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985년 5월 23일, 서울 을지로 1가에 있던 미문화원을 삼민투 소속 대학생들이 점거했다. 아래는 해산하며 연행되기 직전의 점거 대학생들 모습
 1985년 5월 23일, 서울 을지로 1가에 있던 미문화원을 삼민투 소속 대학생들이 점거했다. 아래는 해산하며 연행되기 직전의 점거 대학생들 모습
ⓒ 민청련동지회

관련사진보기

 
"달도 차면 기운다"는 속언은 자연현상에서 독재권력(자)의 속절 없음을 각성케 하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이다. 이 속언이 점차 실감되어 나타나고 있었다.

80년대 벽두를 강타했던 일련의 사태 속에서 민주주의의 완성을 통한 민족통일의 쟁취라는 우리 민중의 열렬한 비원은 또 다시 좌절되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했던 얼어붙은 겨울의 한복판에서 우리가 꿈꾸었던 것은 무엇인가? 

 북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 속 깊이 꽃맹아리 움자거려
 제비때 까맣게 날라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져바리지 못할 약속이여.

그리고 그 약속의 실현을 위한 우리 민중의 힘찬 발걸음은 다시 새로워졌다. 또 다시 실패를 반복할 수는 없다. (주석 2)

<실천문학>이 무크에서 1985년 봄 계간지로 전환하면서 '창간사'에 담은 내용이다. 이 해는 전두환 정권이 몰락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2월 12일 실시된 제12대 총선은 선거일을 불과 20여 일 앞두고 창당한 신민당이 67석을 확보, 제1야당으로 부상하는 한편 대도시 의석을 휩쓸었다. 지역구 의석 184석 중 민주정의당 87석, 신민당 50석, 민한당 26석, 국민당 15석, 기타 6석이었다. 야권의 총 득표율이 58.1%로 여권에 앞섰다.

사실 2.12 총선의 민심은 학생, 노동자들의 연대 운동을 토대로 형성되었다. 근원적 사회 개혁과 철저한 삶을 살기 위해 노동 현장에 뛰어든 많은 대학생들과 노동자들은 이론과 실천을 종합하여 보다 체계적인 노동 운동을 펼쳤다. 1월 14일 경인지역 10개 업체 근로자 10명은 민한당사 총재 접견실을 점거하고 '블랙리스트 철폐', '최저임금제 실시' 등을 주장하며 농성했다. 바로 이것이 민심의 소재를 확인해주고 여론을 움직인 구체적 한 예이기도 하다.

민주화의 염원은 모두의 것이다. 이제 교사, 미술인들의 마음속에서 민주화의 불꽃이 타오른다. 1985년이 바로 그러한 해였다. (주석 3)

시대적 변화의 물결 속에서 천주교 산하 각급 단체들은 시대적 소명을 찾아 열과 성을 다하였다. 정의구현사제단은 5월 14일 민청연 등 15개 단체와 광주민중항쟁기념시민대회와 관련 〈광주는 살아 있다. 5월은 부활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성명서는 "나라의 민주화를 바라는 양심적인 군인들은 더 이상 반민중적인 군사독재정권을 지원하지 말 것"을 호소하면서 살아있는 광주 속에서, 부활하는 5월 속에서, 다함께 민주화와 통일을 이루자고 결의했다. 

5월 23일 서울대ㆍ연세대ㆍ고려대ㆍ서강대ㆍ성균관대 등 5개대학 대학생 73명이 미 문화원을 점거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학생들은 성명서 〈우리는 왜 미 문화원에 들어가야만 했나?〉를 발표하고 광주사태에 대한 미국 정부의 책임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며 농성했다. 또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이라는 성명서를 통해 자신들은 '전국학생총연합 광주학살 원흉처단 투쟁위원회' 소속이라고 밝히고 ① 광주 진상과 그 책임자는 명백히 국민 앞에 공개되어야 할 것 ② 광주사태 주모자와 관련자들은 책임을 질 것 ③ 광주사태에 대해 책임을 지고 미국은 한국 국민 앞에 정중히 사죄할 것 ④ 신민당은 국정조사권을 발동하고 광주사태 진상규명위원회를 즉각 구성할 것 등을 촉구했다.

학생들은 3일만인 26일 자진해서 농성을 풀었지만 정부는 탈수현상 등으로 입원한 3명을 제외한 70명을 연행하고, 그중 25명을 구속, 43명을 구류, 5명을 훈방조치했다. 미 국무성이 "미 문화원 농성 학생들이 비폭력적이었고 자진 해산한 점을 한국정부가 참작해주기 바란다"고 했으나, 막상 전두환 정부와 수구세력은 학생들을 용공ㆍ좌경ㆍ배후세력 운운하며 중벌을 재촉했다. 문교부는 구속 학생에 대해 제적 등 중징계를 내리도록 각 대학에 지시했다.  


주석
2> <실천문학> 창간호, 실천문학사, 1985.
3> 함세웅, <한 사람의 꿈이 모든 이의 꿈이어야>, <암흑속의 횃불(6)>, 328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연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민주주의, #민주화운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