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왜 말썽을 피우고 다니나?

국장실로 들어서자마자 편집국장은 나를 나무라듯 물었다. 예상을 못한 바는 아니었지만 일의 자초지종을 묻기도 전에 처음부터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던 터라 잠깐 침묵했다. 아니 내 감정을 누그려트려 보려고 시간을 벌었다고나 할까. 기분이 많이 언짢으신가 보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나는 할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분들이 어떤 얘기를 했는가는 대충 짐작은 가지만, 소위 지식인들이라면 자기네들이 나에게서 불쾌감을 느꼈다면 상대방도 자기네들로 인해 그 이상의 모욕감, 모멸감을 느꼈을 거라는 것쯤은 알았으리라 보는데요. 어떻게 자기네들의 감정만 소중하고…

그리고 나서 나는 이틀 전 저녁에 있었던 일을 사실 그대로 상세히 말씀드렸다. <지식인 지도가 바뀐다>는 기사에 쓸 사진을 찍기 위해 대학로에 있는 한 기획사 사무실에 갔다.

서울대 미학과 출신 9∼10명이 함께 모여 있는 장면을 찍기 위해서였다. 약속 시간보다 40분이 더 지나서야 유홍준(문화답사기를 써서 일약 대스타가 된)씨가 마지막으로 도착했고, 나는 그 분들께 좌석에 앉아 있는 모습보다는 문밖 계단에서 촬영을 하면 여러분들의 모습을 한 장에 다 담을 수가 있으니 협조를 바란다고 정중히 부탁했다.

그 때 유홍준 씨가 말했다. 여기에는 연출의 대가(연극 연출자를 말함)가 있으니 그 대가의 연출대로 사진을 찍도록 하자. 나는 찍사라는 의미임을 모르지 않았음으로 조금 기분이 상했다. 그러나 참고, 연극 연출과 신문사진 연출은 많이 다르니 제 부탁 좀 들어달라고 했다. 두어 번을 정중하게.

그러자 그 중 한 분이 "사진사 말 듣지"했고, 유홍준 씨는 또 "사진사가 아니야, 사진기자셔어!"하며 존칭어를 빙자해서 완전히 비아냥거리는 투로 얘기를 했다.

소위 우리나라 문화 지식인의 한 중심에 서있는 분이. 다른 사람도 아닌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이력을 자랑으로 삼고 다니는 사람이. 그러나, 나는 또 참고 문밖에 나와 기다렸다. 몇 번을 다시 부탁했다. 두 분이 먼저 나와 보슬비가 약간 내리고 있는 계단에 서 계셨는데, 다른 분들은 내 부탁에 응하지 않고 여전히 자리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문득 이들이 소위 우리나라를 이끌고 있는 지식인 집단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지식인 기사에 나가는 사진입니다. 지금 여러 지식인들의 모습을 보니 예비군 훈련장이 연상되어지네요. 먼저 질서를 지키는 사람은 늘 손해를 보는…, 저기 두 분은 미리 나오셔서 비를 맞고 계시니 좀 서둘러 주시지요"라고 빗대어 말했다.

그러자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끼어 내 옆으로 나오고 있던 유홍준 씨가 그 키 큰 얼굴로 작은 키의 내 몸집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마치 조그만 놈이 까불어.

내가 너희 중앙 일보의 높은 사람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데 니가 어디서 함부로 이런 눈빛이었다면 내 선입관일까. 대충 자리를 잡고 선 것을 확인하고 앞에 계신 분들처럼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해주시면 감사하겠다며 주문을 하자, 또 유홍준 씨가, "이 사람아, 이렇게 세워 놓고 어떻게 자연스러울 수가 있나!"했다.

나는 이 말을 들으면서 계속 셔터를 누르며,
"저도 이런 류의 기념사진을 찍고 싶지 않습니다. 저도 보도사진 전문가인데 이런 기념사진이나 찍어주는 사람이고 싶겠습니까? 그래서 조금이나마 다른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해달라고 하는 겁니다."했다.

그러자, 또 다른 한 분이,
"사진기자들은 찍은 사진 좀 달라고 하면 안 주더라"고 하기에, 역시 계속 후레쉬를 터뜨리며,
"잘 아시다시피 제가 개인적으로 여기 나와 사진 찍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취재한 모든 필름은 신문사에 귀속되기 때문에 사진기자가 마음대로 하는 건 아닙니다. 다른 신문사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했더니,
"자네는 사진을 찍는 일보다도 말을 더 잘하는구먼"했다.

나는 유홍준씨 같이 소위 민주화 운동을 하다 1년간 투옥 경험도 해 보았다는 사람이 상대방의 일(입장)을 무시해 버린 채 막 얘기해대는 비민주적이고 몰상식한 행태에 대해 정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무튼 일을 급히 마치고 나오면서 나는 잘 참지 못하는 내 성격 탓에 혼잣말로 그랬다.

"지식인들이라면 지식인답게 상대방 입장도 들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왜 이렇게 자기 말들만 할 줄 아는 건가."
아마 그 소리를 그 분들이 들었던 것 같다. 그게 전부였다. 내 얘기가 끝나자 편집국장이 말햇다.

"얘기가 서로 다르지만, 귀하가 취재하러 갔으면 마찰없이 일을 잘 끝내고 나오면 되지 취재원들과 불상사를 만드나?"

"저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모든 취재원들에게 정말 성심껏 대하려고 애씁니다. 그런 점에서 그들에게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아마 그들이 이땅의 최고 지식인들이었기 때문에 더욱 민감하게 대했다면 모를까."

기자 생활 1∼2년 한 것도 아니고 눈치 빠르게 행동해야지 그렇게 시끄럽게 일을 처리해서야 능력있는 기자라고 할 수 있나? 여기저기서 전화 왔었다는 얘기 못 들었나? 내게 유홍준 씨가 직접 전화했고, 문화담당 국장도 전화를 받았다고 하고,

또 홍 너희 이사장(삼성미술재단 이사장.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부인이며 중앙 일보 홍석현 사장의 누님) 바로 밑에서 호암미술관장을 지내고 지금은 이화여대 미술관장을 지낸다는 사람은 홍 너희 여사를 아주 잘 아는데 귀하를 가만 안 놔두겠다고 벼르더군. 다음 날, 동아일보 사진 기자는 상냥하게 말을 잘 듣더라고 하더군. 귀하가 걱정돼서 하는 얘기야!

짚고 넘어가자. 내가 일을 시끄럽게 했나? 순순히 자기네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는 단순한 이유 하나로 인맥을 동원해 협박하는 그들 스스로가 일을 시끄럽게 한 게 아닌가.

저도 유홍준 씨가 저를 위아래로 훑어볼 때 그걸 직감으로 바로 느꼈었습니다. 유홍준 씨가 다른 기자들에게 한 행태를 전부터 알고 있던 터라, 내게는 그렇게 안될 것이다라는 선입관이 조금 작용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굽히려 하지 않는 나에게 국장은 결국,
"일을 시끄럽게 처리하지 말도록 해!"
"죄송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편집국장 실을 빠져 나왔다.
명심? 내가 한 말이지만 마음을 가라앉혀 준다는 심장약의 이름이 오히려 떠올려졌다. 그때 내 솔직한 심정이 그랬다.

너희들은 빽이 하도 든든해서 자기네들의 추한 꼴은 못 보고 그저 그놈의 빽만을 믿는가 본데, 그래, 나 이 놈은 그 알량한 빽 하나 없어 오히려 내 등은 훨씬 가볍다. 못난 지식인아! 어지간히 지가 못 났으면 고런 고자질로 그 잘난 빽을 자랑으로 삼는가.

홍 너희 이사장이 할 일 없어 못난 너희 지식인(?)의 빽이 되어 나 하나 목 자르는데 힘을 낭비할 줄 아나. 그래, 그 힘을 그렇게 쓸려고 한들 타당한 이유없이 함부러 사람 목을 자를 수나 있을 것인가.

그걸 권력으로 악용하려 드는 빨갱이 심보만도 못한, 밴댕이 속보다도 좁은 당신네들이 지식인 행세를 하려고 하고 또 사회로부터 대접을 받으려고 하는 게 가소롭다 못해 가여운 생각이 드오.

사람을 죽여야만 살인이 아닌 것은 너희들이 더 잘 알 터, 감정으로 사람의 목(직장)을 자르려고 드는 너희들이 싸움을 걸어온다면 나도 너희 수준에 맞춰 비슷하고 유치하게 대해주마. 그 잘나 빠진 지식인들아.

소위 지식인의 이런 고자질이 정말이지 얼마나 유치한가.
'너, 우리 아빠한테 일러서 혼내줄 거야!'하는 요즘 초등학교 학생들조차도 유치하다고 생각할 그런 고자질. 자기네들에게 말 잘 들어줘야 괜찮은 기자이고 그렇지 않으면 죽일 놈으로 만들어놔야 하는 게 이게 지식인으로서 할 수 있는 행동 양식인가.

편집국장실에 불려갔다 온 후, 문화부와 사진부 기자들이 관심을 보였다. 문화부의 한 차장 선배는,
"오 동명 씨, 큰 일 한 번 치렀다며?"
"큰 일은요…"
머쓱해 하면서 나는, 나는 말을 이었다.

"유홍준 씨라면 민주화운동도 해서 1년인가 얼만가 감옥생활도 했다고 들었는데, 그런 사람이 내가 잘못을 했다면 후배뻘 되는 내게 그 자리에서 나무라든가 해야지 웃사람을 동원해서 가만 안 놔두겠다고 했다니 이게 어찌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의 행실일 수 있다고 봅니까? 그 알량한 빽을 믿고…"
"오동명 씨가 정확히 봤소. 바로 그거야. 모두 가식이라는 거지."

지식인은 배운 만큼, 머리에 든 만큼, 또 사회로부터 대접을 받는 만큼 지식인다워야 하는 것 아닌가. 오히려 그것을 못되고 못난 권력으로 행사하려든다면 당신들 앞에 지식인이라고 붙여지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해야 할 게다.

그러나,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고자질 정도는 신문사의 편집국장이라면 무시해 버릴 수도 있질 않은가 하는 아쉬움이 국장과의 면담 이후 그들 몇몇 지식인의 형태보다도 더 크게 안타까움으로 가슴을 저며오는 것은 왜일까.

회사 동료이자 후배의 편을 들어달라는 옹졸한 생각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신문사 편집국장이 이런 시시콜콜한 고자질마저 다 받아준다면 그런 짓거리를 권력인양 행사하려는 자들의 심보를 더 키워주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내가 만일 편집국장이었다면,
"후배뻘 되는 그 기자에게 직접 전화하시지요. 내가 그 친구를 불러 뭐라 할 수 있다고 봅니까? 그가 잘못을 했다면 그 자리에서 그를 나무라든가 해야지 지금 와서 전화로 이렇듯 윗사람을 동원해서 하는 일이 옳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유세 떨려는 게 아니라, 신문사 편집국장이라는 자리가 그렇게 한가한 자리가 아닙니다. 그 친구의 전화번호는 내가 가르쳐드릴 수는 있습니다. 직접 해 보시지요."

기대할 걸 기대해야지?
이런 정도를 기대라고나 할 수 있는 것인지. 당연한 것 아닌가. 이래서 답답하고 안타깝다는 얘기이다. 이런 사사로운 일로 편집국장이나 간부에게 전화질이니 하물며 정치인이나 관료들, 그리고 대기업 경영진들, 소위 우리 나라에서 방귀 좀 뀐다고 하는 자들의 압력은 오죽 하겠는가.

외압이나 간섭에 대해 떨칠 줄을 몰라서 스스로 올가미를 덮어쓰게 된 꼴이라 말할 수가 있다. 떨쳐버릴 건 그렇게 할 줄은 알아야 편집국장으로서의 자격이 있는 게 아닐까. 편집국장이 어디 아무나 함부로 될 수 있는 자리인가 말이다. 그런 막대한 자리를 소신없이…

덧붙여서, 이 글을 써 놓고 난 후 바로, 체육부(레저팀)의 한 후배와 얘기중 유홍준 씨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에 대한 또 다른 사건을 들을 수가 있었다. 나 혼자만의 경험이 아니로구나 싶었다. 이야기인즉슨,
전화가 걸려왔단다 회사로.

"나, 유홍준입니다."
다짜고짜로 전화로 이름만을 대니 당연히 기자는 예상못한 경우 누군지 알 수 없지 않은가. 그리고 전화 통화시 상대방이 알 수 있게 자기를 소개하는 게 예의 아닌가.

"예? 누구시죠?"
그러니 기자도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더욱이 한참 바쁠 때였단다. 그런데
"날 몰라요?"
이 말만 하고는 전화를 뚝 끊더란다.

그러나 이걸로 끝내지 않고 이후, 이 기자와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당시 편집국장은(1997년), 신문사 기자가 자기(유홍준)를 모르고 있다는 게 말이나 되느냐는 항의 전화(고자질)를 직접 받았다고 했다.

"자네가 유홍준 씨를 무시했다는데, 그런가?"

"다짜고짜로 유홍준이라고 하니 전들 문화답사기의 그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었겠어요? 대통령이 내게 이름 석 자만 대고 전화를 했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하물며….생각해 볼 겨를도 주지 않고 자기를 모르냐고 하며 전화를 끊어버리니, 이게 어찌 전화나 제대로 걸 줄 아는 사람인가 했어요. 계속 통화했더라면 문화기를 쓸 게 아니라 전화 거는 법부터 배워야겠다고 그 유씨에게 충고해 주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이 말을 듣고, 당시 편집국장 왈,
"아무 일도 아닌 일을 가지고…싱거운 사람이구만. 그런 것 가지고 전화는…"
하며 더 따져 묻지 않았다 한다, 그 편집국장은.
"이런 수준의 사람이 다른 분야도 아닌 우리나라 문화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고 돌아다닌다고 하니, 더구나 인기도 많다고 하니 참으로 한심스럽기가 그지없다."

여러 독자들이여, 몇몇 지식인의 가면의 뒷면도 보고 책을 사줘도 사 주도록 하자. 나는 집에 가지고 있던 그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쓰레기통에 바로 쳐넣어 버렸다. 내가 그 2백만부 기록에 기여를 해줬다는 사실에 불현듯 짜증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소위 지식인 정도라면 언행일치는 못하더라도 두 얼굴의 가면을 지녀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다. 쯧쯧, 벼이삭보다도 못한 사람들. 그들이 잘 인용하는 익을수록 머리 숙인다는 벼이삭 말이다.

벼이삭보다도 못한 사람은 그 수준으로 우리들이 대해줘야 그런 부류의 작자들이 세상에서 줄어들 수 있다고 본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