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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가 말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그다음은 희극으로.

지난 6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출생통보제와 한창 논란의 중심에 있는 보호출산제 논쟁은 사실 12년 전 입양법 논쟁의 재판이다. 

2011년 8월 민주당 최영희 전 의원이 발의했던 입양특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시행은 일 년 뒤였다. 법 통과 직후부터 입양 가족을 중심으로 법 재개정 운동이 시작되었다. 시행도 되지 않은 법에 대한 재개정 요구였다. 그만큼 입양 현장에 있거나 겪어 본 사람들에게 어떤 절박한 문제가 예상되었다.

핵심은 입양특례법 조항 중 항목 하나였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제11조(가정법원의 허가) ① 제9조에서 정한 아동을 입양하려는 경우에는 다음 각 호의 서류를 갖추어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1. 양자가 될 아동의 출생신고 증빙 서류 
  
입양을 보내기 위해서는 출생 신고를 한 서류가 필요했고 당시 법은 생모의 출생 신고만 허용하고 있었다. 이는 생모가 직접 출생 신고를 해야지만 입양을 보낼 수 있다는 말이었다. 이 조항 하나가 일으킬 문제를 입양 현장을 잘 아는 사람들은 예상했다. 그들은 이를 보완하는 대책 마련 후 법 시행을 요구했다. 

법 조항 하나가 불러온 참사
 
지난 6일 서울시내 한 구청 출생신고 등 가족관계 등록 업무를 보는 창구.
 지난 6일 서울시내 한 구청 출생신고 등 가족관계 등록 업무를 보는 창구.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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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입양을 보내려는 사람들은 대체로 어떤 이유로든 평범하지 못한 환경에 처한 위기 임산부이기 때문에 출생 신고를 기피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이런 상황에서 강제 출생 신고제는 불법 입양을 포함한 낙태나 아동 유기의 증가로 이어질 거라 예상됐다. 극단적인 경우 영아 살해도 배제할 수 없었다.

여성운동 단체를 중심으로 당시 입법을 주도했던 세력은 법 시행 전 재개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들은 출생 신고를 피하기 위해 아동 유기나 영아 살해가 일어날 거라는 주장을 일방적 추측이라고 일축했다. 무엇보다 입양인의 알 권리 충족이 먼저라고 말했다.

그들은 오히려 출생 신고제가 없어 여성들이 쉽게 양육을 포기하고 아동 유기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불어 아동 유기와 영아 살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여성 지원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2년 8월 입양특례법이 시행되었다. 2011년 한 해 35명 발생했던 베이비박스 유기 아동이 8월 이후 법 시행 연도에만 79명으로 늘어나더니 다음 해인 2013년 252명, 2014년 253명에 이어 2018년까지 200명대를 기록했다. 법 시행 이후 아이와 함께 놓인 편지나 쪽지에는 대부분 출생 신고의 어려움 때문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에 대한 마땅한 체계를 갖추지 못했던 아동 보호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일시 보호 → 심사 → 보호조치 결정이라는 절차를 거치지 않고 유기 아동이 발생하는 즉시 신속하게 민간 시설로 보내버렸다. 아동에 대한 공적 부담을 덜어버리는 가장 편리한 방식이었다. 부모로부터 유기된 아동을 국가는 다시 민간에 유기했다.

강제 출생 신고제의 부작용을 우려했던 측에서는 갑자기 폭증한 통계가 유기 아동이 늘어난 증거라고 했다. 입법을 주도했던 측에서는 법 시행 이후 전체 유기 아동 수는 큰 변동이 없다며 출생 신고를 피하려고 임산부들이 소문난(?) 베이비박스로 몰리는 풍선 효과일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강제 출생 신고제의 부작용을 우려했던 측은 2012년 법 시행 연도에 48만 4천여 명이었던 출생아 수가 2018년 32만 명대로 16만여 명이나 줄어든 현실을 감안할 때 유기 아동 수의 연도별 총계가 아닌 출생아 대비 유기 아동 수의 비율이 실질적인 유기 아동 변동의 의미있는 지표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2012년에서 2018년까지 출생아 만 명 당 유기 아동 비율은 4.8명에서 9.8명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나 있었다. 이 통계는 사실상 출생신고제가 아동 유기 증가의 비중있는 원인이었음을 보여주었다. 

현장에서는 더 많은 우려가 감지되고 있었다. 불법 입양 브로커가 출생 신고가 어려운 임산부에게 접근하여 아이가 필요하지만 자격 요건이 안 되는 가정에 아이를 팔아 넘긴 사건이 하나 둘 적발됐다. 매우 은밀하게 활동하는 그들의 습성상 적발되지 않은 사건이 훨씬 더 많다는 건 누구나 쉽게 예상했다.

한편 법 시행 이후 입양 대상 아동 수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이에 대해 입법 주도 세력은 출생 신고제로 인한 양육 증가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정말 그렇다면 환영할 일이었다. 하지만 입양 현장에서는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갑자기 사라질 수 없다며 불길한 징조를 우려했다.

베이비박스 통계는 그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었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의 '가정 상황 분포'를 보면 외도·강간·근친·불법체류·난민 등 출생 신고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비율이 18.6%를 차지하고 있었다.
베이비박스 아동 가정 상황 및 병원 외 출산
 베이비박스 아동 가정 상황 및 병원 외 출산
ⓒ 베이비박스 주사랑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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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박스 상담 대응 유형 사례
 베이비박스 상담 대응 유형 사례
ⓒ 베이비박스 주사랑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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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출생신고제는 출생 신고를 못 하거나 하고 싶지 않은 이 아이들의 부모에게 다른 선택의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더군다나 평범할 수 없는 처지의 위기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법 시행 이후 베이비박스를 포함한 그들의 또 다른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입양특례법 내 강제 출생신고제라는 큰 문 옆에 작은 쪽문 하나 달아주기를 바랐던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우려는 최근 감사원 감사 결과를 통해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출생 신고 되지 않은 아이의 죽음

2023년 6월 21일 수원시의 한 아파트 냉장고에서 영아 시신 2구가 발견되었다. 출산 기록은 있는데 출생 신고되지 않은 이른바 '유령 아동' 사건의 시작이었다. 감사원의 보건복지부 감사 도중 발견된 이 사건으로 2015년부터 2022년 사이 2123명의 유령 아동 전수조사가 시작되었다.

조사 진행 중 속속 참혹한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7월 19일 현재 사망이 확인된 아동이 249명이었다. 이 중 경찰 조사로 확인된 살해 사건이 34건이다. 어떤 아이는 제 부모 손에 야산에 산 채로 묻히고, 어떤 아이는 종량제 봉투 안에 묶였다. 어떤 아이는 에어컨 실외기 밑에서 발견됐다. 

그나마 2123명 중 베이비박스에 와서 시설이나 입양으로 보호 조치 된 것으로 확인된 601명 아이들은 차라리 다행이었다. 베이비박스를 통해 공적 보호 체계에 안전하게 편입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2년 전 입양 특례법을 주도했던 이들은 통과된 입양법의 한 줄 내용이 불러올 문제점을 외면했다. 입양 현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경험자와 전문가의 말을 무시했다. 오로지 입양인의 알 권리와 여성 지원 정책 강화만을 앞세웠다.

그들은 법 시행 이후 직접 목격한 베이비박스 현상과 아동 유기와 영아 살해 사건을 입양 특례법과 무관하다 했다. 결과는 말도 못 하고 우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아이들의 참혹한 희생으로 드러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출생 통보제로 인해 병원에서 태어난 모든 아이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지방자치단체로 그 사실이 통보되어 출생 등록을 보장받는다. 이는 현행 입양특례법 제11조 1항 강제 출생신고제와 그 궤를 같이한다. 조금 다르다면 입양 아동만이 아닌 병원에서 태어난 모든 아동의 알 권리 보장이라는 확장된 버전이다. 

앞서 통계로 보여준 것처럼 근친, 성폭행, 외도자와 불법체류 외국인 등의 출산을 막을 길은 없다. 법과 제도가 아무리 훌륭해도 근원적 해결이 어려운 사연들이다. 이들은 배제한다고 배제되지 않는다. 그 배제되지 않는 사연들 속에 아이들의 생명이 살아 꿈틀거리고 있다. 이 아이들에게 알 권리 이전에 먼저 보장되어야 할 권리는 바로 살아날 권리 즉, 생명권이다.

법과 제도가 보편적 정의에만 문을 열어 놓으면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 지금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어린 생명들의 주검으로 목도하는 중이다. 출생 통보제는 출생 신고를 회피하려는 위기 임산부들에게 병원 밖 출산을 강요하는 꼴이 된다. 이로써 발생하는 더 큰 문제는 임산부들 뱃속 태아와 위기 환경에서 태어난 어린 생명들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2015년 3월에 태어난 영아를 출생 신고도 없이 살해한 40대 친부와 60대 외할머니가 6일 살인 혐의로 긴급체포됐다. 이들은 친모 모르게 아이를 살해한 뒤 시신을 인근 야산에 유기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이들이 진술한 장소를 중심으로 영아 시신을 찾기 위한 수색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이날 오후 유기 추정 지점을 수색 중인 경찰들. 2023.7.6
 2015년 3월에 태어난 영아를 출생 신고도 없이 살해한 40대 친부와 60대 외할머니가 6일 살인 혐의로 긴급체포됐다. 이들은 친모 모르게 아이를 살해한 뒤 시신을 인근 야산에 유기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이들이 진술한 장소를 중심으로 영아 시신을 찾기 위한 수색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이날 오후 유기 추정 지점을 수색 중인 경찰들. 202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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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대한민국 제 5-6차 국가보고서에 대한 아동권리위원회의 견해' 문서 'C. 시민권과 자유(협약 7, 8, 13-17조)' '정체성에 대한 권리'에서 다음과 같이 명시했다.
 
23. 위원회는 종교 단체가 운영하면서 익명으로 아동 유기를 허용하는 '베이비박스'를 금지하고, 병원에서 익명으로 출산할 가능성을 허용하는 제도의 도입을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할 것을 당사국에 촉구한다.

즉, 익명 유기를 허용하는 베이비박스를 금지하되 익명 출산을 허용하는 제도를 최후의 수단으로 도입할 것을 권고했다. 보편적 알 권리와 '최후의 수단'으로 생명권의 보장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함을 명시한 것이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권고한 익명 출산을 허용하는 제도는 2020년 12월 국민의힘 김미애 국회의원의 보호출산에 관한 특별법안(이후 보호출산법)으로 발의되어 있다. 김 의원은 2011년 미혼으로 딸을 입양한 입양모다.

김 의원의 보호출산법은 생모와 아이의 출생 정보를 완전하게 밀봉하는 프랑스식 비밀 출산제를 채택하지 않고 익명 출산을 보장하되 아동이 성인이 될 경우 비식별정보 즉, 주민등록번호와 주소 등을 제외한 모든 출생 정보의 열람을 허용하는 독일식 신뢰 출산제에 기반한다.

더불어 완전히 개방된 정보를 원할 경우 당사자 동의 원칙에 따른 결정과 특별한 사유가 있을 경우 법원 판단에 따른 강제 공개까지도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개인 정보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의 알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강력한 반대에 막혀버렸다. 반대 측은 보호출산제가 아동 유기를 조장하는 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입양이라는 제도가 있어 여성들이 양육을 쉽게 포기하고 베이비박스가 아동 유기를 조장한다고 말한다. 원가정 양육이 아닌 다른 모든 제도와 정책과 문화를 절멸시키면 모든 여성이 저절로 자기 아이를 키우게 될 거라는 산뜻하지만 매우 폭력적인 원가정 이데올로기다.

보호출산제는 어떤 이유로든 위기에 처한 임산부들이 아이와 살기 위해 절박한 마음으로 찾게되는 마지막 탈출구다. 아프기 때문에 병원에 가는 것이지 병원이 있어서 아픈 게 아니다.

12년 전 입양특례법의 강제 출생신고제를 보완하는 입법이 병행되었다면 최근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끔찍한 참상 중 상당 부분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최근 통과된 출생 통보제를 보완하는 보호 출산제가 병행되지 않는다면 몇 년 뒤 우리는 다시 망연자실한 채 어린 생명들의 주검을 보아야 할지 모른다. 문재인 정부의 보건복지부와 윤석열 정부의 보건복지부가 일관되게 두 제도의 병행 입법을 국회에 요구하는 이유다. 출생 통보제의 시행은 일 년 뒤다. 아직 늦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김지영 기자는 전국입양가족연대 사무국장이자 김미애 의원실 아동보호정책 전문 입법보조원으로 있습니다.


태그:#보호출산제, #출생통보제, #입양특례법, #유령아동, #위기임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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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유목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을 거쳤다가 서울에 다시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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