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우석훈, 박권일의 2007년작 <88만원 세대>는 출판된 지 불과 8년 만에 고전의 자리를 꿰찬 명저다. 사회에 미친 파급력과 인기에서 김난도의 2010년작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쌍벽을 이룰 만하다. 내용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고 말이다. 이 두 작품은 21세기 초반 한국의 청년세대가 처한 현실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진단했다.

하나는 청년세대가 현실의 역경에 의연히 맞서야 한다고 강조하며 언제고 자신의 계절이 오리라는 믿음을 심어줬다. 다른 하나는 극심한 경쟁 가운데 놓인 청년 세대에 대한 사회 전반의, 특히 기득권 세대의 양보를 요청한다. 전자가 먼저 소개한 바 있는 <아프니까 청춘이다>고 후자가 이번에 소개할 <88만원 세대>다(관련기사 : 5년 만에 전설이 된 위선적인 청춘 지침서).

<88만원 세대> 책 표지
 <88만원 세대> 책 표지
ⓒ 레디앙

관련사진보기

책은 파리 제10대학교에서 생태경제학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우석훈 성공회대학교 외래교수와 '월간 말' 기자로 3년 동안 근무한 30대 청년 박권일씨가 공동으로 저술했다.

책 후반부 박권일씨가 언급한 내용에 따르면, 그는 주로 자료의 취합을 담당했고 저술 대부분은 우석훈씨가 맡았다고 한다. 책 후반부에 박권일씨가 직접 밝혔듯, 박사 학위를 받고 외래교수로 재직해온 학자와 3년 간 기자로 활동한 젊은이의 공저라는 점에서 이 책 자체가 책의 주제인 세대 간의 공존과 화합의 사례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책의 제목에 쓰인 88만원은 2007년 당시의 한국 비정규직 평균 임금 119만 원에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 대비 20대 평균임금 비율인 74%를 적용해 산출한 금액이다. 통계적으로 정확한 금액은 아니지만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인 청년세대를 가리키는 상징적인 의미로 우석훈 교수가 처음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책이 유명세를 얻으면서 '88만원 세대'라는 말은 비정규직, 그 가운데서도 열악한 여건에 처한 청년세대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자리잡았다.

저자들의 주장은 간명하다. 기득권 세대에 의해 청년층이 사실상의 착취를 당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장기적으로 한국사회의 경쟁력을 갉아먹으리라는 것이다. 왜 아니겠나. 저출산은 물론 얼어붙은 내수시장 등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모두 이와 연관이 있지 않던가.

이에 대해 저자들이 내놓은 대안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사회적 차원에서 청년층에 대한 기득권 세대의 양보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청년층이 주도적인 사회참여를 통해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청년세대에 대한 기득권의 양보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노동환경은 유연성이란 이름으로 갈수록 불안정해지고 있으며 사회적 자산을 갖추지 못한 청년층은 출발선에서부터 빚쟁이로 전락하기 일쑤다. 정치적·사회적 측면에서 청년의 목소리 역시 미약하다.

20, 30대 정치인은 손에 꼽을 정도고 연예계와 스포츠계를 제외하면 사회적으로 명성이 있는 젊은 세대는 그리 많지 않다. 한국사회는 <88만원 세대>가 경고한 대로 헤어날 수 없는 늪지대 가운데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88만원 세대>의 경고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 '88만원 세대'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가 되었다가 5포세대와 7포세대를 거쳐 이제는 모든 수를 포괄하는 N포세대까지 나아갔다.

불안정한 고용환경과 열악한 처우 속에서 한국의 청년들은 정상적인 삶조차 포기해야 하는 현실과 마주한 것이다. 더는 포기할 것도 없는 '헬조선'의 현실에서 청년세대를 위한 대안 마련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렸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청년층(만 15~29세)의 실업률은 7.4%를 기록했다. 말이 좋아 7.4%지 실업률 통계에 잡히지 않는 취업준비생 및 구직단념자를 포함하면 체감실업률은 몇 배가 뛸 것이다. 고용상태가 좋은 것도 아니다. 20, 30대 비정규직 근로자수는 각각 100만을 넘어선 지 오래다.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매년 증가해 어느덧 30%를 넘어섰다. 이 역시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수치를 고려하면 더욱 늘어날 게 자명하다. <88만원 세대>가 베스트셀러로 자리잡고 어느덧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한국이 처한 현실은 암담하기만 하다.

2007년 우석훈, 박권일 두 저자는 앞서 말한 두 가지 해법 말고는 별다른 방안을 내놓지 못했다. 아마도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어 가는데 일찍이 제기된 대안은 시행될 줄 모른다. <88만원 세대>가 고전으로 자리잡을 동안 한국사회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답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덧붙이는 글 | <88만원 세대>(우석훈, 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08. / 1만 5000원)



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박권일 지음, 레디앙(2007)


태그:#88만원 세대, #레디앙, #우석훈, #박권일, #김성호의 독서만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