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구의 생태계는 다양한 동물이 복잡한 다발처럼 얽힌 구조다. 하나의 개체는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서 싸우지만, 때로 공생과 기생으로 서로를 지탱한다. 하나의 생물이 멸종하면 다른 종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만약 지구에서 사라져 가는 동물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서로 대화를 할 수 있다면, 과연 무슨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과학 서적 <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는 이처럼 흥미로운 상상을 폭넓은 분야를 엮어 글로 옮겼다.

동물들이 릴레이로 띄운 편지

<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 표지사진.
 <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 표지사진.
ⓒ MID출판사

관련사진보기

책은 인간이 박쥐에게, 박쥐는 꿀벌에게, 그리고 꿀벌은 다시 호랑이에게. 13가지 동물이 각자 하고싶은 말을 담아 편지와 쪽지를 쓰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때로는 수줍은 말투로, 혹은 진심으로 염려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글은 각자에게 안부를 묻는다.

마찬가지로 생물의 세계에서도 가장 먼저 예민하게 기후 변화를 느끼는 '약자'에 해당하는 동물이 있습니다. 박쥐, 당신은 그 중 하나입니다.

물론 평소 동굴에 숨어 있거나 야밤에 돌아다녔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았고, 그래서 존재를 잘 몰랐기에 혹은 관심이 없었기에,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급작스러운 등장이 더 충격적이었을 뿐이지요. (본문 49쪽, '인간이 박쥐에게' 중에서)

여기서 언급된 '급작스러운 등장'이란, 2014년 1월 호주 북동부에서 10만 마리의 박쥐가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린 사건을 뜻한다. 계속된 이상 고온 현상으로 해당 지역의 박쥐가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코가 하얗게 변하는 '흰코 증후군' 질병이 퍼지면서 박쥐의 개체 수는 세계적으로 매년 크게 줄어드는 상황이다.

본문에 등장하는 많은 생물 중에서,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에게는 모두 공통점이 있다.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바로 '멸종'이다. 공룡이나 '네안데르탈인'처럼 이미 지구 상에서 사라진 존재도 있고, 호랑이와 박쥐, 고래는 눈에 띄게 줄어들면서 멸종 위기에 처했다. 서로에게 전하는 '안부 편지'가 애절한 내용으로 채워진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봄만 되면 흔하게 볼 수 있던 꿀벌은 원인 불명으로 개체 수가 점차 급감하고 있다. 호랑이와 고래는 20세기에 행해진 대대적인 사냥으로 극소수를 남기고 지구에서 사라져 간다. 멸종된 공룡에게 보낸 편지는 결국 '수취인 불명'으로 반송된다.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여러 동물들이 릴레이로 띄운 편지는 마치 각자의 흐릿한 발자취를 천천히 더듬어가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입체적으로 생태계 다룬 재치있는 과학 서적

과학을 다룬 정보 전달과 함께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형식이 눈에 띈다. 편지 중간 에세이나 시를 인용하는가 하면, 호랑이에게 띄운 편지에서는 '호렵도' 등의 민화도 볼 수 있다. 각 동물들이 걸어온 역사를 구체적인 수치와 시기를 더해서 생생하게 그려내기도 한다.

나는 늘 고래의 꿈을 꾼다. 언젠가 고래를 만나면 그에게 줄 물을 내뿜는 작은 화분 하나도 키우고 있다. 깊은 밤 나는 심해의 고래 방송국에 주파수를 맞추고 그들이 동료를 부르거나 먹이를 찾을 때 노래하는 길고 아름다운 허밍에 귀 기울이곤 한다. (본문 129쪽 중, 송찬호의 시 '고래의 꿈' 일부)

서로의 멸종을 언급하면서 글의 분위기가 무거워지는 부분도 있지만, 재치를 느낄 수 있는 점도 많다. 꿀벌이 호랑이에게 "우리 무늬가 닮았다"고 얘기하는 편지는 웃음이 날 정도로 귀엽다. 음악 밴드 '언니네 이발관' 1집 앨범 제목 '비둘기는 하늘의 쥐'를 인용하면서 오늘날 한국에서 유해 동물로 지정된 비둘기의 현실을 설명한 글도 있다.

수십 년 전 인류가 비둘기를 훈련시켜 쪽지를 전달하던 것과 대우가 크게 달라진 것이다. 실제로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비둘기는 학습 능력과 길 찾기에 뛰어나다고 본문은 알려준다. 수백 킬로미터를 건너가서 메시지를 전하고, 100개 이상의 도형을 암기하는 일이 가능한 것도 실험 결과로 알려준다.

그 밖에도 많은 지식으로 생태계의 이면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고래의 사체는 죽고 나서 심해에 가라 앉아 수년 동안 바다 생물의 영양 배급소가 된다. 한반도 호랑이의 궤멸은 일제 강점기 당시의 사냥이 큰 원인이었단다.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마지막으로 호랑이를 사살한 공식 기록이 있다고 한다. 고래는 돼지와 같은 조상인 우제류(발굽 수가 짝수인 동물)에서 갈라진 공통점도 알 수 있다. 게다가 고래가 지구에 처음 등장하던 때는 어류가 아닌 육지 동물이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인간의 언어를 빌려 안부를 묻다

인간의 언어를 빌려서 안부를 묻는 동물들의 이야기는 친근하면서 쉽게 이해를 돕는다. 진화와 멸종, 적응과 종의 관계를 주제로 놓고 편지 형식으로 차분히 설명한다. 문학과 철학, 생물학과 과학의 영역을 오가면서 많은 동물이 친구 관계로서 서로를 격려하는 글은 찡하면서도 훈훈하다.

굳이 저자가 우리말로 동물들의 심정을 풀어놓은 것은 이유가 있다. 등장하는 동물 대부분의 경우, 그들이 사라져 가는 이유가 인류의 무자비한 살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류가 훼손한 환경이 생물의 서식지를 극단적으로 좁히면서 멸종에 처한 상황도 더해진다.

"나는 항상 약자에 대한 태도를 보고 사람을 평가한다. 돈 많은 손님이 식당 종업원을 어떻게 대하는지, 상사가 부하 직원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본다. 그러나 이것이 인간성 시험의 종착지는 아니다. 모욕을 받은 종업원은 손님의 수프에 침을 뱉거나 더한 일을 할 수도 있다. 부하 직원은 일을 엉망으로 처리해서 상사가 그 위의 상사에게 혼나도록 할 수도 있다.

약자에게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에 대한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지만, 절대적으로 힘이 약한 무력한 이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을 거의 다 파악할 수 있다. 쿤데라가 말했듯이 가장 무력한 존재는, 바로 동물이다." (본문 329쪽, <철학자와 늑대> 중에서)

늑대와 함께 11년을 살았던 영국 철학 박사 마크 롤랜드가 저서를 통해 남긴 말이다. 그의 말을 두고 생각해보면 오늘날 지구에서 문명을 누리면서 군림하는 강자로, 인류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시기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살 수 없는 황폐한 세상에서는 우리도 온전히 살아갈 수 없을 테니까. <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를 읽으면서, 과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삶과 생명의 통찰을 접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윤신영 지음/ MID/ 2014. 10. 22./ 1만5000원)



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

윤신영 지음, Mid(엠아이디)(2014)


태그:#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 #멸종, #생태계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