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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부터 기다려온 날이었다. 근무표를 작성할 때부터 이날은 꼭 휴무 날이 되어야 한다고 우격다짐한 날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날, 하늘은 무척이나 찌푸렸다. 제주도에는 이미 장마에 들어간다는 6월 21일. 경남 진주의 하늘도 한바탕 쏟아질 듯 회색빛이 가득했다.

아내를 출근시키고 다시 집에 돌아와 아파트 단지 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서둘러 시내버스를 탔다. 버스에 앉아 창 너머를 처음 구경인양 노려 바라보았다. 걸어가는 사람들 손에는 접힌 우산이 하나씩 있다. 20여 분이 지나 사단법인 진주문화연구소(이사장 김수업)가 주최하는 '진주문화사랑방-문화기행 '명창 이선유'의 자취를 찾아서' 모임터에 이르렀다.

약속 시각에 맞춰 대부분 사람들은 모였다. 저마다 지난해에도 같은 단체의 문화기행을 다녀온 반가운 얼굴도 보인다. 모인 장소 갤러리아 백화점에서 <명창 이선유>의 저자 최난경 한세대 교수를 따라 첫 번째로 간 곳은 진주권번 터다. 진주중앙시장 건너편 우리은행 뒤편 차 없는 거리가 진주권번 터라고 한다. '권번'은 일제강점기에 기생을 길러내던 교육기관이자 기생들이 기적(妓籍)을 두고 활동하던 기생조합이다.

경남 진주시내 중앙시장 건너편 우리은행 뒤가 진주 권번 터다. 이곳에서 명창 이선유 선생의 일대기를 최난경 교수에게 들었다.
 경남 진주시내 중앙시장 건너편 우리은행 뒤가 진주 권번 터다. 이곳에서 명창 이선유 선생의 일대기를 최난경 교수에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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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는 예부터 물산(物産)이 풍부해 이른바 선비들의 풍류 문화가 꽃피웠던 곳이다. 평양기생과 함께 진주기생이 유명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은행 주차장 한쪽에서 간단하게 명창 이선유 선생의 일대기를 최난경 교수에게 들었다.

'동편제의 명창 이선유'는 1872년 하동 악양에서 태어나 일생 대부분을 보낸 진주에서 1949년 세상을 떠났다. 10살 때부터 소리 공부를 시작해, 15살 때 송우룡을 찾아가 3년간 공부했다. 김세종의 지침을 받아 성공했다. 주로 진주 권번의 '소리 선생'으로 있었다. 제자로는 인간문화재 김수악, 박봉술 씨와 신숙, 오비치 명창 등이 있다. 1933년 김택수의 채록으로 최초로 인쇄된 판소리 창본 <오가전집>을 출판했다. 이선유는 '수궁가'를 장기로 삼았는데, '수궁가','심청가', '적벽가' 중에서 몇몇 대목이 유성기판으로 전해진다.

여기저기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처럼 메모하는 문화기행 참가자들이 보인다. 나는 동영상으로, 사진으로, 귀로 열심히 메모했다. 일정이 빠듯해 관광버스에 올라서 돌아가신 장대동 터를 지나가며 보았다. 거주했던 집은 헐리고 없었다. 명창이 돌아가시고 60여 년이 흘러 이제는 그를 제대로 기억하는 이가 없다.

명창은 딸딸이 아빠였단다. '딸딸'도 아니라 '딸딸딸딸'! 그런 까닭인지 조카를 양자로 들였다. 양자는 '나그네 설움'과 '단장의 미아리고개' 등 수 많은 애창곡을 작곡한 '한국의 슈베르트'라는 별명을 가진 이재호 선생이다.

산청 지리산 대원사 주차장에서 30여 분을 걸었다. 지루하지 않았다. 계곡 사이로 굴참나무, 소나무, 때죽나무, 굴피나무, 대팻집나무, 굴피나무, 비목, 쪽동백들이 나를 푸른 빛으로 반겼기 때문이다. 푸른 나무 사이로 물 흘러가는 소리가 더 세차다.
 산청 지리산 대원사 주차장에서 30여 분을 걸었다. 지루하지 않았다. 계곡 사이로 굴참나무, 소나무, 때죽나무, 굴피나무, 대팻집나무, 굴피나무, 비목, 쪽동백들이 나를 푸른 빛으로 반겼기 때문이다. 푸른 나무 사이로 물 흘러가는 소리가 더 세차다.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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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버스는 진주 장대동을 떠나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으로 향했다. 지리산 천왕봉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덕산에서 차는 멈췄다. 일행 중 한 분이 이곳 '덕산막걸리'가 맛있다며 막걸리를 사오셨다. 막걸리를 실은 버스는 대원사 주차장에 우리를 풀어놓았다.

대원사 스님은 걸어서 20분 거리라고 했단다. 우리는 30여 분이 넘게 주차장에서 걸어 대원사에 이르렀다. 30여 분이 넘게 걸으면서도 지루하지 않았다. 계곡 사이로 굴참나무, 소나무, 때죽나무, 굴피나무, 대팻집나무, 굴피나무, 비목, 쪽동백들이 나를 푸른 빛으로 반겼기 때문이다. 일주문을 지나자 푸른 나무 사이로 물 흘러가는 소리가 더 세차다. 덕분에 바람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오늘 나도 유유자적, 여유롭다.

지리산 대원사 경내 한쪽에 ‘누구든 차 한잔 하시고 잠시 쉬었다 가시라’는 문구와 함께 차 도구들이 놓여 있다.
 지리산 대원사 경내 한쪽에 ‘누구든 차 한잔 하시고 잠시 쉬었다 가시라’는 문구와 함께 차 도구들이 놓여 있다.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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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사 앞에는 전나무가 떡하니 혼자 서 있다. 절이 화재 등으로 소실될 경우를 대비해 키우는 나무일까. 대원사는 <오가전집>을 만들기 위해 명창의 소리를 채록한 곳이다. 소리꾼들이 깊은 산중에서, 특히 계곡에서 소리를 공부하고 연습하는 이유는 폭포 소리에 자신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으니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더 크게 지르게 되어 성량이 커지고 목이 단단해지기 때문이란다.

대원사 경내 한쪽에 '누구든 차 한잔 하시고 잠시 쉬었다 가시라'는 문구와 함께 차 도구들이 놓여 있다. 오늘은 차 한잔의 여유보다 계곡에서 명창의 소리를 재현하는 소리꾼들의 '소리'를 들었다. 조선 시대 선비들은 이런 풍류를 즐겼던 모양이다. 이런 재미가 소리를 듣는 즐거움인가. 기어코 비가 내린다. 산채 비빔밥을 먹고 올라오기 전에 사온 막걸리 두 순배를 마셨다. 신선이 따로 없다.

지리산 대원사 계곡에서 명창의 소리를 재현하는 소리꾼들의 ‘소리’를 들었다. 조선 시대 선비들은 이런 풍류를 즐겼던 모양이다. 이런 재미가 소리를 듣는 즐거움인가.
 지리산 대원사 계곡에서 명창의 소리를 재현하는 소리꾼들의 ‘소리’를 들었다. 조선 시대 선비들은 이런 풍류를 즐겼던 모양이다. 이런 재미가 소리를 듣는 즐거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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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는 동안 세차게 내렸던 비는 주차장으로 서둘러 가는 걸음에는 가늘어졌다. 버스는 하동 악양으로 향했다.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토지>의 주 무대인 악양 들판을 지나 악양면 중대리 유성준·이선유 기념관으로 향했다. 기념관은 아쉽게도 공사 중이었다. 덩그러니 있는 건물 두 채를 지나 비를 맞으며 유성준 명창의 산소를 참배했다. 근대 판소리 5대 명창이자 동편제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국창 유성준(1873~ 1949)은, 이선유(1873~ 1949)와 같은 동갑내기에 출신지가 같다. 유성준 묘 옆에 이선유 명창의 가묘라도 세울 예정이라고 한다.

경남 하동 악양면 유성준 명창의 묘소를 찾았다.
 경남 하동 악양면 유성준 명창의 묘소를 찾았다.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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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동편제란 서편제, 중고제라는 말과 함께 판소리의 전승 지역과 전승 계보에 의해 형성된 유파 중 하나다. 동편제와 서편제는 모두 전라도 지역에서 나왔다. '지리산과 섬진강을 경계로 그 동편에서 큰 소리 맥을 이룬 송홍록 집안에서 나온 소리를 '동편제'라 하며, '그 서편의 소리 맥을 이룬 박유전 소리'를 '서편제'라 이르게 된 것이다. 즉 동편제와 서편제라는 유파는 근대이전, 지역 간의 교류가 쉽지 않던 시대에 지리적 환경에서 나온 소산이며 또한 각 지역에서 생성된 미적 가치와 문화적 배경에서 나온 지역 문화적 산물이었다(<명창 이선유> 중에서).

대하소설 <토지>의 주 무대인 악양 들판의 동정호.
 대하소설 <토지>의 주 무대인 악양 들판의 동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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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맞으며 다시 <토지>의 주 무대 악양 들판에 서 있는 악양루에 올랐다. 함께 했던 '이선유선생 판소리 복원연구단'의 소리꾼의 소리를 들었다.

서울에서 천리길 진주. 판소리 발생지역도 아니다. 그럼에도 판소리가 성행한 '판소리 소비 도시'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판소리 동편제의 중심 고장으로서 명성이 대단했던 곳이다. 이선유를 비롯한 당대의 명창들이 진주에서 '소리선생'을 하고 훌륭한 제자들이 많이 배출되었기 때문이다.

경남 하동 악양루에 올라 ‘이선유선생 판소리 복원연구단’의 소리꾼의 소리를 들었다. 드넓은 들판의 넉넉함에 ‘소리’의 멋스러움에 판소리가 구닥다리라는 내 그릇된 인식을 깰 수 있는 기회였다. “얼씨구! 좋다! 잘한다!”
 경남 하동 악양루에 올라 ‘이선유선생 판소리 복원연구단’의 소리꾼의 소리를 들었다. 드넓은 들판의 넉넉함에 ‘소리’의 멋스러움에 판소리가 구닥다리라는 내 그릇된 인식을 깰 수 있는 기회였다. “얼씨구! 좋다! 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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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아직 귀가 뚫려 좋은 소리를 구별할 능력은 없다. 다만, 이제는 드넓은 들판의 넉넉함에 '소리'의 멋스러움에 판소리가 구닥다리라는 내 그릇된 인식을 깰 수 있는 기회였다.

"얼씨구! 좋다! 잘한다!"

덧붙이는 글 | 경상남도 인터넷신문 <경남이야기>http://news.gsnd.net/?p=53929



태그:#명창 이선유, #동편제, #진주문화연구소, #판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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