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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필드는 쇠락해가는 마을이다. 젊은 사람이라면 떠나고 싶을 정도로 적막하고 황량한 이곳에 이선 프롬이라는 사내가 산다. 늘 마차를 끌고 우체국을 지나가는 그는 건강이 매우 좋지 못 하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낼 정도로 다리를 몹시 전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허먼의 얘기로는, 이선의 이마에 붉고 긴 상처가 생기고 마차에서 우체국 창구까지 몇 발짝 걷는 데도 기진할 만큼 오른쪽 반신이 심하게 짧아지고 뒤틀리게 된 것은 바로 그 충돌 사고 때문이었다."

그는 사고로 장애를 얻게 되었지만 하루도 일을 쉬지 않았다고 했다. 폭설로 길이 막혀도 그의 마차는 손님을 싣고 달렸다. 남다른 구석이 있는 그의 외모와 행동은 자꾸만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라는 궁금증

<이선 프롬>( 이디스 워튼 지음 / 손영미 옮김 / 문예출판사 펴냄 / 2009.10. / 9000원)
 <이선 프롬>( 이디스 워튼 지음 / 손영미 옮김 / 문예출판사 펴냄 / 2009.10. /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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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그는 젊은 시절 대학을 다녔지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가장이 되었다. 물려받은 목재소와 농장은 낡아서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아프신 어머니 병간호에 아내마저 병이 났다.

결국 빈털터리로 아내와 단 둘이 남겨졌다. 이선은 낙(樂)이 없다. 자신의 어머니를 돌보다가 병이 난 아내를 모른 척 할 수 없기에 더 열심히 일해야 했다. 하지만 밝고 명랑했던 모습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아픈 아내는 점점 신경질적으로 변해간다.

"지금 청명한 아침 공기 속에도 그녀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올랐고, 그 모습이 마치 붉은 태양빛과 눈 위에 빛나는 광채의 일부 인 듯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의 사촌인 매티가 하녀로 집에 들어오게 된다. 그의 앞에 나타난 매티는 놀랍게도 젊은 시절 아내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쾌활하고 여성스러운 그녀는 쓸쓸한 집을 밝히는 유일한 등불이다. 이선이 매티에게 끌릴수록 아내 지나는 더 성마르게 변해가고 이제 이 세 사람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일단 12월의 눈이 그치자 눈부시게 푸른 하늘에서 매일 햇살과 상큼한 공기가 눈 덮인 대지 위로 쏟아져 내렸고, 그러면 눈밭은 더 영롱하게 반짝거렸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낭만적이기만 한 겨울. 하지만 이들에게 가혹한 시련일 뿐이다. 겨울이 가져온 추위는 한 집에 부대껴 살 수 밖에 없는 두 여자와 한 남자의 거리를 어쩔 수 없이 좁히게 만든다.

"셋이서 그 부엌 한 칸에 모여 있는 걸 보면. 여름이나 날씨가 좋을 때는 둘이서 매티를 들어다가 응접실이나 토방에 놓는데 그럴 땐 좀 낫죠…. 그런데 겨울에는 여기저기 불을 피우기 어렵죠. 한 푼이 새로운 집이니까."

이선 프롬에게 행복을 가져다 준 사랑은 이제 죽지 못 해 사는 삶으로 변해버렸다. 그의 겨울은 그래서 더 잔인할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이선 프롬>( 이디스 원튼 지음 / 손영미 옮김 / 문예출판사 펴냄 / 2009.10. / 9000원)

이 기사는 <반디 앤 루니스> 누리집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이선 프롬 - 개정판

이디스 워튼 지음, 손영미 옮김, 문예출판사(2009)


태그:#이선프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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