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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영제 <두 소년> 표지 
ⓒ ar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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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왜 우니?"
"부모를 잃어버려서요."
"어디서?"
"안도에서요."


소설 <두 소년>에서 필자가 가장 뭉클하고 애틋했던 대목이다. 이 소설은 1950년 8월 3일, 욕지도에서 이야포를 지나던 피난 화물선을 미군기가 조준사격한 사건이 주를 이룬다. 이 사건은 책의 전반에 배치되고 이후는 사건 이후 한국전의 이러저러한 비극적 상황들이 디테일하게 그려진다.

작가 양영제는 이 소설을 전작 <여수역>과 마찬가지로 르포형식을 빌려 썼다고 한다. 그만큼 많은 증언과 녹취, 다양한 문서, 문헌을 참조했다는 뜻이다. 평자 신기철에 따르면, '당시 미군은 민간인들이 인민군의 보급품을 수송한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그래서 피아를 구분않고 이런 조준사격까지 가능했던 것으로 추측한다. 즉 적 수중에 떨어질 수 있는 '잠재적인 적군'으로 간주한 것이다.

작가가 르포소설 통해 말하고 싶은 바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에 있어 '노근리' 같은 경우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하지만 르포소설 <두 소년>에서는 경위가 사뭇 다르다. 피아 간에 교전도 없고 전선도 형성되어 있지 않은 여수 안도 이야포 해상에 강제정박 당하고 있는 피난선에 미군폭격기가 갑자기 날아와서 정밀 폭격한 것은 뭔가 많이 이상하다. 
  
소설은 이북출신으로 서울에 정착했던 홍씨 일가가 전쟁을 피해 집을 떠나 남하하는 형식의 디아스포라(diaspora) 형식을 따르고 있다. 전쟁으로 가족공동체가 붕괴되고 두 형제와 누이가 생존하지만 누이 역시 전쟁의 참화와 시집살이를 이기지 못해 자살하고 두 형제는 부랑아나 다름없는 신세로 전락한다.

두 형제 홍춘복, 홍춘성은 안도소년 유상태를 만나게 되고 그 10대 소년들의 눈에 비친 전쟁의 참상은 마치 카니발이라도 벌이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 일으킬 정도로 중의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작가 양영제는 전작 <여수역>에서처럼 이 작품에서도 특유의 서정성을 극한까지 밀어부친다.
 
"그림같은 풍경이었다. ... 거대한 불씨가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것 같아 신비함 마저 ... 하늘 높이서 가늠하듯 솟구치는 불꽃은 바다 넓이를 재보려는 듯 번져나가며 이야포를 벌겋게 물들이고 있었다." 

작가 양영제는 이렇게 무고하게 죽어간 150여 명의 원혼들에게 지금이라도 미국정부는 진정한 사과와 보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야포 사건을 베트남전에 빗대어 이야기하는데, 우리의 국익만을 앞세워 타국의 전장에서 무고한 민간인을 다량 살상한 것에 대해 우리 역시 속죄와 보상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죽음이 의례를 통해 인정받지 못하면 여기저기도 아닌 세계에 머물게 되는데 그곳을 '드엉'이라 부른다. 사건 70여 년이 흐른 후에야 조촐한 추도식이나 위령제로 만족해야 하는 이야포의 많은 원혼들은 이야포를 드엉삼아 여전히 떠돌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 '과거사정리위원회'와 일군의 지식인들이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고 정부와 미군에 탄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야포에 묻힌 역사적 비극

이 책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전 발발의 정확한 인식이다. <두소년>에서 작가는 한국전 발발의 주된 요인을 소설 초반 유상태의 입을 빌어 말하는데 그가 베트남 참전에 대해 비아냥대는 대목이 그것이다.
 
"쫄따구는 죽으러갔고, 하사관은 소 장만하러 갔고, 장교는 집 장만 할라고 갔지, 미쳤다고 남에 나라 지키러 갔간디?"

요약하면 남의 전장에 가는 이유는 단 하나, 자국의 이익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좀 더 세밀히 들여다보면 미국에게 한국전은 당시 오랜 경제공황에서 벗어날 절호의 기회였다. 그 결과 미국은 실업의 늪에서 벗어나고 이야포 피난화물선에 퍼부은 것과 같은 포탄을 비롯한 군수물자 산업은 다시 활기를 띄고 군수공장들은 구인난에 허덕일 정도로 완전고용이 이루어졌다.

우리가 베트남전으로 경제 몫을 챙긴 것처럼 미국은 한국전으로 또다시 강대국으로 거듭나게 됐다. 거기에 해방 이후 혼란했던 이남의 정치사가 한국전의 또 다른 빌미가 되었으리라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의 영구분단은 미국의 기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로인해 계속 방산이익과 실업인구를 줄일 수 있고 또한 중국 소련에 대비한 최전선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기회기 때문이다. 또한 계속되는 한국 내 방산비리와의 유착은 한국 국방력의 영구 약화를 가져와 한국의 미군 의존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촉매역할을 하기도 한다.

지금은 강태공의 핫스팟이 된 안도 이야포에 이런 역사적 비극이 묻혀 있다고 생각하면 헛헛해진다. 그러나 어느날인가, 한국전 발발의 적확한 원인규명과 미국의 민간인 조준사격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보상이 이루어져 바다깊이 수장된 원혼들이 해원하는 날이 온다면, 작가의 바람대로 이야포는 "수면을 바라보는 눈이 어리어리할 정도로 몽환에 빠져드는" 그런 여수 앞바다로 진정 거듭날 수 있으리라 조심스레 상상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와 여수넷통뉴스에도 실렸습니다.


두 소년 - 양영제 르포소설

양영제 (지은이), arte(아르테)(2022)


태그:#양영제, #소설 두소년, #이야포사건, #한국전과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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