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공사가 적지에서 기업은행을 완파하고 단독 4위로 올라섰다.

고희진 감독이 이끄는 KGC인삼공사는 8일 화성 종합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2-2023 V리그 여자부 5라운드 IBK기업은행 알토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0(25-17, 25-13, 25-23)으로 승리했다. 2점 차의 접전을 벌인 3세트를 제외하면 1시간 20분 만에 기업은행을 비교적 여유 있게 제압한 인삼공사는 GS칼텍스 KIXX를 승점 2점 차이로 앞서며 단독 4위로 올라섰다(12승15패).

인삼공사는 득점 1위(753점)를 달리고 있는 외국인선수 엘리자벳 이네 바르가가 서브득점 4개와 블로킹 2개를 포함해 25득점을 기록하며 공격을 주도했고 미들블로커 정호영도 블로킹 7개를 포함해 13득점으로 맹활약했다. 그리고 이날 인삼공사에는 공격에서는 엘리자벳, 수비에서는 이소영과 노린 리베로의 부담을 크게 덜어준 선수가 있었다. 오랜만에 선발 출전한 경기에서 쏠쏠한 활약을 해준 아웃사이드히터 박혜민이 그 주인공이다.

선명여고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주장
 
 박혜민은 2021년4월 FA로 팀을 옮긴 이소영을 따라(?) 인삼공사로 트레이드됐다.

박혜민은 2021년4월 FA로 팀을 옮긴 이소영을 따라(?) 인삼공사로 트레이드됐다. ⓒ 한국배구연맹

 
경남 진주에 위치한 선명여자고등학교는 1987년 배구부를 창단했지만 본격적으로 전국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 시작한 시기는 2000년대 후반부터였다. 선명여고는 최은지와 유서연(이상 GS칼텍스), 하혜진·지민경(이상 페퍼저축은행 AI페퍼스), 변지수·이원정·박혜진(이상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신연경(기업은행), 김세인(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등 매년 프로 선수들을 꾸준히 배출했다.

하지만 역시 선명여고의 최전성기는 전국체전과 종별선수권, 춘계연맹전, 태백산배까지 전국대회 4관왕을 달성했던 2018년이었다. 당시 선명여고에는 중앙에 여고배구 최고의 미들블로커로 꼽히던 박은진, 왼쪽에는 '리틀 김연경'으로 불리던 정호영, 오른쪽에는 서브가 좋은 왼손잡이 공격수 이예솔이 포진돼 있었다(이들은 공교롭게도 2018년과 201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모두 인삼공사의 지명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선명여고를 이끌던 주장은 박은진도 이예솔도 아니었다. 팀에서 살림꾼 역할을 하던 아웃사이드히터 박혜민이 2018년 선명여고의 주장을 맡으며 팀의 전국대회 4관왕을 이끌었다. 아웃사이드히터로서 파워는 다소 부족하지만 수비와 기본기가 좋은 박혜민은 2018년 아시아여자 청소년배구선수권대회에서도 한국 대표팀의 주장을 맡았고 그해 9월에는 2진급 선수들로 구성된 AVC컵 대표팀에도 선발됐다.

박혜민은 201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경남여고의 정지윤과 대전용산고의 나현수(이상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원곡고의 문지윤(GS칼텍스)처럼 각 학교의 주공격수들을 제치고 전체 3순위로 GS칼텍스에 지명됐다. 하지만 GS칼텍스에는 V리그를 대표하는 젊은 쌍포로 이름을 날리던 '쏘쏘자매' 이소영(인삼공사)과 강소휘(GS칼텍스)가 있었다. 결국 박혜민은 프로 데뷔 후 세 시즌 동안 50경기에서 116득점을 올리는 데 그쳤다.

그렇게 가지고 있는 재능에 비해 충분한 기회를 얻지 못하던 박혜민은 2020-2021 시즌이 끝나고 뜻밖의 변화가 찾아왔다. GS칼텍스에서 친언니처럼 따르던 선배 이소영이 FA자격을 얻어 인삼공사로 이적한 것이다. 그리고 2021년 4월 28일 경험이 풍부한 아웃사이드히터를 원하던 차상현 감독이 인삼공사의 최은지를 탐냈고 박혜민은 최은지와의 1:1 트레이드를 통해 절친한 선배 이소영을 따라 인삼공사 유니폼을 입게 됐다.

공격과 수비, 높이까지 겸비한 살림꾼
 
 건실한 수비와 좋은 신장을 겸비한 박혜민은 기복만 줄이면 인삼공사의 붙박이 주전 아웃사이드히터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건실한 수비와 좋은 신장을 겸비한 박혜민은 기복만 줄이면 인삼공사의 붙박이 주전 아웃사이드히터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 한국배구연맹

 
사실 인삼공사는 박혜민 외에도 고의정과 고민지, 이예솔, 이선우 등 젊은 아웃사이드히터 자원이 즐비한 팀이다. 이소영과 강소휘라는 '넘사벽' 주전이 버티던 GS칼텍스 시절에 비하면 주전으로 활약할 수 있는 확률은 다소 높아졌지만 주전경쟁률은 오히려 더욱 높아진 셈이다. 하지만 박혜민은 인삼공사 이적 첫 시즌 28경기에 출전해 205득점을 올리며 실질적인 주전급 선수로 도약했다.

시즌이 끝난 후 발리볼 네이션스리그(VNL) 대표팀에도 선발된 박혜민은 고희진 감독이 부임한 이번 시즌에도 이소영의 파트너로 낙점됐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파워에 강점으로 꼽히던 서브리시브와 수비마저 기복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3라운드부터는 주전 자리를 채선아에게 내주고 말았다. 경험이 쌓이고 대표팀에도 선발되면서 주전으로 자리를 굳혀야 할 중요한 시즌에 리베로를 겸하는 선배에게 자리를 빼앗긴 것이다.

수비에서는 채선아, 공격에서는 이선우, 서브에서는 고의정과 이예솔에게 밀린 박혜민은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점점 경기출전 기회가 줄어 들었다. 게다가 올스타 휴식기를 전후로 미들블로커로 변신했던 '맏언니' 한송이마저 아웃사이드히터로 교체 출전하면서 박혜민은 웜업존에 머무는 시간이 더욱 늘었다. 그렇게 백업멤버로 자리를 굳혀가던 박혜민은 8일 기업은행전에서 오랜만에 채선아 대신 선발출전했다.

그리고 박혜민은 오랜만에 선발출전한 기업은행전에서 블로킹 2개를 포함해 공격에서 10득점, 그리고 수비에서도 8개의 디그와 55%의 리시브 효율을 기록하며 공수에서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쳤다. 특히 팀 내에서 두 번째로 많은 21.70%의 공격점유율을 기록하며 엘리자벳의 공격부담을 덜어줬고 기업은행의 목적타 서브를 55%의 확률로 정확히 받아내며 노란 리베로와 이소영의 수비부담도 함께 나눴다.

기업은행전 활약은 시즌 초반부터 고희진 감독과 인삼공사 팬들이 박혜민에게 기대했던 부분이었다. 실제로 기업은행전 만큼의 활약만 꾸준히 이어간다면 181cm의 좋은 신장을 가진 '살림꾼' 박혜민이 인삼공사에서 주전자리를 위협 받을 일은 거의 없다. 시즌 중반 방황(?)을 극복하고 다시금 좋은 컨디션을 회복한 박혜민은 시즌 후반 인삼공사의 봄 배구 도전에 얼마나 힘을 보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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