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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여러분, 안녕하세요. 조지 포크예요.

1884년 11월 조선의 남부지역 방문 중에 가장 인상적인 곳은 전주 감영이었습니다. 나로서는 신기한 경험이었으므로 가급적 세밀하게 묘사하겠습니다. 수행원 양묵과 내가 전주 감사를 방문하기 위하여 가마에 올라 탄 것은 1884년 11월 10일 이른 오후지요.  

지독히 열악한 길을 따라 가는 우리 가마 뒤로는 호기심에 불타는 한 무리의 투박한 사람들이 바짝 붙었습니다. 그들을 붉은 외투를 걸친 예닐곱 명의 갈라잡이들이 난폭하게 밀쳐냈습니다. 

관아 쪽으로 두 군데에 출입문이 나 있더군요. 각각의 문언저리에는 정복 차림을 한 수백명의 군졸이 모여 있었습니다. 첫 번째 문으로 들어서자 가마가 우리를 내려 놓더군요. 앞쪽에 위압적인 대문이 보였습니다. 우리는 돌이 깔린 길을 따라 안쪽 대문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길라잡이들은 우리의 좌우 양쪽으로 줄을 지었고 그 두 대열의 한중앙에 웅장한 대문이 서 있었습니다.

이내 대문이 양쪽으로 활짝 열렸고 그 사이로 웅대한 관아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크고 높고 웅장한 관아 건물은 자연 그대로 투박한 구조였지만 지붕과 기둥은 흐르는 듯 매끈한 기와로 덮혀 있더군요. 본관의 대청마루에는 알록달록한 복장을 한 하급 관리들이 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놀라운 광경으로서 유사이래 어떤 외국인도 볼 수 없었던 광경일 겁니다. 동양적 전제 왕국의 권위를 풍기지만 어딘지 산족山族의 야생적 체취가 배어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나는 계단을 걸어 올라갔고 맨 위에 올라서서 모자를 벗었습니디. 그러자 화려한 두루마리를 치렁치렁 걸친 회색 수염의 중후한 관리가 장중하게 내게 인사를 하면서 손짓으로 오른쪽으로 안내했습니다. 그를 따라 들아가자 방 저 안쪽에 서 있는 감사가 눈에 들어 왔습니다. 검정 구렛나루 수염을 크게 달고 있는 그는 눈부신 비단 옷을 치렁치렁 걸치고 있었습니다. 그가 쓴 모자는 뒤쪽에 길고 붉은 술이 매달려 있었고 앞쪽에는 공작새의 깃털 한 묶음이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문지방에서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를 한후 감사를 향해 실내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에는 뜻밖에도 화려한 테이블이 하나, 의자가 둘, 거울 두 개, 시계 하나가 있었습니다. 양묵은 문 밖에서 엎드려 인사한 후 내 곁으로 와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통역을 하기 위해서였지요. 당시 나는 한국어를 어느 정도 할 수 있었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실수를 피하기 위하여 일본어로 양묵에게 이야기하고 양묵이 한국어로 통역했습니다.

전주감사 나으리의 태도는 근엄했고 날카로왔습니다. 대화가 얼어붙을 것을 각오는 하였지만 내심 그의 태도가 좀 누그러지기를 바랐지요. 대화는 동양풍의 의례적인 인사말로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내가 조선에 왜, 어떻게 내가 오게 되었는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소개했습니다.

나는 대화중에 조선 땅이 농업 생산 잠재력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방치되어 있는 곳이 많으며 그곳들을 활용할 방도를 언급했습니다. 이에 감사는 조선에서 생산되는 쌀은 지난 수백 년 동안 자급자족하기에 충분하다고 대답하더군요. 나는 화제를 돌려 무역통상의 이점을 곡진히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감사는 표정이 침중해지더니 조선은 여태까지 그런 걸 몰랐다면서 조선도 조금씩 다른 나라처럼 되어가길 바란다고 말하더군요. 나는 그를 설복시켰다는 생각에 나름 뿌듯했습니다. 그런 대화는 모두 주위에 사람들이 북적대는 중인 환시리에 이루어졌답니다. 주위 사람들은 나의 말에 미소로 공감을 표시하기도 하고 환호성을 내기도 하였지요.

대화가 무르익자 우리는 미국을 비롯한 외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전주 감사는 이미 미국의 좋은 점을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더군요. 내가 미국의 규모와 산물 그리고 유럽과의 통상에 대하여 말해 주자 감사와 주위 사람들이 놀라더군요. 하지만 어이없게도 감사는 뜬금없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조선 음식이 미국 보다 많지 않습니까? 미국은 조선만큼 좋은 나라입니까?"

내가 우리 미국엔 모든 것이 다 있다. 조선보다 더 많다. 여기 상에 차려진  고구마, 호도, 감, 소고기 육포, 국수 등속도 없는 게 없고 그 보다 더 많은 것들이 있다고  대답하자 사람들은 신기해하고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나는 나의 대꾸에 스스로 민망스러워진 나머지 얼른 화제를 돌려 한국어 명칭에 영어 명칭과 비슷한 것들이 있다고 말했지요. 이를테면, 씨앗은 영어로 '시드(seed)', 배는 '페어(pear)', 보리죽은 '포리지(porridge)'라고 한다고 말하자 좌중이 모두 즐거워하더군요.

나는 사실 대화의 초반에 감사에게 전주의 관광 명소에 대하여 물어 보았으나 그의대답은 정말 맥빠진 거였습니다. 감사는 내게 집사를 붙여 줄테니 고을을 둘러 보라고 하더군요. "카메라를 들고 나가면 아마도 사람들이 소동을 일으킬 텐데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라고 묻자 감사는 카메라에 대하여 알고 싶어 하면서 자기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더군요.

그러더니 감사가 사진 몇 장을 꺼내 놓는 게 아니겠어요? 놀랍게도 미국의 Alert 함선 등의 사진이었습니다. 그 사진은 Alert호에 승선했던 Howell이 찍은 것인데 감사는 그 사진들을 어딘가에서 독일인으로부터 얻었다고 말하는 거였습니다. 참, 요지경 같더군요. 

전주 감사와의 면담은 매우 만족스럽게 끝났습니다. 주위 사람들도 모두 다 즐거워하는 것 같았구요. 감사에게 작별을 고하고 나서 나는 새로운 거처로 안내되었습니다. 종전의 숙소에 비해 훨씬 멋지고 편안했으며 서울을 떠난 후 최상의 숙소였습니다.

거기에는 이미 수일이와 나의 소지품이 와 있었습니다. 그 새에 감사의 지시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저녁 밥상은 어마어마했습니다(tremendous). 저녁을 먹고 나니 감사가 관리를 내게 보내 식사는 잘 했는지, 애로는 없는지를 묻더군요. 감사는 내가 민영익 대감에게 자신을 잘 말해 주기를 몹시 바라는 눈치였습니다. 

아무튼 이곳 전주 감영은 몹시 인상 깊었습니다. 
 

태그:#조지 포크 , #전주 감영,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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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자의 최신기사제2의 코리아 여행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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