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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 수행취재했을 때에는 '눈물을 보였다' 정도로 보도한 <동아일보>. 50년 후에는 '대성통곡'으로 보도하고 있다.
▲ 50년 전 파독 광부들 만나 '대성통곡'한 박정희? 50년 전 수행취재했을 때에는 '눈물을 보였다' 정도로 보도한 <동아일보>. 50년 후에는 '대성통곡'으로 보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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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 박정희 전 대통령은 루르 탄광지대의 함보른 광산을 방문했다. 현지 광부들로 구성된 밴드가 애국가를 연주하자 500여 명의 참석자들은 눈물바다가 됐다. 단상에 올라간 박 전 대통령은 준비한 원고를 옆으로 밀쳤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이게 무슨 꼴입니까. 내 가슴에서 피눈물이 납니다.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들에게만큼은 잘사는 나라를 물려줍시다"라고 외쳤다. - <동아일보> 2014. 3월 22일

1964년 12월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이 먼 이역만리를 찾아 가장 힘들게 일하는 광부들을 격려했다. 독일 광부들로 구성된 밴드가 애국가를 연주하자 500명 참석자들은 눈물바다가 됐다. 단상에 올라간 박 전 대통령은 준비한 원고를 읽는 대신에 '내 가슴에서 피눈물이 난다'며 이들의 노고에 공감을 표했다. '후손'들을 언급하며 잘 사는 나라를 물려주자고 외쳤다.

감동적이다! 영화의 소재로도 모자람이 없다.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는 일들을 찾아간 이가 가장 높은 지위의 현직 대통령이라니. 더군다나 대통령은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대성통곡'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50년 전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1964년 독일 방문을 연상시키는 독일 국빈방문을 마쳤다. 방문한 곳도, 만나는 사람들도 비슷해 '박정희 향수 마케팅'이라는 비판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마치 두 대통령이 동시에 독일을 국빈방문한 듯한 언론보도가 연일 지면과 방송을 장식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드라마틱하고 박정희 향수의 정점에 있는 내용이 박정희와 독일광부들과의 50년 전 만남을 보도한 기사들이다. 이들을 만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운 것은 기본이고 조금 더 나간 언론에서는 '오열'이라고, 심지어는 '대성통곡'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위 보도는 사실인가?

사뭇 다른 분위기... 박정희 만나 3가지 요구사항 전달한 광부대표

광부대표 유계천군은 친부모라도 만난 것처럼 기쁘다고 말하고 ① 귀국 후의 일터주선 ② 외환특별조치 ③ 계약기간 만료 후 계속 체류하여 일할 수 있게 해줄 것을 간청했는데 박 대통령은 "잘 고려해 보겠다"고 약속했다. - <조선일보> 1964년 12월 11일 1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광부들의 모습을 보고 '대성통곡'했다는 최근에 봇물 터지듯 나오는 보도와 당시 상황을 보도한 <조선><동아><경향> 보도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당시 박 대통령을 수행 취재한 언론 보도를 통해 현지 상황을 재정리해 보자.

박정희는 체류하던 '본'에서 자동차로 1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탄광지대인 '루르'를 방문했다. 독일 대통령 일행과 함께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 55분. 파독 광부들과 간호원 등 5백여명은 환호성을 터뜨리고 태극기를 흔들며 열렬히 환영했다. 간호원들은 모두 색채가 화려한 한복을 입어 눈길을 끌었다.

짙은 오렌지색 두르마기를 입은 육영수 여사는 뺨으로 흐르는 눈물을 연신 손수건으로 훔쳤다. 육 여사의 눈물은 독일 광부 밴드가 애국가를 연주하는 동안 계속되었다. 우리 광부들은 목청을 다 해 이역만리에서 애국가를 불렀다. 박정희는 광부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는 한국에서 가져간 '파고다' 담배를 선물로 주었다.

독일 탄광회사 대표로 작업부장인 더트 호르스트씨는 환영인사를 통해서 "한 나라의 국가원수가 이곳을 찾아준 이 역사적인 순간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우리 광부들의 근면과 규율을 높이 칭찬했다.

이어 우리 광부들을 격려하는 연설에 나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여러분들의 기술은 고국에 돌아갔을 때, 재건계획에 크게 필요할 것"이라고 말하고 "될 수 있는 한 많이 배우라"고 말했다.

광부들을 만나서 향수를 달래준 대통령으로 보도되고 있다. <동아일보> 64년 12월 11일자
▲ 50년 전 '광부들 만남 특집'에 등장한 박 대통령 광부들을 만나서 향수를 달래준 대통령으로 보도되고 있다. <동아일보> 64년 12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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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광부대표가 나와서 위에 언급한 3가지 사항을 대통령에게 요청했다. <동아일보>는 간호원 대표가 나와서 "왜 우리는 이렇게 못 삽니까. 좀 더 고생을 해서라도 잘 살아야 하겠습니다"라고 환영사에서 애절하게 말했고 이 말을 들은 광부, 간호원은 '모두' 울었다고 보도했다. 이를 보도한 <동아> 기사의 제목은 '광부들 향수도 달래고'였다.

육영수 여사만 흐느껴

1964년 12월 박정희 대통령의 독일 국빈방문을 보도한 <동아><조선><한국><경향> 그리고 <대한늬우스>의 관련 기사를 살펴보았다. 대통령이 광부들을 만나서 격려했다는 뉴스는 보도되었다. 그런데 준비했던 원고를 밀치고 '여러분을 보니 내 가슴에 피눈물이 난다'고 즉흥적인 격정 연설을 했다는 보도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파독 광부들을 만난 현장을 1면으로 전하고 있는 동아일보. '감동 속에 애국가 불러'가 당시를 표현한 키워드였다. <동아> 64년 12월 11일자 1면
▲ '감동 속에 애국가 불러' 파독 광부들을 만난 현장을 1면으로 전하고 있는 동아일보. '감동 속에 애국가 불러'가 당시를 표현한 키워드였다. <동아> 64년 12월 11일자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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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들을 본 박 대통령의 '대성통곡' '오열'은 기사에 등장하지도 않는다. 가장 유사한 단어를 찾아본다면 <동아일보> 1964년 12월 11일자 기사 '광부들 향수도 달래고'에 등장하는 정도다. <동아>는 '광산 밴드가 연주하는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태극기의 물결에 휩싸인 박 대통령은 감회에 벅차 눈물마저 보였고 육 여사는 단상에서 거듭 손수건으로 눈시울을 닦았다'고 전했다.

<동아> 보도에만 박정희가 '눈물마저 보였다'고 기술돼 있고 다른 언론사 보도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모든 언론 공통적으로는 '육 여사가 단상에서 손수건으로 눈시울을 닦았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굳이 유추하자면 육영수 여사는 확실히 손수건을 이용할 정도로 눈물을 보였다. 박정희는 '눈물 마저' 보였지만 손수건을 사용할 정도는 아닌 듯 보인다.

정부에서 엄격히 검열해 영상을 송출하는 <대한늬우스>의 보도 역시 광부들과 간호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은 박정희 대통령이 '눈시울을 적셨고'라고 보도했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대성통곡? 오열? 도대체 누구의 이야기인가.

<박정희 대통령 방독록>에도 없다

1964년 12월 15일 저녁 7시 박정희 대통령은 독일 국빈방문을 마치고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보름 후인 12월 30일 공보부에서 <박정희 대통령 방독록>을 발간했다. 박 대통령은 독일 방문 틈틈이 메모한 내용을 정리하여 '방독소감'이란 글을 게재했다.

'박정희 대통령 방독소감'에는 '광부, 간호원'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는다. 긴 방독소감에는 이들을 만난 이야기도 이들의 고생에 대한 연민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인상적인 대목이 몇 대목 등장하는데 이는 모두 독일 국민성에 대한 존경과 그에 비교해서 한국 국민성에 대한 무시로 해석될만한 내용이 수록돼 있다.

'프랑크푸르트시 근교에는 노동자들이 저녁에 가서 술 마시며 하루의 피로를 푸는 우리나라의 대포집이나 포장마차 같은 술집이 많다. 근면하고 일밖에 모르는 그들도 저녁에는 이곳에 많이 모여와서 술이 한 잔씩 들어가면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마음껏 떠들고 밤이 늦도록 논다고 한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한 번도 그들이 서로 싸우거나 집기를 부수거나 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간혹 그곳에 있는 우리 한국 학생들이 와서 놀다가 언쟁을 하거나 술잔을 던져서 부순 일이 몇 번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 혼자 쓴 웃음을 지었다. 자율과 자제, 모든 일에 한계를 분명히 한다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가 꼭 배워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박정희 대통령의 방독소감 중

50년 전 독일에 다녀온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인의 민족성'을 언급하며 쓴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50년 후 한국 언론에서는 고생하는 동포들을 안타까워하며 '대성통곡'한 인물로 묘사됐다.

50년 전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해서 우리 광부들과 간호원들을 찾아가 격려한 것은 그 자체로 분명 미담(美談)이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에 그들을 만나 대담한 것 역시 보기 훈훈한 장면이다.

그런데 50년 전 신문 지면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단어를 사용하면서 그 당시 박정희를 미화하는 지금의 보도 태도에는 성찰적 접근이 필요하다. 맹목적이고 일방적인 미화가 '반신반인'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태그:#박정희, #파독광부,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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