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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엔 각 방송사마다 이런저런 이벤트를 많이 한다. 평소엔 보기 힘들던 다양한 특집 방송이나 드라마를 제작·편성하고, 굵직한 영화들을 프라임 시간대에 방영하기도 한다. 물론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고 겉포장만 화려하고 알맹이는 부실한 명절 방송의 편성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TV는 명절에도 여전히 친근한 서민의 친구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대에도 불구하고 올해 추석의 TV 편성은 예년에 비하여 크게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큰 기대를 걸 필요야 없겠지만, 적어도 명절 때면 나날이 심해지고 있는 각 방송사의 프로그램 '재활용'컨셉트는 지적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 <삼순이 선발대회> 일회성 이벤트에 치중한 생각없는 졸속 제작의 관행은 시청자의 거센 비난을 유발했다.
ⓒ MBC
흔히 명절 때면 '특집'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방영되는 각종 오락 프로그램과 영화, 드라마 편성 등은 열에 아홉이 기존에 방영했던 프로그램이나 포맷의 재탕 삼탕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먼저 가장 이런 경향이 심각한 영화 편성.

명절에는 평소보다 갑절이상 많은 영화가 안방극장을 통해 방영된다. 물론 평소에 보기 힘든 굵직한 작품들을 안방극장에서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도 없지 않지만, 사실상 가장 큰 장점은 별다른 수고없이 편안하게 2시간 이상의 방송 편성을 커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방송사마다 굵직한 이벤트가 쏟아지는 추석 시즌에 막대한 제작비를 들이고 바쁜 스타급 연예인들을 일일이 섭외해서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어려운 데다, 극장에서 개봉한지 얼마 안되는 굵직한 상영 흥행작의 경우, 웬만한 특집 프로그램을 능가하는 시청률을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추석에는 예년에 비하여 방송 편성에서 특집 영화의 비중이 눈에 띄게 높아졌지만, 대다수가 지난 설이나 추석 시즌에 방영되었던 영화의 재탕인 경우가 많았다. 사실 케이블 TV 같은 새로운 방송의 득세로 시청자의 채널 선택권이 높아진 가운데서 케이블 TV에서 벌써 방영된 작품을 재방하는 것도 견디기 어려운 판국에, 공중파에서 명절을 핑계로 같은 영화를 2-3차례나 재활용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의견이 높았다. 그나마 예전보다 한결 나아진 것은 예년에 비해 극장 개봉한지 1-2년 이내의 비교적 '싱싱한' 영화들이 많이 늘어났다는 것.

다음으로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각 방송사마다 명절이면 빠지지 않은 연예인 물량공세의 '올스타 쇼'와 성공한 오락물의 NG,명장면 등을 모은 '총정리'식 프로그램들이 여전히 붐을 이루었다. 젊은 세대들이 선호하는 인기스타들과 춤을 소재로 한 MBC의 <스타 댄스 배틀 2005>처럼 비교적 참신한 기획도 있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은 일부 연예인들의 과장된 망가짐을 필요로 하는 '폭소가요제'나 '명랑운동회'식의 비슷한 포맷을 반복하며 지루함을 안겨주었다.

주로 젊은 연예인들 중심의 과장된 쇼로 일관하던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 비하여 <나훈아의 아리수>처럼 중장년층에 어필할 수 있는 수준높은 공연 프로그램의 편성은 시청자들의 호평을 얻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번 추석 TV 예능프로그램에서 가장 눈쌀을 찌푸리게 했던 것은 역시 과도한 자사 프로그램 홍보와 알맹이 없는 이벤트 방송이었다. MBC가 방영한 <삼순이 선발대회>와 KBS의 <올드미스 다이어리>쇼는 이런 속보이는 기획 방송의 대표적인 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삼순이 선발대회>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자사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을 또다시 재활용하며, 삼순이와 닮았다는 일반인 출연자들의 어설픈 개인기로 치장한 방송과 함께,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삼순이의 캐릭터를 '무식한 욕쟁이'나 '돼지'로 희화화하는 졸속 제작으로 오히려 시청자들의 지탄을 받아야 했다.

▲ <하노이의 신부>와 <별순검>등 신선한 소재의 추석 특집극은 시청자의 호평을 얻었다
ⓒ SBS
이번 추석 특집 편성에서 그나마 가장 신선했던 부분은, 특집 드라마 편성의 변화다. 종래 추석특집 드라마의 타이틀을 내걸고 방영되는 프로그램들이 뻔하고 구태의연한 홈 드라마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과 달리, 올해는 조선시대의 과학수사를 소재로 한 MBC의 <별순검>이나, 젊은 베트남 처녀와 한인 의사의 따뜻한 사랑이야기를 다룬 <하노이의 신부>같은 드라마들이 신선한 소재와 젊은 배우들의 매력을 앞세워 시청자의 호평을 얻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런 작품들은 대개 프라임 시간대에 방영되는 특집 영화나 버라이어티 쇼에 밀려 시청자의 주목도가 적은 오전이나 오후 이른 시간에 방영되며 아쉬움을 남겼다.

전반적으로 추석 TV 편성의 고질적인 문제점은 스타의 네임밸류와 물량공세에 과도하게 기댄다는 데 있다. 별다른 독창적인 아이디어도 없이 연예인들의 머리숫자나 과도한 개인기로 밀어붙이는 프로그램이나, 인기 프로그램의 재활용 혹은 총정리 정도로는 시청자들의 다양한 욕구를 만족시키는데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방송사들은 추석 특집 방송에 대해서 한번 때우고 지나치는 일회성 이벤트라는 생각을 가지고 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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