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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가하는 '불안정 노동자', 배제되는 건강권

'불안정노동'이라 명명하기에도 너무나 다양한 형태의 계약에 묶인 노동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사용자들은 어렵고 복잡한 계약 형태를 통해 노동자들을 분절시키고, 고용과 건강권을 포함한 노동자의 권리 보장 책임을 면피하려고 한다.

이 흐름에 의해 불안정노동으로 내몰린 사람의 수는 해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2022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은 815만 명이 넘고, 파견·특수고용 노동자·일일노동자를 포함한 "비전형" 노동자로 분류된 사람은 213만 명이 넘는다. 자영업자와 '프리랜서' 등 "비임금 노동자"로 분류되는 사람 역시 668만 명이 넘는다.

온라인 플랫폼을 매개로 한 '플랫폼' 노동자 역시 증가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플랫폼노동자는 약 80만 명으로 2021년 약 66만 명 대비 13.4만 명 증가했다. 같은 조사에 따르면 63.4%가 "어떤 계약도 맺지 않고 일한다"라고 응답했고,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가입률은 각각 46.3%, 36.5%에 그쳤다.

파견노동자, 플랫폼노동자, 프리랜서, 일일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그렇게 여러 이름으로 나뉘어 집단적 목소리가 가로막히는 노동자들은 임금에서도, 노동시간을 포함한 건강권에서도, 현장 통제권에서도 배제되어 점점 더 불안정한 위치로 내몰리고 있다.

업무지시를 받지만 '개인사업자'라고?

이러한 맥락에서 공연·출판·영화·방송·웹툰·스포츠·외식 등에서 일하고 있는 "개인사업자 프리랜서"는 노동자라 불리지 못하는 불안정노동의 극적 형태 중 하나다. "따듯한 아이스아메리카노"와 같은, 노동자지만 "프리랜서"로 호명되는 사람들은 많은 일터에서 개별화·비가시화되며 일하고 있다.

2022년 권리찾기유니온에서 진행한 '가짜 3.3 실태조사'에 따르면, 외식, 학원(행정, 강사 등), 스포츠(구단 운동지도자, 통역 등), 방송(조연출, FD, AD, 제작 PD, 제작보조 등), 물류, 조선 물량팀 등에서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가 4대 보험에 가입되지 못하고, 노동자가 아닌 '프리랜서'나 '개인사업자'로서 3.3% 사업소득세를 원청 징수당하고 있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사용자들은 노동자성 위장을 위해 가짜 3.3 계약 여부를 사전에 고지하지 않거나, 계약서 내용이나 형식을 자주 변동하거나, 계약서 자체를 작성하지 않는 방법을 주로 사용해왔다.

또한 이들 가짜 3.3 노동자들은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과 60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을 하는 경우, 노동이 업무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 시간 외 노동을 강요받는 경우, 법정 공휴일에도 일하는 경우, 아플 때 산재 처리는커녕 와서 일해야 하는 경우 등이 더욱 빈번했다. 월급제에 편입되지 못하고 '회당 계약'이나 '11개월 단위 계약'의 형태로 불안정한 고용 형태에 놓이는 사례도 흔했다. 쉽고 빠른 해고 및 불안정노동, 생애 주기 전반에서 경제적 안전망의 부재로 'n잡러'로의 편입을 강요받는 악순환에 놓이는 것이다.

다양한 직종에서 "프리랜서"를 포함한 많은 노동자가 업무 수행 과정에서 지시나 감독을 받고 있으나, 많은 경우 소송을 통한 대응의 형태로 이를 증명해야 했다. 개별 노동자나 노동조합이 지난한 과정을 거쳐 '노동자성'을 인정받았다 하더라도, 혹은 소송에 승리하여 복직하더라도 "계약종료 전 상태 그대로 복직하는 것이므로 '프리랜서'로 복직하는 것이며 '정규직 아나운서'로 복직하는 것이 아니다"1)라고 우기는 사례들도 공공연히 발생하고 있다.

진짜 사장 나와라! 

윤석열 정부는 '노동개혁'이라며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결하자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불안정 노동자, 프리랜서들이 처한 이중구조는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것인가?
 
노조법 개정을 비롯, 권리 쟁취를 위한 불안정 노동자들의 투쟁은 가열차다. 2022년 12월 27일부터 2박 3일간 진행된 "노동시장 이중구조 피해자 비정규직 오체투지"
 노조법 개정을 비롯, 권리 쟁취를 위한 불안정 노동자들의 투쟁은 가열차다. 2022년 12월 27일부터 2박 3일간 진행된 "노동시장 이중구조 피해자 비정규직 오체투지"
ⓒ 노동과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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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들이 '노조법상 노동자가 아니'라며 대화조차 나서지 않는 상황이기에, 불안정 노동자들이 요구하고 있는 것이 노조법 2·3조개정이다. 계약 이름이 무엇이든 일하는 사람으로 뭉쳐 사용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권리를 명문화하자는 것이다. 노동자 개념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업무를 위해 노무를 제공해 해당 사업주 또는 노무수령자에게 대가를 받아 생활하는 사람"으로 넓히고, 사용자 정의 조항 역시 "근로자의 노동조건, 수행 업무 또는 노동조합 활동 등에 대하여 사실상의 영향력 또는 지배력을 행사하거나 보유하고 있는 자"로 개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수고용노동자, 가짜 3.3 노동자, 문화예술노동자 등도 개정을 위한 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힘들게 뭉쳐 노동조합을 만들었지만, 노동 통제를 하면서 이윤을 가져가는 사용자가 책임지지 않는 현 상황에 대한 비판이다.

라이더유니온은 "배달 플랫폼 특수고용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중략) 쿠팡이츠는 쿠팡이츠플렉스를 통해 사용자 책임을 떠넘기고, 지역 동네 배달대행사는 지역 총판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2)고 비판하였다.

권리찾기유니온 역시 "마루시공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하였지만, 임금을 지급하던 원청이든 3.3 원천징수하는 관리자들이든 누구도 사용자로 나서는 이들이 없다"3)라며, '노동자'로 인정받더라도 아무도 사용자로 나오지 않는 상황을 짚었다.

두 번째는 개별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을 포함, 실질적 권한을 지닌 사용자가 책임을 지고 노동자들과 교섭하도록 하여 더 많은 노동자가 노동조합으로 조직되게 함과 동시에 건강권·생활임금 등을 쟁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문화예술 노동자들에게 이는 자본력을 바탕으로 사실상 모든 통제권을 쥐면서도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하는 OTT나 공공기관들의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가능하다.

노조법 2, 3조 개정을 위한 예술인모임이나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4)은 모두 "문화예술분야에서 OTT, 플랫폼, 제작사와 국가 기관 등 공공기관도 사용자로 책임을 지고 문화예술노동자와 교섭에 응하게 하는 노란봉투법을 지지한다"5)라며 권리 쟁취에 나서고 있다.

노조법 2, 3조 개정을 통해 쟁취하고자하는 것은, 위장된 프리랜서든 특수고용노동자든, 고용형태나 세금납부의 형태가 어떻든 일하는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자기 권리를 찾기 위해 연합하고 싸울 수 있는 권리다.

이는 자본의 노동 분절화 시도에 맞서 더욱 강조해야 하는 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혁파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에서 노조법 개정안은 본회의에 상정되지도 못하고 있다.

불안정의 확산, 파견법 개정 시도

뿐만 아니라,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 과제 중에는 '파견법 개정'이 있다. 고용노동부는 '2023년 주요업무 추진계획'을 통해 파견대상 업무 확대, 파견-도급 구별 기준 법제화 등의 내용을 담은 파견제도 선진화에 나서겠다고 했다. 현재 32개 업종으로 한정된 파견근로 업종을 늘리는 것이다. 특히 파견을 금지하고 있는 제조업에서 사내 하청 노동자들이 불법파견으로 승소하고 정규직화되는 사례가 많았던 점을 고려, 제조업에서 파견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1998년 파견법 제정으로, '노동자를 사용하여 이익을 얻는 기업은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고용의 원칙이 깨졌다. 파견법에서 허용업종이 제한되었지만, 원칙이 무너진 이상 기업들은 도급, 하청, 자회사, 용역, 파견 등 여러 이름으로 직접고용을 회피하고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양산했다6). 그런데 파견허용업종을 늘린다는 것은 기업의 편법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무리 파견근로자 보호를 강화한다 하더라도, 파견 자체가 노동자들에 대한 중간 착취와 차별을 전제하는 제도인데, 이것이 어떻게 노동시장 이중 구조를 개혁하는 길이 될까?

정부와 자본은 이 외에도 직무급제 도입 등을 통해 임금체계를 개인화하려 하고, 연장 노동시간 관리 단위 확대를 포함한 노동시간 유연화와 장시간·초단시간 노동으로의 양극화를 시도하고 있다. 모두 다 이중구조 해소는커녕 노동시장의 분절화와 양극화를 부추기는 정책들이다.

전방위적으로 개악의 물결이 흐르고 있지만 그렇기에 집단적 목소리 내기와 투쟁이 더욱 중요하다. 자본은 영원히 개별화된 불안정 노동자를 고착하려 하겠지만 처음부터, 영원히 그런 것은 없다. 우리는 특수고용이든 프리랜서든 고용형태와 관계없이 노조가 조직되고 실질적 권한을 지닌 사용자와 교섭·파업·투쟁하여 권리를 쟁취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를 그려볼 수 있다. 지금은 당연해 보이는 파견법이 없는 고용의 세계도 상상해볼 수 있다. 노동개악의 풍파 속에서도 함께 문제와 요구를 드러내고, 연결하고 공통의 싸움으로 만들어 가자.

1) 미디어오늘, "부당해고 판정받았는데 다시 프리랜서라니…이거 실화입니까?" 2022.12.21.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7554
2) 라이더유니온 페이스북 게시글, 2022.12.09.
3) 권리찾기유니온 기자회견문, 2022.12.07.
4) <문화예술노동연대 20차 예술노동포럼> "노조법 2·3조 개정은 예술인에게 절실하다 – 문화예술노동조합 사례를 중심으로", 2022.12.20. 
5) 노조법 2·3조 개정을 위한 예술인모임 기자회견문, 2022.12.15.
6) [성명] 파견제 선진화? 간접고용의 합법화!,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2023.1.18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조건희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23년 2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노동개혁, #노동_개악, #불안정노동, #비정규직,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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