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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 강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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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라는 것이 어렵게 쓰여질 경우에 한 개인에게 족쇄도 감옥도 될 수 있구나. 그게 제가 언어는 인권이라고 주장하게 된 계기였어요."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상임대표는 20년 간 국어 운동에 몸담고 우리말을 지키고 가꾸고 있다. 그는 2012년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을 이끌어내는데 큰 기여를 했고, 공문서에 한자를 혼용하자는 사람들이 청구한 위헌심판에서 한글전용을 변론하여 지켜냈다. 2018년에 이 분야의 공적을 인정받아 외솔상을 받았다. 다음은 지난 20일 그와 진행한 인터뷰다.

공적 언어 사용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어 활동

- 안녕하세요, 대표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건범입니다. 저는 현재 50대 후반이고 20대 때는 학생 민주화 운동을 했고요. 30대엔 100억 원대 벤처 기업가로 승승장구 했습니다. 40대 초에 사업을 너무 크게 벌였다가 파산을 했어요. (웃음) 40대 이후부터 작가 활동에 주력을 하면서 한글문화연대를 겸하게 되었죠. 2012년부터 한글문화연대의 대표를 맡아서 어느덧 11년째 하고 있네요."

- 국어 운동에 뛰어든 계기가 궁금해요.

"대학 시절 혁명을 꿈꾸며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어서 20대 때에는 감옥살이를 한 2년 8개월 정도 했어요. 꽤 오래 감옥살이를 했죠. 제가 감옥살이를 할 때 같은 방에 있던 소매치기들은 1심에서 이미 실형 선고를 받고 2심 항소를 한 사람들이었어요. 근데 항소를 하려면, 직접 탄원서와 항소이유서도 써야하거든요. 그 뿐 아니라 검찰이 본인들에게 준 공소장에 적힌 글도 이해를 못 하더라고요. 그 당시에는 판결문도 국한문 혼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판결문을 보고도 자기가 무엇 때문에 이런 벌을 받는지 정확하게 이해를 잘 못 했어요. 이러다보니 자기가 지은 죄보다 더 많이 벌을 받게 되는 경우도 수두룩했죠. 그 때 느꼈어요.

언어라는 것이 어려운 말로 쓰여질 경우에 한 개인에게 족쇄도 감옥도 될 수도 있구나. 사람의 기본적인 권리를 짓밟거나 억누를 수도 있겠다. 앞서 말한 소매치기 분들에게도 충분히 자기를 변호할 기회와 권리를 줘야해요. 이를 위해선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우리 말을 사용해야 한다는 거죠. 이게 제가 언어는 인권이라고 주장하면서 국어 운동을 펼치게 된 계기에요."

- 2012년부터 한글문화연대 대표직을 맡고 계시다면서요. 한글문화연대란 어떤 단체인가요?

"한글문화연대는 국어학자 위주가 아니라 일반 시민들 중에서 우리말과 한글을 지키고 또 가꾸는데 관심이 많은 분들이 아름아름 모여서 만든 시민단체예요. 한글문화연대에서 주관하는 활동은 크게 4가지로 나뉘는데요. 첫째, 국어기본법을 지키게끔 공공기관을 감시하고 "쉬운 말 운동"을 펼치는 시민운동. 둘째, 한글을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학술운동. "한글날 행사", "한글문화기행"을 열어 시민들에게 한글을 알리는 문화활동.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말글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어요.

시민들의 사적인 언어 생활에 대해서는 특별히 얘기를 많이 하지는 않아요. 사적인 언어 생활은 문화생활 혹은 장기적인 교육 속에서 형성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죠. 대신 우리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바로 공공언어에요. 공공언어는 법률이나 행정 제도에서 사용되는 언어인데요. 주로 국가가 만들고, 국가가 사용하는 언어들이죠. 그런데 공공언어는 주로 국민 생활 등 공익과 관련된 일을 다루기 때문에 일반 국민이 알아듣기 쉬워야 해요. 우리의 초점은 공공언어가 일반 국민이 알아듣기 쉽게 쓰여서 국민의 알 권리를 잘 보장하고 있는지에 있어요."
     
- 한글문화연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과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한글날을 공휴일로 다시 제정할 때가 기억에 많이 남아요. 한글날을 공휴일로 다시 제정하기 위해 더운 날에도 하루도 빠짐 없이 광화문 사거리에서 서명 운동을 했죠. 경영자총협회에서 한글날이 공휴일로 되는걸 굉장히 반대했어요. 경영자총협회에서 우리나라의 연차 휴가 수가 선진국 수준이라고 주장을 했는데, 그 주장의 논리적인 모순을 제가 일일이 밝혔죠.

첫째, 우리나라 연차 휴가 수가 15일에서 25일 사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연차 사용 일수는 7.5일에 불과해요. 서유럽, 북유럽과 비교했을 때 연차 휴가의 실 사용일 수는 적다는 거죠. 두번째, 경제협력기구 연평균 노동시간이 1800시간이었는데, 우리나라 연평균 노동시간은 2100에서 2200시간 정도였어요. 그러니까 우리나라 휴일 수가 충분하다는 말에는 근거가 불충분한 것이죠.

근데 이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과거 세종 시절에 최만리라는 집현전의 부제학이 있었는데, 그 분이 훈민정음 반포를 목숨 걸고 반대하는 '도끼 상소'라는 걸 벌였어요. 이 도끼 상소는 쉽게 말해 "내 말이 틀리면 도끼로 머리를 쳐달라"는 건데요. 당시 훈민정음 반포에 반대하던 유생들이 펼쳤던 상소에요. 제가 한글날 공휴일 추진에 반대하는 경영총협회 앞에 가서 입장 철회를 요구하면서 역설적으로 도끼상소를 따라했어요."

신조어는 나쁜 것 아냐, 기성 세대도 과거 신조어 만들어와

- 대표님은 작가 활동도 꾸준히 하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서 <언어는 인권이다> 중에 '차별을 은폐하려는 용어 사용은 오히려 차별을 더 강화한다'는 문장이 인상깊었습니다. 어떤 의미인지 설명 부탁드려요.

"분리해서 다루려고 하는 자체가 일종의 혐오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말이에요. 장애인들을 어떠한 시설에 모아두려 하고, 노숙자들을 어떠한 시설에 가두어 두려고 하는 것. 그런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죠. 일상생활에서 그 사람들을 일상적인 용어로 부르지 않고 은폐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용어 사용이 오히려 차별을 더 강조하고 있어요.

제가 경험했던 일도 비슷한데요. 내가 예전에 비행기를 탑승하려고 공항에 간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내가 눈이 안 보이니까 도움을 요청했더니, 무전을 치면서 '블라인드 하나, 블라인드 하나.' 이렇게 부르는거에요. 그 말이 나한테 들리니까 내가 무슨 이상한 물건 취급 받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딱 이런 상황이죠. 차별을 은폐하려는 용어 사용이 오히려 차별을 더 강화한 예죠."

- 그렇다면 요즘 새로운 말, 신조어. 이런 풍조나 세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신조어가 거의 다 줄임말들이잖아요. 줄임말은 피해야 할 현상이다? 이것도 나는 마땅한 생각은 아니라고 봐요. 왜냐하면 기성세대들도 다 줄여왔거든요. 기성세대들도 문화체육관광부를 '문체부'라고 불러왔고, 국회에서도 추가경정예산을 '추경'이라고 불러요. 이처럼 줄임말의 사용은 예전에도 있었는데 현대사회는 정보통신의 발달 때문에 전달 속도가 빨라지고 생산량도 많아지게 되면서 급격해졌어요. 근데 이제 공공 언어들까지 줄임말이 침투하게 된다면 그건 문제가 되는거죠. 줄임말을 만드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좀 불가피한 면도 있어요. 이제 속도를 조절해가면서 가야한다는 거죠.

다음으로 로마자 약칭도 마찬가지에요. 로마어 약칭 보다는 우리 말 약칭으로 바꾸어서 이해의 단서를 제공해주는게 필요하죠. 예를 들어 미국연방준비제도를 'FED' 보다는 '미연준'이라고 부를 수 있잖아요. 그래서 우리 한글문화협회에서도 한국기자협회와 방송기자연합회와 함께 '우리말 약칭 제안 모임'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노력하고 있어요. 이렇듯 신조어라는 것은 사실 필요한 거에요. 근데 그걸 만들 줄 아는 능력이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문제에요. 제대로 못 만드니까 오히려 외국어와 한자어를 사용하게 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우리말 자원을 잘 활용해서 우리말의 어휘 자원을 늘려가야 해요. 우리말로 학술 용어를 못 만들고, 영어만 사용하게 되면 장기적인 차원에서는 우리 학문의 대중화에 상당히 걸림돌이 될 수 있어요."

-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죠. 무엇보다도 자신의 국어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나서서 말을 하고 글을 쓰고 하는 노력을 많이 해봐야 돼요. 그 다음으로 어려운 외국어와 한자를 남용하는 말들을 보면 시민 의식을 좀 발휘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어려운 말들을 쉬운 우리 말로 쓸 수 있게끔 의견을 내고, 사회에 요구할 줄 알아야 돼요. 

마지막으로 대체어가 없는 새로 들어온 말들에 대해서는 이름을 지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죠.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어요. 사람들은 어딘가에다가 이름을 붙일 권리가 있어요. 아이를 낳아도 이름 붙이잖아요. 그러니까 이것을 남의 권리라고만 생각할 이유는 없어요. 나아가 그런걸 바꿔달라 직접 요구를 하면서 시민의 알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 우리 스스로 노력해야겠죠.

그렇다고 내가 결코 외국어를 공부하지마라, 외국어를 사용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에요. 우리가 축구를 할 때 손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축구장에서의 나름의 재미와 규칙을 위해서잖아요. 농구를 할 때 역시 발을 사용하지 않는 것도 그 나름의 규칙과 재미를 위해서죠. 그러니까 우리 한국어 공동체에서 생활할 때에는, 공용어가 한국어인 나라에서는 당연히 한국어를 사용하는게 맞지 않을까요? 그런식으로 우리말을 지켜가려는 노력을 하면 좋겠어요."

태그:#한글문화연대, #이건범, #언어는인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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