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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채수근 상병의 안장식이 7월 22일 오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거행되는 가운데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이 추모하고 있다.
 고 채수근 상병의 안장식이 7월 22일 오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거행되는 가운데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이 추모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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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경북 지역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 과정에서 급류에 휘말려 순직한 고 채 상병이 숨지기 하루 전, 임성근 해병1사단장이 회의를 주재하면서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가리키며 '가슴장화'를 언급한 사실이 드러났다. '가슴장화' 언급이 중요한 이유는 사실상 장병들이 물에 들어가는 것을 허용했거나 최소한 이를 알고도 방조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관련기사: 사건의 재구성, 해병1사단장은 그날 무슨 명령 내렸나 https://omn.kr/25sbw). 

7월 18일 임 사단장, 가슴께 손짓하며 "무슨 장화라고 그러지?" 질문

<오마이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당초 임 사단장을 포함한 8명에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경찰로 넘겼던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자료에는 임 사단장이 7월 18일 오후 4시께 VTC(화상회의)를 주재하면서 자신의 가슴께를 손짓으로 가리키며 "뭐, 그건 무슨 장화라고 그러지?"라고 물어봤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 회의 참석자는 사단장이 언급한 장화를 멜빵 형식으로 가슴 부위까지 일체형으로 만들어진 '가슴장화'로 이해했다고 한다.

이날 회의는 구명조끼도 없이 내성천으로 투입됐던 채 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숨진 채 발견되기 바로 전날 열렸다.

그러나 임 사단장은 해병대 수사단 조사에서 "(자신은) 물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음에도 물에 들어가라고 지시한 간부의 작전 개념이나 상황 인식이 문제였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 사단장은 7월 18일 해병대원들이 예천군 감천면 벌방교회 앞 하천으로 들어가 탐침봉으로 바닥을 찔러가며 수색 작전을 벌이고 있는 장면을 찍은 사진도 고 채 상병 영결식(7월 22일)이 끝나고 보고 받은 뒤에야 알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변일대 수색 겁납니다"... 위험한 현장 상황

국방부 조사본부가 혐의를 적시해 민간경찰로 넘긴 2명은 '장화 높이까지만 입수 가능하다'는 7여단장 지침을 위반해 사고 당일 '허리까지 입수'를 지시한 포7대대장과 포11대대장 등 대대장 2명이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이들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고 보고, 범죄명과 혐의사실 등 인지통보서를 작성해 지난 8월 24일 경북경찰청으로 이첩했다.

하지만 포7대대장의 변호를 맡은 김경호 변호사는 변호인 의견서를 통해 "'강물에 들어가서 수색작전을 하라'는 사단장 지시가 있었고, 이에 대대장은 물살이 빠른 강물 사진을 찍어 여단 단체방에 올려 '안전장구 없이 수변 지역 밑으로 물에 들어가면 안 된다'며 위험을 사전에 알렸다고 말했다"라고 반박했다.  
 
7월 18일 포7대대장과 포11대대장이 올린 카톡 내용
 7월 18일 포7대대장과 포11대대장이 올린 카톡 내용
ⓒ 김경호 변호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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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변호사가 공개한 카카오톡 채팅방에는 7월 18일 오전 포7대대장이 선임인 포11대대장에게 "수변일대 수색이 겁납니다. 물이 아직 깊습니다. 사진 보내드려 보겠습니다"라는 글을 보내 당시 포7대대장이 안전장비 없는 맨몸으로 수변을 수색하는 위험성을 인지하고 이 사실을 전파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포11대대장도 "이거 정찰을 어떻게 할지... 도로 정찰해야 할지 완전 늪지대처럼이라 하루 1km도 힘들겠다"고 수색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포11대대장은 이후에도 "내일은 사령관님도 오신다는데. 신속 대응이 아니라 슈트 입은 IBS(고무보트) 대대들이 와야 할 듯"이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수색 첫날부터 현장 지휘관들 "'가슴장화' '로프' 필요하다"
 
7월 18일 오전 경북 예천군 예천읍 고평리 하천변에서 해병대 신속기동부대 장병들이 집중 호우로 실종된 실종자를 찾기 위해 탐색작전을 펼치고 있다.
 7월 18일 오전 경북 예천군 예천읍 고평리 하천변에서 해병대 신속기동부대 장병들이 집중 호우로 실종된 실종자를 찾기 위해 탐색작전을 펼치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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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8일 아침부터 수색 현장에 투입된 포병 간부들 사이에 '가슴장화' 언급이 오갔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오전 6시 23분 한 대대장이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가슴장화랑 로프 지원 가능합니까??"라고 묻는다. 3분 후 다른 간부가 "가슴장화는 제한되고 로프는 50m 10개 정도 가능합니다"라고 답변했다. 이어 7시 2분 처음 '가슴장화와 로프 지원 가능하느냐'고 물었던 대대장은 "수변 정찰하려면 가슴장화와 로프 필요하며, 상급 지휘관과 지침이 상충되면 지침 받고 조치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다시 글을 올렸다.

간부들의 카톡 대화 내용으로 미루어 보면 당시 수변 지역 수색을 진행하기 위해선 가슴장화와 로프가 필요할 정도로 현장 상황이 열악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또 '상급 지휘관 지침과 상충되면 지침 받고 조치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언급은 위에서 내려온 지침과 현장에서 맞닥뜨린 상황이 전혀 달랐다는 정황을 시사한다.

7월 18일 오전 채 상병이 소속된 포7대대는 A와 B, 두 개조로 나누어 수변 지역을 수색하다 물웅덩이를 만나자 대대장이 철수 명령을 내려 도로 정찰로 임무를 변경했다. 오후에도 비가 세차게 내리자 포7대대는 수변 지역 수색을 포기하고 하천을 따라 천변을 걸으면서 토사나 나무에 걸려있거나, 하천에 떠내려가는 물체를 확인하는 방식의 도보 수색만 진행했다. 당초 도로나 둑길을 따라 움직이는 도보 수색은 지상에서 하는 수색이기 때문에 구명조끼 등 안전장구가 지급되지 않았고, 수상 수색과 관련 없는 포병들이 동원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날 임성근 사단장이 포3대대 수색 현장을 방문해 작전 지도를 하면서 포병이 비효율적으로 수색하고 있다고 질책한 후 사정은 급변한 것으로 보인다. 포병이 일렬로 서서 도로나 둑길 위를 걸으며 육안으로 수색하는 것을 본 임 사단장이 이후 회의에서 '아래로 내려가서 바둑판식으로 찔러보며 수색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당시 지형 정찰을 마친 후 대원들을 투입하려 했던 한 중대장은 임 사단장으로부터 '왜 투입을 하지 않느냐'고 야단을 맞았다고 한다. 

임 사단장은 당일 '가슴장화'를 언급한 화상회의에서도 '위에서 보는 것은 수색 정찰이 아니다' '내려가서 수풀을 헤치고 찔러보면서 찾아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면서 임 사단장은 "그런 방법으로 71대대가 찾은 거 아니냐"면서 해병대 7여단 71대대가 발견한 여성 실종자 사례를 언급했다.

7월 18일 오전 10시 27분께 해병대가 발견한 실종자는 소대장을 선두로 일렬종대 대형으로 도보 수색을 진행하던 장병들이 나무 앞에 실종자가 있는 것을 발견한 것으로 사단장이 설명하듯 '수풀을 헤치고 일일이 찔러 보면서 찾은 사례'는 아니었다 (관련기사 : [단독] 해병대 사단장 고무시켰던 그 기사, 사실과 달랐다 https://omn.kr/25ouz). 

전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의 법률대리인 김정민 변호사는 "물이 사방에 범람한 상황에서 하천 본류와 수변 지역을 어떻게 명확하게 구별할 수 있었겠느냐"면서 "안전 장비가 전혀 갖춰지지 않았고, 돌발 상황에 대비한 구조 장비조차 전무한 상황이라면 지휘관은 '절대로 물에 들어가선 안 된다. 수변 지역도 위험하니 마찬가지다'란 명확한 지침을 하달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그런데 오히려 사단장은 '바둑판식으로 수색하라' '찔러가며 정성껏 수색하라'는 모호한 지시를 내려 현장의 혼란만 가중시켰다"고 비판했다.  

"'바둑판식 수색' 하기 위해선 수중탐색 이루어질 수밖에"

실제로 포병대대장 중 한 명은 해병대 수사단 조사에서 "'바둑판식 수색'을 하기 위해선 수중탐색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해 (7월 18일) 오전에 요청했던 가슴장화와 로프의 필요성을 다시 제기했다"고 진술했다. 임 사단장이 회의에서 손짓으로 '가슴장화'를 언급했다고 기억한 간부도 "사단장이 물에 들어가라는 말은 없었지만 '밑에 내려가라' '가슴장화'를 언급한 것을 미루어 보면 물에 들어가라는 지시로 충분히 해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털어놓았다.

당초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이 임 사단장 등 8명에게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국방부 장관에게 결재를 받은 보고서는 임 사단장의 과실치사 혐의 중 하나로 "작전지도 간 외적 자세 등에 대해 지적만 하며 구명의 및 안전로프 구비 등 안전대책에 관한 세부 지침을 하달하지 않았다"고 적시했다.

한편 국방부 조사본부는 해병대 수사단이 이미 확보한 진술 내용을 재검토하고도 임 사단장의 혐의를 특정하지 않고 경찰로 사건을 넘긴 상태다. 

태그:#채 상병, #임성근 사단장, #가슴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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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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