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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한 글쓰기> 책표지
 <삐딱한 글쓰기> 책표지
ⓒ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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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삐딱한 글쓰기>가 뭐냐? 중용의 덕을 지켜야지."
"이게 뭐 어때서?"

남편이 내가 읽는 책을 보고 한 말이다. 선비처럼 생긴 남편은 '사서삼경'을 열심히 읽더니 이젠 공자님이 다 됐다. 내가 읽는 책의 제목을 가지고도 트집을 다 잡는다. 옆에 있던 고등학생 아이가 책 표지를 보고니 자기 생각을 말한다.

"왜 난 표지도 마음에 들고 제목도 좋은데? 읽고 싶어."

아이 말에 상한 마음이 좀 풀렸다. 사실 요즘 새롭게 쏟아지는 글쓰기 책만 해도 그 양이 엄청나다. 이 많은 글쓰기 책 중 혼자서 삐딱한 책, 책 제목부터 대놓고 삐딱하니 내용은 또 얼마나 삐딱할까?

책 <삐딱한 글쓰기>는 보리출판사에서 새롭게 나온 책이다. 이 책은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의 저자인 안건모 선생님이 썼다.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는 버스 운전사가 쓴 책으로 널리 알려졌다. 안건모 선생님은 '일하는 사람이 글을 써야 한다'는 이오덕 선생님의 가르침을 온몸으로 실천하며 살아왔다. 이오덕 선생님은 <우리글 바로쓰기>라는 책을 썼고 우리말을 살리기 위해 평생 애쓴 분이다.

안건모 선생님은 현재 월간 <작은책>의 편집장으로 전업했지만, 여전히 전국을 돌며 '일하는 사람이 글을 써야 한다'는 주제로 글쓰기 강연을 하고 있다. 강연 내용에 살을 보태서 글쓰기 책을 냈다. 버스를 운전하던 안건모 선생님이 어떻게 글을 쓰게 됐을까. 책에는 안건모 선생님이 글을 쓰게 된 과정이 자세히 나온다.

책 한 권에 바뀐 그의 인생

어느 날 안건모 선생님은 주민 독서실에서 <쿠바 혁명과 카스트로>라는 책을 빌려 봤다.

"나는 그 책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 책은 나를 어둠 속에서 처음으로 끌어낸 책이었고 세상의 다른 한 편을 볼 수 있게 만든 책이었다. 스페인이 아메리카 원주민을 죽이면서 쿠바를 지배하는 과정이 나오고, 스페인을 몰아내는 전쟁을 수십 년 치른 뒤에는 미국이 들어와서 지배하는 과정이 나와 있었다. 나는 그걸 보면서 '우리나라하고 어떻게 이렇게 비슷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본문 39쪽)

책을 읽으며 글쓴이는 자신이 속고 살아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책을 더 많이 읽게 됐다고. 그때 안건모 선생님이 읽은 책은 <태백산맥> <남미의 혁명가 체 게바라> <찢겨진 산하> <노동의 새벽> 같은 책이었다. 그는 현대사를 새롭게 알게 됐다.

그리고 글쓴이는 받고 있던 월급이 합당한지 의심하게 됐다. 노동조합에 물어도 알려주지 않았다. 결국, 그는 노동단체에 가서 임금계산법을 배웠다. 그 결과 택시와 달리 버스 기사의 통상임금에는 식대와 교통비가 포함되지 않는 것을 알게 됐다. 이를 고치기 위해서 그는 변호사의 도움 없이 소송을 건다. 대법원까지 갔지만 결국 이기지 못했다.

그 뒤로 안건모 선생님은 '노동자의 권리 찾기'에 나섰다. 가장 먼저 찾아 나선 권리는 '휴가 찾기'였다. 회사에 월차랑 연차를 요구했더니 회사는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이런 회사의 탄압에 맞서서 글쓴이가 생각한 것은 '노보'(노동조합 소식지)를 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안건모 선생님이 노보를 만들기란 쉽지 않았다. 띄어쓰기, 맞춤법 어느 하나 쉬운 것은 없었다. 그러나 하고 싶은 말이 있었기에 어떻게든 글을 썼다. 안건모 선생님은 노보를 만들면서 글다운 글을 처음으로 써보게 된다. 노보가 나오자 글을 읽은 버스 기사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기사들은 속이 시원하다고 했다. 노보를 내면서 그는 말보다 글이 힘이 세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됐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노보는 두 번 만에 발행이 중단된다.

"철자법·띄어쓰기 틀려도 정성스럽게 담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한겨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글모음' 월간 <작은책> 광고를 보게 된다. 월간지를 신청하고 노동자들이 쓴 글을 읽게 됐다. 열세 살 때부터 공장에서 일한 박영숙씨의 살아온 이야기 속에서 그는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봤다. 꾸며서 쓴 글이 아닌 진솔한 글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저자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글도 쓰지 말라'는 말에서 충격을 받았다. '정작 말을 하고 글을 써야 할 사람들은 일만 하다 보니 쓸 틈도 없고, 또 스스로 무식하다는 열등감에 빠져 글을 못 쓴다'고 한 말에 정말 공감이 갔다. 내가 그랬구나. 나는 무식해서 글을 못 쓸 거라는 열등감에 빠져 있었어. 글은 우리 같은 사람이 써야 하는 건데 말이야. (중략)

일하는 사람들의 글이 담긴 <작은책>(이미지는 2014년 7월호 표지)
 일하는 사람들의 글이 담긴 <작은책>(이미지는 2014년 7월호 표지)
ⓒ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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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은 노동하는 사람들이 쓴 솔직한 글이면 철자법이나 띄어쓰기가 틀려도 정성스럽게 읽고 살펴서 담습니다."(본문 57쪽)

이 글귀에 용기를 내 그는 글을 보냈고, 그 글은 <작은책>에 실렸다. 그리고 그는 <작은책>에서 열리는 '글쓰기모임'에 나갔다. 거기서 이오덕 선생님을 만났다. <작은책> 편집장의 권유로 그는 '전태일 문학상'에 살아온 이야기를 써서 응모하게 됐다. '시내버스를 정년까지'라는 제목의 글이었는데 우수상을 받았다. 그 뒤 그는 <한겨레>에 한 달에 한 번씩 '흐린 뒤 맑음'이란 칼럼을 쓰기도 했다. 그에게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견디기 힘든 일도 있었다.

안건모 선생님은 책에 글이 변화시킨 자신의 삶을 담담히 그려놨다. 처음에는 글쓰기가 어려워서 쩔쩔매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바로 이 부분이 이 책 최고 장점이다. 우리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을 보면 '저런 사람은 처음부터 잘 썼을 거야, 나와는 본래부터 다른 사람일 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글 잘 쓰는 사람과 자신 사이에 벽을 치면 자신의 마음이 편하다. '나는 원래부터 그리고 앞으로도 쭉 글을 못 쓸 거야! 그러니 글 쓰려고 고생할 필요도, 애쓸 필요도 없어'라면서.

그런데 안건모 선생님은 이런 우리 마음을 잘 알고 있다. '나도 당신처럼 예전엔 글을 못 썼거든요'라고 하면서 독자에게 그 증거를 들이민다. '헐~, 진짜 나만큼 이 양반도 글을 못 썼네.' 두껍게 둘러친 담벼락들이 와르르 무너진다. 핑계가 없다.

글 못 쓰는 사람이 부족한 '이것'

안건모 선생님은 글을 쓰고 나서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보여준다. 시내버스 운전사에서 월간지 편집장이 된 것은 중요한 변화가 아니다. 안건모 선생님의 성격이 바뀌었다. 물불을 안 가리는 급한 성격이었는데 이제는 차분해졌단다. 진짜일까? 글쓰기를 하면 차분해진다는 것이.

이 책은 '글을 어떻게 써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이론서가 아니다. 글을 왜 써야 하는지, 글을 쓰면 어떤 점이 좋은지, 글쓴이의 삶을 찬찬히 펼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데 더 큰 목적을 둔 책 같다.

우리가 이론이 부족해서 글을 못 쓰는 게 아니다. 부족했던 것은 용기였다. 이론이 완벽할 때 글쓰기에 도전하겠다고 작정하는 것만큼 허무맹랑한 다짐도 없다. 만일 어떤 새댁이 김치를 완벽하게 담글 수 있을 때 김치 담그기에 도전하겠다고 말을 한다면, 그것은 김치를 평생 담그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을 한 번 읽어 보고 나서도 여전히 '글쓰기는 많이 배운 사람과 재능을 타고 난 사람만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지 시험해 보길 권하고 싶다. 물론 나는 아니었다. 이렇게 '글쓰기' 하나로 주어진 삶을 뒤집어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중용 좋아하는 남편님, 책 제목이 좀 삐딱하면 어때요? 사람들이 학교 다닐 때 배운 '글짓기'에 대한 두려움을 날려 버리고 글을 쓸 용기만 얻을 수 있다면.


삐딱한 글쓰기

안건모 지음, 보리(2014)


태그:#글쓰기, #보리출판사, #안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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