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서울 송파구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서울 SK와 부산 케이티 경기에서 현주엽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오른쪽)과 서장훈 객원 해설위원(왼쪽)이 정용검 MBC스포츠플러스 캐스터와 함께 경기 해설을 하고 있다. 2015.2.20 << KBL 제공 >>

지난 20일 서울 송파구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서울 SK와 부산 케이티 경기에서 현주엽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오른쪽)과 서장훈 객원 해설위원(왼쪽)이 정용검 MBC스포츠플러스 캐스터와 함께 경기 해설을 하고 있다. (KBL 제공) ⓒ 연합뉴스-KBL


'추억의 농구콤비' 서장훈과 현주엽이 오랜만에 방송에서 함께 모습을 드러내며 팬들의 화제를 모았다.

두 사람은 지난 20일 서울 송파구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서울 SK와 부산 KT의 경기에서 해설자로 함께 호흡을 맞췄다. 21일에는 두 사람이 나란히 일일 게스트로 출연한 MBC 예능 <무한도전>도 전파를 탈 예정이다. 지난주부터 온라인 상에서 서장훈-현주엽의 이름이 나란히 검색어 상위권을 기록하는 등 두 사람의 동반출연이 만들어낸 높은 화제성을 증명했다.

서장훈과 현주엽은 1990년대 농구대잔치 열풍을 함께 이끌었던 주역이다. 휘문중고 1년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은 나란히 아마추어 시절부터 일찌감치 초특급 유망주로 주목받으며 모교의 우승행진을 이끌었다.

대학에서는 서장훈이 연세대, 현주엽이 고려대로 진학하며 진로가 엇갈렸다. 두 사람은 당시 대학 최강을 다투던 연-고대의 에이스로서 피할 수 없는 숙명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게 됐다.

1990년대는 한국농구의 르네상스기이자 대학농구의 최고 전성기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최대의 라이벌이었던 연세대와 고려대의 맞대결은 실업팀들을 제치고 당시 한국 성인농구 최고의 인기 빅매치로 꼽혔다. 농구팬들에겐 특히 서장훈과 현주엽이 함께 활약하던 시절의 연고전이 가장 치열했던 명승부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그때 그 시절 서장훈과 현주엽

프로 출범 이전까지 국내 최고의 농구대회는 실업과 상무, 대학팀들이 함께 출전하던 농구대잔치였다. 서장훈의 연세대는 1994년 대학팀 최고의 농구대잔치 우승을 시작으로 97년과 98년에도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현주엽의 고려대는 농구대잔치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서장훈이 미국 유학으로 1년간 자리를 비웠던 1995년 고려대는 대학무대 전관왕(5관왕)에 올랐고, 농구대잔치에서는 4강이 최고성적이었다. 두 사람간의 경쟁구도는 서장훈의 판정승이라고 할수있다.

하지만 당시 '대적불가'로 일컬어지던 서장훈을 상대로 그나마 버금가는 활약을 펼친 것이 바로 현주엽이었다. 현주엽의 첫 대학 데뷔 무대였던 1994년 MBC배 대학연맹전, 서장훈의 미국 유학 이후 첫 복귀무대였던 1996년 대학연맹전 등에서 고려대는 현주엽의 활약을 앞세워 서장훈이 건재하던 연세대의 덜미를 여러 번 잡은 바있다.

서장훈과 현주엽의 마지막 대결은 1998년 농구대잔치였다. 이때는 프로 출범(1997년) 이후로 농구대잔치가 사실상 대학팀들만 참여하는 아마추어 대회로 축소된 시점이라, 일찌감치 우승 경쟁은 연세대와 고려대의 양강 구도로 압축됐다. 3전 2선승제의 4강전에서 맞붙은 양팀은 그야말로 일진일퇴의 명승부를 펼쳤다. 1승 1패로 맞선 3차전에서 연장까지 가는 혈전 끝에 서장훈의 연세대가 결국 승리를 차지하며 결승에 올라 경희대마저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현주엽은 대회 내내 개인성적면에서는 오히려 서장훈을 능가하는 활약을 펼치며 유일한 대항마임을 증명했다.

당시만 해도 농구의 인기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던 시절이었고, 두 사람간의 라이벌 구도가 워낙 화제를 모으다 보니 이런저런 소문도 많았다. 가장 흔한 것이 두 사람의 불화설이었다. "서장훈과 현주엽이 고교 시절부터 팀 주도권을 놓고 싸움을 벌여서 둘 사이가 안 좋다"거나 심지어 "서장훈이 현주엽에게 맞고 다녀서 지금도 눈치를 보고 다닌다"는 등 확인되지않은 소문들이 한동안 사실처럼 떠돌기도 했다.

이에 대하여 서장훈은 여러 차례 미디어를 통하여 적극적인 해명에 나선 바 있다. 2013년 은퇴 후 MBC 예능 <무릎팍도사>에서 출연하여 "현주엽은 내 농구인생의 동반자"라고 정의하며 "워낙 어린 시절부터 함께했다. 처음엔 둘다 농구를 워낙 못해서 함께 놀러다니며 서로 의지하던 처지였다"고 설명했다. 20일 SK-KT전 해설을 위하여 동석한 자리에서도 불화설 언급이 나오자 두 사람은 "친하지 않으면 이 자리에 나왔겠느냐"며 웃어 넘겼다.

서장훈-현주엽 콤비는 국가대표팀에서도 오랫동안 함께 호흡을 맞췄다. 소속팀에서는 라이벌 관계였지만 대표팀에서는 서로가 골밑에서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2002년 부산 AG 결승전에서 중국을 꺾고 20년만에 우승할 당시 서장훈과 현주엽의 투혼은 단연 빛났다. 서장훈은 자신보다 20cm 이상 큰 NBA 출신센터 야오밍을 거친 몸싸움으로 틀어막았다. 또 현주엽은 후반 막판과 연장전에서 환상적인 1대 1 공격으로 여러 차례 결정적인 득점을 성공 시키며 역전승을 이끌었다. 두 선수가 함께 호흡을 맞춘 국제 대회에서 유일하게 차지했던 우승이기에 더욱 값졌다.

프로 진출 후 달라진 행보

두 사람은 프로 진출 이후 청주 SK(현 서울 SK)에서 한솥밥을 먹게 됐다. 서장훈이 당시 신생구단이던 SK의 지명을 먼저 받은 상태였고, 현주엽은 신인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지명됐다. 서장훈이 미국유학으로 1년을 보낸 탓에 후배인 현주엽과 대학 졸업과 프로진출 시기가 같아진 것이다. 두 사람이 한 팀에서 호흡을 맞춘 것은 대표팀을 제외하면 휘문고 시절 이후 처음이었다. 당시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최고 빅맨 두 사람의 조합에 팬들의 관심도 컸다.

그러나 서-현 조합은 SK에서는 그리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둘 다 개인성적은 빼어났지만 에이스로 활약하는 데 익숙해진 두 선수는 동선과 역할이 자주 겹치는 모습을 보이며 시너지효과를 내지 못했다. 급기야 이듬해 SK는 현주엽을 골드뱅크(현 부산 KT)로 트레이드시키며 교통정리에 나섰고 그해 서장훈을 중심으로 팀을 개편하며 창단 첫 우승까지 차지했다.

이후 두 사람의 행보는 조금씩 엇갈렸다. 서장훈은 프로농구에서 당대 최고의 공격형 빅맨으로 자리잡았고 SK와 삼성(2006년)에서 두 번이나 정상에 올랐다.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도 2회나 수상했다. 특히 서장훈이 KBL 역사에 세운 1만득점(13.231점)-5천리바운드(5235개)는 동시대에 당분간 깨지기 힘든 불멸의 대기록으로 평가된다.

현주엽은 대학 시절까지 정통빅맨에 가까웠지만 프로 진출 이후 점차 플레이 스타일이 바뀌었다. NBA 스타 매직 존슨이나 르브론 제임스처럼 장신이면서도 패스와 경기운영에 일가견이 있는 '포인트 포워드'로 전향했다. 10시즌 통산 397경기에 나서 평균 13.3득점을 기록하며 빅맨임에도 어시스트가(5.2개)가 리바운드(4.1개)보다 더 많았다. 이는 어지간한 특급 포인트가드의 기록을 능가하는 데서 현주엽의 다재다능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현주엽은 우승 운은 없었다. SK-골드뱅크(KTF 포함)-LG 등을 거치며 프로농구 정상급 선수로 평가받았지만 팀성적은 4강이 최고였다. 고려대 시절 숱한 우승컵을 들었던 것에 비하면 아쉬운 결과였다. 특히 선수 시절 후반기에는 잦은 부상으로 차츰 주전경쟁에서 밀려나며 2009년 비교적 이른 나이인 34세에 은퇴했다. 농구계를 떠난 후에도 사기 사건으로 인한 법정 공방, 음주운전 사고 등으로 구설수에 오르며 평탄하지 않은 삶을 보냈다.

제2의 인생 시작한 서장훈과 현주엽을 응원한다

서장훈과 현주엽은 현역 은퇴 후 나란히 제 2의 인생을 이어나가고 있다. 서장훈은 최근 <사남일녀>, <세바퀴>, <무한도전> 등 각종 방송프로그램에 활발하게 출연하며 예능인으로서 주가를 높이고 있다. 사실 현역시절만 해도 뛰어난 기량에 비해 거친 이미지로 인하여 인기가 없는 선수였던 서장훈은, 방송출연 이후로 오히려 대중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서장훈 특유의 '투덜대면서도 할 건 다하는' 모습이 고유의 캐릭터로 사랑받고 있는 모습이다.

현주엽은 올 시즌부터 MBC 스포츠 해설위원으로 또다른 도전에 나서고 있다. 초창기만 해도 어색하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점차 여유를 찾으면서 경기를 바라보는 깊이있는 시야와 이해하기 쉬운 해설로 농구팬들 사이에서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

각기 다른 영역에서 활동을 이어가게 됐지만 서로에 대한 존중과 농구에 대한 애정만큼은 변함없는 공통분모였다. 한편으로 은퇴한 농구스타들의 활약이 농구에 대한 관심을 되살리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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