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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경기도에서 최초로 학생인권조례가 공포된 지 13년이 지났습니다. 지금까지 학생인권조례는 경기, 광주, 서울, 전북, 충남, 제주 6개 지역에서 제정·시행됐는데, 최근 서울, 충남 등지에서는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경기, 전북 등에서도 교육감이 학생인권조례를 축소시키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에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와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은 '지켜라 학생인권'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학생인권조례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와 더불어, 모든 지역, 모든 학교에서 학생인권을 함부로 침해하지 않고 지키도록 '학생인권법(초·중등교육법 개정안)' 통과를 요구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학생인권조례와 학생인권법의 필요성을 전하는 글을 다섯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지켜라 학생인권' 서명주소: https://campaigns.kr/campaigns/851).[기자말]
2010년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경기도의회를 통과해 시행됐다. 이어 2011년 가을엔 광주광역시, 2012년 초엔 서울특별시, 2013년 여름엔 전라북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됐다. 두발자유화 운동을 비롯해 1990년대부터 일어난 청소년인권운동의 성과였다. 

하지만 학생인권조례는 제정 직후 곧바로 커다란 암초를 만났다. 당시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산하 교육부가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에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무효로 돌리려 소송을 청구하고 초·중등교육법 및 시행령을 개악하는 방법으로 학생인권조례 정착을 훼방놨다. 
 
2014년 1월 학생인권조례 개악을 논의하는 교육청 공청회에서 청소년인권단체 등이 항의 피켓팅을 하는 모습
▲ 서울 학생인권조례는 시행 초기부터 이주호 교육부 장관, 문용린 교육감 등의 방해에 부딪혔다 2014년 1월 학생인권조례 개악을 논의하는 교육청 공청회에서 청소년인권단체 등이 항의 피켓팅을 하는 모습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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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권조례를 없애려 소송까지 했던 교육부

당시 교육부는 학생인권조례 무효 소송을 총 3건 제기했다. 서울 학생인권조례 공포 절차에 문제가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내용이 상위법 위반이라며 대법원에 무효 소송을 걸었다. 전북 학생인권조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논리로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교육부가 들고 나온 가장 큰 명분은 이것였다. '학교 규칙은 각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정할 일이고 초·중등교육법도 그리 돼 있는데, 학생인권조례는 학교 규칙 등에 의해 학생의 인권이 침해당하지 않게 하려 하므로 문제다.'

다행히 그리고 어쩌면 당연하게도 교육부의 무효 소송은 모두 기각·각하됐다. 서울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소송은 교육부에서 절차를 지키지 않아 소송 요건이 안 된다고 봤고, 전북 학생인권조례도 무효로 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 과정에서 대법원은 학생인권조례가 헌법 등에서 보장한 학생의 인권을 구체화한 것이며, 상위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서울을 비롯해 학생인권조례는 도입 초기부터 교육부 등의 무효 소송, 상위법 개악 등에 가로막혔고, 진통을 겪으며 제대로 정착되지 못했다.
▲ 2013년 서울시교육청 앞, 학생인권조례 지키기 기자회견 서울을 비롯해 학생인권조례는 도입 초기부터 교육부 등의 무효 소송, 상위법 개악 등에 가로막혔고, 진통을 겪으며 제대로 정착되지 못했다.
ⓒ 유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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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런 재판 결과가 나오기까지 2~3년이 걸렸고, 그동안 서울시교육청(당시 문용린 교육감)이나 여러 학교는 학생인권조례가 효력이 없다며 따르지 않으려 했다. 무엇보다 교육 분야의 최고 행정기관인 교육부가 학생인권조례가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었으니 조례에 실질적 힘이 실릴 수가 없었다. 새로운 제도가 뿌리 내리고 사회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가장 귀중한 시간을 허비한 셈이었다.

'학교장 맘대로' 법을 만든 이명박 정부

학생인권조례를 무효로 돌리려는 이명박 정권 교육부의 노력은 소송에 그치지 않았다. 정부가 제안한 법 개정안에 따라 2012년 3월, 초·중등교육법 제8조 '학교 규칙' 관련 조항이 고쳐져 시행된다. "① 학교의 장은 법령의 범위에서 학교 규칙을 제정 또는 개정할 수 있다." 이전의 조문 중 "지도·감독기관의 인가를 받아"라는 문구를 삭제한 것이다. 그전엔 학교 규칙을 제정하려면 교육청의 검토와 인가를 받아야 했는데,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되게 바뀌었다. 이주호 교육부장관이 임기 초부터 추진한 '학교 자율화' 정책의 일환이었다.

이에 더해 교육부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9조를 개정해 학교 규칙에는 '두발·복장 등 용모' '소지품 검사' 등의 사항을 기재해야 한다는 문구를 추가했다. 그 이전에는 학교 규칙에 수업일수나 포상, 징계 등 어떤 주제의 내용을 기재할지 나열했을 뿐인 조항이었다.

그러나 교육부는 이 조항을 고쳐서, 마치 학교 규칙 안에 두발·복장 규제 등 학생의 인권을 제한하고 단속하는 내용이 들어가야만 한다는 의미인 것처럼 주장했다. 교육부는 2012년 5월, 학생인권조례에 따른 학칙 개정 지시가 효력이 없다는 공문까지 하달했었다.

교육부가 자신의 권한을 활용해 밀어붙인 이 조치는 소송보다도 파급력이 컸다. 실제로 충북에서도 2012년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안에 성공했지만, 충북교육청은 상위법 위반 소지를 이유로 도의회 상정을 중단시켰다. 주민발안 내용 중 학교에서 부당하게 두발·복장 등을 규제하지 말라는 부분이 개정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어긋난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 이후 만들어진 전북 등의 학생인권조례에도 두발·복장 등을 학교가 제한할 수 있다는 후퇴한 내용이 들어가게 됐다.

이후에도 수많은 학교가 2012년 개정된 초·중등교육법과 시행령을 들며 학생인권조례를 안 지켜도 된다고 주장하곤 했다. 이는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지역에서도 학생인권 침해가 근절되지 않는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단적인 예로, 서울시교육청이 2020년 발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 지역 중·고등학생 중 42~48%가량이 학교에서 머리 모양 등을 자유롭게 할 수 없다고 응답했다. 서울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된 지 10년 가까이 된 시점에도 서울 중고생의 절반 정도는 여전히 두발규제를 당했다는 의미다.

사실 초·중등교육법 제8조의 내용은 학생인권조례를 무시해도 된다는 의미로 해석되지 않는다. "법령의 범위에서" 중 법령에는 지자체의 법인 조례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주호가 바꿔놓은 초·중등교육법 제8조의 진짜 문제점은 바로 불법을 감독할 방법이 없게 만든 점이다.

지도·감독기관이 학칙을 인가하는 절차를 없애버렸고 이를 대체할 대안을 마련한 것도 아니었기에, 학교장이 학생인권조례 등 법령을 위반하여 학칙을 만들어도 문제를 시정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학교장이 정말 법을 잘 지켰는지 여부는 학교장의 마음에 달려 있을 뿐이다. '학교 자율화'란 학교 규칙에 의한 불법과 인권 침해, 전횡을 방임하겠다는 말과, '학교 독재화'와 다름없었다.

돌아온 조례 폐지 시도를 넘어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20년, 교육부는 2012년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을 되돌리기로 한다. 그 결과 현재의 시행령 제9조에는 "두발·복장 등 용모"와 같은 문구가 없다.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어색한 법조문을 고친 것이니 환영할 일이다. 그렇지만 문재인 정부와 국회 제1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초·중등교육법 제8조는 개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학교 규칙을 '학교장 마음대로' 만들 수 있으며 학생인권 침해가 있어도 시정할 수 없는 문제는 여전하다.

2023년, 서울과 충남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전북과 경기 등에서도 교육감이 학생인권조례의 축소·개악을 시사하고 있다. 보수적·극우적인 단체나 보수 교육감 등이 앞에 나서고 있지만, 그 배경에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의석을 확보한 국민의힘 의원들의 적극적 협조가 있다. 또한 윤석열 정부와 돌아온 이주호 교육부장관의 묵인과 동조가 있다. 무효 소송까지 내며 학생인권조례를 막으려고 했던 정치세력이 이제는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고 시계를 돌리려 하고 있다.

각 지자체에서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거나 축소되지 않도록 지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학생인권조례는 헌법 정신과 세계인권선언, 유엔아동권리협약 등 국제인권법의 취지를 학교 안에서도 실현하고자 하는 자치법규이자 한국 사회 민주주의의 중요한 진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인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에는 어쩌면 국회와 교육부가 더 큰 열쇠를 쥐고 있다. 학생인권조례가 아직까지 전국 6곳밖에 없으며,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의 학생들은 더 열악한 인권 상황을 경험해야 하는 현실도 결국 이명박 정부 때 개정된 초·중등교육법 및 시행령의 영향이 지대했다. 지금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주장하는 측의 논거 중 하나도 바로 학교 규칙을 자율적으로 정하게 한 이주호표 법 조항이다.

학생인권조례를 몇몇 지역에서 시행해본 결과 우리가 알게 된 건 학생인권조례가 과도하다기보단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조례가 시행 중인 지역에서도 강제력이 약해 지키지 않는 학교도 비일비재했고,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에서는 인권침해의 빈도와 정도가 더 심하기도 했다. 마치 최저임금이나 근로기준법이 모든 지역, 모든 일터에 적용되듯이, 학생인권도 법률을 통해 모든 지역, 모든 학교에 적용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모든 초·중·고에서 기본적 인권과 민주주의가 당연한 원칙으로 자리매김하는 긍정적 변화가 생길 것이다.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기세를 잃는 것까지도 기대할 수 있다.

국회 교육위원회에는 이미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학생인권법, 박주민 민주당 의원 대표발의)이 올라가 있다. 학교 규칙이 학생인권을 침해할 경우 시정 조치할 수 있도록 하고, 학생인권 침해가 일어나면 구제하는 창구를 교육청마다 두게 하는, 이주호표 '학교장 마음대로' 법을 고치는 내용이다. 체벌·두발규제·종교강요·강제자율보충학습 같은 기본적이고도 고질적인 학생인권 침해 행위는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학생 대표가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 이 학생인권법이 하루빨리 통과되는 것이야말로 학생인권과 학생인권조례를 지킬 효과적인 방도다.

학생인권조례가 등장했음에도 두발자유화나 체벌 금지와 같은 당연히 누려야 할 신체의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이라면 보장받아 마땅한 권리들이 학교에선 아직 요원한 것은 이명박·박근혜 시대가 남긴 그늘이었다. 또한 문재인 정부에도 이를 제대로 살피고 해결하지 못한 탓이었다.

10년 전의 이주호 교육부장관이 다시 돌아오고 학생인권조례가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된 지금, 학교 교육과 교육관련법은 덩달아 후퇴할 것인가 아니면 풍랑을 넘어 민주화된 사회의 학교로 더 확고하게 나아갈 것인가 기로에 서 있다.

[지난 기사]
체벌 교사의 예상 못한 사과... 다 이것 때문입니다 https://omn.kr/22piu

태그:#학생인권조례, #청소년인권, #이주호,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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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인권활동가,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등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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