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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염없이 바라 보는 일 또한 중요한 여행
▲ 파묵칼레 하염없이 바라 보는 일 또한 중요한 여행
ⓒ 허성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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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은 걸 보려면 때로는 날씨를 포함한 운도 따라줘야 한다
▲ 카파도키아 보고싶은 걸 보려면 때로는 날씨를 포함한 운도 따라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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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은 일년 동안 '풍륜'을 끌고 다니며 <자전거 여행>을 썼다. 다시 읽어 보니 경주 감포를 지나며 썼던 <무기의 땅, 악기의 바다>라는 글에서 이미 장편 <현의 노래>를 구상했던 것같다. 진도대교를 넘으며 썼던 <충무공, 그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에 대하여>에서 우리 문학 최고의 소설 <칼의 노래>가 시작됐음이 분명하다.

여행은 작가에게 영감을 주며 소재를 제공한다. 지금도 원고지에 연필로 글을 '밀고 나가 듯' 쓰는 김훈은 자전거를 몸으로 '밀고 나가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여행을 완성했다. 작가에게 여행은 글에 영혼을 불어 넣는 의식이다.

<자전거 여행>의 책 머리에 김훈은 이렇게 썼다.

'이제 풍륜은 늙고 병든 말처럼 다 망가졌다. 2007년 7월에 풍륜을 퇴역시키고 새 자전거를 장만했다. 이 책을 팔아서 자전거 값 월부를 갚으려 한다. 사람들아 책 좀 사가라.'

자전거 값 월부를 갚겠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소득을 다음 여행의 경비로 쓰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사람이 일을 하는 목적은 첫째가 밥벌이고 둘째는 여행을 위한 준비다. 지나온 여행을 추억하며 다가올 여행을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거다.   

시인 고은은 그의 시 <낯선 곳>에서 여행을 이렇게 정의했다.

떠나라 / 낯선 곳으로
아메리카가 아니라 / 인도네시아가 아니라 / 그대 하루하루의 반복으로부터 / 단 한 번도 용서할 수 없는 습관으로부터 / 그대 떠나라
아이가 만들어낸 말의 새로움으로 / 할머니를 알루빠라고 하는 새로움으로 / 그리하여 / 할머니조차 / 새로움이 되는 곳 / 그 낯선 곳으로
떠나라 / 그대 온갖 추억과 사전을 버리고 / 빈주먹조차 버리고
떠나라 / 떠나는 것이야말로 / 그대의 재생을 뛰어넘어 / 최초의 탄생이다. 떠나라.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반복으로부터
▲ 카라만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반복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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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늘 읊조렸지만 되새겨 보니 고은은 여행을 공간을 이동하는 것이 아닌 사고의 전환을 의미하고 있다. 문학에서 독보적인 성취를 이뤄낸 고은은 밀실에서도 자기로부터의 탈출이 가능한가 보다. 우리 같은 범인이야 '아메리카가 아니라 인도네시아가 아니라' 해질 무렵 남해 바닷가에 서서 떠다니는 섬이라도 바라 봐야 '하루하루의 반복으로부터'의 관조가 가능할 일이다.

나와 동갑내기인 작가 이병률은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에서 멋진 말을 했다.

'시간을 럭셔리하게 쓰는 자,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 나에게도 여행은 시간을 버리거나 투자하는 개념이 아니었다. 여행은 시간을 들이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내게 있어 여행은 시간을 벌어오는 일이었다. 낯선 곳으로의 도착은 우리를 100년 전으로, 100년 후로 안내한다. 그러니까 나의 사치는 어렵사리 모은 돈으로 감히 시간을 사겠다는 모험인 것이다.'

여행을 떠났다는 일만으로 '시간을 럭셔리하게' 썼다고 볼 수는 없지만 '시간을 벌어오는 일'이라는 말에는 깊이 동감한다. 이번 터키 여행을 통해 서기 350년부터 현재까지 비잔티움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에서, 그리고 오스만 제국이 이스탄불에서 무슨 일을 벌였던가를 대충이지만 입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게 됐으니 천년이 넘는 시간을 사들인 셈 아니겠는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여행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곳을 보는 게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게 되는 데 있다.'

프라하와 부다페스트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여러 도시를 다녀온 지인의 사진 중 내 눈에 가장 인상적인 곳은 어느 아담한 호숫가였다. 일정이 어긋나서 들린 곳이라는데, 웅장한 성이나 깎아지른 절경도 없었지만 평온하고 아늑해 보였다.

약간의 일탈은 뜻하지 않은 행운을 주기도 한다. 스페인을 여행한 또 다른 지인의 스틸컷 중에서는 구겐하임이나 가우디보다 'NO WAR(전쟁은 그만)'라고 쓰여있던 디자이너 마리스칼의 작은 스튜디오가 더 좋아 보였다. 지인을 통해 새로운 눈을 갖게 됐고, 나를 통해 지인은 새로운 곳을 가게 됐다.

프루스트의 정의를 이렇게 고쳐 써 본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눈으로 새로운 곳을 발견하는 데 있다.'

여행은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행하기 위해서다
▲ 카파도키아 여행은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행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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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는 '사람이 여행을 하는 것은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행하기 위해서다'라고 했다.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여행하기 위해 사는 거다.

<당신의 삶을 영원히 바꿀 40가지 최고의 여행 팁>의 마지막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Distractify에 올라온 Yosef Lerner 블로그 기사를 Emma's notes 에서 번역/재정리한 글 http://emmasnotes.com/40-genius-travel-tips-kr/166)

'가장 중요한 것은, 계속 여행하라!'

여행이 무엇인지 삶이 무엇인지 알려거든 계속 떠나고 바라보고 부딪치며 살아갈 일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계속 여행하라
▲ 안탈랴 가장 중요한 것은, 계속 여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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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여행, #터키, #이스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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