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마이클 조던으로 가장했다!" - 래리버드 (보스턴)

"만약 신이 인간 복제를 이 지구상에서 단 한 명만 허락한다면 난 주저 않고 조던을 추천할 겁니다! 개인적으로 동시대에 조던과 함께 살고 있는 우리가 참으로 축복 받은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당신은 이제 코트를 떠나지만, 우리는 영원히 당신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 할겁니다. 조던! 당신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 ID kchs57

"인생에는 피할 수 없는 것이 3가지 있다. 죽음, 세금, 그리고 마이클 조던이다."
- 시카고 트리뷴지


ⓒ 조던팬사이트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40·워싱턴 위저즈)이 17일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의 원정 경기를 끝으로 코트를 떠났다. 위저즈가 56-75로 크게 뒤지던 3쿼터에 조던은 벤치로 들어가 그저 어린 후배들을 바라보았다.

"WE WANT MICHAEL! WE WANT MICHAEL!"

4쿼터가 시작된 후 갑자기 관중들의 열띤 제창이 이어졌다. 그들의 목소리가 농구장을 가득 메우자 결국 2분을 남기고 조던은 다시 코트로 들어왔다.

그 후 그는 자유투 2개를 차분히 성공시키며 모든 이들의 환호 속에 기립박수를 받으며 코트를 떠났다. 이미 조던과 두 번의(95, 2001) 이별을 경험했던 관중들은 여전히 그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눈물을 보였다.

인기 만화 '슬램덩크' 가운데 '서태웅' 의 모델이기도 한 조던은 농구를 '세계화' 시킨 일등 공신이다. 축구를 시작한 어린이들이 황선홍의 등번호 '18'번을 달고 싶어하는 것처럼, 농구 공을 처음 잡은 어린이들은 누구나 한 번 쯤 조던의 '23'번을 달고 싶어한다.

84년 농구 명문 노스캐롤라이나대 3학년을 마치고, NBA에 일찍 데뷔 한 조던은 환상적 드리블과 정확한 중장거리 슛, 공중묘기에 이은 현란한 덩크로 팬들을 열광시켰다. 조던의 등장 후 NBA는 사상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대규모 관중몰이에 성공했다.

84년 처음 시카고 불스 유니폼을 입었던 조던은 팀을 6번이나 챔피언으로 이끌었다. 연이어 그는 10번의 득점왕, 5번의 최우수 선수상(MVP)을 거머쥐며 NBA 역사를 새롭게 개척했다.

그는 15시즌 동안 평균 30.2 점을 기록, 경기 당 최고 득점율을 선보이며 무려 866경기(86-2001)동안 연속으로 두 자릿수 득점 행진을 이어갔다.

조던은 중요한 포스트 시즌에 더욱 진가를 발휘하는 결정적 '승부사' 이기도 했다. 특히, 97-98시즌 유타 재즈와의 챔프전 6차전 종료 직전 결승 점프 슛은 농구 팬들에게 잊지 못할 최고의 명장면으로 기억된다. 플레이오프 한 경기 최다 득점(63점, 85-86시즌), 경기 당 평균 최다 득점(33.4점)기록은 그만의 전매 특허였다.

ⓒ 조던공식사이트
그러나 그에게도 쓰라린 '좌절’이 있었다. 시카고 불스를 정상에 올려놓은 뒤 아버지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그가 코트를 잠시 떠났다. 그 후 조던은 프로야구에 입문했다가 실패, 만년 하위팀 워싱턴 위저즈를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려 했으나 2시즌 모두 좌절하고 말았다.

비록 목표로 내건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엔 실패했어도, 그는 잔부상에 시달리며 모든 경기에 출장한 팀 내 유일한 선수가 된다. 더불어 그는 40세를 넘긴 선수로는 최초로 시즌 평균 20득점 이상을 기록, 종종 한 경기 당 40점을 쏟아 부으며 '농구 황제' 의 위엄을 쉬이 잃지 않았다.

우리에게 농구의 묘미를 알려주고, 농구에 대한 꿈을 꾸게 만들었던 조던! 위저즈의 단장으로 제 2의 농구 인생을 준비하는 그가 또 어떤 신화를 창조할 지 궁금할 따름이다.
2003-04-21 11:17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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