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한 직후 우리나라에는 이른바 '괴담'이 돌았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누출된 세슘, 스톤론튬, 플루토늄 등의 각종 방사성 물질들이 대기와 해류를 타고 우리나라까지 유입될 것이라는 해괴한 소문이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우리나라가 일본의 서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편서풍의 영향으로 방사성 물질들이 날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해류 역시 우리나라와 일본의 그것은 서로 방향이 달라 국내산 수산물들은 안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장담이 무색하게도 원전 폭발 바로 며칠 후, 우리나라에는 이른바 '방사능 비'가 내렸다. 원산지를 막론하고, 생선에서는 각종 방사성 물질들이 검출되기 시작했다. '괴담'이 실현됨으로써 자신의 이름을 '가능성'이라고 스스로 바꿨다. 정부에 대한 신뢰는 이미 이때부터 깨졌다.

이유를 알 수 없다. 왜, 우리나라 정부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맞이하여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일본에서 원전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면 일본을 제외하고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우리나라가 피해를 가장 많이 볼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사고가 발생한 그 즉시부터 사고 관련 정보를 빠짐 없이, 지속적으로 제공해 줄 것을 일본 정부에 당당하게 요청했어야 했다.

지금처럼 일본 정부의 협조가 미진할 경우, 가동할 수 있는 모든 외교 채널을 동원해서라도 일본 정부에 압박을 넣었어야 했다. 왜? 사고 자체는 일본에서 났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충분히 존재하니까. 그것도 가늠조차 하기 어려운 상당한 피해.

물론,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정보를 만족할 만큼 충분히 취득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우리나라 정부의 태도이자 대응의 방향이다. 일본 정부가 도쿄 전력과 손을 잡고 원전 사고와 관련한 정보를 차단하고 은폐하고 피해 규모를 축소하더라도 최대한, 정확하고 시의적인 정보를 얻어내려고 노력하는 것과 일본 정부가 발표하는 대로만 믿고 그것을 그대로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대독해주는 것, 이것은 천지 차이다.

그동안 우리 정부의 대응이 미진했던 것은 원전 사고 관련 정보의 부재, 이 정보를 얻어낼 수 있는 외교력의 부재, 그 외교력을 발휘하려는 의지의 부재가 주 원인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역시, 우선은 사고를 일으키고 그럴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정보를 주변 국가들에게 제대로 제공하지 않은 일본 정부와 도쿄 전력의 책임이 제일 크다.

독일의 공영 방송사 ZDF가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2주기에 맞춰 제작한 다큐멘터리 <후쿠시마의 거짓말>(연출 : 요하네스 하노)은 원전의 현재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는커녕 오히려 은폐, 축소하고 나아가 원전이 자신들의 관리 하에 있다고 지금도 호언하는 일본 정부와 도쿄 전력의 무능과 뻔뻔함을 꼬집는다.

이 다큐멘터리의 최대 성과는 사고로부터 2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철저하게도 사고 관련 정보의 유출을 차단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간 나오토 일본 전 총리와 양심적인 전 원전 기술자들의 생생한 증언과 인터뷰를 통해 집요하게 파헤쳐 냈다는 데에 있다. 그들이 밝히는 그 이유는, 쉽게 말해 이런 거다.

일본의 상당수 각료들은 도쿄 전력으로부터 정치 후원금을 받고, 일본 정부의 인사들은 퇴임 후 도쿄 전력 관련 회사에 재취업을 한다. 일본의 학자들은 정부로부터 연구비를, 언론은 도쿄 전력의 광고를 받는다. 일본이라는 국가 전체를 움직이는 이 카르텔을 누구도 건드리지 못한다. 이들은 이른바 '원전 마피아'다.

일본 정부와 도쿄 전력의 뻔뻔함은 각종 암이나 돌연변이의 출현과 같은 피폭의 징후가 나타날 때까지는 일정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원전 사고에 대한 지금의 무지 혹은 외면에 대한 대가는 20~30년 후 원전 사고를 직접 겪은 현 세대와 그들의 유전자를 이어 받은 바로 아래 세대들이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다.

제일 큰 문제는, 역시 우리다. 일본 현 정부에 책임을 묻지 않고 내외부 피폭의 가능성에 적절히 대응하지 않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를 그때 가서는 비판할 수 없다. 일단, 이 사태에 직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우리나라 정부 인사들은 그 때쯤에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설사 여전히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부서가 바뀌었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할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그때 급격하게 증가할지 모르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각종 암 질환과 20~30전에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와의 연관성을 입증하기란 또 그때부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요구될 터.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현재 상황과 그에 맞서는 우리 정부의 대응을 바로 지금, 계속 감시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본부 노보 119호의 <조합원 기고>에도 실렸습니다.
후쿠시마의 거짓말 ZDF 방사능 피폭 후쿠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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