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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하우스마다 제각각인 커피 가격, 아메리카노 한 잔에 적게는 3천 원에서 많게는 6천 원대(더 저렴하고, 더 비싼 데가 있긴 하지만)를 호가하는 커피 가격, 도대체 한 잔에 들어가는 커피콩 가격은 얼마나 될까? 몹시 궁금했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바리스타 K씨가 권하는 잔을 무턱대고 열아홉 잔을 들이키다가 결국 그 비밀을 알아채고 말았습니다.

100ml 커피 한 잔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커피콩은 100개,
커피콩 100개의 현지가격은 10원
이윤의 1%는 소규모 커피 농가의 몫
이윤의 99%는 미국의 거대 커피회사, 소매업자, 중간거래상의 몫
1%에 속하는 전 세계 커피 재배종사자는 50여 개국의 2천만 명
그들의 대부분은 극빈자들이며 그들 중 상당수는 어린이다. (책 249쪽)


이 책의 EBS 지식채널e '다큐프라임, 히말라야 커피로드', 2005년 11월 7일 방영분을 인용하는 부분에서 그 비밀이 드러납니다. 아, 그랬구나! 차라리 알려고 하지나 말걸, 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러나 이미 알아버린 걸 어쩌겠습니까. 이제 맘 편히 커피를 마시기는 다 틀린 것 같습니다.

공정무역 커피를 드세요

김용범의 <커피, 치명적인 검은 유혹>의 표지입니다.
 김용범의 <커피, 치명적인 검은 유혹>의 표지입니다.
ⓒ 채륜t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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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을 한 적은 있었습니다.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는 프랜차이즈 카페들을 들락거리며 커피값이 왜 이리 들쭉날쭉할까, 커피와 함께 덤으로 상냥함과 친절함을 안겨주는 아르바이트 학생은 얼마나 받는 걸까, 그는 정녕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정식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이일까, 그 뒤에 숨어(?) 좀처럼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사장님은 지금 골프장에서 '나이스 샷!'을 날리고 있을까, 뭐 이런 생각들 말입니다.

커피 맛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 먼저 이런 생각들로 거추장스런 고민을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난 그랬습니다. 드립커피에 매진하는 면도 있지만 또 한편으론 달달한 커피의 유혹 또한 벗어나지 못한 터라, 별다방, 우리 안의 천사, 배냇저고리 입은 카페, 들어 탑 등등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곁에서 가던 아내가 늘 던지는 말입니다.

"참새가 방앗간을 어찌 지나가누."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처럼 순수하고, 사랑처럼 달콤하다'는 프랑스 외교관 겸 정치가 탈레랑 주교(1754~1838)의 커피 찬사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바리스타 K씨, 김용범은 이 책에서 커피의 치명적인 유혹에 대하여 거리낌 없이 토로합니다. 그러면서 독자로 하여금 스무 잔의 별난 커피를 마시지 않고는 책을 덮을 수 없도록 만듭니다.

그 별난 커피들을 한 잔 한 잔 들이킬 때마다 참 독특한 방법으로 커피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생각하며 그의 재능과 지식을 부러워하게 됩니다. 그러다 열아홉 번째 잔, 결국 커피 한 잔 원가가 10원이라고 밝히는 대목에서 가슴팍에 서리가 돋습니다. 내가 커피를 좋아해도 되는 걸까, 점심식사 후 으레 테이크아웃 커피 잔 하나씩 들고 나와야 지성인인 듯 보이는 이 나라의 가당찮은 커피문화가 괜찮은 걸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죄의식 안 가져도 될 것 같습니다. 바리스타 K씨가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그건 바로 공정무역입니다. 우리나라 커피 공정무역은 '아름다운가게'가 2006년 '히말라야의 선물', 2008년 '안데스의 선물', 2009년 '킬리만자로의 선물'을 선보였습니다. YMCA도 2005년 '한 잔의 커피, 한 잔의 평화' 프로젝트를 추진하여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이용하면 됩니다.

공정무역 커피만을 파는 가게들도 많습니다. 책 253쪽에선 서울을 비롯하여 각 지방마다 공정무역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즐겨 마시는 커피 한 잔 속엔 커피 맛보다 쓴 가난과 노동이 담겨있다"(책 251쪽)는 저자의 말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걸 알고 마시는 것과 모르고 마시는 것은 다르니까요.

스무 잔의 별난 커피를 마셔요

바리스타 K씨는 한 잔의 커피에 한 도막의 이야기를 제공합니다. 한 편의 시를 제공합니다. 한 잔의 독특한 레시피를 소개합니다.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캐러멜 마키아토 등의 여타 레시피가 아닙니다. 랭보 커피, 이사도라 던컨 커피, 이상 커피, 뭐 이런 커피입니다. 그럼, 첫 잔부터 스무 번째 잔까지 커피 여행을 해봅시다.

첫째 잔, 랭보 커피입니다. 영화 <토탈 이클립스>에서 동성애의 비극적인 모습을 보여 줬듯, 랭보와 폴 베를렌의 만남은 에티오피아 하레르산 랭보 커피를 상상하게 만듭니다. <커피 견문록>의 스튜어트 리 앨런에 의해 검고 진한 에스프레소를 허름한 랭보 박물관 마을에서 만나게 만듭니다. 모카하라엔 랭보의 지옥처럼 쓰고 비극적인 랭보의 죽음 같은 시향이 묻어있습니다.

둘째 잔은 에드바르 뭉크 커피입니다. <절규>라는 그림 아시죠. 바리스타 K씨는 '그의 그림처럼 어두운 그림자와 함께 달콤 쌉싸름한 카페모카'를 뭉크의 커피로 상정합니다. 에스프레소의 쓴맛과 신맛에 달콤하고 부드러운 초콜릿 시럽이 가미된 커피를 말합니다. 바흐의 <칸타타 2번>이나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틀어놓고 커피믹스에 초코파이를 녹여 만든 카페모카를 마시라고 권합니다.

셋째 잔부터 스무 번째 잔까지는 좀 더 간단하게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열번째 잔, 생택스(Sant-Ex) 커피를 만들어 봤습니다. 눈으로만 마시던 커피를 실제로 바리스타 K씨의 제안대로 프렌치프린스로 내려 마셨습니다.
 열번째 잔, 생택스(Sant-Ex) 커피를 만들어 봤습니다. 눈으로만 마시던 커피를 실제로 바리스타 K씨의 제안대로 프렌치프린스로 내려 마셨습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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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잔, 이효석의 향 커피- 낙엽 타는 냄새, 잘 익은 개암냄새, 헤이즐넛 커피를 <고엽>을 들으며 음미합니다.

네 잔, 헤르만 헤세 커피- 아프락사스(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등장하는 신이자 악마인 존재)란 야릇한 향, 스위스 레슬러의 커피에 덕음 차를 더한 것을 헤세의 <봄날>이란 시를 읽으며 마십니다.

다섯 잔, 헤밍웨이 쿠바 커피- 연유깡통에 든 진한 쿠바 커피 크리스털 마운틴을 영화 <하바나 블루스>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을 들으며 마십니다.

여섯 잔, 빈센트 반 고흐 커피- 그림 <밤의 카페>에서 빵과 함께 마시는 커피, 지친 몸을 푸는 양식으로, 예맨 모카 마타리를 구해 호밀 빵과 곁들여 마십니다.

일곱 잔, <백경>과 별다방 커피- 스타벅스의 이름의 유래를 설명하는 커피, 스타벅스에서 사온 에스프레소 더불샷을 미국의 작곡가 거슈윈이 1924년에 작곡한 <랩소디 인 블루>를 들으며 마십니다.

여덟 잔, 이상의 제비다방 커피- MJB(1881년 Max J. Brandensteindl 설립한 커피회사) 커피를 구해 이상의 시 <거울>을 읽으며 음미합니다.

아홉 잔,  프란츠 카프카 커피- 카프카의 읽기 곤혹스런 <성>이란 소설을 빌려 테이블에 놓고 캔커피 8백 원짜리를 사서 마시면서 책은 절대 들춰보지 않고 커피를 마신 후 책을 다 읽었다고 우깁니다.

열 잔, 생택스(Sant-Ex) 커피- <어린 왕자>의 생텍쥐페리가 즐기던 크림 커피, 프렌치프린스로 내린 커피를 생크림을 넣어 달달하게 만들어 마십니다.(참고로 이쯤해서 눈으로만 마시던 커피를 실제로 바리스타 K씨의 제안대로 프렌치프린스로 내려 마셨습니다.)

열한 잔, 이사도라 던컨 커피- 맨발로 춤을 추던 자유인 이사도라 던컨의 커피는 카페오레(카페라테)라며 그리스 음악을 들으며 카페라테를 만들어 마시라고 제안합니다.

열두 잔, 전혜린 커피- 독일 전통과자 바움쿠헨과 함께 커피를 넉넉히 담은 잔을 기울이며 FM방송만 들으며 '나는 행복하다'를 수십 번 반복합니다. 고독한 커피입니다.

열세 잔, 홍연택 커피- 블랙 앤 스위트 블랙, 맥심커피를 선전한 지휘자 홍연택을 생각하며 인스턴트 맥심을 블랙으로 진하게 타 커피용 덩어리 설탕을 투하, 젓지 않고 마십니다.

열네 잔, 김현승과 박목월 커피- 새벽 3시에 자명종을 듣고 일어나 냉동건조 커피를 세 스푼, 설탕 두 스푼, 프림 두 스푼을 넣어 마시며 박목월의 시 한편을 감상합니다.

열다섯 잔, 터키 커피- 체즈베(터키의 전통 청동커피포트)로 끓인 트루크 카흐베를 마시고 남은 찌꺼기로 점을 칩니다.

열여섯 잔, 바흐의 칸타타- 바흐의 <커피 칸타타>를 들으며 슈니첼(얇게 썬 고기로 만든 독일식 커틀릿)과 함께 더치 블랙 캔 커피를 사서 마십니다.

열일곱 잔, 천사의 커피- 빈 벤더스 감독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를 떠올리는 베토벤, 베토벤의 교향곡 중 하나를 들으며 60알의 원두를 세어 커피를 내려 마십니다.

열여덟 잔, 불꽃이거나 바람의 영웅이란 커피- 몽골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산화한 의사 이태준을 생각하며, 일리 커피를 구해 모카포트로 내린 진한 커피를 단숨에 마시고, 몽골시인 이칭호를러의 <너에게>란 시를 읽습니다.

열아홉 잔, 공정무역커피- 아름다운가게에 들러 '킬리만자로의 눈물'을 구입하여 김용범(바리스타 K)의 시 <참나무를 위한 묵념>을 읽은 후, '감사합니다'를 세 번 반복하며 천천히 마십니다.

스무 잔, 비오는 날의 커피- 알베르 카뮈를 생각하며 비오는 날 전주에는 매화우가 내릴 것이라 생각하며 마시는 커피입니다. 후! 이제 끝났습니다.

이 책은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커피 이야기를 담고 있다. 커피 전문가가 들려주는 커피에 대한 전문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기존의 책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커피의 맛과 향기를 전해준다. 책장을 여는 순간 우리는 코끝을 스치는 커피의 향에 취해 첫 잔으로 한 모금을 마신다. 첫 잔이 전해주는 향기에 흠뻑 취하면 어느 새 아쉬움으로 마지막 스무 잔을 만나게 된다.(책 5쪽)

정말 그랬습니다. 그렇게 스무 잔을 들이킨 후에나 책에서 눈을 뗄 수 있었습니다. 2권이 곧 출간된다는 소식인데 기대가 됩니다. 또 어떤 작가나 예술가가 등장하여 독특하고 특별한 커피 맛을 선사할지 기대가 충만합니다.

덧붙이는 글 | <커피, 치명적인 검은 유혹> 김용범 글, 김윤아 그림/ 체륜서 간/ 2012년 초판/ 값 14800원



커피, 치명적인 검은 유혹 - 낭만적인 바리스타 K씨가 들려주는 문화와 예술의 향기가 스민 커피 이야기

김용범 지음, 김윤아 그림, 채륜서(2012)


태그:#커피, #커피, 치명적인 검은 유혹, #김용범, #바리스타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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