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1TV <시사직격> ‘집 없는 죄 - 전세회장금’ 편

KBS 1TV <시사직격> ‘집 없는 죄 - 전세회장금’ 편 ⓒ KBS

 
최근 전세사기 피해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폭등한 집값 때문에 내 집 마련이 갈수록 어려워진 요즘 세대에게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전세 제도는 그나마 주거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최근들어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전세보증금을 한순간에 빼앗길 위기에 처해진 세입자들이 잇달아 발생하여 논란이 커지고 있다.
 
10월 7일 방송된 KBS 1TV <시사직격> 136회에서는 '집없는 죄-전세회장금' 편을 통해 전세사기의 실태를 조명했다. 최근 인천 미추홀구의 A아파트에서는 무려 다섯 동이 통째로 전세사기에 휘말리는 사태가 발생하며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사회초년생인 한 신혼 부부는 안전한 집이라며 부동산 업자가 써준 이행보증서까지 받고 이사왔던 집이 경매로 넘어갔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이웃주민으로부터 듣고 충격에 빠졌다. 피해자들은 이 부부만이 아니었고, 졸지에 전재산을 잃고 빚더미에 안게 되거나, 극심한 스트레스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등 많은 이들이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수사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경매로 넘어간 스무 세대를 비롯하여 A아파트 59세대가 한 사람의 소유로 밝혀졌다. 건물 여러 채를 소유한 자산가이며 임대사업자로 알려진 30대 김철수 씨(가명)다. 김철수가 소유한 아파트는 주변 시세보다 보증금이 싸서 사회초년생이나 신혼부부에게 인기가 많았고 중개인들도 이를 장점으로 강조했다.
 
하지만 눈에 띄는 부분은 1억원이 넘는 근저당이 붙어있었다는 것. 세입자들도 이에 불안감을 느끼기는 했으나 이들중 실제 집주인과 만나거나 통화하면서 전세계약을 진행한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공인중개사는 경매로 집이 넘어가도 보증금은 중개인이 책임진다는 이행보증서를 제안하며 세입자들을 달랬다.
 
미추홀구에는 약 800여 개의 공인중개가 사무소가 있었지만 이중 이행보증서까지 써주며 A아파트를 중계한 것은 단 5곳 뿐이었다. 제작진이 해당 사무소를 방문하자 관계자들은 인터뷰를 거부하고 화를 내거나 변호사에 문의하라고 대응했다. 현재 5곳이 모두 이미 폐업했거나 폐업 예정이었고 이행보증서에 약속한대로 책임을 지겠다는 곳은 아무도 없었다. 인근의 다른 공인중개사들은 "애초에 중개사가 보증금을 책임진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김철수라는 인물은 A아파트 외에도 인천의 또다른 B아파트에서도 여러 건물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다수의 세입자들이 같은 피해를 본 것으로 드러났다. B아파트의 피해 세입자들 역시 A아파트와 동일한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통하여 소개를 받은 상황이었다.
 
재력가로 알려진 김철수는 실제로는 인천에서 운영하던 공인중개가 폐업된 이후, 서울의 한 또다른 중개자 사무실에서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제작진이 방문하자 신분을 속이고 인터뷰를 회피하려고 했다.
 
 KBS 1TV <시사직격> ‘집 없는 죄 - 전세회장금’ 편

KBS 1TV <시사직격> ‘집 없는 죄 - 전세회장금’ 편 ⓒ KBS

 
김철수의 신원을 파악한 제작진이 재차 붙잡고 경매 문제를 질문하자 마지못해 응한 그는 "세입자들이 모르고 들어왔나? 근저당 있는거 알고 들어왔고 시세보다 훨씬 싸게 살다가 경매가 터지니까 나한테 난리를 친다. 나도 돈벌려고 한 것"이라며 자신의 책임이 없다고 뻔뻔한 모습을 보였다. 이행보증서를 작성한 5개 공인중개사 사무소의 관계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가 소유한 아파트중 경매로 넘어간 것은 무려 35%에 이르렀다.

대출금액과 전세보증금의 합이 매매가의 60-80%를 넘지 않아야 안전하게 보장받을 수 있다는게 업계의 정설이다. 그런데 김철수 소유의 아파트 대부분은 근저당액과 전세보증금을 합한 금액이 매매가와 같거나 그보다 높았다. 경매에 넘어간 집이 낙찰된다고 해도 근저당권자인 은행보다 우선순위가 밀려서 보증금을 보장받기 어려운 깡통전세가 된 것.

세입자들은 이행보증서를 믿고 근저당을 알고서도 계약을 결심했지만, 설사 이를 근거로 중개인에게 민사소송을 제기한다고 해도 변제능력이 부족하다면 효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피해 세입자들은 인천 지역에서 비슷한 전세사기 피해를 직접 확인해봤다. 최근 비슷한 사건이 발생한 C아파트에서는 A,B아파트의 '임대인'이었던 김철수가 '중개인'이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여기서도 문제의 5개 공인중개사 사무실과 이해보증서가 등장한다.
 
C아파트의 임대인이었던 이정범(가명)이라는 인물은, 또다른 D아파트에서는 임대인의 대리인으로 기재되이었었다. 또한 이정범이 대표로 있는 '바' 주택종합관리(가명)는 모두 3개의 아파트를 위탁관리하고 있는 중이었다. 제작진이 수소문 끝에 해당 회사가 있는 장소를 방문하자 회사 이름과 소유주는 바뀌어있었다.
 
경매에 넘어간 아파트중 대다수가 '바' 주택종합관리가 담당하던 곳이었다. 이 곳에서 일했다는 제보자는 "관리하던 건물이 60-70여 채 정도됐고 대부분 빌라나 나홀로 아파트였다. 여러 업체명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은 하나의 업체다. 정상적인 업체는 아니라고 보면 된다라고 설명했다. 알고보니 '바' 주택관리 대표인 이정범과 5개 공인중개사 대표들은 인천 미추홀구에서 각자의 아파트를 소유한 형태로 서로의 매물을 중계했던 것이다.
 
또한 제보자에 따르면 부동산 중개인들이 매주 모여서 한 건설회사 사장으로 알려진 '남회장'이라는 인물과 회의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제보자는 "남회장이라는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중개가 움직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남 회장은 '동해시 경제자유구역 개발'이라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맡았던 시행업체의 대표였다. 하지만 현지에서는 망상1지구 개발사업과 남회장의 회사를 둘러싼 의혹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었다. 전억찬 망상지구 범시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남회장의 회사가 관광개발에 대한 능력이나 경험치, 사업을 할 수 있는 여력이나 재력이 전무하다. 우리가 무엇을 밝혀달라고 하면 한 건도 못밝히겠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동해 시의회도 남회장 회사의 실체에 대한 의문을 표했다. 시 의회는 회사측이 제출한 매출액과 직원의 숫자 등이 실제와 다르다고 설명했다. 대책위가 이의를 제기했을 때 회사측이 구체적인 문서나 자료로 해명한 적도 없다고.
 
남 회장 회사의 동해 개발사업과 인천 전세사기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제보자는 '경매가 동해 사업 때문에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남 회장은 강원도에서 큰 사업을 벌이다가 위기에 직면하자, 세입자들의 사라진 보증금을 이용하여 사업자금으로 투입됐을 것이라는 의혹이다.
 
 KBS 1TV <시사직격> ‘집 없는 죄 - 전세회장금’ 편

KBS 1TV <시사직격> ‘집 없는 죄 - 전세회장금’ 편 ⓒ KBS

 
남 회장 측 대리인은 이를 부분적으로 인정하면서도 '동해 사업이 잘되면 세입자들의 보증금을 변제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문제의 공인중개사인 이정범-김철수 등을 모두 알기는 하지만 고의적인 사기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변제방법에 대해서는 뚜렷한 설명이 없었다.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후 임대인 측에서 세입자들에게 연락을 취해왔다고 한다. 김철수는 여기서 '전세금 반환 보증'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 주택도시공사(HUG) 등 보증기관에서 대신 반환해주는 보험상품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세입자들이 전세보증금을 더 증액해줘야만 한다. 주택도시공사의 보증금도 결국 세금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임대인의 말대로 한다면 세입자들도 사실상 공범이 되라고 요구하는 셈이니 황당한 제안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현재 부동산 중개인들만 볼 수 있는 부동산 사이트에는 김철수 소유의 아파트가 공시가격의 두 배에 이르는 2억8천에 매물로 올라와있었다. 외부 감정서를 따로 받아서 전세세입자는 들어가고 보증보험에 가입이 되면 나중에 주택도시공사만 전형적으로 손해를 보는 구조가 된다.

전세보증금 반환사고 액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으며 2021년에는 무려 5,790억에 이르렀다. 보증보험 사고가 국가 쪽으로 전가되면 그만큼 보증으로 인한 피해 국민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곧 도덕적 해이로 연결될 수 있다.
 
문제의 인천 5개 공인중개사무소는 폐업을 했음에도 온라인에서는 버젓이 거래를 계속하고 있었다. 제작진이 중개를 요청하자 한 중개인이 소개한 곳은 바로 전세사기 논란으로 취재했던 C아파트였다. 하지만 중개인은 등기부등본을 확인해달라는 요청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시간을 끌었다. 제작진이 직접 확인해본 결과, 해당 아파트 역시 임대인 이정범의 소유에 1억 2천이 넘는 근저당이 붙어있었다.
 
또한 해당 중개사무소는 중개 비용으로 법정 수수료인 80만 원에서 30배가 넘는 2500만 원을 웃돈으로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나도 나중에 터지는 문제이고, 실제로 처벌을 받지 않으니 중개사들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도 죄책감없이 전세 사기에 동참하게 되는 모양새다.
 
경찰은 현재 이 사건을 수사 중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기죄 성립 여부와 별개로 피해 세입자들에게 전세보증금이 반환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금리인상-부동산 침체 등 최근 악화되는 경제상황으로 공급이 수요보다 많은 역전세난까지 벌어진 가운데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고는 급증하고 있다.

'세 모녀 전세사기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세입자의 전세금으로 돈 한 푼 들이지않고 빌라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수백억 원대의 전세 보증금을 가로챘다. 피해자들은 법의 허술함을 악용하여 혐의조차도 인정하지 않는 피의자들에 대하여 분노를 감추지못했다. 세모녀 사기사건의 또다른 피해자인 양 씨는 민사소송을 승리하고도 보증금을 모두 돌려받지는 못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이런 피해가 계속해서 나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한국의 주택시장은 시장에서 거래하는 이들이 집으로 돈을 벌 수 있게 하고 그런 문화를 용인하는 '투기적 주택시장'으로 이루어져있다는 게 구조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

A아파트 피해 세입자들은 자체적으로 입주민 회의를 통하여 김철수의 보험보증 이용 제안을 거부하고 단체로 법적 절차를 통하여 문제를 해결할 것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범죄를 오직 시민들의 힘만으로 상대하기에는 길고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 예상된다. 또한 같이 호소할 곳도 없는 개인 피해자들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피해자들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임차인들의 피해 복구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호소한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9월 1일 전세사기 처벌강화와 피해자 지원등 세입자 보호대책을 보강한 '전세사기 피해 방지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인천 미추홀구 아파트처럼 사기입증이 쉽지 않은 깡통전세 피해 구제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언제든 제2의 미추홀구 사태가 또 발생하기전에 선량한 세입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해보인다.
시시직격 깡통전세 이행보증서 전세반환보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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