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7일 오후, 국민회의 광주광역시당 창당대회가 열리는 김대중컨벤션센터 대강당 입구에서 김영집 광주시당위원장(맨 오른쪽)과 함께 참가자들을 맞이하고 있는 천정배 의원. 그가 야권연대와 통합 국면에서 누구의 손을 잡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7일 오후, 국민회의 광주광역시당 창당대회가 열리는 김대중컨벤션센터 대강당 입구에서 김영집 광주시당위원장(맨 오른쪽)과 함께 참가자들을 맞이하고 있는 천정배 의원. 그가 야권연대와 통합 국면에서 누구의 손을 잡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이주빈

관련사진보기


천정배 의원이 이끄는 (가칭)국민회의가 17일 오후 3시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광주광역시당 창당대회를 열었다. 전북도당과 서울시당에 이은 3번째 시·도당 창당대회로, 국민회의는 오는 31일 중앙당을 창당할 예정이다. 광주시당 창당대회에는 김영집 시당위원장 등 약 1500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천 의원은 격려사에서 "오랫동안 우리가 밀어온 야당은 우리 호남을 하청 동원 기지로 여겨왔다"라며 "광주는 표만 주고 무시당하는 바보 같은 그런 상황이 계속됐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호남의 정당한 이익을 지키면서 정권도 교체해야 한다"면서 "그러기 위해선 먼저 무기력한 야권부터 전면 재구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야권 전면 재구성의 과제로 "야당을 지배하고 있는 폐쇄적 패권세력의 교체"를 들었다. 그리고 그 일은 "개혁의 대상들이 어느날 갑자기 개혁의 주체가 되는 마술쇼를 통해서 해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낡은 정치인들이 정치생명을 위해 이합집산해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자신이 주도하는 국민회의 창당 준비세력이 야권의 전면 재구성을 통한 정권교체의 주역이라는 얘기다. 과연 그럴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현실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천정배 의원과 국민회의가 내건 정치 과제를, 현재 구축하고 있는 정치역량에서 풀어갈 수 있는가를 따져보는 것이다. 천 의원이 내건 정치 과제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호남정치 복원'이고, 둘째는 이른바 '새로운 DJ 발굴'이다. 두 과제는 총선 승리와 정권교체를 목표로 하고 있다.

더민주 탈당 정치인들 모두 '호남정치 복원' 내걸어

우선 '호남정치 복원'을 정치이슈로 만들어내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안철수 의원이 이끄는 국민의당에 합류한 호남 출신 의원들도, 탈당을 예고하고 있는 박지원 의원도, 또 다른 신당을 추진 중인 박주선 의원도 호남정치 복원을 주창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을 탈당한 거의 모든 세력이 '호남정치 복원'을 슬로건으로 삼고 있다. 더 이상 변별력이 없는 정치테제라는 얘기다. 근래 천 의원이 호남정치 복원이 아닌 '호남 개혁정치 복원'을 주창하며 개혁 선명성으로 부각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다음으로 총선 승리와 나아가 정권교체 주역이 될 소위 '뉴 DJ'를 대거 발굴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경쟁력 있는 인물을 많이 영입한다는 것은 총선 국면에선 기선을 제압하는 강력한 방안이다. 아직까지 천 의원이 주도하는 국민회의에 다른 정치세력들이 깜짝 놀랄만한 '뉴 DJ'가 발굴되거나 영입되진 못했다. 되레 더민주가 연일 인재영입 쇼 케이스를 펼치며 탈당 흐름을 제어하고 지지율을 반등시키는 강력한 기제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정치담론은 잠식당했다. 경쟁 정치세력을 긴장시킬만한 인재 풀을 확보하는 것도 미흡한 상태다. 천정배의 국민회의가 현재 쥐고 있는 것은 '천정배'로 대표되는  강력한 개혁 선명성과 야권연대 혹은 야권통합의 정치 지렛대로 더민주나 국민의당으로부터 요청을 받고 있다는 것뿐이다. 너무 야박한가? 그러나 현실이 그렇다.  

천 의원의 국민회의가 처한 현실은, '야권연대' 나아가 '야권통합'을 주요한 전략과제로 검토하게 만든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천 의원과 국민회의는 '야권연대 3원칙'을 마련해서 조율과 탐색, 협상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야권연대 3대 원칙은 ▲가치와 비전의 연대 ▲반 패권연대 ▲승리와 희망의 연대다.    

갈수록 간극 벌어지는 국민회의 - 국민의당

천정배 의원이 이끄는 국민회의 광주광역시당 창당대회에는 약 1500명의 지지자들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천정배 의원이 이끄는 국민회의 광주광역시당 창당대회에는 약 1500명의 지지자들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 이주빈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천 의원과 국민회의가 이 원칙을 적용하며 옷매무새 고쳐 잡는 여유를 부리는 상대는 아직까진 더민주뿐이다. 더민주만이 문재인 대표 등의 공개적이며 공식발언을 통해 천 의원의 국민회의와 당 대 당 통합까지 제안하고 있다.

안철수 의원이 이끄는 국민의당과 천정배 의원이 이끄는 국민회의는 갈수록 간극이 벌어지는 모양새다. 보수우익으로 외연을 확대하려는 국민의당 정체성은 보다 선명한 개혁성을 강조하는 국민회의와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한상진 국민의당 창준위원장의 '이승만 국부' 발언이다. 국민회의는 "그런 식으로 하면 같이 못 한다"라고 경고를 보낸 상태다.

광주시당 창당대회에서 만난 국민회의측 한 인사는 "안철수 신당인 국민의당과 우리는 정체성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며 "국민의당이랑 연대하느니 문재인 대표가 제안한 것처럼 차라리 더민주와 통합하는 것이 훨씬 명분 있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또 "안철수 국민의당에선 우리에게 공식적인 통합의 말도 건네지 않고 있다"라며 "아쉬워서 손 내미는 사람이 하나라도 더 챙겨줄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렇다고 해서 천 의원의 국민회의가 잇단 러브콜을 보내는 더민주와의 연대나 통합에 기울진 것도 아닌 듯하다. 천 의원은 17일 "(문재인 대표와 연대나 통합과 관련) 서로 깊이 이야기를 나누거나 한 것은 없다"라며 "해체에 준하는 변화가 있어야 하고 반 패권 등 연대의 3원칙이 지켜질 때 검토할 수 있다"라고 거듭 주장했다.

이어서 천 의원은 "이는 연대의 조건이라기보다 그 당이 그럴 리가 없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 한 표현"이라며 "호남은 경쟁, 비호남은 연대를 통해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를 만들어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 역시 변한 바 없다"라고 강조했다.

'해체에 준하는 변화' 일어난 더민주

묘한 정치적 여운이 남는 발언이다. '해체에 준하는 변화'는 아닐지라도 더민주엔 급격한 변화가 일고 있다. 당명이 바뀌었고, 연일 새로운 인물들이 영입되고 잇으며, 김종인 선대위원장 체제가 구성됐고, 문재인 대표의 2선 후퇴가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천 의원의 국민회의가 더민주의 러브콜에 어떤 식으로든 응답해야 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제때에 응답하지 않는 정치는 자칫 무능하게 비칠 수 있다. 연애도 정치도 '밀당'을 과하게 하면 신물이 난다. 이 모든 것이 사람들을 멀미나게 만드는 '표류의 정치'다. 표류의 정치는, 시간만 허비하다가 결국 목표와 이상을 잃어버리는 정치다.

바닷길잡이(Way Finder)와 같은 정치를 해야 한다. 웨이드 데이비스(Wade Davis)가 인용한 폴리네시안 웨이파인더 마우의 말을 빌리자면 "바닷길잡이는 바다를 읽을 수 있으며, 머릿속에 섬이 보여 길을 잃을 일이 없는 이"다. 바다는 처한 현실이고, 섬은 이르러야 할 가치와 비전이다.

천정배 의원은 전남 신안 암태도가 고향인 섬사람이다. 그 역시 정치라는 바다에서 자신의 길을 읽었고, 머릿속에 자신이 이르러야 할 섬이 보였기 때문에 배를 띄웠을 것이다. 천 의원이 표류선의 무능한 선장이 될지 머릿속에 섬을 발견한 바닷길잡이가 될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운명을 가를 시간이 흐르고 있다. 


태그:#천정배, #야권연대, #문재인, #안철수, #광주
댓글4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