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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된 파디씨의 축사 외부벽, 1층은 양을 키우는 축사이고, 2층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집.
 방화된 파디씨의 축사 외부벽, 1층은 양을 키우는 축사이고, 2층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집.
ⓒ 이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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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블루스에서 20킬로미터 떨어진 아크라바(Aqraba) 마을에서 양과 젖소를 키우는 파디 바셈(Fadi Bassem)씨는 지난 2일 새벽 3시 30분, 집 밖에서 들리는 요란한 발걸음 소리에 잠에서 깼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아보기 위해 밖으로 나간 파디씨는 어둠 속으로 도망치듯 달려나가는 4명의 사람을 발견했다. 갑자기 코끝에 전해지는 매연에 뒤를 돌아보니 양을 키우는 축사 쪽에서 불이 솟아나고 있었다.

그는 황급히 가족들을 깨워 불을 끄기 시작했다. 그렇게 15명의 가족들은 근처 물통의 물을 이용해 진화하며, 축사 내 양들을 다른 곳을 옮겼다. 그리고 거의 4시간에 걸친 사투 끝에 간신히 진화할 수 있었다.

그날 아침 파디씨와 그 가족들은 집 앞 건축물에 히브리어로 쓰여진 커다란 스프레이 낙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PriceTag(대가), 유대인의 피의 복수."

파디씨 집앞 건물 외벽에 쓰여진 히브리어 스프레이 페인트 낙서, 내용은 "대가, 유대인의 피의 복수"
 파디씨 집앞 건물 외벽에 쓰여진 히브리어 스프레이 페인트 낙서, 내용은 "대가, 유대인의 피의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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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디씨는 "불을 지른 이들이 (이스라엘) 군인들인지 정착민들인지 알 수는 없지만, 신발 자국을 보면 군인들이 아닌지 싶다"라고 말했다. 실제 같은 날 새벽, 이스라엘 군인은 그 마을 청년 두 명을 체포했다고 한다.

파디씨 가족이 겪은 불행은 이스라엘 총리 네탄야후가 발표한 '피의 보복'의 일부에 불과하다.  

이스라엘 10대 청소년 3명 납치 사망... 하마스로 단정하고 보복 

지난 6월 12일 헤브론 지역에서 실종된 이스라엘 10대 청소년 3명은 6월 30일 납치된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발견 당일 이스라엘 전역은 슬픔과 분노에 빠졌고 이스라엘 총리인 네탄야후는 이를 하마스의 소행으로 단정하고 보복을 천명했다.

다음날인 7월 1일 이스라엘 군인들은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제닌 지역에서 팔레스타인인 1명을 사살했다. 또 헤브론 지역의 집 두 채를 폭파했으며, 가자지구를 11차례 공습했다. 그리고 같은 날 밤부터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전역에 무차별 가택수색 및 도시 난입, 체포와 구금을 진행했다.

실제 1일 새벽 1시경에 필자가 거주하는 나블루스 시내 한복판서도 이스라엘 군인들이 난입해 가택을 수색하고 사람들을 연행했다. 이에 돌을 던지며 저항하는 팔레스타인 청년들에게 최루탄과 고무금속탄, 섬광탄을 발포했다. 약 100미터 이상 떨어진 필자의 집안에서도 최루탄 때문에 눈과 코가 매웠다. 

2일 새벽, 필자의 집 근처의 나블루스 중심가, 이스라엘 군인들이 발포한 섬광탄과 최루탄으로 하늘 전체가 뿌옇다.
 2일 새벽, 필자의 집 근처의 나블루스 중심가, 이스라엘 군인들이 발포한 섬광탄과 최루탄으로 하늘 전체가 뿌옇다.
ⓒ 이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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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아침에는 팔레스타인 10대 소년 아부 카데르(Abu Khdeir)가 실종 후 살해된 채로 예루살렘 인근 산에서 발견됐다. 이스라엘의 보복으로 추정됐다. 이에 항의하는 집회에서 이스라엘은 무차별적으로 최루탄과 섬광탄을 발포, 3명의 중상자를 포함 약 170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부상을 입었다.

또 베들레헴 지역의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운행 중인 팔레스타인 차량에 돌을 던져 수십 대의 차량이 파손됐다. 필자가 소속된 ISM의 헤브론 활동가들과 다른 인권단체 활동가들은 헤브론에서 정착민과 군인들에 의해 공격을 받기도 했다.

이미 이스라엘 청소년의 주검이 발견되기 전에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전역에 무차별적인 수색, 검거작전을 수행했다. 그 결과, 현재까지 13명의 팔레스타인인(두 명은 10대, 10명은 시민)이 사망했고 50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들이 구금, 체포됐고, 부상자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스라엘 10대 3명의 죽음은 안타까운 비극이다. 범인이 누군지 찾아내서 그에 따르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이게 상식이고 전 세계 많은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방식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렇지 않다. 

역설적이게도 사망자와 피해자의 숫자도 팔레스타인 측이 월등히 많다. 종교적으로 성스러운 라마단에 매일 밤 가자지구를 포함한 팔레스타인 전역은 긴장과 공포에 사로잡혔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이스라엘 군인들과 경찰들. 팔레스타인에서 법과 상식은 이미 수십 년 전에 쓰레기통으로 던져졌다. 그리고 지금은 증오와 분노, 편견에 기인한 보복성 집단처벌만이 있다.

헤브론 지역에서 이스라엘 군인에 의해 몸수색을 당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인.
 헤브론 지역에서 이스라엘 군인에 의해 몸수색을 당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인.
ⓒ 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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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점령, #집단처벌, #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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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아디(ADI)에서 상근활동하고 있습니다. 아디는 아시아 분쟁 재난지역에서의 피해자와 현장활동가와 함께 인권과 평화를 지키는 활동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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