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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기사에서 이어집니다(①'성벽'에 둘러싸인 핵발전소 문제에 맞선 그가 택한 방법 https://omn.kr/23ob3).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비판하는 캠페인
▲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비판하는 캠페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비판하는 캠페인
ⓒ 그린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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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리의 말처럼, 은폐와 왜곡 그리고 불투명이라는 성벽과 방패 안에서 만들어진 '원전 안전 신화'는 내부고발이라는 예상하지 못한 변수로 아주 조그만 틈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틈에서 장마리는 무엇을 고민하였고, 또 어떤 확신을 갖게 되었을까.

"월성 원전의 방사능 유출 문제를 알리게 되면서, 함께 싸우는 사람들이 있어서 꼭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우리와 오랫동안 연대해왔던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의 김영희, 김석연 변호사님, 지역에서 전문가 강의를 스무 번 하면서 알게 된 지역의 활동가 선배들, 열성적으로 취재하고 있던 포항 MBC의 장미쁨 기자, 게다가 진행하던 과정에서 추가로 공익제보자가 나타난 거죠. 물론 저도 '우리의 기대처럼 이 문제가 제대로 알려질까?'라는 고민도 했지만... 계속해서 이 문제를 함께 알리는 사람을 만나고, 무엇보다 월성원전 주변 주민들은 오랜 시간 포기하지 않고 싸우고 자신들이 받아온 피해를 직접 증언하고 있잖아요. 그것도 정말 중요했죠. 이해하기 어려운 사고지만, '어, 저거 더 알고 싶은데? 피해자분들은 어디가 아팠지?' 이런 작은 관심에서 시작하잖아요.

그래서 그 모든 사람과 그들의 활동이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작용했던 것 같아요. 시민들은 '어떻게 공익을 추구하고 국민의 안전을 우선해야 하는 국가의 기관들이 혹은 준 국가기관들이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일 수 있었나'하는 분노를 하게 되는 거죠. 우리가 잘 모르는 시간 동안 갑상선암 피해자들이 생겼고, 누구는 사망했고, 치료를 받아야 하고, 그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의 가족까지 거의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사람들이 반응하는 거죠. '나 이 일에 참여하고 싶어, 그 사람들을 만나본 적은 없지만, 서명과 후원, 언론이나 방송 댓글과 공유...' 많은 분들이 이런 다양한 방식으로 저희를 지지했는데, 저는 거기서 시민들의 반응을 느꼈어요."


이렇게 '어렵고 복잡한 방사능 유출 문제'로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 참여를 끌어낼 수 있을지 의심하고 고민했지만, 결국 "이 길이 맞다"라는 확신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장마리는 하나를 더 바라게 되었다. 많은 이들의 활동과 참여, 때로는 내부고발로 가능해진 월성 원전 방사능 유출 문제를 다루면서, "어떤 식의 결실은 꼭 있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가 말하는 '꼭 내야 하는, 꼭 내고 싶은 결실'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용기내어 제보한 이들... "책임감 느꼈다"

장마리는 "월성1호기 사용후핵연료 누출 문제로 두 명의 공익제보자가 나타났고, 그중 본인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고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세상에 알린 이희택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위촉 연구원이 참여연대에서 시상하는 2022 올해의 공익제보자 상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건 정말 공익을 위해서, 자신의 많은 것을 걸고, 위험을 무릅쓰며 희생을 감수하고 언론과 대중 앞에 서서 진실을 알리기 위해 하신 거잖아요"라며 힘든 상황에서도 공익을 위해 제보한 이희택씨를 손꼽아 말했다.

참여연대는 이희택씨를 '2022 올해의 공익제보자 상'으로 선정한 이유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에 30년 넘게 근무하며 원전의 안전 규정 준수 여부를 감독해 온 이희택씨는 보고서를 통해 KINS에 월성 원전에서 기준치 이상의 삼중수소가 검출된 사실이 사용후핵연료 저장 수조의 누수 때문이니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월성1호기의 안전성을 높인다며 2012년에 설치한 격납건물여과배기(CFVS) 설비가 수조 바닥을 7곳이나 관통해 차수막이 파손되었다는 사실들을 KINS 내부에 알려왔다. 이후 사용후핵연료 저장 수조에서 물이 새고 있음을 촬영한 사진, 영상 등의 증거가 나오고 원자력안전위에서 이를 인정했음에도 방사능 누출에 대한 대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2022년 10월, 결국 본인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고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세상에 알리고 있다"라고 밝혔다.

실제 지난해 10월 22일 뉴스타파 '방사능 줄줄 샌다...어느 원전 전문가의 고백' 기사에서는 이희택 박사가 상급자인 A 본부장과 나눈 대화를 공개했는데, 이 박사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당시 A 본부장은 이희택 박사에게 "향후에도 그 부분을 잘 확인해서 관리될 수 있도록 하라는 게, 선배님이 사업자들한테 하고 싶은 조치 아닌가요?"라고 묻는다. 내부적으로 잘 고쳐지면 되는 거 아닌가 정도로 들린다. 그러나 이희택 박사는 "아니요. 나는 국민들이 좀 알았으면 좋겠어요. 이런 내용을 오픈해서 국민들이 알게끔 해야 되는 게 우리의 미션이라고 생각해요"라며 단호히 말한다.

"저는 거기서 많은 것을 느꼈어요. 제가 그분이 이 문제를 알리기 위해 수년간 홀로 힘써온 이력과 정리한 자료들이 공개됐을 때,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 이런 고독한 여정을 선택하기 위해 거쳤을 여러 고민들을 감히 짚어봤어요. 특히 누출 문제를 같이 진행하면서, '이런 사람들이 있구나, 굉장히 감사하다.' 이분은 자신의 환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계신 거잖아요. 나도 그렇게 멈추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겠다 싶었어요.

사실 이희택 박사님은 공익제보를 한 뒤에도 아직 재직 중인데, 저처럼 환경단체에서 일하면서 주변 모두가 지지해줄 수 있는 그런 환경에서 일하고 계신 것도 아니잖아요. 40년 가까이 KINS에서 일해서, 그게 전부일 텐데. 진실을 위해,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그런 제보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원전의 안전 문제를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지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겠다는 생각, 무엇보다 책임감을 느꼈죠."


장마리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누군가와 어딘가에서 고민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이 문제를 더 잘 알리기 위한 책임감을 느꼈다. 또한 이 책임감은 '꼭 성공하고 싶은, 꼭 결실을 내고 싶은 기분 좋은 부담감'으로도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나타난 공익제보자들의 활약과 우리를 지지해주는 시민들을 위해서라도, 이 문제를 제기한 입장에서 그린피스가 이것을 하지 않았을 때와는 확실히 다른 변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하죠, '일종의 기분 좋은 부담감' 같은. 저로서는 정말 죽을 때까지 못 잊고, 이 일을 함께 해주신 분들에게 마지막까지 감사하다는 마음일 거고요.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 우리가 하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진행하는 이 캠페인에 동의하고 함께 싸워줄 분들이 정말 많을 텐데, 전 항상 그런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가고 싶고, 만나고 싶어요. 그분들이 거기, 그곳에 계시는데, 황분희 어머니처럼 오랜 시간 마을에서 상여시위를 하는 분들도 계시고, 또 활동가, 기자, 변호사들까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어딘가에서 이 어려운 문제 앞에서 고민하고 저와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동료시민'이 있다는 거예요."


동료시민 찾기
 
방사선 조사 중인 그린피스 캠페이너
▲ 방사선 조사 중인 그린피스 캠페이너 방사선 조사 중인 그린피스 캠페이너
ⓒ 그린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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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19일 TBS 최일구의 허리케인 라디오에 출연한 장마리. 진행자는 그에게 "캠페이너란 직업이 어떤 직업이냐?"라고 물었고, 장마리는 "캠페이너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들을 고안하고 그를 실제로 이행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제가 하는 일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는 더 많은 이들을 만나고, '동료시민'을 찾고, 그리고 그분들이 우리를 알아볼 수 있게 계속 이 일을 멈추지 않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실을 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동료시민에게 우리의 활동들을 알릴 수 있으니까. 그린피스를 포함하여 시민사회에서 일을 한 게 15년 정도 되는데, 제가 가장 경계하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 시민단체활동 사회공익적활동이기 때문에, 우리가 내는 성과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눈에 잘 보이지 않아', '우리가 하는 일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훌륭한 일이야',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저는 굉장히 경계해요. 왜냐하면 계속 진보하고 변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경험하게 해야, 우리 힘이 더 강력해진다고 생각해요.

물론 눈에 보이지 않게 진행되는 것이 의미가 없다기보단, 더 많은 내 편,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동료시민을 찾기 위해서, 또 다른 생각을 하는 시민분에게 더 가까이,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언어를 구사하면서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라도, 그런 의미에서 결실이 눈에 드러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죠. 시민단체 활동을 이어가면서 그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됐고요. 그 생각의 정점을 이룰 때, 어떻게 이 의미 있는 활동들을 드러나게 하고, 보다 많은 동료시민과 함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지점에서 그린피스를 만나게 된 거죠."


캠페이너, 여전히 우리에게는 '낯선 직업과 직함'이지만 지금까지 장마리가 말하고 강조했던 것을 생각하면, "어렵고 복잡한 기후에너지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알리고,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이 문제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문제를 모르는 이들의 관점에서 '어떻게 쉽고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생각한다"라는 말들이 훨씬 잘 이해되기 시작한다. 장마리는 캠페인을 통해 시민들의 참여와 지지를 확대하고 이렇게 함께 하는 사람들을 늘려나감으로써 힘을 키우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여기서 그는 낯선 하나의 단어를 꺼냈고, 나는 캠페이너 장마리가 강조한 '동료 시민'에 대해 다시 물었다.

동료시민을 기다리는 장마리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장마리의 입에서 '동료시민'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종이에 큼지막하게 따라 적었고, 그의 말이 끝나자 마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방금 동료시민이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이게 어떤 뜻으로 사용하신 거예요? 사실 너무 생경하고 낯선데, 장마리 캠페이너가 하는 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활동과 연결되는 단어 같아서요"라고 말이다.

"음... 우리가 각자 어느 지점에서 하나의 점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한편으론 나와 내 주변이 좋게 변하도록 하는 일을 저마다 하잖아요. 우리가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를 뿐이죠. 그렇지만 그 사람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분들은 나의 동료시민이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저는 살아왔어요. 저처럼 시민단체나 환경단체에서 일을 하지 않아도 저는 모든 동료시민이 활동가라고 생각하는데요. 어딘가에 있을 다양한 시민활동가이자 캠페이너들을 만나고, 함께 행동하기 위해 제가 그분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분들도 저를 동료시민이라고 불러주면 좋겠고요.

장훈교는 책 <일을 되찾자: 좋은 시간을 위한 공동자원체계의 시각>에서 박상훈의 말을 빌려, "동료 시민이라는 말은 아테네 민주정과 로마 공화정에서 만들어진 '최고의 언어'로 서로를 평등한 시민 구성원으로 부르는 말"이라고 정의했다. 장마리씨는 어딘가에서 자신만의 활동, 캠페인을 하고 있을 동료시민에게 다가가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가 하는 캠페인의 결실이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동료시민'만이 아니라 '다른 시민들에게도 더 가까이, 나와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른 언어를 구사하면서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 주변의 '안전' 문제로 인식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평소에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는 먹거리와 관련이 있기에 보다 많은 시민이 '자신의 문제'라고 인식하고 관심을 보여주는 것 같은데, 반대로 국내 원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여서다. 우문현답, 어리석어 보이는 질문에 장마리는 의미 있는 답을 보여주었다.

"저는 이게, 거리의 문제인 것 같아요. 공감과 이해를 위해서는 문제에 대한 나름의 파악이 있어야 하죠. 근데 제 생각은, '알고 모르고, 인지하고 아니고'의 차이라기보다는 나와 이게 얼마나 직접적이냐, 그 거리에 있어서 국내 원전은 여전히 굉장히 멀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공감과 이해의 차원'으로만 생각하기 전에, 나에게 '멀리있는 것처럼 보이는 문제'를 어떻게 조금 더 '가깝게' 만들까, 이렇게 접근하면 어떨까요? 사실은 후쿠시마보다 국내 원전 문제가 우리에게 더 가까운 문제잖아요. 그런데, 여러 가지 의도가 섞여 있는 왜곡된 정보와 사실들이 겹겹이 쌓이고 점철되면서 정말 시민들에게 가까이 닿아 있어야 하는 원전의 안전 문제가 너무 등한시되고 가려져 있는 거죠.

한 명의 캠페이너로서, 이 심각한 문제를 그분들에게 얼마나 가깝게 드러낼 것인가, 사실 이게 저의 중요한 역할이고요. 그래서 월성 캠페인을 하면서, 많은 문제를 시민들이 가깝게 느끼도록 하는 것이 시민들에게 '이거 고쳐야 하는 문제네, 잘못된 거네'라고 사안 자체를 우리의 문제처럼 느낄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했어요. 거기서부터 시작해야하지 않을까요."


나아가 장마리는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와 국내 원전 문제를 각각의 이슈로 따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 두 문제는 연결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후쿠시마 오염수와 국내 원전을 단적으로 비교해서, 마치 둘 중에 뭐가 더 중요하고 아닌지를 말하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시민들에게 가깝게 느끼고 중차대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말하면 되는 거잖아요. 후쿠시마 오염수가 지금으로서는 목전에 와있고 굉장히 급한 문제면서도, 이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준 것도 있다고 생각해요. 우선, 원전 사고가 나면 이처럼 오염수가 발생하거나 폐기물이 쌓이는데. '이웃나라에서 사고가 나도 우리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구나', '내 일상에 영향을 줄 수 있구나'라는 거요. 두 번째는 지난 3~4년 동안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 때문에 세슘이나 스트론튬, 삼중수소와 같은 방사성물질에 대해 시민들이 많이 들어봤을 거예요. 저는 그것 역시도 국내 원전 안전문제를 알리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우리는 아직 후쿠시마와 같은 재난을 피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 그 (유무) 차이가 굉장히 크기도 하고요."

덧붙이는 글 | 후쿠시마에서 직접 방사선 측정 및 조사를 했던 장마리 캠페이너가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중심 내용으로, 마지막 기사가 이어집니다.


태그:#장마리, #그린피스, #후쿠시마 오염수, #국내원전, #캠페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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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박사수료생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고, 관련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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