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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사회복무요원 노동조합원들이 병무청 앞에서 '굳건이 화형식'을 진행하고 있다.
 20일, 사회복무요원 노동조합원들이 병무청 앞에서 "굳건이 화형식"을 진행하고 있다.
ⓒ 사회복무요원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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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무제도란 병역법에 따른 신체검사에서 1~3급 현역 판정이 아닌 4급 보충역 판정을 받은 청년에게 사회복무 형식으로 병역의 의무를 부과하는 제도다. 사회복무요원은 1년 9개월 동안 관공서, 학교, 요양원, 아동복지시설 등에서 일해야 한다.

20일, 국제노동기구(ILO) 29호 협약(강제노동 금지)이 발효됐다. 그동안 ILO는 잉여 징집병의 비군사분야 활용을 '강제노동'으로 보고 금지해 왔다. 정부는 지난해 4월 ILO 29호 협약 비준을 위해 신체검사 4급 판정자에게 현역 복무 선택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병역법 개정을 단행했다. 선택권을 주었기 때문에 강제성이 없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사회복무요원들의 권리 신장 및 사회복무제 폐지를 위해 활동해온 사회복무요원 노동조합은 정부가 잘못된 제도를 옹호하기 위해 ILO 주장을 왜곡하고 있다고 있다고 비판했다. (관련기사 : 사회복무요원들에게도 노동조합이 있다 http://omn.kr/1yd6b)

21일, 사회복무요원들이 일터에서 어떻게 일하고, 어떤 부당함에 노출되어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현직 사회복무요원들을 인터뷰했다. 다만, 현직 사회복무요원들이 복무기관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익명 처리했다.

행정복지센터에서 근무하는 사회복무요원 A씨는 최근 코로나19 지원금 관련 업무를 맡게 됐다. 그는 환자 조회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다. 이름, 생년월일 등이 노출되어 있는 해당 시스템에는 코로나 확진자의 개인정보가 노출된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주민번호 뒷자리까지 볼 수 있다. A씨는 주민등록등본과 건강보험 가입 내역 등도 조회할 수 있다고 했다. 코로나에 한 번이라도 걸린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든 집 주소까지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사회복무요원들이 개인정보 관련 업무를 취급하는 것은 현행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지난 2019년 'n번방' 사건 당시 한 사회복무요원이 사회정보 시스템에서 불법적으로 취득한 개인정보가 범죄에 악용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큰 사회적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복무요원노조에 따르면 여전히 여러 복무지에서 사회복무요원들에게 개인정보 관련 업무를 맡기고 있다.

아동센터에서 근무하는 사회복무요원 B씨 역시 개인정보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실습을 위해 센터를 찾은 사회복지 실습생들이 작성한 성범죄 전과 조회 동의서, 체벌금지 서약서 등을 관리한다. 해당 문서에 주민등록번호 등이 노출되어 있어 병무청 복무지도관에게 문의하자 "센터에서 시키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B씨는 아동센터와 함께 있는 교회를 청소하는 일도 하고 있다. 실습생이 없는 날이면 지적장애를 가진 아동의 학습까지 담당한다. 어떤 자격도 없는 B씨가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 경계성 지능장애를 가진 아동의 학습지도를 맡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사회복무요원노조 전순표 위원장은 "사회복무요원이 시설이나 요양원에서 장애 학생 등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1차적으로는 그들에게 문제가 있지만, 아무 자격도 없는 사람들을 시설에 보내는 제도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병무청 "사회복무요원 근무여건 개선 등 권익 증진에 최선"
 
사회복무요원 C씨가 제공한 하수처리 관련 기계 사진.
 사회복무요원 C씨가 제공한 하수처리 관련 기계 사진.
ⓒ 사회복무요원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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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복무지를 재지정받은 사회복무요원 C씨는 하수처리 시설에서 복무하며 심각한 갑질에 노출됐다. 복무 담당자가 C씨에게 입에 담기도 험한 욕설을 했다. 당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던 그는 이 일로 우울증 증상이 악화돼 한동안 힘겨운 시기를 보냈다. C씨는 하수처리 기계를 작동시키는 업무를 홀로 수행하기도 했다. 감독권자 없이 혼자서 위험한 기계 설비를 다뤘다.

C씨는 "감독자 없이 혼자서 기기를 조작했다. 안전조치가 미흡해 사고가 일어날까 두려웠으며, 이것이 정상적인 업무 범위에 드는 일인지 의문스러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사회복무요원노조 전순표 위원장은 "업무 강도나 분야가 불분명하게 되어 있다. 사회복무요원은 위에서 시키면 그것이 무슨 일이든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행정복지센터 사회복무요원 D씨는 민원인의 주민등록번호와 체납기록까지 확인하며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직원들에게 짧은 설명만 듣고 곧바로 민원인에게 국가 및 지자체 사업을 안내하고 신청서까지 받는다. D씨는 "국가기관에서 일처리를 이렇게 땜질식으로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며 "쉬는 날에도 업무에 대해 물어보는 전화를 받고, 지자체 예산의 기초가 되는 지방세입 부과 업무까지 담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D씨는 "공무원이었다면 지침서라도 찾아보면서 일했을 텐데, 사회복무요원에게 복지 및 대민지원 사업까지 떠넘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회복무요원 E씨는 중증 우울증과 사회공포증으로 4급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건강 상태와는 정반대로 '불법행위 단속 관련 민원 응대' 업무에 배치됐다. 결국 E씨는 증상이 매우 악화되어 기존에 없던 장애까지 가지게 됐다. 이후 복무지 재지정을 받은 E씨는 여전히 '전화 응대'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지난 20일, 사회복무요원 노동조합 구성원들이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서울지방병무청 앞에서 '굳건이 화형식' 집회를 개최했다. '굳건이'는 지난 2020년까지 병무청의 마스코트였다.

이들은 "신체적, 정신적 문제를 안고 있는 청년들이 공공기관, 복지시설 등 국방과 전혀 무관한 분야에서 심각한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며 "명분 없는 21세기 노예제인 사회복무제도는 즉각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병무청은 "사회복무제는 헌법과 병역법에서 정한 국방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병무청은 사회복무요원의 근무여건 개선 등 권익 증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태그:#사회복무요원, #사회복무요원 노동조합, #강제노동, #ILO 29호 협약, #병무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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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대해 고민하며 광주의 오늘을 살아갑니다. 페이스북 페이지 '광주의 오월을 기억해주세요'를 운영하며, 이로 인해 2019년에 5·18언론상을 수상한 것을 인생에 다시 없을 영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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