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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가이자 인권운동가 함석헌(1901-1989)은 생전에 '전쟁은 최고의 사치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20세기 제국주의가 판치던 시대에 살았고, 국가폭력 아래서 씨알들이 자유를 박탈당하고 삶이 억압당하는 것을 목격했다. 물질주의와 강한 군사력만이 중요시 되는 제국주의시대를 살면서 그는 인간의 생명을 담보로 이윤추구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군수산업과 자본주의 사회구조에 엄중하게 경고를 보냈다.

"사치스런 삶을 위해서 막대한 자원을 낭비하는 것은 인류에게 전쟁을 초래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윤추구가 모든 것의 동기가 되고, 이윤추구들 위해 기업들은 생활에 필요한 물건보다는 더 이윤을 남길 수 있는 값비싼 물건을 생산한다. 그래서 많은 경우에 정치경제적 힘의 추구는 인류에게 전쟁을 초래했다."

반세기 전 함석헌의 경고처럼 지금 세계 군수산업과 자본주의는 깊게 결탁되어있다. 그래서 끊임없이 지구촌 곳곳에서 전쟁을 일으키고 많은 인간의 생명을 앗아간다. 그리고 전쟁반대와 세계평화를 외치는 평화주의자들은 폭력적인 국가권력에 의해 교도소에 수감된다.

지난 2013년 6월 유엔 인권최고대표부가 발행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한 분석 보고>에 따르면 전 세계 양심적 병역거부 수감자 723명 중 한국인이 무려 669명이다. 전 세계 전체 병역거부 수감자 중 92.5%가 한국이라는 이 조그만 나라의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것이다. 그뿐이랴, 평시 군의문사 사망자가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전시 중인 미국군 사망자 보다 훨씬 많은 나라! 이것 역시 우리나라의 인권경시와 국가폭력의 풍조를 반영하는 생생한 현주소다.

아버지의 찢겨진 시신을 보고 다니던 직장 그만 두다

섭해쉬 캐틀씨 왼쪽, 노밸평화상 수상자 데스몬드 투투 주교와 함께
 섭해쉬 캐틀씨 왼쪽, 노밸평화상 수상자 데스몬드 투투 주교와 함께
ⓒ 섭해쉬 캐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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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해쉬 캐틀씨는 네팔에 사는 인권운동가이자 평화활동가다. 인권운동가였던 그의 아버지는 14년 전 괴한들에게 납치당한 후 잔인하게 학살당했다. 그는 아버지의 찢겨진 시신을 보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었다. 그리고 그 후부터 지난 13년간 그는 인권운동가와 평화활동가로 삶을 살고 있다. 아버지의 학살 사건이 그의 삶에 일대 전환점이 된 것이다.

오는 10월 12일부터 18일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전쟁반대(Stopping the War Business)' 국제 컨퍼런스와 그 준비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캐틀씨는 곧 방한한다. 왜 네팔의 평화활동가가 한국을 방문할까? 그 사연을 들어봤다. 다음은 지난 10월 1일부터 캐틀씨와 국제전화와 이메일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 한 것이다.

- 부친이 네팔에서 마오주의자에게 학살당한 사연을 듣고 싶다. 언제 어디에서 왜 부친이 학살 당하셨는지?
"아버지는 14년 전 인 지난 2001년 학살 당하셨고 아버님의 학살사건은 나와 우리 가족의 삶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아버님을 잔인하게 학살한 가해자의 구체적 신분은 지금도 정확히 모른다. 당시 아버님 학살사건을 조사한 네팔의 군경은 아버님이 마오주의자들에 의해 학살당했다고만 우리 가족들에게 알려줬다. 당시 아버님뿐 아니라 다른 이웃집 어른들도 마오주의자들의 손에 의해 학살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2001년 당시 네팔사회는 정치의 이름으로 잔인한 폭력과 학살이 일상화 되던 시기였다. 그래서 인권운동이나 사회정의를 외치던 수천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아버님처럼 학살로 생명을 잃었다."

- 학살당한 부친은 어떤 분이셨나? 또 어떤 일을 하셨나?
"젊어서 부친은 교사였고 나중에는 교직을 그만두시고 정치에 관여하셨다. 돌아가시기 10년 전부터 부친은 불의하고 부패한 정치 때문에 마음이 많이 상해하셨다. 그래서 정치를 그만 두시고 사회복지사로 일하시며 훨씬 보람을 느끼셨다. 당시 많은 동네 분들이 거의 매일 우리 집에 찾아와서 부친께 여러 조언이나 도움을 요청하셨고 부친은 아낌없이 그분들을 도와주셨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부친은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많은 꿈과 계획을 갖고 계셨다. 그리고 동네 형편이 어려운 분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다. 부친은 가장 높은 카스트계급에 속해 있었지만 신분에 아랑곳 하지 않고 가장 낮은 카스트계급 분들에게도 도움주기를 아끼지 않으셨다."

- 그런데 그렇게 물심양면으로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시는 부친을 마오주의자들이 학살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아마 누군가가 부친의 이런 행보를 좋아하지 않아서 학살한 것이 아닌가 추정 할 뿐이다. 부친은 당시 밤에 집에서 주무시다가 괴한들에게 납치되셨다. 납치 11일 만에 군경이 우리집에 와서 깊은 정글에서 부친의 시신을 발견했다며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나에게 함께 가자고 했다. 나는 군경을 따라 정글로 갔고 그곳에서 학살당하신 부친의 찢겨진 시신을 볼 수 있었다. 지금도 생각하기 싫은 끔직한 기억이다."

여생을 복수와 분노의 화신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 부친이 괴한들에게 학살당한 후 두 가지 길을 선택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한 길은 부친을 학살한 가해자를 찾아서 확실하게 보복하는 길일 것이다. 또 다른 한 길은 보복하지 않고 마음의 평화를 추구하는 길일 것이다. 당신은 보복의 길이 아닌 평화의 길을 선택했다. 물론 이 길을 선택하는 것이 아주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어떻게 그런 어려운 결정을 내릴 수 있었나?
"나는 여생을 복수와 분노의 화신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남은 모친과 형제들을 데리고 부친이 학살당한 곳을 아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부친이 납치당하고 결국 학살당한 집과 동네에서 사는 것은 나는 물론 모친과 형제들에게도 악몽과 같은 것이었다. 나와 가족들에게 필요한 것은 평화였다. 나는 보복의 악순환을 끊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마음의 평화를 찾아 가족들과 함께 그곳을 떠나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러한 내 여정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과도 연결된다. 부친의 죽음으로 나는 왜 세상에 이렇게 폭력과 불의가 넘쳐흐르는가의 문제를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고 내적 평화를 추구하기 위해 독서에 열중했다. 그렇지 않고는 못살 것 같았다. 그래서 또 다른 폭력과 보복의 길보다는 평화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 그래서 부친 학살사건 후 가족들이 고향을 떠나 카투만두 지역으로 이사 갔고, 카투만두에서는 한 인권단체에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그 때가 몇 년도인가? 그리고 그 인권단체는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 곳인가?
"그때가 2003년 이었다. 내가 일한 인권단체의 구체적 역할은 군사적 충돌이 많은 카투만두 지역에서 여성과 아동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경호와 자기방어 훈련을 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인권침해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사건을 기록하여 보고서를 만들고 언론에 알리는 일이었다."

평화주의자의 모든 평화는 가정에서부터 시작해야

AVP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는 섭해쉬 캐틀씨 왼족
 AVP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는 섭해쉬 캐틀씨 왼족
ⓒ 섭해쉬 캐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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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최고 카스트계층의 가문이고 부인은 카스트계층의 최하층 출신이라 결혼 초에 갈등이 많았다고 했는데, 그 갈등을 어떻게 극복했나? 결혼한 해는 언제인가? 당시 두 분의 나이는? 또 부인과는 처음에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
"결혼한 지는 5년 되었고 당시 나는 29세 아내는 27세였으며 우리는 같은 대학에서 석사학위 과정 중에 있었다. 그 후 우리는 비폭력프로젝트(Alternatives to Violence Project: 아래 AVP) 워크숍에서 만난 후에 결혼하게 되었다. 카스트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워낙 종교, 사회, 문화적으로 뿌리가 깊기 때문에 지금도 갈등을 다 극복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나는 부단하게 우리 가정에 균형과 평등의 가치를 가져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아내와 마음을 열고 이 문제에 대해 대화하는 시간이 많은 편이다.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이러한 갈등을 극복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평화주의자의 모든 평화는 가정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믿는다."

- 지난 2008년부터 비폭력프로젝트에 관여하면서 자신을 많이 성찰할 기회를 가졌다고 했는데, 비폭력프로젝트(AVP)가 뭔가? 어떻게 AVP에 관여하면서 자신을 성찰할 기회를 가졌는가?
"나는 평화운동가로서 아래 두 가지 질문을 늘 스스로에게 물어 본다.

1. 어떻게 나 자신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훼손하지 않고 살 것인가?
2. 어떻게 타인들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훼손하지 않고 살 것인가?

AVP 워크숍을 통해서 나는 이런 질문에 대해 성찰하고 생각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워크숍을 때로는 주도하고 때로는 참석자로 참가하면서, 나는 위의 두 가지 질문에 대해 성찰하고 그 방안을 찾을 수 있었다. 다른 말로, 내가 평화운동가가 되는 길보다는 내 자체가 '평화'가 될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고 할까?

만약 스스로가 평안하다면 무엇을 하건 평화스럽게 할 수 있다. 간디가 말한 '변화된 세상을 보고 싶으면 네가 먼저 변화되라'는 개념과 같다. 이런 경지를 이루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자기 성찰과 변혁이 아주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AVP가 내게 이런 기회를 많이 제공해 주었다. AVP를 통해 나는 스스로와 가족, 직장생활에서 더욱 사려 깊고 평화스러운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다른 말로, 복잡한 영적, 철학적 세계를 일상생활에서 단순하게 실천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불행하게도 현대의 학교와 대학에서는 시장에서 판매할 수 있는 기술은 가르치지만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기술은 가르치지 않는다. AVP는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기술을 가르친다고 할 수 있다."

- 최근엔 네팔에서 평화와 비폭력을 증진시키는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구체적으로 평화와 비폭력을 증진시키고 있는지 설명하면?
"요즘은 점점 더 국제간의 평화운동을 위한 나의 일과 책임이 증가하고 있다. 그래도 틈나는 데로 네팔의 토지개혁 문제에도 관여하고 있다. 평화는 단지 일시적 '프로젝트'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프로젝트는 후원자를 만족하게하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시간의 많은 부분을 제안서나 보고서 작성에 쓴다. 시간을 창의적으로 쓸 필요가 있다. 반면 큰 국제기구는 스스로 정한 평화에 대한 과제가 있다. 그래서 나는 지난 5년간 국제기구 일을 안 하고 자원봉사형태로 평화와 비폭력을 증진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생활비는 아내가 벌고 있어서 내가 감히 자원봉사 형태로 평화운동가 활동을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또한 아서태지역 프랜즈 평화팀(Friends Peace Teams Asia West Pacific: 아래 FPT AWP)이라는 조직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FPT AWP를 통해서는 주로 장기적인 관계를 통한 아서태지역 평화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동, 청소년, 성인들을 위한 맞춤형 평화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FPT AWP는 네팔과 다른 지역의 피난민을 지원하는 일도 했다. 네팔 학교에서는 학생들에 대한 체벌이 정상화 되어있는데 우리는 학교교사들에게 AVP 워크숍을 통해 체벌 없이 학생들을 지도하는 방법을 소개하기도 한다. 가장 최근에는 네팔 지진 피해자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과거 인도네시아 쓰나미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일도 했었다.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에는 몸과 마음을 함께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네팔은 80% 이상의 국민이 가난한 농부다

- 네팔의 토지개혁에 관한 일도 한다고 했는데, 이 일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기자를 비롯한 다수 한국인들은 네팔의 토지개혁 문제에 대해 잘 모른다.
"네팔은 기본적으로 농경국가이며 80% 이상의 국민이 농부다. 그래서 토지는 필수 주요재산이자 자원이다. 동시에 수많은 농부들은 몇 세대 동안 소작농으로 농사를 지으며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 어떤 지역에선,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농부들이 쫓겨나며 오랫동안 살아온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있다.

어떤 경우 자연재해로 농지를 몽땅 잃어버렸는데 국가가 전혀 복구지원을 안 해 준 농부들도 있다. 또 많은 농지가 거대 종교기관이나 재단소속으로 농부들이 소작농의 위치를 벗어 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토지증서는 전기를 들여오거나 은행융자를 얻는데 있어서 절대적 담보물인데 다수 국민들은 이런 토지증서가 없다. 그래서 네팔에서 '농지는 농부에게'라는 토지개혁문제는 아주 심각한 문제다.

나는 토지개혁의 중요성에 대해 신문에 글을 썼다. 농부들에게는 농지소유의 중요성을 가르쳤고 관련 외국서적을 번역, 출판했고, 또 소작농민들을 방문하여 함께 시위에 참여했다."

- 인도정부가 네팔에 대해 여전히 식민지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비판한 적이 있는데,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가장 최근 네팔 제헌국민회의는 새헌법을 발표했다. 90% 이상의 의원들이 이 헌법을 지지했다. 그 후 대한민국을 포함한 세계 대부분 국가들이 네팔의 이 역사적 새헌법을 환영했고 축하했다. 그러나 인도는 네팔의 이 새헌법을 환영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네팔과의 국경선을 인도 쪽에 유리하게 정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다. 과거에 인도는 네팔의 주요 정치 사안마다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쳐왔다.

그러나 이번에 네팔의 제헌의회 의원들은 인도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인도가 원하는 대로 헌법을 제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도는 네팔에 대해 불만이 많고 그래서 요즘 네팔에 대해 '비공식적' 봉쇄를 하고 있다. 반면 인도의 많은 학자와 정치인들은 네팔의 새헌법이 인도의 헌법보다 낫다고 공식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몇 십 년 전, 네팔은 '평화지역'임을 선포하고 국제정치의 각축장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당시 네팔 왕은 네팔이 비동맹 평화국가임을 선포했다. 당시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이런 네팔의 선포를 환영했다.

그러나 인도는 네팔의 이런 선포를 지지하지도 않고 인정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많은 경우를 통해서 인도는 여전히 네팔을 정치경제적으로 조정하고 식민화 하려는 의도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도가 네팔을 포함한 주변 약소국가들에 대하여 '빅 브라더' 역할을 하려고 하기에 인도는 그 명성과 신망을 주변국들로부터 잃어가고 있다. 인도정부가 네팔에 대하여 이렇게 악정을 펴고 있지만 일반 인도인들과 네팔인들의 사이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모든 전쟁은 반인륜적 전쟁범죄를 동반한다

AVP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는 섭해쉬 캐틀씨 왼쪽
 AVP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는 섭해쉬 캐틀씨 왼쪽
ⓒ 섭해쉬 캐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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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10월 12일부터 한국에서 열리는 '전쟁반대(Stopping the War Business)' 국제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컨퍼런스는 누가 주최자이고 참가자들인지 등에 대해 소개하면?
"주최는 1921년 설립된 '국제전쟁저항(War Resisters' International)'이라는 단체이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평화주의, 반군사주의 단체다. 나는 이 단체의 선출직 의원이다. 우리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무조건 전쟁을 반대한다. 모든 전쟁은 반인륜적 전쟁범죄를 동반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전쟁은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세계에는 전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들도 많다.

참가자들은 전세계 평화운동가들이다. 컨퍼런스를 통해 평화의 중요성이 논의 될 것이다. 우리는 비폭력을 통해서도 세계의 사회정의를 이룰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논의 할 것이다. 전세계에서 온 참가자들은 서로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컨퍼런스에서 공유 할 것이다. 우리는 전쟁 말고도 세계문제를 해결 할 길이 있다고 믿고 그 대안을 개발해 왔다. 이 컨퍼런스를 통해 우리는 전쟁과 군수산업을 규탄하고 비폭력적 방안을 증진할 것이다. 한국의 '전쟁 없는 세상' 이라는 단체와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라는 단체와 우리가 이 컨퍼런스를 공동주최하고 있다. 다른 한국의 평화활동가들도 이 컨퍼런스에 참가해 주시길 요청 드린다."

- 어떻게 평화와 비폭력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관여하게 되었나?
"우리 사회, 문화, 경제구조에는 평화와 비폭력이 필요하다. 평화와 비폭력을 통해 우리는 인간과 자연이 존중 받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 불행히도 세계는 지금 이윤을 중심으로 한 시장경제와 군수산업 그리고 정치권력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인간은 평화와 비폭력이 넘치는 세계를 만들 수 있다. 전 세계 시민들이 힘을 합쳐 열심히 노력하면 그런 세상을 앞당겨 만들 수 있다. 각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작고 보 잘 것이 없다고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세계의 작은 개인들이 마음과 힘을 합치면 세상은 크게 변한다.

14년 전 아버지가 학살당한 후, 나는 점차적으로 평화와 비폭력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세계에 많은 분들이 평화와 비폭력을 위해 삶을 바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점차 나도 세계의 많은 평화활동가들처럼 내 삶을 바쳐 평화활동가로 살고 싶은 욕구가 커져갔다. 그러자 주변에서도 나의 이런 욕구를 지원해 주는 단체나 개인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죽이는 대가로 돈을 벌고 이윤을 챙겨야 성공한 삶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군수산업이 번창하고 시장경제가 좌우하는 지금의 세계는 미쳐있다. 평화만이 인류가 당면한 정치, 경제, 환경재앙을 해결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확신한다."

* 섭해쉬 캐틀씨는
- 대학과 대학원에서 사회학 전공 그 후 지난 13년간 평화운동가로 활동
- 2008년 네팔에 AVP 시작
- 네팔 토지개혁 운동에 관여
- 인권평화운동 교재 집필, 편집, 번역
- 1996년-2006년 네팔 여성과 아동을 위한 인권운동 전개
- 2008년부터 AVP 진행자로 지금까지 200여개 워크숍 진행
- 네팔 시민단체 사무총장으로 2년간 근무하며 여러 국제시민단체 활동 참가


섭해쉬 캐틀씨는 오는 10월 17-18일 열리는 컨퍼런스가 끝나고 10월 19일부터 26일까지 한국에 머무르며 한국의 평화활동가와 인권운동가들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 섭해쉬 캐틀(Subhash Kattel)씨 이메일 주소로 직접 연락 바랍니다. hpdnepal@hotmail.com


태그:#섭해쉬 캐틀, #김성수, #네팔, #AVP,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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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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