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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큰어머니 장계향은 도움을 받는 이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마음까지 살피며 나눔과 사랑으로 세상을 치유하였습니다.
 조선의 큰어머니 장계향은 도움을 받는 이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마음까지 살피며 나눔과 사랑으로 세상을 치유하였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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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돌에는 별다른 가치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뒹굴던 돌들 중에서 보석으로 판단되는 원석이 발견되면 가치가 달라집니다. 보석은 종류와 품질에 따라 나름대로의 가치를 갖게 되지만 같은 보석이라고 해도 어떻게 가공되고 어떤 장식으로 세팅되느냐에 따라 상대적 가치와 선호도는 달라집니다.

세상의 모든 부자가 다 존경 받는 받는 건 아닙니다. 많이 배웠다고 해서 다 지혜롭고 겸손한 것도 아니고, 부자라고 해서 다 가난한 사람과 나누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재해가 발생하거나 연말이 되면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은 거액의 기부금을 내며 동참합니다. '사회 환원'이라는 명분으로 천문학적인 재산을 내놓겠다는 약속도 합니다.

당연히 칭송받고 존경받아야할 일이지만 대개의 경우는 그렇지 못합니다. 좋은 일을 하고도 칭송받지 못하거나 존경받지 못하는 건 그들이 하는 나눔이 순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비판을 누그러트리려는 술수이거나 사법적 판단을 회피하려는 꼼수가 너무도 뻔한 선행(?)이기에 그럴 겁니다.

여기 뒤늦게 발견 된 원석처럼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살아서의 삶이 조명되며 존숭 받는 여인, 나눔과 사랑으로 가난한 이웃들을 치유하던 여인이 있습니다. 짧고 두루뭉술하게 표현하자면 총명하고 효성이 지극한 사람, 가난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인정 많은 여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표현하기엔 턱 없이 모자라는 삶을 산 여인이 장계향입니다.

나눔과 사랑으로 조선시대를 치유하던 여인의 삶 <장계향 조선의 큰어머니>

<장계향 조선의 큰어머니>┃지은이 정동주┃펴낸곳 (주)도서출판 한길사┃2013.06.30┃2만 3000원
 <장계향 조선의 큰어머니>┃지은이 정동주┃펴낸곳 (주)도서출판 한길사┃2013.06.30┃2만 3000원
ⓒ (주)도서출판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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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주가 지은 <장계향 조선의 큰어머니>는 조선시대에 살던 한 여인, 가난한 사람들과는 나누고 상처받은 이웃들은 사랑으로 보듬던 장계향의 일생을 그려낸 내용입니다.

경상도 여러 재력가 중에서 빈민구제에 열정을 바쳐온 가문은 적지 않다. 그러나 그 헌신을 자랑하지 않은 집안은 재령이씨 운악가뿐이다. 그래서 빈민구제의 숨은 보살인 운악의 셋째 며느리 장계향의 선행은 우리 시대에 와서야 뒤늦게 알려졌다. -<장계향 조선의 큰어머니> 483쪽

장계향은 임진왜란이 끝나던 1598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성리학자인 경당 장흥효의 딸로 태어납니다. 5살 때부터 아버지가 글 읽는 소리를 듣고 흉내내고, 12살에는 소학을 모두 외울 만큼 총명한 아이입니다. 19살에는 상처한 홀아비, 전처 자식이 둘이나 있는 이시명을 사위로 삼고 싶어 하는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이시명과 혼례를 올립니다.

만석꾼 부자인 이함, 운악의 며느리가 된 장계향은 전처 자식인 상일을 날씨가 추운 날에는 업고 마을 훈장에게 데려가 공부를 시킬 만큼 정성을 다해 키웁니다. 장계향은 어머니 자리를 물려받은 계모로서 뿐만이 아니라 시부모 공양에는 효성 지극한 며느리, 남편에게는 내조 잘하는 아내로 살아갑니다. 

부잣집 며느리가 된 장계향은 책을 보면서 익힌 나눔과 사랑을 실천합니다. 장계향이 노비의 처소까지 직접 찾아가며 실천한 나눔과 사랑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라 할 만큼 적극적이었고 헌신적이었습니다. 장계향은 나눔을 실천하는 데 신분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반상이 엄격한 시대였지만 병들고 늙은 노비의 몸을 손수 씻겨주기를 기꺼이 솔선하였습니다.

장계향이 나누는 것은 부잣집 곡간에 쌓인 부와 쌀만이 아니라 가슴으로 우려내고 사랑으로 키워야만 거둘 수 있는 측은지심이었습니다. 기근을 예상해 도토리 죽을 끓이고 칡뿌리를 준비하는 지혜도 한 몫을 하였습니다. 헐벗고 추위에 떠는 이들은 길쌈으로 감싸고, 병들고 지친사람들은 극진한 간병으로 돌봤습니다. 

장계향이 달래 준 배고픔, 장계향이 실천한 긍휼이 진정 위대한 것은 가진 자라고 해서 거만하지 않고, 베푸는 자라고 해서 기세등등해 하지 않았던 겸손함과 진심에서 우러나는 사랑이었습니다. 부잣집 며느리라고 떵떵거리지 않고 도리어 재물이 고르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던 마음이야 말로 가슴 절절한 자비심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비록 생존의 위협 때문에 충효당에 와서 구원의 손길을 내밀고 있지만, 그들 안에 들어 있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까지 능멸 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도록 해주고 싶었다. 도와주는 사람도 도움 받는 사람도 서로 인간의 존엄성까지 짓밟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장계향이 생각해낸 것은 노비들이 음식이나 곡식을 빈민들에게 나눠줄 때 반드시 두 손으로 건네고 편안한 표정으로 인사하도록 하였다. 죽 그릇을 한 손으로 건네면서 엄지손가락을 그릇 안쪽에다 밀어 넣은 채 집어던지듯 하는 버릇을 고쳐보겠다는 생각이었다. 고함을 지르고 반말투에다 박대하는 행동을 고쳐야 한다. 자신들이 권력이라도 행사하듯 하고, 빈민들을 아무렇게나 해도 괜찮다고 여겨온 버릇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장계향 조선의 큰어머니> 340쪽-

한 여인으로만 보는 장계향의 일생은 결코 평탄하지 않습니다. 처녀의 몸으로 아이가 둘이나 딸린 홀아비와 결혼을 하는 것도 그렇고, 자신보다 3살이나 어린 여자를 계모로 모셔야하는 운명이 그랬습니다. 하지만 장계향이 꾸렸던 운명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피동적 운명이 아니라 시대를 거스를 만큼 적극적으로 개척한 스스로의 삶이며 인생입니다.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자신보다 3살이나 어린 여자를 아버지와 혼인시키고, 계모에게 살림을 가르치는 모습이야 말로 시대를 초월하는 효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눔 그대로의 나눔, 사랑 그대로의 사랑

지금도 그렇고 조선시대에도 베푸는 재력가들은 있었습니다. 그러함에도 장계향의 나눔과 사랑이 수백 년이 흐른 지금에 다시 평가 받을 수 있는 건 장계향이 실천한 나눔과 사랑이야 말로 나눔 그대로의 나눔이며 사랑 그대로의 사랑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부자로서 체면을 유지하기 위한 나눔, 가진 자로서 거들먹거리며 베푸는 시혜적 사랑이었다면 주고도 욕먹고, 약속하고도 비아냥 대상이 되는 작금의 몇몇 대기업 사주들과 다를 게 없었을 겁니다. 불쌍한 사람이 찾아오면 이해타산 가리지 않고 그냥 도와주는 마음, 얻어먹는 이의 마음까지도 헤아리는 겸손한 사랑이었기에 저절로 드러나는 진실처럼 서서히 밝혀지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장계향은 추위에 떨 사람들을 보듬기 위해 김쌈으로 옷감을 준비하는 것도 빠트리지 않았습니다.
 장계향은 추위에 떨 사람들을 보듬기 위해 김쌈으로 옷감을 준비하는 것도 빠트리지 않았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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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없이 총명하고 효성이 지극한 딸, 10남매를 훌륭히 키워 아들 7형제가 칠현자(七賢者)라는 칭송을 받을 만큼 현모양처였던 장계향이 시대적 가치를 지닌 원석으로 드러난 건 채 30여년 밖에 되지 않은 듯합니다.

삼종지도와 여필종부가 사회적 가치였던 시대에 장계향이 나눌 수 있고 베풀 수 있었던 건 나눌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준 시아버지 운악이 있었고, 베풀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준 남편 이시명의 역할 또한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역사에 권력자의 의도가 스며있듯이 기록에도 기록자의 의도가 스며있게 마련입니다. 지나친 화려함은 자칫 천박해 보일 수 있습니다. 보석만 그런 게 아니라 한 사람의 일생을 그리는 글도 그렇습니다. 총명하고 효성이 지극한 사람, 가난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인정 많은 여인이라고만 표현하기엔 턱 없이 모자라는 삶을 산 장계향 일지언정 주변 이야기가 너무 광범위하게 설명되고 있어 찍어야 할 방점이 흐려지는 듯한 느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주렁주렁한 장신구처럼 두르고 있는 여타의 글들과 함께하는 장계향보다 소박한 꾸밈에 민낯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장계향을 볼 수 있었다면 훨씬 더 담백한 감동, 장계향을 존숭하는 마음을 좀 더 오롯하게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갖게 됩니다.

덧붙이는 글 | <장계향 조선의 큰어머니>┃지은이 정동주┃펴낸곳 (주)도서출판 한길사┃2013.06.30┃2만 3000원



장계향 조선의 큰어머니 - 나눔과 사랑으로 세상을 치유하다

정동주 지음, 한길사(2013)


태그:#장계향 조선의 큰어머니, #정동주, #한길사, #운악, #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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