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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름은 초순이다, 성은 박이고. 그녀가 성씨네 집에 시집온 것은 나이 스물 두 살 때. 지금도 아름답지만 그때는 한참 물오른 봄날의 버드나무처럼 너무도 싱싱하고 아름다웠었다.

그때는 연애결혼 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부모가 선보고 와서 시집가라 하면 신랑 얼굴 형식적으로 한번보고 그냥 시집가던 것이 보통이었다.
여기 너무나도 아름다운 효부 박초순도 그랬다.

서울에서 잘 나가는 병원 간호사로 그럭저럭 괜찮은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 때 시골집에서 얼른 내려오라는 전보를 받고 무슨 일인가 싶어 고향집에 내려와 보니 부모님이 혼처를 이미 다 정해놓고 선을 보라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부모의 명을 거스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시집가겠다는 생각은 불효 막심한 자식이나 하는 짓인 줄 알았기에 천성이 효녀인 박초순도 부모님이 좋다 하시니까 그 말씀 따라서 선을 보는둥 마는둥 성씨네 집으로 그냥 시집을 가게된다.

시집이라고 와보니 시어머니는 아들 하나 딸 하나 낳고 21살에 청상과부 되어 수절하며 살아온 젊디젊은 그런 부인이었다. 신랑은 착하고 순하기는 양 같았지만 청상과부 어머니 밑에서 자라온 마마보이 상태가 농후한 그런 사람이었다.

시집 재산이라고는 시할아버지가 죽은 아들 몫으로 가지고 있다가 물려준 논 서마지기가 전부였다. 농사짓는 사람이야 잘 알겠지만 논 서마지기가 어느 정도냐 하면 1년 동안 죽도록 농사져봐야 서너 식구 목구멍 풀칠하기도 모자라는 그런 농사치였다.

아무래도 당장 생활이 말이 아니었다. 새 며느리라고 들어 왔는데도 당장 먹을 양식 때문에 걱정을 해야 하는 형편이니 그 나머지 여가생활 이라는 것은 아예 꿈도 못 꾸는 그런 형편이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시어머니는 21살에 혼자되어 수많은 세월을 독수공방 한을 홀로 삭이며 어렵게 어렵게 살아온 여인네이니 그 가슴에 응어리진 한을 어디다가 풀고 살았겠는지는 독자여러분이 판단하시기 바란다.

청상과부로 살아온 시어머니의 시집살이도 시집살이지만 당장은 먹고사는 것이 급했다. 그런 상황에서 효부 박초순은 시어머니와 신랑을 설득해서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논 서마지기를 처분해서 연탄 대리점을 열게된다.

신랑 성인홍이 연탄공장에 가서 연탄을 직매소로 가지고 오면 주문 받고 가정으로 배달하는 일은 박초순이 맡아서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물론 신랑 성인홍이 가끔 연탄 리어카를 끌어 주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박초순이 해야만 했었다. 나는 처음에 박초순이 연탄장사를 했다는 소리를 들을 때 그저 일군들 두고 자기는 연탄 대리점 안 주인이나 했겠지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도무지 연탄 리어카 끌고 다니면서 연탄 배달을 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고운 얼굴에 상당한 미모를 가진 젊디젊은 새색시가 어떻게 연탄 장수를 했겠나 싶어 나도 처음에는 믿어지지가 않았었다.

신랑 성인홍은 마음만 착하지 모질지 못해서 친구들 모임에 가서 붙들리면 뿌리치고 나오지 못해 붙들려 화투하다가 가진 돈을 다 잃어버리기도 부지기수인 그런 사람이었다.

시집살이가 어렵고 답답하기 그지없었지만 박초순은 그런 형편에도 한번 얼굴을 찡그리거나 가족들에게 싫은 소리 한번 안 하면서 열심히 리어카를 끌었다.

그렇게 연탄 배달해서 시누이 시집 보내고 그 까다로운 시어머니 , 동네 사람들이 박초순네 시어머니 하면 한번쯤 고개를 갸우뚱하는 그런 시어머니를 군소리 한번 없이 수발을 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살아가는 와중에도 아이들은 자꾸만 들어 서는데 딸만 넷 아들 하나 도합 다섯을 낳아서 길렀다.

그런데 기자가 감탄하는 것은 그렇게 낳아서 기른 자식들이 한결같이 할머니, 그 할머니를 끔찍이도 사랑한다는 것이다. 할머니 생일이 되면 아이들이 객지에서 직장생활 하다가도 어김없이 할머니 선물 사들고 집에 돌아온다. 그러고는 할머니 이불 속에 모여들어 "할머니 할머니 오래 오래 살아야 해!"하면서 매달려 응석을 부리곤 한다.

그게 무슨 감탄씩이나 할 일이냐고 묻는다면 한번 생각 해보시라. 21살에 청상이 된 시어머니의 히스테리를... 그 히스테리를 군소리 없이 받아주고 얼마나 지극 정성으로 모셨기에 손주들이 할머니를 그리 귀히 생각할까를 말이다.

그런 일은 박초순의 헌신적인 부모 섬김의 모범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현상인 것이다. 지금 효부 박초순은 연탄 직매소를 그만두고 십수년 전부터 채소 도매상을 경영하고 있다.

하늘은 효부에게 상을 베푸셨는지 제법 재산도 늘었고 하루에 인부들을 수십명씩 동원하는 그런 작업장을 운영하는 채소 중간상이 되어있다.

재작년에 박초순의 아들 영목이가 장가를 들어 아들을 낳았고 큰딸 선희도 시집가서 아이를 낳았으니 지금 박초순은 손주가 둘이나 되는 할머니가 되어있다. 너무나도 젊고 곱기 짝이 없는 할머니가 되었다.

지금은 박초순의 가족이 위로 시어머니 남편 그리고 아이들 다섯 며느리 하나 손자 하나 그래서 열식구가 되어있다. 나는 박초순씨를 보면서 느끼는 것이 하나님은 부모를 잘 섬기는 사람에게 복을 준다는 것이다.

사람이 얼굴 예쁘고 마음씨 곱고 부지런하기가 쉽지않다. 거기다가 젊은 시어머니 모시고 어려운 살림 이끌어 오면서 시누이 시집 보내고 고운 손으로 연탄 배달해서 집안을 일으키고 내세울 것 없던 남편을 밖에 나가면 대접받는 사람으로 만들었으니 이런 사람이 효부 아니면 누가 효부이겠는가 말이다.

며칠 안 있으면 어버이날이 돌아오는데 나는 이 땅에 사는 모든 며느리들에게 박초순씨를 보라고 말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현재 박초순씨는 52살이 되었으며 아직도 예산에서 시어머니 모시고 잘 살고있다. 여기 거론되는 인물들의 이름은 시어머니의 프라이버시를 위하여 부득이 가명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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