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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하고 있는 오인영 교수의 모습
 강의하고 있는 오인영 교수의 모습
ⓒ 대구인권시민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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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8일 제67주년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을 맞아 준비한 두 번째 인권특강의 강사는 현재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에 계신 오인영 교수다.

오인영 교수는 강연 시작에 앞서 본인을 '안쓰러워' 보이는 사람으로 소개했다. 독립영화 감독이 된 제자가 찾아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배역이라며 맡긴 역할이 북한을 이탈하여 남한으로 온 지식인 역이라고 했다. 오인영 교수의 농담 아닌 농담이 오늘 강의의 맥락과 맞닿아 있다는 것은 강의 중반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역사와 관련된 강연을 하는 이들이 가장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이 바로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인데, 언뜻 멋있어 보이는 이 질문이 '복합적 질문의 오류'(논쟁에서 한 질문에 사실상 두 개의 질문을 담음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오류. 복합적 질문은 '그렇다' 또는 '아니다'로 대답할 수 없는 물음이다)를 품고 있어 참으로 답하기 어렵고, 오히려 강사가 질문자에게 여러 차례 질문하여 답을 찾을 때도 있다고 한다.

오인영 교수의 설명에 의하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역사'는 3개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그 첫 번째는 과거의 어떤 사실 그 자체라는 것이다. 6.25 전쟁 등 사건, 이순신, 유관순같이 존재했던 사람 그 자체. 그리고 두 번째 얼굴은 그러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록, 이야기, 해석이며 마지막 얼굴은 앞의 두 얼굴에 대하여 조사, 연구를 통하여 역사적 진술규명과 그 관련성을 추구하는 학문으로서의 역사학이라고 한다.

이러한 역사의 여러 얼굴 때문에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한가지로 명확하게 답하기 어려운 것이며, 사실 질문하는 사람조차 정말 답을 얻고자 하는 것에 도달할 수 없는 질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라는 말을 구분하여 명확히 그 개념을 이해하는 것, 즉 그 역사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은 질문의 대상이 어떤 것인가? 필요한 것인가? 하는 등의 질문에 명확한 답을 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오늘 강연을 준비하며 오인영 교수는 역사의 세 얼굴 중 '역사와 인권'이라는 주제로 두 번째 얼굴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두 번째 얼굴 이야기는 새롭지만 새롭지 않은 역사 '이야기'로 듣는 이들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말(言)이 있어 내가 오늘 나의 '현실'에 대하여 이야기하지만, 내가 이야기하는 '현실'은 일반적으로 갖는 '현실'이라는 단어의 의미보다 항상 작다.

나는 '과거'의 나를 설명하지만, 그 '과거'란 사실 삶의 모든 순간순간 전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내가 알고 있는, 그리고 내가 기억하기로 한 일부의 '과거'일 뿐이다. 내가 알고 있는 '과거'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으며 절대로 고칠 수 없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낡아지고 침식해 가는 기억에 맞서 합리적인 이성으로 붙들어 놓고, 이어가고 싶은 것들을 책으로 만들고 그 책을 후대에 전하는 것, 그것이 역사라는 것이 생겨난 이유이며 존재가치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 이야기'는 몇백 년을 심지어 몇억 년을 단 몇백 쪽의 책으로 정리할 수 있고, 또 정리하는 이유라고 그는 설명한다.

하지만 이런 역사는 이미 예견되었던 것처럼 무수히 많은 빈틈, 잊히거나 의식적으로 잊어버린 과거의 구덩이가 곳곳에 존재하고, 또 전 우주나 지구를 볼 수 있는 눈이 없고, 생각은 넘을 수 있으나 육체로는 넘지 못하는 공간의 한계에서 경험한 것의 기억만을 기록한 것이라서 사람마다 달라 정답과 오답이라는 논리로 구분할 수 없는 것이 '역사 이야기'라고 한다.  

그래서 오인영 교수는 "지금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의에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어느 면으로나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다. 역사 해석의 다양성을 부인하고, 나아가 가치의 다원성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국정화 시도는 반역사학적이며 반민주적 작태"라고 말한다. "제아무리 이념 대결의 수사로 포장하려 들지라도, 생각이란 게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능히 알만한 사정이다. 뉘라도 알만 한 일을 놓고, 새삼 의견을 피력한다는 것 자체가 우습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분단, 근대, 자본주의는 삼겹살, 주인이 되어 알고 즐겨라!

오인영 교수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참가자들
 오인영 교수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참가자들
ⓒ 대구인권시민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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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역사 이야기'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인권'과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는데 그 시작은 역시 '사람'이었다. 

'나'(我)라는 존재가 있고, 그 존재를 둘러싼 상황, 이 확장된 '상황'은 국가적 차원의 상황을 의미하는데 바로 오늘날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나의 역사적 상황은 '분단'이다. 그리고 그 상황을 품고 있는 시대는 '근대'라고 설명한다.

서양사에 있어 약 400년 전부터, 한국사로는 영조와 정조 시대 즈음, 그러니깐 200년 전부터 시작된 '근대'라는 거대한 흐름에 우리가 놓여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시대의 주된 체제인 '자본주의'. 오인영 교수는 이러한 분단과 근대, 자본주의를 나를 둘러싼 '삼겹살'이라고 말했다.

'분단'은 '떼죽음'을 연상시키는 전쟁에서 벗어나려는 우리의 노력이 평화와 생명존중의 사상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성으로 태어나 군인으로 지낸 시간이 전혀 없는 현재의 나에게 전쟁이나 그로 인한 떼죽음은 그렇게 짙게 배어있는 두려움은 아니다.

하지만 20대 그 시절 군인이 되어 언제든 전쟁이 일어나 죽을 수 있다는 경험을 한 많은 대한민국 남성과 그 아들을 군에 보내고 혹시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북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부모에게 떼죽음의 전쟁은 현실이고 피부에 닿아있는 공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죽음에 대한 공포는 서로 대치하고 있으나 전쟁은 피하기 위한 몸부림 속에서 위기 상황에 대한 조절능력을 키워줬고, 그 과정에서 생명존중, 반전, 평화의 사상이 우리 삶에 자연스럽게 배어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맹목적 평화는 노예의 삶을 선택하고도 행복하다고 이야기를 하는 어리석음을 낳을 수도 있다는 주의의 말도 잊지 않았다.

'근대'사회의 특징은 주술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고 한다. 근대의 사람들은 내 삶과 이어진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맹신했던 주술로부터 벗어나, 실현 가능한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고 한다. 기우제 대신에 양수기를 만든 것처럼. 이러한 근대 사람들은 당대의 빛나는 업적을 잊지 않고 유지하기 위해 가치 있는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였고, 그 교훈 속에서 민주주의를 꽃피웠으며, 모든 민주주의는 인권의 보호와 증진을 표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런 근대사회의 일반적 체제인 '자본주의'는 우리 삶 전체를 지배하고 있고, 자본주의의 본질인 시장, 그리고 그 시장을 대표하는 '돈'이라는 편리한 가치는 만능이 되어 버렸다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도 오인영 교수의 말처럼 시장의 만능화는 인권이나 민주주의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오인영 교수는 이러한 자본주의 체제의 근대사회에서, 특히 분단이라는 상황에 놓인 역사적 맥락 속에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이미 우리가 그러한 역사적 맥락의 영향을 오롯이 받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오인영 교수는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였다.

"세 얼굴의 역사가 가난한 사람에게 밥을 줄 수 없고, 아픈 사람을 낫게 할 수 없고, 전쟁을 막을 수는 없지만, 역사 이야기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딱 하나,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전해줄 수도 있으나 결국 누구에게나 반드시 알려주는 한 가지 사실은 결코 '돈'이 만능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한 깨달음 속에서 우리 역사(개인의 역사) 속 주인공인 '나'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실현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며 살아야 한다."

그리고 이미 주인으로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래는 오인영 교수에게 물은 몇 가지 질문과 그 답이다.

-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약속'이라는 세계인권선언의 현대적 의미는 무엇인가?
"인권은 신이 내려준 것도, 자연에서 주어진 것도 아니다. 인권이란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기억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없다면 인권은 약화되거나 소실될 수도 있다. 기억하려는 노력이 없어도 신이나 자연이 인간을 위해 알아서 지켜주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인권선언>도 자신의 인간됨, 타인의 인간다움을 망각하지 말자는 인류의 의식적 약속이다. 제아무리 '아름다운 약속'도 기억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여 잊어버리면 결국에는 실체 자체를 잃어버리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세계인권선언>은 슬기로운 인간이 힘들여 싹 틔운 인권이 '망각의 늪'에 빠지지 않고 '기억의 숲'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인류의 역사적 공약(公約)이다."       

- 평화와 비폭력을 고민하는 교사들은 교과서에 실린 역사적 전쟁(분쟁)에 대한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한다. 승자를 영웅시하는 것, '방어전쟁'의 정당성 등등.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교육방식의 변화가 필요한 것이라면 그 변화는 무엇인가?
"모든 역사란 현대사라는 말처럼, 역사는 현재의 눈으로 끊임없이 다시 해석된다. 역사 속의 승자와 영웅, 방어 전쟁과 침략 전쟁(혹은, 정당한 전쟁과 부당한 전쟁)에 대해서도 현재적 관점에서 재평가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현재적 관점'이란 이해관계가 아니라 인식관점을 말한다. 즉, 역사적 현대가 도달한 문명적 가치의 눈높이에서 과거의 사건, 현상, 인물을 평가해야 한다는 말이다.

'현대문명의 눈높이'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판단의 기준은, 물론 인권과 민주주의이다. 따라서 승자의 영광만이 아니라 패자의 인권에 대해서도 '눈을 씻고' 상대하는 것, 인간의 생명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라는 게 명목상의 구실이 아니라 과연 실제로 그러한가를 따져보는 일, 지극히 당연하다고도 중요한 역사적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 인권교육에 참여한 여성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본인은 일본에서 태어나 한국 남성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한국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이가 집에 와서는 대뜸 '엄마는 왜 나쁜 사람이야? 왜 나쁜 일을 했어?'라고 질문했다고 한다. 그날 아이는 학교에서 일제강점기를 배우고 왔단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여러 나라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다. 흔히들 국경 없는 전 지구적 시대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 역사 교육은 아직 그런 흐름과 거리가 먼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일부 사람들은 '한국사'라고 한정 짓지 말고 끊임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광역단위의 지역을 묶어 동아시아사 등등으로 역사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깨우친다면 특정 국가나 사람을 단지 나쁜 그 무엇으로 규정하여 마침표를 찍는 일은 없을 것이다. 더 많은 논의와 고민을 통해 바꿔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알림>
대구인권사무소 릴레이 화요 인권특강 일정(저녁 6시 30분부터 대구인권교육센터에서 진행됩니다.)

3강 12. 15. 노동과 인권, 송곳만큼 날카롭다(하종강 교수)
4강 12. 22. 공교육은 혁신되어야 한다(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덧붙이는 글 | 인권위와 함께 하는 시민기자단이 꾸려가는 '별별인권이야기'는 일상생활 속 인권이야기로 소통하고 연대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글쓴이 김태은님은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역사이야기, #역사와 인권, #생명존중, #인권특강, #세계인권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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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와 함께 차별없는 인권공동체 실현을 위하여 '별별 인권이야기'를 전하는 시민기자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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