨 감독과 김진희 불어 통역사 인터뷰 내내 통역사의 도움을 받았다. ⓒ BIAF

 
- 감독님은 애정표현을 잘하는 사람인가?
"아니다(웃음). 이런 것도 교육이 필요한 것 같다. 나도 애정 주는 스타일 아니었는데 제 아내는 정반대 성격이다. 항상 저한테 '포옹하러 오라'고 하는데 매일 아침마다 한다. 그래서 나도 배우게 됐고, 하다보니까 익숙하게 됐다. 제 작업에 보면 항상 포옹하는 신이 나온다. 저한테는 강한 장면이다. 타인에게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의 표현이 아닐까 한다."

-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면?
"프랑스어 표현으로 '주뗌'은 '나는 너를 사랑해'인데 아내는 '쥬쉬아무흐 드 뚜와'라고 한다. '나는 너에게 반했어'라는 뜻인데 나는 그 표현이 별로다. 우린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지만 '반했다'는 것은 그냥 예쁜 꽃이나 지나가는 여자한테도 스칠 수 있는 감정이라 생각한다. 나에게 사랑은 굉장히 큰 감정이다. 딸에게도 단순히 '반했어'라고 하진 않고 '사랑해' 라고 말할 수 있다. 아내에게 매번 설명하지만 잘 안 된다.(웃음)

다음 작품 준비 때문에 청소년들 10여 명의 인터뷰를 해보니 공통적으로 '사랑'에 대한 얘기를 했다. 부모에게서 사랑 받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어른의 삶 준비에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사랑이란 아이와 부모, 나와 아내의 관계에서 육체를 뛰어넘는 '둘을 투영하는 것'이다."

- 사랑 표현에 서툰 어머니와 관심받고 싶고, 부모를 사랑하고 싶은 아이의 이상 행동. 그리고 몸은 성장했지만 내 안에 채 성장하지 못한, 어린시절의 나를 아우르는 영화였다. 
"양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상상 속 친엄마에 대한 사랑을 갈구했다. 삶의 의미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는 시간이 많았다. 나는 왜 여기 있지? 우린 왜 함께 있지? 이런 생각을 계속하고, 분리해보면 결국 남는 건 사랑이었다. 실존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아닐까."

- 영화가 만들어진 2013년으로부터 세월이 좀 흘렀다. 그 사이 생각이 달라진 부분이 있나?
"없다. 어릴 때와 청소년기 때의 내 그림을 보면 항상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래픽 노블과 영화 작업을 했어도 이 주제가 고갈되지 않는다. <피부색깔=꿀색>은 9년 전에 나온 영화다. 그 이후 많은 문들이 열렸다. '버림'과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룰 때 진솔함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 시간과 함께 예술가로서 갖게된 아이디어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할 수 있다. 2015년에 저한테 연락을 했던 싱글맘이 있었다. 당시 아이를 입양 보낼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제 영화를 본 후에 한국에서 아빠 없이 혼자 키우기로 어렵게 결심한 엄마였다. 제 영화가 누군가의 결정에 도움을 줄 수도 있구나 생각했다. 감동적인 에피소드였다.

영화를 보고 한국 해외입양자들이 감동했다고 연락이 오기도 했다. '나 혼자 겪은 게 아니구나' 하며 삶의 균형을 찾았다는 분들이 많았다. 한국 감독들도 많이 만났다. 한국인들에게 질문도 많이 받았고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좋아해주더라. 한국의 어두운 면이라고 할 수 있는 해외 입양에 관한 내용이지만 누군가 죄책감을 느끼게 만드는 영화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한국의 많은 청소년들도 만났는데 1970~1980년대 입양자들을 해외로 많이 보낸 걸 모르고 있더라. 한국 전쟁뿐만 아니라 입양도 한국 역사의 일부분인데 외국 이주뿐만 아니라 해외에 거주하는 많은 입양자들도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안다는 게 중요하다."

- 해외교포들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더라. 친부모 밑에서 자라도 (친부모와) 국적이 다르니까. 하지만 입양자들은 부모도 다르고 국가도 다르니까 이중 고민에 빠질 것 같다.
"한국에서도, 입양국가 가정에서도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는 입양인들이 많다. 장애를 갖고도 일어날 수 있고, 삶의 균형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스스로 불행에 빠지지말고 고통을 인정하자. 버려져서 불행하다고, 불평만 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도 신체는 건강하지 않나. '삶의 탄성(회복 탄력성)', 다시 넘어져도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가졌으면 한다."

- 영화를 보면서 곪고 있던 상처에 소독약을 한번 뿌리고 연고를 바르고 다시 붙인 기분이 들었다. 고통스러웠지만 좀 더 건강해진 느낌이었다.
"이 영화가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게 너무 좋다. 보기에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우리 안에 숨어있는 상처들을 끄집어 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고 책을 보고 음악을 듣는 이유도 같다. 예술은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고 저 역시도 그렇다. 좋은 예술을 접하면 감동을 받는다. 예술은 인간의 삶에서 필수이자 인생을 진보하게 해준다. 사실 어린 아이들이 보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다. 제 스스로 만화가라서 그림으로 표현하는 게 가장 중요한데, 실사와 그림을 합친 '하이브리드'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주제를 다루는 영화는 칸국제영화제같은 유명한 영화제에 나가야 관심 받을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세계적으로 성공적인 애니메이션을 보면 어린 관객들을 위한 픽사나 디즈니의 영화밖에 없다. 크게 주목받지 못하더라도 내 영화에 대해 얘기할 자리가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 그런가 하면, 이번에는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BIAF) 심사위원도 맡았다. 본인이 작품을 선정하는 기준이 있다면?
"그동안 심사도 많이 했었는데 저한테는 테크닉과 이야기의 균형이 중요하다. 테크닉이 지나치게 좋으면 이야기에 집중이 안 된다. 서로 잘 만나서 균형을 이루는 것이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 BIAF에서 명예공로상을 받게 됐다. 선정된 소감은?
"제 뿌리가 어딜까 항상 생각했는데 이 상을 받음으로서 다시 한국과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너는 한국인이다 우리 일원이다'라고 해준 것 같아서 감동적이고 좋았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 본 <피부색깔=꿀색>인 5살 어린 융이 등장하며 벌어지는 얘기에 내 기억 속 어딘가에 묻혀있던 어린 시절의 파편들이 떠올랐다. 마음이 저릿하기도 따뜻하기도 했다. 혼자 또는 친구와 가족, 연인과 볼 때마다 다른 느낌을 받고 다양한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은 작품이었다. 따뜻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위험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를 함께 본 후 내 아픔을 전할 수도 있고 상대의 아픈 추억을 들을 준비도 되어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표현하는 것에 서툰 엄마와 사랑받고 싶지만 어떻게 사랑 받을지는 모르는 아이. 우리는 어디쯤에 있을까? 
덧붙이는 글 <피부색깔=꿀색>(2012)은 전 세계 80개 영화제에 초청됐고,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관객상과 유니세프상, 자그레브애니메이션영화제 장편 대상과 관객상 등 23개의 상을 수상했으며,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 예비후보로 선정되기도 했다.
전정식 피부색깔=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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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세계사가 나의 삶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일임을 깨닫고 몸으로 시대를 느끼고, 기억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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