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림팰리스> 포스터 이미지

영화 <드림팰리스> 포스터 이미지 ⓒ ㈜인디스토리

 
가성문 감독의 전작인 단편 <누렁이들>을 (본인이 프로그래머로 활동하던) 현재 개점휴업중인 영화제에 상영작으로 선정한 적이 있다. 대부분 전체관람가 기준으로 작품을 고르던 그 영화제에서 사실상 최초로 시도하는 청소년관람불가 단편섹션이었다. 그리고 본 작품은 당시에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해당 소재를 다루는 지배적인 경향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색깔이 진했다. 어떻게 보면 용맹하지만 사뭇 불필요한 논란을 촉발하지 않을까 염려가 될 정도로 '쎄다'고 할 만한 전개로 '끝까지' 가버리는 스타일로 각인되는 기억이다. 그리고 얼마 후 동물권리단체 중 대표성을 띠던 모 단체 대표가 거하게 사고를 치는 바람에 <누렁이들>은 예언적인 작업으로 적어도 필자의 기억에는 단단히 남았다. 다만 영화가 소개된 타이밍이 아쉬웠을 뿐이다.
 
그 이후로 이 감독의 차기작이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한참이 지난 뒤 시나리오 공모에 당선되어 장편 준비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들렸다. 시나리오의 제목 그대로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종교'가 되어버린 부동산 문제를 배경으로 다룬다고 했다. 요즘 적잖은 사회파 작품들이 소재로 쓰는 내용이긴 하지만 가성문 감독이라면 좀 더 치밀하고 복합적인 관점으로 소화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이 생겼다. 그리고 마침내 접하게 된 결과물은 그 기대를 거스르지 않게 썩 괜찮게 뽑아졌다는 만족스러운 평가를 충분히 내릴 만한 것이었다.
 
사실 이 영화가 중점적으로 다루는 이야기는 영화를 보기 전 소재나 배경만 놓고 보면 그다지 흥미를 자극하는 구석은 좀 약한 게 사실이다. 주거 빈곤이건, 소외된 노동이건 하다못해 텔레비전 드라마나 온라인 플랫폼 숏-폼 영상으로 희화화 수준일지언정 쉽게 접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별로 특별히 희소성이 부각되지 않으면서 잘못 묘사하면 욕먹기 딱 좋을 사회적 소재를 정교하게 조합하는 솜씨가 탄탄하다. 그 꼼꼼한 구성이 발휘하는 위력이 설정과 배경을 든든하게 떠받친다. 거기에 김선영&이윤지, 두 탈 독립영화 급 주역들이 보는 이가 침 꿀떡 삼키게 만드는 호흡으로 '시너지' 제대로 뿜어낸다. 관객의 뇌리와 가슴을 마치 망치와 모루의 역할분담처럼 틀어막고 내리치는 타격력이 만만찮다.
 
영화는 크게는 이중의 분리장벽에 가로막혀 길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는 두 주인공의 엇갈린 행로를 묘사한다. 그들을 가로막는 장벽 중 하나만 잘 풀어내도 충분히 장편 하나 뚝딱 나올 법한 사연인데 그런 장애물을 하나도 아니고 둘을 동시에 써먹는 덕분에 1+1이 아니라 제곱근 경우의 수처럼 영화의 중력장이 강력하다. 그래서 팔짱끼고 대충 이렇게 끝나겠지 식으로 관객이 결말을 함부로 예단할 수 없게 만드는 흥미진진한 불투명성이 생성된다.

관객의 머릿속에서 논리적으로 성립 가능한 관계망과 결론이 제각각 어색하지 않은 개연성을 가진다는 것은 감독과 제작진이 그만큼 각고의 노력을 투여했다는 증명이다. 또한 사회적 소재를 그저 자기 영화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데 소비하지 않고 흥미로운 결합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는 입증이기도 하다. 요즘 보기 드문 미덕과 장점의 영화다.
 
'꿈의 궁전'은 과거의 악몽에서 새 출발 보장해줄까?
 
 영화 <드림팰리스> 스틸 이미지

영화 <드림팰리스> 스틸 이미지 ⓒ ㈜인디스토리

 
영화가 시작된다. 혜정은 자신의 SUV에 부착된 '단결투쟁' 구호 스티커를 셀프주유소 한 구석에서 벗겨내는 데 여념이 없다.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이 떼어낸 내용과 연루되고 싶지 않다는 주인공의 단호한 결의가 스크린 너머 관객에게도 고스란히 전이되어 온다. '경로를 이탈했습니다!'는 경고신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혜정은 교외에 있는 근사해 보이는 신축 아파트단지로 들어선다. 화면에 영화제목이 아로새겨진다. 제목인 '드림팰리스'는 곧 그가 이사해올 아파트단지의 이름이기도 하다. 혜정은 짐을 풀고 새로 입주한 아파트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원룸이건 펜트하우스건) 모든 이사과정에서 꼼꼼하게 살펴야 할 필수요소, 수도 상황이 문제다. 흙탕물인지 녹물인지 하필 수압은 멀쩡한지라 몇 시간 내내 틀어놓지만 콸콸 쏟아지는 물줄기는 황토 빛 그대로다.
 
기가 막힌 혜정은 건설사를 찾아가 수리를 요구한다. 하지만 경기불황으로 미분양 사태에 골머리를 앓는 시공사 담당자는 분양문제가 해결이 난 뒤에야 일괄 조치가 가능하다며 뻗댄다. 그 대신에 얼른 분양 건이 풀릴 수 있게 계약자를 데려오면 인센티브를 지급하겠다며 역제안을 던진다. 처음엔 얼른 녹물이나 해결하라면서 각을 세워보지만 나중에 혜정은 일석이조란 생각으로 태도를 바꿔 적극 홍보에 나선다. 하지만 뭔가 잘못된 것 같다. 이사 턱으로 입주자 모임에 떡을 돌릴 겸 참석했더니, 기존 입주자들은 미분양 사태로 인한 부동산 가격하락 문제로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다.
 
수도권 신규 아파트단지 가격은 이제 로또 1등 당첨이 되어도 '인생역전' 힘들다며 근거로 들 만큼 몇 년 사이 엄청나게 오른 상태다. 특별히 부유해 보이지 않는 주인공이 어떻게 이름부터 우리 단지엔 아무나 못 들어와요! 식으로 작명된 드림팰리스에 입주하게 된 걸까? 대답은 액자에만 흔적이 남은 채 고인이 된 혜정의 남편 목숨 값이다. 혜정은 몇 해 전 산업재해로 남편을 잃었다. 이제 그는 고3인 아들 동욱과 함께 새로 이사한 '드림팰리스'에서 과거의 상처를 잊고 새롭게 출발하리라 다짐한다. 도입부에서 그가 악착같이 뜯어내던 투쟁구호 문구는 지난 2년간 혜정이 당시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들의 유가족과 함께 회사 앞 농성을 해왔던 흔적이다. 여전히 농성은 이어지고 있지만 혜정만 회사와 합의해 그 보상금으로 아파트를 계약한 것이다.
 
하지만 아들 동욱은 지난 2년여의 시간 동안 고락을 같이했던 농성장 식구들과 떨어지기 싫다. 정이 들 대로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젠 그곳과 단절하고 싶어 안달인 엄마 속도 모르고 여전히 그들과 교류한다. 혜정은 그런 아들의 시선이 거북할 따름이다. 게다가 농성장에는 언니 동생 사이로 절친했던 수인이 아직 남아 있다. 하지만 혜정은 이제 몸도 마음도 그곳을 떠난 상태고 수인은 남아있으니 둘의 관계도 서먹해진 참이다. 그런 가운데 농성장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누군가 밤 사이 회사 화장실에 불을 질렀다고 한다. 물론 금방 잡힐 정도로 별 것 아닌 해프닝에 가깝지만, 회사 입장에선 농성대오를 공격할 좋은 구실이니 그냥 넘어갈 리 없다. 하필 거기에 아들이 연관된 혐의 때문에 혜정은 오랜만에 꺼림칙한 심정으로 '옛 동지'들이 기다리는 농성장으로 어색한 발걸음을 옮긴다.
 
주인공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우리 시대의 비극'
 
 영화 <드림팰리스> 스틸 이미지

영화 <드림팰리스> 스틸 이미지 ⓒ ㈜인디스토리

 
혜정은 불편한 만남 이후 더 이상 과거의 '농성 동지'들과 엮이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아들 동욱에게도 그들과 이제 그만 연을 끊으라고 권유해본다. 하지만 오히려 아들은 엄마를 이기적이라며 규탄하는 태도가 역력하다. 그리고 얼마 후 혜정은 하필 수인이 사고의 범인으로 구속된 것을 알게 된다. 언니 동생 하던 처지인 터라 수인의 어린 자녀들이 염려된 혜정은 엄마 없이 방치된 상황에 마음이 쓰인다. 결국 그는 수인의 아이들을 자신의 아파트로 데려와서 돌본다. 수인의 자녀들은 아빠를 잃고 엄마도 투쟁현장에 머무는 바람에 오랫동안 제대로 '집'의 존재감을 깨닫지 못하던 참에 '꿈의 궁전' 같은 새 아파트 생활에 넋을 놓는다.
 
이윽고 출감한 수인은 아이들을 돌봐준 혜정과 다시 가까워진다. 옥중에서 사측의 회유에 마음이 흔들리던 참이다. 다들 삶이 팍팍하다 보니 서로간의 배려와 챙김이 조금씩 엷어지던 참에 자신의 수난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회유를 위해) 찾아온 회사 측 관계자들이 그립더라는 넋두리와 함께 수인은 혜정 덕분에 오랜만에 사람다운 삶을 사는 듯 보이는 아이들 모습에 약해져간다.

혜정은 그만 자식들 때문에 투쟁을 정리하려는 수인의 회사와의 합의를 도우며 예전 관계를 회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동욱도 수인의 가족을 챙기는 엄마와 거리감이 줄어든지라 혜정의 표정은 희색이 만연하다. 이제 녹물만 해결되면 정말 더 바랄 게 없을 참이다. 마음에 여유가 생긴 혜정은 새 출발을 위해 이사를 알아보는 수인을 위해 건설사 담당자에게 신규 입주자를 알선하면 받을 자기 인센티브 몫 대신 추가 할인을 해달라고 청한다. 수인은 드림팰리스 입주 계약을 치르고 이제 의남매 마냥 서로 의지하며 오순도순 살 미래만 남았다.
 
하지만 '유이(有二)'하던 본사 직원 유가족인 혜정과 수인이 모두 농성에서 이탈해 버린 농성장은 침울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제 하청업체 직원 유가족만 남은 투쟁은 점점 더 고립되어 간다. 수인의 합의를 말려달라며 큰 결심하고 찾아온 유가족 대표에게 혜정은 그동안 쌓였던 서운함을 격하게 토하고 만다. 이제 그들이 어떻게 되거나 말거나 원래 절친했던 수인의 가족과 드림팰리스에서 이웃사촌으로 미래의 행복만 보고 살자 다짐하는 혜정이다.

그렇게 독하게 마음을 먹었건만 건설사의 할인분양에 격노한 기존 입주자 모임은 강경투쟁에 돌입하고 신규 입주자의 이사를 가로막는다. 수인의 가족과 이삿짐은 다른 여러 입주자 일행과 함께 단지 입구에서 막힌다. 건설사 담당자의 이간책과 입주자 회의의 (회사 끄나풀 아니냐는) 의심 속에 혜정은 고립되어 간다. 게다가 인센티브 벌자고 자신을 이용한 것이라 오해한 수인은 혜정에게 두 번째 속았다는 배신감에 치를 떤다. 과연 혜정의 소박한 꿈은 이뤄질 수 있는 걸까?
 
성실하게, 그리고 총체적으로 구조화한 '분리된 노동'
 
<드림팰리스>는 노동과 부동산이라는 한국사회의 거대한 무저갱을 연결해 한국사회의 음울한 암흑을 극한의 압축비율로 형상화한다.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특별히 새롭지 않은 내용인데도 이 둘을 제대로 연결해낸 덕분에 발생하는 파생효과는 어마어마하다. 그 점에서 본 작품은 여타의 유사 시도와는 다른 단계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완성도를 선보인다. 이게 말이 쉽지만 해내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혜정과 수인의 일차 비극은 산업재해에서 비롯된다. 그 이전에 둘은 비록 부유하진 못하더라도 탄탄한 직장에서 생산직이나마 정규직으로 일하는 가장+전업주부+한창 돈 들어갈 청소년 자녀로 구성된 소위 '정상가족'을 꾸려가고 있었다(혜정이 수인보다 좀 더 형편이 나은 것으로 묘사되긴 하지만). 두 주인공 가족의 크게 불만 없어보이던 삶은 한순간의 사고로 곤두박질친다. 남편들의 사고 관련 진상규명과 정당한 보상을 위해 둘은 함께 목숨을 잃은 이들의 유가족과 함께 회사를 상대로 투쟁에 나선다. 결코 현실에 안주하거나 굴복하는 태도와는 거리가 먼 결단이다. 하지만 조금 이상한 차이가 발견된다. 혜정과 수인은 남편을 잃었지만 농성장의 다른 유가족은 아직 어려 보이는 자녀를 잃었다.
 
농성대오는 두 부류로 구분된다. 회사 정규이던 남편을 둔 혜정과 수인+하청업체 소속 갓 20대로 보이는 다른 희생자들의 부모형제들이다. 수년간 유가족들은 회사의 무관심에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며 연대해왔지만 그들 사이에 내재해 있던 근본적 차이는 끝내 독버섯처럼 피어오르고야 만다. 투쟁이 특별히 풀리는 것 없이 이어지면서 해소할 길 없는 분노는 상호간의 의심과 불만으로 발화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정규직/비정규직, 원청/하청 간 균열이 득세하기에 이른다. 혜정이 어렵게 도움을 호소하는 유가족 대표에게 내뱉는 독한 말은 그들 사이에 묵을 대로 묵은 의구심의 단말마다.
 
우리가 그저 뉴스로 스쳐 지나곤 하는,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끊이지 않고 전국 방방곳곳 거리에서 목격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장기투쟁은 열이면 열 짜놓은 것 같은 진행과정을 보인다. 회사는 막무가내로 일체의 대화를 거부하고 '질긴 놈이 승리한다!'는 금언을 믿으며 억울한 이들은 회사에 최대한 불편을 끼쳐 요구를 획득하기 위해 싸운다. 하지만 회사가 호락호락할 리 없다. 누가 더 오래 버티느냐 지구력 싸움이 된 상황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해지는 건 노동자들이기 마련이다.

무한정 기약이라곤 없는 투쟁과정에서 '견결히 투쟁현장을 사수하는 소수' vs '힘겨움에 굴복해 이탈하는 다수'로 강철 같던 대오는 분리된다. 그리고 패배감과 상처 때문에 일단 한 번 분리되면 두 집단 사이 관계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혜정 vs 수인 뿐 아니라 혜정 vs 다른 유가족 집단 사이 갈등으로 복합적 면모를 띠는 묘사는 본격 노동영화를 표방하지 않는데도 본 작품의 노동문제에 대한 이해도가 평범한 차원을 한참 초월했음을 입증한다.
 
노동의 소외와 중산층 붕괴의 불안이 만난 거대한 비극
 
 영화 <드림팰리스> 스틸 이미지

영화 <드림팰리스> 스틸 이미지 ⓒ ㈜인디스토리

 
회사의 압도적 우위에 저항을 포기한 혜정과 뒤를 따라온 수인은 이제 그 대가로 얻어낸 한국사회 중산층의 상징, 신축 아파트 단지에서 과거를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꿈꾼다. 평범한 이들 중 누가 그들에게 함부로 돌을 던지랴. 하지만 인생역전이란 갈수록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누구나 꿈꾸지만 실현되긴 어려운 말 그대로 '꿈-몽상'이 되어간다. 이 영화 속에서도 의외는 아니다.
 
둘의 특별할 것 없는 욕망을 가로막는 건 '이웃'들이다. 그들 역시 흔히 영화나 드라마 속 배경으로 동원되는 재벌 3세나 졸부, 혹은 부패한 공권력 같은 멀리 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그저 서민, 혹은 높게 잡아도 퇴직 교사라는 입주민 대표 정도의 중산층에 불과하다. 길을 걷다 마주치는 수많은 평범한 시민들인 것이다. 그런 이웃들은 주택대출을 받거나 일가친척 여유자금을 탈탈 털어내 이 근사한 아파트단지에서 혜정처럼 자신들의 단란한 삶을 이어가길 원한다. 하지만 그들이 입주한 새 '집'은 이제 단지 주거 공간 기능으로만 한정되지 않게 된 상태다. 이미 '집'은 ① 사전적 의미, 즉 생활하고 휴식을 취하는 '주거'인 동시에 ② 서민들에겐 거의 유일한 보유자산으로 '이중목적'으로 간주된 지 오래다. 과거처럼 더 이상 우리는 얌전히 은행 예금이나 정기적금을 들지 않는다. 그 대신에 주식이다 펀드다 코인이다 위험을 수반한 일확천금을 꿈꾼다. 하지만 결국 평범한 한국인이 마지막에 회귀하는 건 '부동산'이다. '부동산 불패' 신화는 이제 신앙이 되어버렸다.
 
지표로 이런 기괴한 상황은 입증된 지 오래다. 오늘날 평범한 서민들의 보유자산 75%는 '달랑 집 한 채' 부동산에 묶여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세대가 산업화-민주화의 반세기를 거치면서 평생 성실히 일해 겨우 얻은 게 자가 한 채인 경우는 허다하다. 노후 대비건 자녀 돌봄이건 자기 집은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다. 정부와 언론, 은행은 2008년, 자칫하면 전 세계를 공황으로 몰아갈 뻔했던 미국 발 경제위기처럼 집을 장만하고 기왕 장만한 집을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하라고 21세기 내내 부추겨왔다. 하지만 작금 전세사기 대란처럼 정작 책임지는 이는 (영화 속 건설사와 대행사처럼) 어디에도 없다. 쏙 하고 숨어버린다.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그리고 분양과정에서 떼돈을 벌었을) 자들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건 결국 '이웃'들이다. 기존 입주자와 신규 입주자 간 무한대립과 증오가 드림팰리스 단지 입구에서 끓어 넘친다. 투쟁조끼와 머리띠를 일괄 착용한 채 서슬 퍼런 현수막과 피켓을 든 입주자 모임은 혜정이 그토록 떨치고 싶었을 농성장 모습과 판박이다(더 과격해 보이는 건 명확하게 입주민 투쟁이다). 그만큼 현재 한국사회에서 아파트 가치하락은 계급적 신분 추락의 공포로 소시민들에게 다가온다는 증명인 셈이다.

그들의 출구 없는 무한 분노는 (아파트 가치를 사수할 책임을 다하지 않은 채 뒤로 꽁꽁 숨은 무능한 건설사 대신) 덤핑 가격에 계약해 그들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신참들에게로 향한다. 대개 과격 투쟁과 '떼 법'으로 욕이란 욕 다 얻어먹지만 (정작 영화 속에선) 너무나 평화롭고 무해해 보이는 농성장 대신에 이 영화 속에서 극렬한 저항과 과격한 충돌이 벌어지는 투기장은 꿈의 궁전에 근사하게 조성된 입구다. 지독히 상징적이다.
 
21세기 한국의 음울한 초상을 형상화한 임상보고서
 
 영화 <드림팰리스> 스틸 이미지

영화 <드림팰리스> 스틸 이미지 ⓒ ㈜인디스토리

 
혜정과 수인은 이 이중의 사회적 대립 속에서 결속과 분리를 거듭한다. 노동자들의 농성투쟁에선 한편이었다 떨어졌다 (회사에 굴복하는 형태로) 다시 한편이 되는 결과를 맞이한다. 그렇게 당위적으론 너무나 정당한 투쟁임에도 무관심과 분열 속에서 집단의 '대의' 대신 개인의 안위를 택하고 만 둘이다. 하지만 그렇게 타협하더라도 행복의 파랑새는 쉽게 잡을 수 없다. 그들이 일종의 '신분세탁'을 위해 선택한 것은 주거공간의 분리다. 일종의 이민 혹은 망명이라 해도 좋을 법하다. 그러나 이들은 그 순간부터 자신들이 벗어나고자 했던 사회적 갈등에 노출되고 만다. (그 갈등구도와 대립과정은 쌍생아처럼 닮은꼴이다. 소외된 노동자들의 투쟁과 아파트 입주자들의 투쟁은 '생존권 사수'라는 측면에서 거의 동일하게 대칭을 이룬다)
 
결국 혜정과 수인은 (둘 중 누구도 원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전혀 예상치 못하게 적과 동지로 갈라서고 만다. 여기에서 분명히 이야기의 갈등을 촉발하는 존재는 혜정이다. 수인은 주로 혜정이 초래한 상황에 '반응'하는 대상에 가깝다. 하지만 혜정의 본래 의도는 대부분 선하다. 개별 선택에 대해 혜정을 비판할 순 있을지언정, 그를 함부로 손가락질할 순 없는 존재로 영화 속 혜정은 형상화된다. 그는 그저 아들 동욱, 의동생에 가까운 수인의 가족들, 교양 있고 친절한 새 이웃들과 함께 평범하고 소박하게 잘 살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한국사회 누구나 꿀 법한 그 작은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은 번번이 새로 솟아나는 거대한 벽에 막혀버린다.
 
물론 무수히 많은 독립영화들이 이 영화와 유사한 소재와 줄거리로 다양한 이야기를 선보인 바 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의 시도는 그저 절망적인 림보에 갇힌 채 헤어나지 못하는 군상을 전시하는 데 그쳐버린 게 엄연한 사실이다. 물론 <드림팰리스> 역시 온전히 사회적 해법이나 대안을 제시하는 작업은 아니다. 영화 한 편이 그런 마법을 발휘할 수도 없다. 오히려 지금 시대가 이 영화가 탄생하는 데 산파이자 모체 역할을 동시에 했다고 표현하는 게 더 현실에 가까울 테다. 하지만 <드림팰리스>는 그저 사회적 단면의 묘사로 만족하지 않고 개별의 갈등과 폭력이 어떻게 탄생하고 암울한 현상으로 치닫는지 총체적 풍경화를 그려내는 데 과감히 도전한다.
 
영화의 결말은 지독하게 현실 반영적이다. 흔히 학생독립영화가 처하는 유혹-사회적 비극을 극단화해 일종의 스펙터클을 위한 땔감으로 소비하는-과 <드림팰리스>의 결론은 비슷해 보이지만 한참 동떨어져 있다. 어찌 되었건 살아남은 자들에게 시간은 계속 이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주인공이 특별히 이기적이거나 악의를 품은 위선자가 결코 아닌데도, 그가 꿈꿨던 에덴동산은 실낙원으로 그칠 운명이다. 그렇게 두 시간 가깝게 보는 이의 심장을 철렁하게 들었다 놨다 하던 영화의 결말에서 보여주는 주인공의 미래는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영화는 관객에게 그 판단을 질문한다. 물론 외형상 극단적인 몰락과는 간격이 크긴 하지만 과연 혜정의 표정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판단은 온전히 관객의 몫이 될 테다.
 
<작품정보>
드림팰리스 DREAM PALACE
2022|한국|소셜 리얼리즘 드라마
2023. 5. 31. 개봉|112분|12세 관람가
각본/연출 가성문
주연 김선영(혜정 역), 이윤지(수인 역). 최민영(동욱 역)
출연 김용준(인모 역), 이대연(호섭 역), 류성록(정환 역), 오자훈(성민 역),
정서연(주희 역), 이주원(박형사 역), 안민영(선미 역), 김태희(반상회 총무 역)
특별출연 김태훈(용민 역)
우정출연 장 선(이사온 사람 역)
제공 KC벤쳐스㈜
제작 ㈜인디스토리
배급 ㈜인디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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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팰리스 가성문 감독 김선영 이윤지 최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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