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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향산 보현사 대웅전(2005. 7. 24.)
 묘향산 보현사 대웅전(2005. 7. 24.)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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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사

그날 오후 일정은 보현사 관람과 묘향산 산행이었다. 묘향산은 준기가 용문중학교 다닐 때 봄가을로 자주 원족을 다녔던 곳이었다. 산행에 어머니도 따라 나섰다. 어머니는 당신 평생소원이 이루어진 탓인지 원기가 되살아난 듯하여 북녘 두 선생을 놀라게 했다. 리 선생이 덕담을 했다.

"심청던에 아바지 심학규는 왕비가 된 딸을 만난 뒤 눈을 떴다는 게 꾸민 이야기만이 아닌 모양입네다."
"내레 기런가 봅네다."

준기 어머니가 활짝 웃으며 대꾸했다.

묘향산은 행정구역상 평안남도와 평안북도, 그리고 북에서 새로 만든 자강도의 접점에 있었다. 일찍이 서산대사는 "묘향산은 장엄하면서도 수려하다"고 이 산을 예찬했다. 먼저 보현사에 이르자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여성안내원이 준기 가족을 반갑게 맞았다. 그는 매우 친절하고도 곱살 맞게 사찰에 대해 설명했다.

"보현사는 우리나라 건축물을 대표하는 문화재의 하나로, 대웅전을 비롯하여 24채의 웅장한 건물로 가득 차 있었습네다. 조국해방전쟁 때 미제들의 폭격으로 대부분 불타버린 것을 위대하신 장군님 교시로 현재 복원 중입네다."

고려 인종 때 김부식이 썼다는 보현사비는 보현사 어귀에 세워져 있었고, 만세루 앞 4각 9층탑은 화강석을 정교하게 다듬어 만든 것으로, 높이는 6미터인데 일명 '다보탑'이라고 했다. 만세루는 대웅전 앞 다락 건물로 배부름기둥에 큰 종과 두 개의 큰 북이 달려 있었다.

보현사에서 가장 으뜸 볼거리는 대웅전 앞에 있는 8각 13층탑이었다. 이 탑은 고려 말에 화강석을 정교하게 다듬어 세운 것으로 높이는 8. 58미터이며, 한 변의 길이는 1.2미터라고 했다. 안내원은 8각으로 된 매 지붕의 추녀 끝에는 바람방울(풍경)이 달려 있어 산들바람만 불어도 맑고 고운소리를 내어 주위를 더욱 청아하게 해준다고 매우 자랑했다.

보현사에 안치된 금강산 유점사 종(2005. 7. 24.)
 보현사에 안치된 금강산 유점사 종(2005. 7. 24.)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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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향산

준기 어머니와 준기는 대웅전에 들어가 부처님께 엎드려 삼배를 올렸다. 45년 만의 모자상봉에 대한 감사 인사를 드린 듯했다. 보현사 경내 수충사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서산대사와 사명대사의 영정과 유물이 남아 있었다.

준기는 보현사를 벗어나 묘향산 만폭동 어귀 개울물에 손을 담갔다. 개울물이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두 손으로 움켜 개울물을 그대로 마셨다. 간장까지 시원했다. 안내원이 산길에서 풀을 뜯어 준기 부부 코에 대었다. 풀의 향기가 몹시 강했다. 그러면서 안내원은 '묘향산(妙香山)'은 산세가 기묘하고 초목의 향기가 좋아 묘향산이 되었다고 산 이름을 풀이했다.

준기는 어머니가 더 이상 산행을 한다는 것이 무리일 것 같아 상원동 등산로 들머리에서 멈췄다. 그러자 가족들도 거기서 산행을 중단한 뒤 돌로 만든 의자에 앉았다.

"우리는 요기서 선생의 해설 듣는 것으로 산행을 마팁시다."
"그게 좋겠네요."

순희도 그렇게 하자고 호응했다.

보현사에서 바라본 묘향산 멧부리(2005. 7. 24.).
 보현사에서 바라본 묘향산 멧부리(2005. 7. 24.).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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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안내원은 산행을 멈추고 준기 가족 앞에 서서 손으로 묘향산의 여러 산봉우리와 계곡을 가리키며 거기에 얽힌 유래와 전설들을 하나하나 이야기했다. 이야기도 들어주는 사람이 열중할 때 더욱 신이 나는 법이다. 준기 가족이 모두 귀를 기울이자 안내원은 신명나게 서산대사, 사명대사, 단군굴 이야기도 구수하게 들려줬다. 젊은 여성안내원이 어찌나 유식하고 말도 구성지게 잘하는지, 준기가 어디서 배웠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평양사범대학 사적과를 졸업한 주인혜라고 소개했다.

"묘향산은 내레 농문둥학교 때 원족 다닌 산이디요."
"기럼, 내레 공자 앞에 문자를 썼구만요."

주 안내원의 볼이 발그레해졌다.

"아닙네다. 내레 선생만큼 전설도, 유래담도, 모르디요. 내레 기낭(그냥) 발길만 익을 뿐이디."

준기는 주 안내원의 체면을 살려주었다. 그러자 안내원은 더욱 신이 나서 만폭동, 비로봉 등의 이런저런 전설과 유래담을 청산유수처럼 해설했다. 준기 가족들은 그 이야기를 다 들은 뒤 향산호텔로 돌아왔다.

시장 풍경(마산, 1950. 12. 28.).
 시장 풍경(마산, 1950. 12. 28.).
ⓒ NARA,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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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간의 대화

하지만 철기 내외는 향산호텔에서 잠시 쉰 뒤 곧장 고향집으로 돌아갔다. 준기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가는 철기 내외에게 뭐라고 일렀다. 아마도 다음날 점심 준비 때문인 것 같았다. 준기는 북녘 리 선생에게 침대 방 대신 온돌방으로 바꿔달라고 부탁했다. 45년 만에 만난 어머니와 온돌방에서 자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기거야 어렵디 않아요."

리 선생은 곧 삼층의 한 온돌방으로 숙소를 옮겨 주었다.

"얘, 피곤하디. 한잠 자라야."

어머니는 이불장에서 이부자리를 꺼낸 뒤 폈다. 준기는 여장을 풀고 세수를 한 다음 이부자리 위에 누웠다.

"너도 한 잠 자라우."
"아니에요. 어머니."

순희와 어머니는 윗목에 마주 앉았다. 난생 처음 마주 앉은 고부는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었다.

"기래, 우리 준기를 어데서 만났네?"
"전쟁터에서요."
"머이, 전쟁터라구?"
"예, 어머니."
"참 인연 티고는(치고는) 기구하구만. 너덜 부부 오래 해로하갓다."
"그래요, 어머니?"
"기럼, 세상만사 공평하디. 어렵게 만난 부부는 오래 해로하기 매런이디(마련이지)."

준기는 고부간의 대화가 무척 듣기 좋았다. 준기는 긴 호흡을 했다. 이제야 긴장이 풀어진 모양이었다. 준기는 모든 소원이 다 이루어진 양 왠지 홀가분했다. 공중에 붕 뜬 기분이었다. 준기는 고부간의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 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장가로 들렸다.

한국어린이들이 USIS(주한미공보원) 필름을 보고 있다(장소, 촬영일자 미상).
 한국어린이들이 USIS(주한미공보원) 필름을 보고 있다(장소, 촬영일자 미상).
ⓒ NARA,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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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여기에 실린 사진은 대부분 필자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수집한 것들과 답사 길에 직접 촬영한 것입니다. 본문과 사진이미지가 다를 경우 한국전쟁의 한 자료사진으로 봐주십시오.



태그:#어떤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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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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