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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보건에 대해 높아진 사회적 관심은 관련 대중 서적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로도 확인된다. 개인적 고백이지만 그런 책들의 발간 소식을 들으면 일찌감치 주문하고 서가에 꽂아두긴 하되 바로 펼쳐 읽진 않는다. 일터의 현실은 늘 문제로 넘쳐나고 들여다 보아야 할 것들투성이다. 이슈가 터져 나오는 이곳저곳에 불려 다니며 '현안'을 좇아 이야기하기에 바쁘다. 게으름에 대한 변명이다.

산재 사례들을 소재로 한 책도 읽어내기가 힘들다. 원인 규명은 한 걸음 나가기도 쉽지 않고, 결국 드러나는 죽음의 원인은 어이없고 허망하다. 책임 소재를 속 시원히 가리고 마땅한 처벌을 받게 만드는 일도, 재발 방지 대책 마련도 더디기만 한 현실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그런 사례들이 책으로 묶여 나온다. 분명 성실한 취재로 담았을 사건들의 연원, 생생하게 그려냈을 재해 노동자의 가슴 저미는 사연, 황망함 속 덩그러니 남겨진 이들의 응어리진 한과 슬픔을 다시 대면하는 일은 편치 않다. 현실에서 경험했던 무기력과 피로감, 감정 소진을 책으로 재경험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 역시 게으름에 대한 변명일 수도 있고, 이를 변명 삼은 심리적 회피일 수도 있다.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는 사회적 참사와 재난, 안전한 권리 등을 주제로 현장을 취재해 왔고 <한겨레> 노동 분야 담당으로 일터의 재해에 관심을 기울여 왔던 신다은 기자의 책이다. 저자가 각별한 문구까지 적어서 보내온 이 책도 펼쳐 볼 기력이 당최 생기지 않았었다. 문자 한 줄 보내지 못했고 흔히 하듯 SNS에 간단한 감사와 소개의 글조차 올리지 못한 와중에 <일터>에서 온 서평 작성 요청까지 거절하기는 어려웠다.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신다은 지음, 2023, 한겨레출판.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신다은 지음, 2023, 한겨레출판.
ⓒ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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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힘' 속에 담긴, 지난했던 서사의 재구성

이 책은 산재 사례에서 출발하여 노동안전보건 전반의 구조적 문제로 확장된다. 단단한 기록의 힘을 경험할 수 있다. 기록의 단단함은 충실한 현장 취재와 집요한 탐구에서 비롯된다. 저자의 글쓰기는 안전·보건 분야의 기술적인 문구나 사안들에 익숙하지 못한 독자들에게도 구체적 사례들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구조적 원인까지 차근차근 접근해 갈 수 있도록 하는 친절한 방식을 택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시간과 신체적, 정서적 에너지를 쏟아 넣었을지 짐작이 간다.

책의 부제이기도 한 '일터의 죽음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드는 법'은 만만치 않다. 일터의 죽음을 마주하는 일부터 쉽지 않다. 저자는 노동자들의 처절한 죽음의 현장을 상상해 내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했을 것이다. 당시의 상황을 다시 그려보기 위해 여기저기 흩어진 기록을 찾아 모으고, 중대재해의 처참한 현장을 목도한 이들의 증언을 들으며 트라우마를 간접 경험해야 했을 것이다.

자식과 아버지와 동료들이 일터에서 죽음을 맞이한 이유를 알기 위해서, 혹은 그 이유를 알리고 책임을 물으려 동분서주했던 이들의 좌절과 통렬한 슬픔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들을 '충실한 현장 취재'라는 건조한 표현으론 다 담지 못할 것이다.

저자는 ㈜동방 평택항 협력업체 노동자 이선호,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협력업체 한국발전기술 김용균, SPC 하청 제빵공장 SPL 청년 노동자, 서울메트로 하청 은성PSD 김군,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하청노동자, 쌍용씨앤비 제지공장 화물차 기사 장창우, 휴대폰 부품공장에서 실명한 청년노동자들, 폐기물처리업체 조선우드 김재순, 경동건설 정순규,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정범식 등의 사례들을 마주하고 재구성한다.

각 사례는 개별적으로 발생하지만, 반복되는 재해는 구조적으로 얽혀 있다. 일터의 죽음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드는 법은 구조적 원인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취재한 사례들의 구조적 원인의 유형을 ① 회사가 세워 둔 안전 수칙이 효율적 업무방식과 충돌할 때 ② 위험에 관한 기업 간 소통이 부족할 때 ③ 안전에 투자할 돈과 시간이 부족할 때 ④ 안전에 관한 설명이 부족할 때 ⑤ 안전에 대한 역량이 부족할 때로 나눠 분석한다.

저자도 토로하듯 사고의 원인을 설명하거나 조사하는 보고 서류의 기록들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기술적 용어로 점철된 경우가 많다. 용어뿐 아니라 다양한 일터의 구체적 작업방식이나 현장의 업무 관행들을 이해해야 재해의 직간접 원인에 다가갈 수 있다. 게다가 산업안전보건법 등 관련 법과 안전보건 감독 행정, 사법적 관행까지 속속들이 이해하고 난 연후의 글쓰기라야 독자들이 다가가기 쉬워진다. 저자는 이러한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왔을 것이며 그래서 쉽게 읽힌다는 것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저자는 자신의 언어로, 때로는 유가족과 동료들의 격렬한 토로가 담긴 언어를 빌어 일터의 죽음을 찬찬히 재구성하고, 집요하고도 지난한 학습과 탐구의 과정을 거쳐 사회적 기억으로 만들어 나간다. '산재가 왜 계속 일어나는 겁니까?' 누가 묻는다면 앞으로는 이 책을 내밀겠다는 추천사에 동의하게 된다. '산재는 서사의 싸움이다'라고 말하며 스스로 이 서사를 위해 고군분투했을 저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름 없는 죽음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저자는 '사고의 구조적 원인을 알고 싶다는 갈증을 구체적인 기록물로 남긴 첫 시도'로 서 <현대재해중공업 중대재해 사고 백서-1>을 언급하고 백서를 만드는 과정이 "뒤늦은 부고장 쓰는 일"과 같았다는 전주희 연구원의 표현을 인용한다. 그리고 책의 에필로그는 '이름 없는 죽음들을 추모하기 위하여'로 시작한다. 추모의 기본은 기억하고 환기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망자의 한을 다 풀어내지 못했다고 여긴 이들은 '씻김굿'을 하고 '오구굿'을 한다. 한풀이는 산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일터의 위험이 죽음에 이르고 나서야 드러나고, 죽음에 이르러서도 사회적 관심을 받기 전까지는 한치의 진전도 없었던 경험을 가진 이들에게 신다은의 책은 반듯하게 정돈된 해원(解寃)의 출발과도 같다. 저자는 "산재조사란 사실 노동자가 일터에서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마음 다해 찾는 일이다. 죽은 이를 추모하는 부고장인 동시에 또 다른 죽음을 막겠다는 산 자의 다짐이다"라고 말한다. '일터의 죽음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드는 법'은 추모를 통한 기억과 환기의 작용이 책임이 있는 자들에게 성찰을 가져오고 사회적으로는 비극의 재발을 막도록 체질의 개선을 불러오는 것까지 닿아야만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류현철 님은 한노보연 회원이고 직업환경의학전문의입니다. 이 기사는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24년 1월호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태그:#2명이퇴근하지못했다, #하루2명산재사고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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