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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가게를 폐업하며 정리하는 사람을 보았다. "이제 그만두시는가 봐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주인은 "네. 오랫동안 했으니 이제 좀 쉬려고요" 오랫동안이라는 말이 궁금해 얼마나 오래 했는지 다시 물었다. 20년 됐다고 한다. 20년 했으니 오래 한 거 아니냐며 반문한다. 나는 아, 예 하면서 그 자리를 벗어났다.

20년. 누군가에겐 쉬고 싶을 만큼 오랜 세월일 수 있다. 그러나 내 기준에는 언제나 한참 못 미치는 숫자다. 엄마 때문이다. 엄마는 57년째 가게를 하고 계신다. 그만 두시라고 해도 소용없다. 어떨 땐 그 고집 때문에 일부러 안 도와 드리기도 했다. 힘들면 그만두시겠지 하는 마음에.

그러나 엄마는 내가 도울 때나 아닐 때나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신다. 내 도움은 별거 아니라는 듯. 합의점을 찾기 위해 규모를 줄이라고 권했지만 그럴 때마다 이런 말씀을 하신다. "안 하면 모를까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대충 하면 안 된다" 팔순이 목전인 엄마는 그렇게 젊었을 때처럼 일을 하신다.

최근 달라진 게 있다면 시간이다. 새벽 4시에 기상, 밤 12시에 문을 닫던 엄마가 밤 10시로 문 닫는 시간을 앞당겼다. 달라진 세월을 실감한 것도 있겠지만 달라진 세월만큼 시골 동네에도 편의점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편의점이 생기자 굳이 늦게 까지 문 열고 있을 필요가 없다 하셨다.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다.

물건을 공짜로 주는 엄마
 
57년째 가게를 하고 계시는 엄마.
 57년째 가게를 하고 계시는 엄마.
ⓒ 전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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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안부 통화를 하던 어느 날, 살면서 한 번도 언급한 적 없는 단어를 쏟았다. '힘들었다, 죽을 뻔했네'라는 표현을 웃으며 하셨다. 웃으며 말씀하셔서 그 단어가 희석되었는지 모른다. 또한 뻔한 잔소리쯤 모두 부질없는 짓임을 경험으로 알고 있어 '죽을 뻔했으니 다행입니다, 살 뻔했으면 어쩔 뻔 했겠어요'라고 농담으로 받아쳤다.

예전엔 엄마를 돕기 위해 주말마다 시골집에 갔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버스 노선이 사라졌다는 이유를 핑계 삼아 게을러진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속사정은 따로 있다. 거리 두기의 마음이랄까. 3개월 정도 엄마랑 같이 지냈다.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지만 남들 보기엔 노모를 돕는 효녀였다.

돕는다고 해봐야 거드는 수준이고 힘들면 안 해도 되니 엄마처럼 책임감이 있을 리 없다. 그런 마음으로 가게를 봤다. 물건을 사고 팔고 정리하고 청소하고 생각보다 일이 많았다. 그런데 주말만 볼 때와는 다르게 점점 트러블이 생겼다. 이유는 다름 아닌 '공짜' 때문이었다.

엄마는 손님들에게 공짜를 많이 주셨다. 하나를 사면 하나가 덤이다. 오랜만에 와서. 이웃이라서. 단골이라서. 주는 이유도 가지가지. 취향도 베지밀에서 커피까지 다양했다. 파는 것보다 공짜로 나가는 게 더 많았다. 아이가 오면 귀엽다고, 젊은 부부면 예쁘다고, 노인들은 배고플까 봐. 이웃 며느리 누구의 딸 손주까지 다 공짜였다.

처음 온 여행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심지어 물건 팔러 온 사람도, 택배기사도 모두 공짜 음료 대상자였다. 계산으로 따지면 남는 게 없었다. 도대체 이 가게가 어떻게 지금까지 유지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인정 많은 분이고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으나 연세가 들면서 정도가 더 심한 것 같았다. 마치 무료 봉사하듯 나눠주었다.

내가 폭발한 건 명절 때였다. 엄마는 명절 때 모든 손님에게 선물을 했다. 각 가정에 어울리는 과일이나 생필품 종류도 다양했다. 연례 행사였고 늘 해오던 거라 괜찮았지만, 나는 자꾸만 화가 났다. 너무 과하게 주는 거 같아서 싫었다. 매입매출을 비교해도 남는 게 없다. 적어도 내 계산법엔 그렇다.

늦은 밤까지 무릎 아프도록 고생하면서 이 가게를 하는 이유가 뭐냐고, 엄마에게 따지며 항의했다. 백화점 대형마트 포인트 예를 들며 설교하고 훈계했다. 쉴 새 없이 엄마의 방식을 바꾸라고 외쳤다. 공짜면 상대방이 부담스러워 한다며 회유 작전으로 마무리 하기도 했다. 그러나 엄마는 꿋꿋했다. 당신 돈으로 하는 거니 상관 마라 하셨다.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엄마의 57년

더 이상 간섭 말라는 엄마의 부탁에도 나는 공짜를 목격할 때마다 화가 불타올랐다. 급기야 선을 넘어 엄마를 다그쳤다. 차라리 그 돈으로 기부하면 소식지에도 실리고 뉴스에도 나올 텐데 세상 모른다고, 답답하다며 늙은 엄마를 코너까지 몰고 갔다.

지금까지 그 돈이면 빌딩도 살 수 있다고, 말 좀 해보라고 다그쳤다. 한참을 듣고 계시던 엄마가 마침내 말문을 여셨다. 알 수도 없고 알지도 못했던 엄마의 속마음이었다. 처음 듣는. 내가 난리 친 게 무색할 정도로 차분하고 포근한 음성이셨다.

"나는, 가게를 하는 게 좋다. 사람들이 찾아오고, 맘껏 나눠 주고 하는 게 좋다. 그게 내 낙이다. 늙어서 아무도 안 오는 거 보단 낫지 않니? 우유, 커피 그 정도는 누구라도 살 수 있잖아? 내가 벌어서 내가 쓰는 돈이다. 남들은 무료봉사도 하는데 내 걸로 내 맘대로도 못하니. 네 말대로 너무 퍼줘서 많은 돈은 못 벌었지만 자식들 한 번도 굶긴 적 없다. 그리고 나도 깨기름이며 나물, 고춧가루며 다 공짜로 받을 순 없잖니. 귀하게 농사지은 것들인데. 니는 내가 준다고 자꾸 뭐라 하는데 나는 절반도 못줬어. 네 말대로 돈으로 따진다면."

뭔가 쿵 내려앉은 기분이었다. 그랬다. 꾸준히 지켜온 세월을 감히 내가 함부로 속단했다. 계속 지킬 사람은 엄마인데. 내가 주제 넘었다. 생각해 보니 농사를 짓지 않아도 어릴 때부터 창고엔 농산물로 가득했다.

십 리가 넘는 먼 길 먹거리를 무겁게 지고 새벽같이 오셨던 분들. 그분들께 보답하며 이어진 온정. 부모의 자식에 손자까지 이어져 좋은 기억 하나만으로 성인이 되어 엄마를 찾아온 고아.

훔쳐간 걸 알면서도 눈감아준 엄마가 고마워 평생 은혜갚기를 자청한 청년들. 죽기 전 유언으로 엄마를 언급해 그 자식이 은혜를 갚는다. 한 번이라도 연이 닿은 사람들은 엄마를 잊지 않고 다시 찾아주셨다.

우리 자식들에게는 또 어떤가. 엄마는 여전히 자식들에게 받지 않고 주고 산다. 상대가 누구든 그 이상을 돌려주신다. 어떨 땐 그게 싫었는데 생각해 보면 결국 우리를 위해 끝까지 희생하는 마음인 걸 당시는 알지 못했다.

"나는, 가게 하는 게 즐겁다"라고 말씀하시는데 너무 벅찬 모습이어서 또 한 대 쿵 맞은 기분이었다. 빌딩은 못 남겨도 죽으면 아무개 주인 참 좋았다는 말을 듣고 싶다 하셨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엄마에게 간섭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아니, 간섭자체가 굉장한 잘못임을 알았다.

엄마도 나를 간섭한 적이 없는데 나는 왜 그렇게 간섭하려 했을까. 보태주는 것 하나 없으면서. 굉장히 부끄럽고 어리석었다. 서로의 삶을 존중하되 간섭해서는 안 됨을 왜 알지 못했을까. 엄마의 긴 세월을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아는 얄팍한 세상 인심으로 어쭙잖게 계산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불효녀였다.

백년가게를 상상하며

그렇게 나 혼자 부질없는 거리 두기를 하고 있을 즈음 인터넷에서 우연히 어떤 글을 보게 되었다. 제목은 '아름다운 얼굴' 읽다 보니 우리 엄마였다. 누군가 우리 엄마를 아름다운 사람으로 불러주고 있었다. 말미에는 사진 찍는 걸 싫어해서 사진은 없단 글을 첨부했다.

엄마다웠다. 늙고 못생긴 얼굴 사진 찍어 뭐 하냐는 말씀이 상상이 됐다. 우연히 그곳에 들른 여행자였을 블로거. 엄마가 공짜로 줬다는 음료수도 떡하니 찍혀 있다. 뭉클했다. 엄마가 누군가에게 닿아 아름다움으로 기억되어 있음에. 공짜 때문에 거리두기 한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엄마의 성정에 보답하듯 은혜를 갚는 사람도. 스쳐가는 인연에도 깊이 각인되어 있는 아름다운 분이 맞는데 왜 나만 그런 엄마를 몰라줬던 걸까. 내가 그토록 아까워했던 공짜 음료. 기껏해야 몇백 원. 몇천 원으로 더 큰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지혜를 언제쯤 나는 알 수 있을까. 엄마에게 사람은 돈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정이었음을. 아름다운 삶이란 그런 것일 텐데, 나의 짧은 생각은 언제쯤 엄마의 마음에 닿을 수 있을까.

작지만 평생을 함께 해온 삶의 터전. 최고령 주인. 사랑방 쉼터. 내일 당장 사라져도 이상할 것 없는 사람들이 더 많은 곳. 그런 사람들과 오순도순 세상사를 주고받는 정. 함께 하는 그 자체가 행복임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들의 낙을 내가 뺏으려 했다. 어울리지도 않는 나만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웃고 떠드는 시간 속에 여전히 공짜로 나가는 게 더 많을 테지만 이젠 오래 오래 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내 이름 석자만으로도 찾아간 이들을 언제나처럼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기 희망한다. 이기적이게도 끝까지 그런 욕심을 상상한다. 놀면 뭐하냐는 엄마의 쉼은 가게를 계속 하는 즐거움. 그마음을 믿기로 했다.

그러나 삶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언제까지 즐거운 그 가게를 하실지 장담할 수 없다. 희로애락이 담긴 57년의 현재 진행형. 누구라도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희끗한 머리에 인자한 얼굴. 공짜 음료를 건네는 친절한 할머니를. 가끔 계산이 틀릴 수도 있다. 이해해 주길 바란다.

먼 훗날 길 가던 누군가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뭐, 오래 하진 않았지만 이젠 정리하려고요. 한 100년 됐어요"라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엄마 파이팅.

태그:#아름다운 얼굴, #즐거운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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