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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 한 번이면 다음날 집 앞으로 물건이 배송되는 시대가 됐다. 하지만 우리에겐 당연한 이 편리함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실제로 상지가 불편한 뇌 병변 장애인 A씨는 탭(Tab) 버튼으로 순차 검색을 시도하다 엉뚱한 화면으로 넘어가 곤란한 경험을 했다. 밖으로 나가지 않고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장애인에게는 물건 하나 사는 것조차 고난이다. 그래서 우리는 장애인이 온라인에서 쇼핑을 할 때 겪는 어려움을 느껴보기 위해 직접 체험해 보기로 했다.
 
장애인이 온라인에서 쇼핑을 할 때 겪는 어려움을 직접 체험하고 있다.
 장애인이 온라인에서 쇼핑을 할 때 겪는 어려움을 직접 체험하고 있다.
ⓒ 조현아, 조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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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각장애인으로 상황을 가정해 체험을 시작했다. 전맹 시각장애인은 웹(Web)에서 글자를 읽어주는 텍스트리더를 사용한다. 텍스트리더를 실행해 오픈마켓 '쿠팡'에 들어가자 마우스가 가리키는 모든 곳을 쉴 새 없이 읽기 시작했다. 매우 당황스러웠지만 눈을 감고 영양제를 구매해 보기로 했다.

"콘텐츠 참조··· 콘텐츠 참조···"

우리는 영양정보, 원료명 및 함량 등을 알기 위해 마우스를 갖다 댔지만 스크린리더는 "콘텐츠 참조"만 되풀이했다. 자세한 내용을 알기 위해 상세정보를 클릭했으나 시끄럽던 스크린리더가 단숨에 조용해졌다. 웹 사이트에 게시된 이미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는 대체 텍스트가 상세정보 이미지에 입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각 제품의 상세정보를 비교해 보지 못하고 제품명만으로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웹 접근성이 지켜지지 않으면 장애인은 온라인 쇼핑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웹 접근성이란 장애인이나 고령자들이 웹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을 말한다.
 
국가공인 웹 접근성 품질인증기관 중 하나인 웹와치에 오픈마켓 ‘11번가’를 검색한 화면
 국가공인 웹 접근성 품질인증기관 중 하나인 웹와치에 오픈마켓 ‘11번가’를 검색한 화면
ⓒ 조현아, 조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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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접근성 지키지 않는 국내 오픈마켓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에서 실시한 2021 웹 접근성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웹 접근 수준은 60.8점으로 전년(2020년) 대비 0.1점 상승했다. 웹 접근성 실태조사 점수는 웹 접근성이 다 준수된 상태를 100점으로 보기 때문에 아직 많이 부족한 상태다.

별도로 국내 7개 오픈마켓(쿠팡·11번가·인터파크·옥션·G마켓·티몬·위메프)에 대한 웹 접근성 실태를 조사한 결과, 웹 접근성 품질인증을 받은 곳은 단 한곳도 없었다. 웹 접근성 준수는 지능정보화기본법, 장애인차별금지법 등에 의하여 법률로 의무화되어 있다. 법적 강제력(처벌 조항)이 있어 제도화는 잘 되어있는 편이다.

하지만 현행법상 웹 접근성 준수는 의무지만 품질인증은 선택사항이라 공공기관을 제외한 웹 사이트들은 웹 접근성 인증에 소극적이다. 또한 법률로 처벌된 경우가 아직 거의 없어 실효성도 낮다. 실제로, 2017년 시각장애인 963명이 대형 쇼핑몰을 상대로 웹 접근성 미준수 관련 소송을 제기했지만 2021년 원고 승소 판결 후에도 계속 상고되어 아직도 재판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웹 접근성은 오픈마켓 내에서 구축하기 어려운 기술인 것일까?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정보접근성팀 한정기 수석은 사견임을 전제로 응한 인터뷰에서 "기술적인 측면에서 웹 접근성은 아주 어려운 기술이 아니"라고 말했다. 높은 보안 수준이 필요하는 등 예외적인 경우에서 일부 웹 접근성 구현이 쉽지 않은 경우도 있으나, 이는 극히 일부이고 대부분의 경우는 웹 접근성 구현이 가능하다고 한다. 또한 이를 위해서 기업 내부에 웹 접근성 기획 및 검수에 참여할 조직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는 "자체적인 조직 및 절차가 없고서는 계속해서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대형 오픈마켓의 특성상 웹 접근성 준수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 밝혔다.

한국장애인연맹 박지수 간사는 예산 문제 역시 웹 접근성을 준수하지 않는 원인이라 덧붙였다. 웹 접근성 준수 및 심사 외에 이를 유지하는 등 일련의 과정에는 상당히 많은 비용이 투여된다고 한다. 그는 "어느 정도의 인력과 예산이 투입되는 작업인지 잘 알고 있기에 개인에게 아무런 보조도 없이 강요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이를 지원할 예산이 정부에 준비되고 몇 명 이상 기업에는 웹 접근성 품질인증이 의무사항이 되는 등 사회적 방안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우리 모두를 위한 기술, 웹 접근성

웹 접근성은 장애인에게만 국한된 개념이 아니다. 웹 접근성이 잘 준수되면 장애인 뿐 아니라 인지·조작에 어려움이 있는 고령층, 외국인 등 모든 사람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웹 사이트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기계(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웹 접근성 기술이므로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기술이자 향후 다가올 인공지능 시대에도 필수적인 기술이다.

끊임없이 발전하는 기술은 인간을 풍요롭게 하지만 절망에 빠지게 하기도 한다.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웹 사이트 안에서 느낄 불편함을 완화시키고 그 안에서 정보를 온전히 습득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관심이 필요하다.

태그:#웹 접근성, #체헐리즘, #오픈마켓, #장애인,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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