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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는 광복 70주년을 기념하여 15일과 16일, 2부작 특집다큐멘터리 <최후의 심판>을 방영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룬 1부 '엄마여서 미안해'와 그들의 고통을 다룬 2부 '위안부로 죽고싶지않다', 총 2부작으로 구성됐다. 위안부 할머니 당사자들의 고통과 가족들의 이야기, 현재 일본의 모습과 독일의 반성과 사죄를 끌어내고 있는 유대인들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담아냈다.

다큐멘터리는 한 할아버지로부터 시작된다. 밝은 햇살 속 꽃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한 할아버지. 평범해 보이는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그가 그의 부인에게 들은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 할아버지의 부인은 바로 일본군 위안부였던 것이다. 그는 피해당사자가 아님에도 그 상황을 감당키 힘들었음을 솔직히 토로했다. 상처를 견뎌내기에 오랜 시간이 걸렸음을 짐작케 했다.

그는 자신의 부인인 할머니를 찾아 나선다. 평생 몸에 통증을 달고 살아온 할머니. 결국 이른 나이에 치매까지 온 그녀는 한 아버지이자, 남편인 그의 곁에는 무엇인가를 말하려는 듯 입술을 수없이 움직였다. 할아버지가 떠서 입에 넣어주는 음식은 할머니의 입가 주위로 흘러내린다. 평생 그녀가 가슴에 담아놓은 눈물이 쏟아지는 듯하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눈시울을 훔치며 뒤돌아선다. 평생 가슴 졸이며 살아온 그 부부. 행여 자신들의 자식이 피해를 볼까봐. 자신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 할아버지가 토해내는 단어들에는 회한, 포기, 그리움, 연민 등의 감정이 묻어 있었다.

위안부였던 엄마를 둔 자식들. 자신들의 엄마에게 놓여진 '위안부'라는 주홍 글씨. 그 엄마를 가진 자식들은 이름 대신 위안부의 자식이라 불렸다. 그녀들의 아들, 딸, 손주들은 그 고통스런 증인들과 함께한 가혹한 삶을 토해낸다. 그 할머니들와 그 자녀들은 피해자임에도 서로 그 상황을 감당하지 못해 같이 위로해주고 지켜주지 못했다. 그런 그들에게 대한민국 사회는 보호자가 아닌 손가락질을 하는 비정한 심판자였을 뿐이다.

그 고통스런 할머니들의 피해를 기억하는 건 그들 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이 목격한 고통스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백발의 노쇠한 네델란드인 존 프랭큰(93). 자신에게 살려달라고 한 그 목소리를 아직도 기억한다며 죄책감에 힘들어하는 듯 한 그. 도와달라고 소리친 이들은 강제 성노예였다며 위안부에 대한 충격적인 기억을 전해주었다.

또한 알렉시스 더든 미국 코네티컷대 교수는 "(위안부가 성노예였다는) 기본적인 진실은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며 "그것이 역사이고 피해자들의 인권에 대한 엄청난 침해였으며, 최근까지 많은 일본인들도 이 진실을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기억하지 않고 충분한 반성을 하지 않으려는 일본과 달리 증인과 진실은 아직 이 세상에 남겨져 있었다.

반면, 충분히 사과를 했다는 일본 측의 말과 행동은 우리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1947년 도쿄 전범재판을 통해 총 25명이 유죄판결을, 7명이 사형을 받았음에도, 그들은 일본 국내법상 범죄자가 아니었다.

"소화 29년 의원일보에 의하면 A급 전범을 포함한 모든 전범과 형사처형 또는 옥사한 사람의 유족에 대하여 공무조례에 해당하는 부조(보상)를 주도록 개정된 내용이 있습니다."

총무성 은급국 담당자의 답변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들은 유족연금과 조의금을 지급하는 법조항을 둠으로써 전쟁범죄자가 아니라 순직한 영웅으로 보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순진하게 김구 선생, 윤봉길,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봐야 하냐고 서로 싸울 때, 그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학살한 그들을 영웅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과와 보상이 충분하다'던 그들의 내재화된 깊은 마음 속에 전쟁범죄에 대한 반성과 사죄의 마음이 존재하는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일본의)국내법상으론 다 사면을 받습니다. 이 사람들이 그래서 은급법과 원호법(보훈법)의 대상이 되거든요. 일본은 적어도 전쟁을 했는데 그 전쟁 자체가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할 전쟁으로 보질 않는 겁니다."

동북아 역사재단 남상구 박사의 말은 그러한 사실을 충분히 설명해준다. 놀랍게도 우리의 현실이 이런 일본과 너무도 닮아서 당황스러울 뿐이다. 친일파들이 그저 생계형이라 어쩔 수 없었다며 이해의 시선으로 보는 순진한 생각들이 과연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묻고 싶다. 수많은 독립투사를 탄압하고 친일파들을 득세시킨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말들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의문스럽다. 헌법에 나와 있는 임시정부 수립일을 대한민국의 시초로 보지 않으려는 시도조차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아연실색케할 뿐이다. 우리가 존재하는 곳이 바로 한국임에도 설마 일본이 아닌가라는 착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순진한 우리와 달랐던 이스라엘. 나치헌터가 주는 교훈

반면 독일은 달랐다. 끈질기게 추적하여 지난 7월 93세의 노인 오스카 그뢰닝에게 징역 4년 형을 내렸다. 과거 아우슈비츠 수용소 회계사였던 그가 단 한명의 살인에도 관여하지 않았다고 항변했지만, '살인보조죄'가 적용되었다. 그 결과 뒤에는 1958년 독일이 세운 독일 연방 중앙 조사국이 있었다. 나치 전범 12만 명을 기소해 그중 6천명을 법의 심판을 받게 한 수사기관. 7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그들의 추적. 또한 독일 베를린에 있는 기억책임미래재단은 독일정부와 8찬 개의 독일기업이 재단을 설립한 것이다. 나치 독일의 강제노역 피해자 166만 명에게 우리 돈 7조 4천억 원을 배상했다.

"정치적인 로비도 관련이 있습니다. 숨길 수 없는 사실이며 유대인 단체 덕분에 재단이 설립되었고 우리의 활동 역시 모두 (유대인과)관련이 있죠. 우리는 동화 속이 아니라 갈등의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기억책임미래재단 귄터 자아트호프 이사장은 말했다. 그의 말은 독일의 반성과 사죄 뒤에는 강한 유대인들이 있다는 것을 짐작케 하였다. 또 순진한 생각으로 동화 속에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현실 세상은 갈등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조언 하는 듯했다.

다큐에 나타난 피해 유대인들은 순진한 우리들의 모습과는 달랐다. 잘못했으니 당연히 사과하라는 순진한 우리와는 달리 강한 피해자의 모습으로 나치독일을 아직도 꾸짖고 있었다. 나치사냥꾼이라 불리는 에프라임 주로프는 자신들의 단체는 '3분의 1은 수사관이고, 3분의 1은 역사학자이며, 3분의 1은 정치 로비스트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처럼 그저 순진하게 사과만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전범 척결을 위해)로비도 하고, 역사도 기록하고, 수사까지 했다. 그런 모습들은 순진한 대한민국의 모습을 질타하는 듯 보였다.

에프라임 주로프는 사죄의 조건을 설명했다. 첫째, 죄를 인정하는 것 둘째, 희생자를 추모하는 것, 셋째 아직 심판대에 세우지 않은 전범을 단죄하는 것 그리고 범죄에 대해서 교과서에 기술하고 교육하는 것, 마직막은 보상하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실천 없이 말만 앞세운 사죄는 쓸모없다는 것을 가해자에게 (피해자가 강하게)인식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강하고 끈질긴 피해자가 되어야 제대로 된 사과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해주었다. 그의 말은 충분한 사과를 했다고 강조하는 현재의 일본이 깊이 새겨야할 말 들이었다.

30여년 동안 모은 나치 전범을 찾아내기 위한 방대한 자료들. 실패도 많았지만 나치전범을 법정에 세우기 위해 25년 동안의 꾸준한 싸움. 놀랍게도 비정부기구인 그들을 후원하는 개인들의 기부금. 그 덕분에 아직까지도 숨어있는 나치 전범자들을 찾아내고 독일의 강력한 반성과 사과를 촉구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최후의 심판은 과연 누구에게 올 것인가?

일본 방위성(우리나라의 국방부) 내부에 위치한 이치카야 기념관. 평일인데도 관람객이 많아 예약을 해야 할 정도이다. 그 기념관에는 히로히토 일왕의 의자와 그를 위한 계단이 있다. 그는 재판에 기소되지도 않았다. 그들은 이곳에 2차 세계대전 일본의 군복까지 전시해 놓았다. 전쟁의 총 책임자로 사형당한 도조히데키는 관람객에게 부끄러운 전범이 아닌 기념해야할 영웅처럼 보이기조차 하는 듯했다. 2차 대전의 전범들의 기념품과 욱일승천기를 배경으로 어른, 아이 상관없이 기념사진을 찍는 일본인들. 과연 그들은 진정한 반성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이제 일본도 전후 태어난 세대가 전체 인구의 8할을 넘고 있다. 과거 전쟁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우리의 아들이나 손자,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도 사죄의 숙명을 안겨주어서는 안 된다."

지난 14일 '이미 충분한 사과를 했다'는 아베 신조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 그의 유체이탈식 뼈저린 담화의 핵심 문장은 그의 속마음을 엿보게 했다. 이를 갈고 복수를 준비해야한다고 다들 외치지만, 정작 이를 준비하고 실행하는 건 우리가 아닌 듯하다. 오히려 아베를 통해 보는 일본의 모습이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칼을 차고 옛 과거를 되새기는 일본의 늙은 노병의 모습에서 일본의 숨겨진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최후의 심판'이라는 다큐의 제목. 현실이 이런 상황인데도 설마 순진하게 그 제목처럼 심판이 아베의 일본에게 내려질 것으로 볼 수 있을까? 어쩌면, 가혹하게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과 어둠의 지난 역사에 눈감은 우리들에게 심판이 내려질 수 도 있지 않을까? 이스라엘 에프라임 주로프 박사의 말대로 대한민국은 진정한 사과를 받기 위해서는 강하고 집요한 노력을 다해왔는가? 우리는 끈질기게 일본 전범과 그 협력자들을 추적했는가? 일본에 사죄를 받기 위해 한국은 모든 노력을 다했는가?' 그 질문에 대한민국이 떳떳하지 못함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다큐의 마지막 왠지 중의적으로 다가오는 제목 '최후의 심판'. 과연 그 심판이 일본을 향한 것이 아니라 역사를 방관하고 피해자에 무관심한 우리들에게 향하는 것은 아닐지. 다만, 확실한 것은 과거를 망각하고 있는 이들에게 최후의 심판이 내려질 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다시 한 번 광복 70주년을 쉽게 지나가지 말아야 할 이유다.

덧붙이는 글 | 경기미디어리포트에도 송고됩니다.



태그:#광복70주년, #최후의 심판, #위안부, #나치헌터, #광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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