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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 이어 계속

마을 옆에 바로 공동묘지가 붙어 있다. 돌로 쌓은 성채 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오자, 저 멀리 지중해가 바라보이는 훤한 전망과 함께 우리 앞에는 묘지가 펼쳐져 있다. 사실 이렇게 삶의 터전과 더불어 묘지가 있는 풍경은 프랑스에서 흔하다. 대도시 파리에도 페르라세르 묘지나 몽파르나스 묘지 등등 거대한 죽은 이들의 자리가 묵직하게 터를 잡고 있지 않던가.

'영원한 삶'을 믿는 가톨릭 종교 문화가 짙은 나라의 특성일 게다. 프랑스인들은 죽음을 가까이 두고 산다. 어느덧 해는 주황빛으로 물들었고, 천천히 서쪽으로 지고 있다. 병풍과 같이 마을을 두른 성곽을 노랗게 물들이며 여유로이 떨어지는 해가 넉넉하다. 시린 겨울을 가린 온화함에 자애롭기까지. 생폴드방스는 세상을 떠난 영혼들마저 계속 머물러있고 싶어하는 곳이 아닐까.

14년 전, 여기서 천국을 보았다던 그녀의 말이 떠오른다(수녀원 이야기 등 전편 참고).

"왜 다시 돌아왔어?"

프랑스 생폴드방스 성채 마을 옆에 붙어 있는 공동묘지 풍경
 프랑스 생폴드방스 성채 마을 옆에 붙어 있는 공동묘지 풍경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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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생폴드방스 성채 마을에 붙어 있는 공동묘지 풍경
 프랑스 생폴드방스 성채 마을에 붙어 있는 공동묘지 풍경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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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 같다던 곳에서 왜 다시 돌아왔어?"

얼마간 입을 닫고 있던 그녀는 잠시 먼 곳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연다.

"어느 순간, 평화가 두려워졌어. 이 평화가. 혼자만 누리고 있는 듯한 평화의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어졌다고 할까. 계속 이어질 평화가, 그토록 바랐던 평화가 막막하게 느껴졌어."

못난 나무들이 산을 지킨다고 웃으며 말했던 한 수도승이 떠오른다. 세속과 떨어진 '못난 나무'가 되기에, 그녀는 준비가 덜 되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녀가 굳게 믿는 하느님의 이끎이 지금 이 자리가 아니었던 것일까. 어렴풋이나마 느낌을 알 것 같은 막막함, 아리송한 공감의 끄덕임을 나는 하고 있다.

"가까웠던 신부님이 가지 말라고 뜯어말렸었지. 유럽 수도회들은 많이 침체되거나 활력을 잃었고 거기에 가면 나이 든 수녀님들 뒷바라지 하다가 끝날 거라고. 가면 금세 돌아오고 말 거라고. 그리고 실제 돌아오게 된 거야. 이유는 달랐지만. 나는 모든 걸 정리하고 떠난 상태였어. 돌아갈 비행깃삯도 없었지. 간신히 그 신부님께 전화해서 해결은 됐지만."

해는 계속 서쪽으로 떨어지고 있다. 마을까지 온통 내려앉은 짙은 주황빛 햇살을 바라보며, 다시 한국에 돌아오는 비행기에 올랐을 그녀의 심정을 헤아려본다. 이 하늘나라와 같다던 곳을, 저 푸른 지중해를, 여기 돌이끼로 된 마을을 뒤로하고 떠남을 택했던 그 심정을.

프랑스 생폴드방스 성채마을의 성곽을 비추는 늦은 오후의 햇살
 프랑스 생폴드방스 성채마을의 성곽을 비추는 늦은 오후의 햇살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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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생폴드방스 성채마을 옆 공동묘지, 늦은 오후의 햇살이 비추고 있다
 프랑스 생폴드방스 성채마을 옆 공동묘지, 늦은 오후의 햇살이 비추고 있다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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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수녀님들은 좋았어. 준비가 안 되었던 거지. 평화를, 평화와 침묵을 유지하는 방법을, 수도생활을 통해 보여주는 하느님의 뜻을, 어린 나는 감당할 수 없었던 거 같아."

가지 못한 길, 그렇게 3개월 만에 떠난 그녀, 그리고 남겨진 이 땅의 수녀님들. 그 때나 지금이나 지금 이 묘지는 똑같이 있었을 것이고, 거장 샤갈도 이름 모를 무덤들과 똑같은 크기로 누워 있다. 꽃다발은 좀 더 많이 놓여 있다. 그를 기리며 새긴 크고 작은 문구들, 불어,영어,중어…… 그리고 뜻 모를 언어로 적힌 글귀는 영원을 향하는 듯하다.

"나는 이렇게 변했는데, 여기 생폴과 수녀원이 그대로이듯 수녀님들도 별로 변한 게 없어 보여. 역으로 나는 가만히 머물러 있는데, 수녀님들은 하느님께로 한 발 더 다가간 느낌이랄까."

어느새 어둑해지고 있다. 분홍빛이 감도는 석양이 지중해와 맞닿은 수평선 하늘을 뒤덮고 있다. 수녀님들이 차려준 프랑스식 저녁 식사가 기다리고 있다. 관광 인파로 붐비는 성채 마을을 나와, 적막과 고요가 기다리는 수녀원으로 다시 걸어 올라간다.

수녀원에서 먹는 프랑스식 저녁 식사

프랑스 생폴드방스에서 보이는, 석양이 진 지중해
 프랑스 생폴드방스에서 보이는, 석양이 진 지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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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원 한편에 마련된 방문자들의 집에는 우리 말고도 머무는 이들이 더 있었다. 모두 프랑스인들이었는데, 연말·연초 휴가 기간을 차분하게 보내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파리에서 온 중년 부부도 있었고, 여기서 멀지 않은 칸에서 온 중년 여성도 있었다. 자신과 똑 닮은 아들을 데리고 온 모자도 있었다.

더러는 오랜 기간 머무르고 있는 사람도 있었는데, 여든이 다 되어 보이는 할머니였다. 그녀는 8명이나 되는 자식들을 다 키우고, 한때 갈망했다는 수녀 생활에 대한 여전한 갈망으로, 지금 이곳에 길게 머물고 있다고 했다. 식사를 마치면 우리는 모두 함께 뒷정리했는데, 누구보다도 열심히 설거지하던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쏙 들어왔다. 그녀는 확실히 요양이 아니라 생활을 하고 있었다.

오늘 저녁에도 둘러앉았다. 제한된 수도 생활을 하는 수녀님들과 겸상하는 모습은 아니었고, 우리를 위해 당번 수녀님이 음식을 준비해주셨다. 프랑스의 식사는 전식(Entrée), 본식(Plat), 후식(dessert)으로 세 번에 걸쳐 나온다. 언제나 바구니와 함께 깔린 바게트는 '기본옵션'이다. 와인은 '벌컥벌컥' 마신다기보다, 음식과 더불어 소량을 곁들여 먹는 모습이다.

수녀원에 위치한 성당에 정주하고 있는 신부님도 늘 함께 식사했다. 그는 이 지역 교구 신부라고 들었는데, 동그랗고 총기 있는 눈매에 카리스마 있는 인상을 지녔다. 그와 함께 바치는 기도로 만찬 자리는 시작된다. 알 길 없는 불어 대화가 식탁 위로 어지러이 떠다닌다. 프랑스인들은 대개 영어를 잘 못 한다. 그나마 통역이 가능한 수녀님은 식사 자리에 함께하지 않는다. 하얀 사람들 속에서, 노랗고 아담한 동양인 두 남녀는 말없이 음식에만 몰두한다.

프랑스 생폴드방스 도미니코 수녀원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
 프랑스 생폴드방스 도미니코 수녀원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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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생폴드방스 도미니코 수녀원에서의 식사 시간(첫날 저녁식사 때의 모습임)
 프랑스 생폴드방스 도미니코 수녀원에서의 식사 시간(첫날 저녁식사 때의 모습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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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왠지 우리를 보는 눈길이 호의적이다. 간혹, '꼬레'(Corée, 한국)라는 말도 들리는데, 이 프랑스인들, 특히 가톨릭 신자들에게 한국은 이 수녀원의 명맥을 잇게 해준 고마운 나라일 게다. 대다수가 한국인으로 채워져 있는 프랑스의 수녀원. 저 멀리 바다 건너 남미 출신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톨릭 교회의 혁신을 도모하고 있듯, 제3세계 이방 땅에 뿌려진 씨앗들이 이제 본토 터전을 채우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는 한국을 좋아해요."

아니나 다를까, 이 말이 들려온다. 그 이상의 대화는 어렵다. 봉수와(저녁 인사), 메르씨(감사해요), 위(예), 농(아니오)…… 간혹 들려오는 아는 단어와 불어 특유의 비음이 짙게 섞인 말들이 환한 미소와 함께 우리에게 던져지지만, 우리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웃음만을 지을 뿐.

세끼 모두 수녀원에서 먹고 있다. 프랑스 가정식을 이렇게 먹어볼 줄이야. 전에도 몇 번 파리에 왔었지만, 주머니 얇은 청년 여행자로서는 빵류나 무겁지 않은 한 접시 음식을 끼니로 때웠다. 오늘의 전식은 야채 수프('뽀타주'라고 부르더라)다. 두리번거리며 본토 사람들이 먹는 걸 보니 별다른 방식은 없다. 그냥 먹기도, 바게트에 찍어 먹기도 한다. 부담스럽지 않은 깔끔한 맛이다.

"쎄트레봉! (아주 맛있어요)"

본식은 생선 요리다. 농어에 각종 야채류를 쪄서, 별다른 양념을 가미하지 않은 음식이다. 양념류를 과하게 사용하지 않은 원재료 그대로의 맛이다. 앞자리에 프랑스인 아저씨가 생선과 잘 어울린다는 화이트 와인을 슬쩍 따라준다. "메르시" 감사 인사를 하고,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포크를 드는 내게, 그녀가 말을 건넨다.

"나 여기 있을 때 요리하는 영감을 얻었다고 할까. 특별한 양념이나 조미료를 많이 쓰지 않고, 원재료의 맛을 잘 살려서 조리하는 법 말이야."

나도 담백한 게 좋다. 그런데 이제 배부르다. 양이 많지 않은 나로서는 전식과 본식으로도 충분하다. 옆에 아주머니가 더 먹으라고 건넸지만, 나는 웃으며 손사래를 친다. 아주머니는 보디랭귀지로 "살도 안찌고 말랐는데, 더 먹어도 되겠는걸?"이라는 투로 말하고 있다. 나는 다시 미소로 거절한다. 이게 다가 아니다. 후식으로는 달콤한 건대추 야자와 초콜릿이 나왔다. 여기 사람들은 꼭 이렇게 식사 말미에 단 음식을 먹더라. 배불러도 이건 또 들어간다.

말없이 음식과 분위기만을 음미하며 식사를 하다가, 스마트폰을 꺼낸다. 필수 불어 표현이 담긴 앱을 실행하고, 어설프게나마 할 말을 찾아본다. 그래 이거다. 혀를 가다듬고, 외친다.

"쎄...트레...봉!(C'est très bon,이것은 아주 맛있어요)"

말 없던 자의 한마디에, 시선이 모두 나에게 쏠린다. 그러나 "쟤 지금 뭐라는 거지?"라는 눈치다. 나는 다시 혀를 굴리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천천히 "쎄트레봉!"을 말한다. 그제야, "아하!"라는 반응과 함께 모두 껄껄대며 웃는다.

수녀원에서 이런 음식을 어떻게 준비하는 것일까. 전에 여행할 때는 꼭 한식이 그립곤 했는데, 이렇게 정찬으로 제대로 먹으니 그리 물리진 않는다. 오렌지를 직접 키워 오렌지 잼을 만들어 내주셨듯이, 일반인들은 들어갈 수 없는 수도생활자들의 감추어진 공간에 가면, 비밀의 정원과도 같은 싱그러운 텃밭이 있는 것일까. 소박한 우리를 두르고, 구구구구 울어대는 닭이라도 기르고 있는 것일까. 여전히 궁금하고 보고 싶은 게 많은 이곳, 그리고 생폴드방스.

*다음 편에 계속

○ 편집ㅣ박정훈 기자



태그:#유럽 여행, #프랑스, #생폴드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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