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06 10:11최종 업데이트 23.03.06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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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루 종일 이렇게 나무망치로 흙벽을 두드렸다. ⓒ 노일영

 
남편과 내가 고생하며 올리기 시작한 흙벽은 25일이 지나자 대강 마무리됐다. 2.3m 정도 높이의 흙벽은 내게 전설적인 바벨탑이나 다름없었다. 공사를 함께한 사람들이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흩어지면서 결국 바벨탑은 완성되지 못했다는 얘기는 내게 시사 하는 바가 컸다.

남편과 나는 같은 한국어를 사용하면서도 흙벽을 만들며 의사소통에 문제가 많았다. 노동하며 너무 지쳐서 말귀를 못 알아듣고 싶은 나머지 바벨탑 공사 중에 다양한 언어가 만들어진 게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억측까지 들 정도였다.


흙벽을 세우면서 남편이 고생한 걸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남편은 부족한 체력이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을 자신이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요구하며 짜증을 냈다. 그럴 때면 나는 곧 넘어질 듯 축 늘어진 몸으로 간신히 흙벽을 쌓으며 부부라는 낱말에 대해 잘근잘근 곱씹어 볼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의 남편은 내게 하청업자에게 갑질을 일삼는 못돼먹은 본청 부장 정도의 캐릭터로 기억된다. 물론 한편으로는 혼자서 흙집을 짓겠다고 선언해 놓고 점심만 먹고 나면, 흐느적거리며 평상시보다 3배나 느려지는 슬로우 모션을 시전하는 남편이 애잔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애처로운 모습에 동정심이 생길라치면, 정확하게도 그 순간 남편은 내 마음을 깡그리 산산조각으로 박살 냈다. 착하게라도 굴어야지 없던 힘이라도 짜내서 도울 텐데, 자기 성질머리를 못 이겨서 말로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어이구! 개 못된 것은 짖을 데 가서 안 짖고 장에 가서 짖는다더니, 남편은 완성해야 할 흙벽은 안 쌓고, 따라다니며 말로 나를 괴롭혔다. 그런데 우습게도 남편이 내게 말한 내용은 거의 다 자신에게 들려줘야 할 얘기였다.

갑질에서 정반대로의 태세 전환
 

원통형 도구에 이런 식으로 서까래가 모인다. ⓒ 노일영


어쨌든 흙벽은 그렇게 처절하게 완성됐다. 만약 작업이 더 길어졌다면 우리의 결혼 생활은 끝장이 났을지도 모른다. 흙벽이 끝날 때쯤엔 남편이 한마디를 던지면, 나 역시 두 배 세 배의 강력한 단어로 응수했던 터라, 우리는 아예 서로 말을 건네지 않았다. 흙벽 작업이 마무리되고 남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끝났네."
"흙벽? 우리 결혼 생활?"

"고생했어."
"그 많은 불평불만을 들은 내 귀만 고생했지."


우리 관계가 그나마 최악의 막장으로 치닫지 않은 것은 흙집을 만드는 공정 때문이기도 했다. 흙벽 과정이 끝나고 남편은 서까래로 사용할 나무 24개를 다듬고, 서까래를 모아서 지붕의 중심을 잡아주는 원통형의 장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남편이 4일 정도 혼자서 목수 일을 하는 동안 나도 잠깐은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희한하게도 흙벽 공사가 끝나자마자 남편은 멀쩡한 인간으로 되돌아왔다. 눈빛은 유순해졌고 예쁜 말만 골라 쓰기 시작했는데, 한 가지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눈만 마주치면 실실거리며 웃어 댔기 때문이다. 갑질에서 정반대로의 태세 전환이 영 께름칙했다.

'또 무슨 짓을 저질렀길래 저러는 걸까? 설마 흙벽 만들기보다 더 힘든 일이 남아 있는 건 아니겠지?' 다행히 흙집 짓기의 다음 과정은 지붕 만들기였는데, 거의 목수가 해야 할 일이라서 나는 나무망치로 흙벽을 두드려 주는 작업만 했다.

나무망치로 흙벽을 두드리는 이유는 벽에 생긴 균열을 메우고 벽면을 매끄럽게 다듬기 위해서다. 사실 남편이 서까래를 만드는 동안 나는 4일 내내 흙벽만 두드리고 있었다. 어깨가 좀 뻐근하긴 했지만, 벽체를 쌓는 일에 비하면 그건 누워서 먹는 떡보다 훨씬 더 달콤하고 맛있는 작업이었다.

아무튼 내가 4일간 흙벽을 두드리면서 관찰해 보니, 남편이 하는 작업도 참으로 만만치 않았다. 온종일 먼지를 뒤집어쓰고 서까래로 쓰일 12자(3.6m)짜리 통나무 24개를 끌·전동대패·그라인더를 사용해 깎고 손질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닌 듯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자기 스스로 열어젖힌 '헬게이트'인데···.

서까래를 다듬고 서까래가 모이는 통을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며 내가 느낀 것은 남편은 참으로 고지식한 인물이라는 거였다. 남편은 자신이 읽은 흙집 관련 책에 나온 내용에서 한 치도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남편이 새긴 글자
 

남편이 조각칼로 새긴 글자, 누가 봐도 사람인이 아니라 시옷이다. ⓒ 노일영


서까래를 대충 다듬어도 될 텐데, 옹이 하나하나까지 그라인더로 갈아 내며 형태를 살리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답답했다. 날씨가 싸늘해지며 속절없이 시간만 흘러가고 있는데 말이다.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서까래만 바라보며 살 것도 아닌데 그깟 옹이 따위가 뭐가 그리 중요하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이구, 이번 예술의 주제는 서까래가 아니라 옹이구만. 옹이의 형태를 디테일하게 표현하느라 고생이 많아. 흙집을 짓는 건지 예술을 하는 건지."
"건축이 예술이잖아. 그리고 여기 책에 보면 옹이를 잘 살리면 훨씬 보기에 좋다고 그러잖아. 그래서···."


'건축이 예술이라서 흙벽을 쌓는 동안 사람을 그렇게 예술적으로 잘도 갈구셨구만.' 남편은 흙집 관련 책을 3번이나 읽었으면서도, 집 짓는 현장에다 그 책을 놔두고 가끔씩 읽어가며 작업을 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내가 비꼬아도 남편은 실실 웃으며 대꾸했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았다.

어쩌면 남편은 고지식한 게 아니라 자신이 '똥손'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기에, 자신의 손을 믿을 수 없어서 오직 책에만 의존하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또 그건 아닌 것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남편이 서까래가 모이는 통에다 조각을 하려고 한 것인데, 책에 조각을 권한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며 남편은 기어코 조각칼을 들려고 했다. 장식적인 요소라 굳이 할 필요가 없음에도 남편은 믿을 수 없는 그 손으로 조각을 시작하고 말았다.

양각한 글자에 먹물까지 입힌다고 반나절이나 허비했다. 남편이 새긴 글자는 내가 보기에 시옷(ㅅ)이었다. 그래서 물었다.

"시옷이 뭐냐고, 흙집이니까 히읗(ㅎ)을 조각하는 게 맞지 않나?"
"사람인(人) 자를 쓴 건데?"


참지 못하고 깔깔거리며 나는 박수까지 마구 쳤고, 남편도 나를 따라 낄낄거렸다.

"이건 누가 봐도 시옷이라니까. 진짜 웃긴다, 사람인 자도 제대로 못 쓰냐?"
"뭐 그러면 사람 할 때 시옷이라고 하면 되지."


내가 이 정도로 깐죽거리면 분명히 삐쳤을 남편인데, 히죽히죽 웃기만 했다. '그래, 흙벽 쌓으며 쌓인 마음의 벽은 이제 무너뜨리는 걸로 하지 뭐.'
 
덧붙이는 글 <함양타임즈>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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