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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와 '산업화'는 한국의 현대사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아젠다(agenda)였다. 전자는 1960년 4월 19일, 이승만 독재정부를 타도한 학생의거에서, 후자는 그 이듬해 5월 16일, 제2공화국의 합법정부를 무너뜨린 군사정변에서부터 태동했다. 그 동력의 중심에서 몸과 마음을 아낌없이 바쳤던 세대가 지금의 60대 이상일 것이다.

50여 년, 민주적 절차에 의해서가 아닌, 학생과 군인들에 의해 태동된 민주화와 산업화는 그 자체로도 이미 험난한 앞날을 예고하고 있었고, 실제로도 수많은 우여곡절과 좌충우돌,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시간과 공간을 지나, 지금 어쨌든 오늘날의 대한민국에 이르게 된 것이다.

'헬조선'이 지금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은 '자유, 평등, 박애'를 그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자유와 평등은 이데올로기가 되어, 자유는 영국을 거쳐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서쪽으로 지구를 반 바퀴 푸르게 물들이면서 태평양을 건너 일본으로, 그리고는 한반도로 들어와 북위 38도선에서 멈춰 섰다. 그 결과 남한, 대한민국이 태어났다. 한편, 평등은 동쪽으로 소련, 동유럽을 붉게 물들이면서 중화인민공화국을 거쳐 지구를 반 바퀴 돌아, 한반도로 들어와 38도선 이북에서 멈춰 섰다, 그 결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탄생했다. 한 작가는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오늘날의 한반도의 문제는 프랑스 혁명이 남긴 유산인 것이다."(정경모, 재일교포 작가, 1982)

2016 총선청년네트워크 회원들이 지난 3월 28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청년실종·정책실종 선거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최악의 청년실업 상황 등 청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청년정책 공동요구안을 발표하고 있다.
 2016 총선청년네트워크 회원들이 지난 3월 28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청년실종·정책실종 선거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최악의 청년실업 상황 등 청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청년정책 공동요구안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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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 우리는 지금, '자유'의 범위는 자꾸만 줄어들고 있고, '평등'은 붕괴된 지 오래이며, '박애'는 마치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듯이 부모가 자식을, 아들이 부모를 죽이는 것조차 서슴지 않게 행해지면서 공동사회의 붕괴에까지 직면하고 있다.

민주화·산업화의 50여 년의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민주화는 절뚝 거리면서 겨우 10년을 경험했을 뿐이다. 민주화와 산업화가 어깨동무하지 않으면 산업화는 괴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식자들은 뻔히 알면서도 어린 백성을 '잘 살아보세'로 순치시키는 데 앞장 섰다. 불균형 성장에서 시작하여 낙수효과, 지역차별, 산업간 불균형, 글로벌리즘, 자본의 약육강식을 비용과 효율이라는 미명 하에 파이를 키워야만 한다는 데 우리 모두 암묵적으로 동의해 왔다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 가난한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심지어 권력자들, 부자들까지도 때로는 불안해 할 것이며, 때로는 겁에 질리고, 때로는 한숨짓고, 때로는 이래도 좋은가 회의하고 있을 것이다. 가진 자들의 찰나적인 향락, 섹스, 낭비, 사치가 난무하고 있고, 서민들은 스포츠, 게임, 알코올홀릭, 아무리 올려도 줄지 않은 흡연으로 가슴 달랠 때, 때가 되면 터지는 연애인 스캔들 등, 정치와 언론이 아노미(anomie)를 오히려 조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청년들은 3포에서 5포를 지나 7포에 다다랐다.

선택의 폭은 자꾸만 좁아지고 있다.

어린 것들마저 조금씩, 조금씩 더럽혀져 가고, 부패해져 가고,  불신할 것이며, 서로서로 상처주고 받으면서 각개전투를 벌이게 될 것이다. 그것은 지금의 60대 이상의 민주화와 산업화의 역군들이 평등(平等)이 아닌, '평'(坪)과 '등'(等), 아파트의 평수와 자식의 등수로 사회적 성공을 스스로 저울질하면서 살아왔다는 실제적 증거로 입증되며, 그 천박한 가치가 우리의 자식들에게 유전된다는 것도 애써 외면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이것이 우리, 60대 이상이 이뤄놓은 2016년 3월 현재, 민주화와 산업화의 대차대조표다. 결산공고는 천문학적 수치에 달하는 국가부채, 공기업부채, 가계부채 및 중소기업 붕괴, 청년실업, 자영업자 몰락, 자살률 1위 등이었다. 이른바 '헬조선'인 것이다.

'헬조선'의 책임은 60대 이상이 져야 마땅하다

4.13 총선을 이틀 앞둔 11일 국회에서 제20대 국회의원들에게 지급할 배지가 공개됐다.
 4.13 총선을 이틀 앞둔 11일 국회에서 제20대 국회의원들에게 지급할 배지가 공개됐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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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계질서의 상층부에서 하층부까지, 예외는 있을 수 없다. 대통령에서부터 거리의 청소부에 이르기까지 목 놓아 통곡해야 할 것이다.

60대 이상, 민주화와 산업화의 주인공이었던 여러분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역시 70대 초반이다. 출신 지역, 학력 등, 불균형성장 속에서 혜택을 받은 쪽에 들어간다고 고백하면서, 민주화, 산업화의 추억으로 살아가시는 60대 이상의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호소한다.

여러분들의 보수화는 결코 이 시대의 자랑이 될 수 없다고.

우리나라 역사 반만 년, 단군 이래 처음으로 아버지 세대보다도 못살게 된 아들 딸 세대가 등장하는 대한민국이 됐다. 그들은 절망하고 있다. 물질적인 부에서도 그렇지만, 우리 세대가 더욱 가슴아파해야 할 부분은 "자유, 평등, 박애"라는 인류의 보편가치조차도 우리 기성세대가 대물림하면서 지켜주지 못한 점에서 어떤 변명도 통할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나이가 들면 보수가 된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우리 세대가 만들어 놓은 민주화와 산업화의 오늘의 결과가 '헬조선'이라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60대 이상이 져야 할 것이다.

외람되지만 살아 갈 날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 동의한다면, 남은 시간 만에서라도 그들에게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되면서, 험한 세상 다리가 돼 우리의 자식들·손자들이 희망의 세계로 건너 갈 수 있도록 이번 선거에서 올바른 투표권을 행사하시기를 간절히 호소한다.

60대 이상 여러분, 과거는 흘러갔다. 더 이상 여러분의 과거에 투표하지 마시고,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위해 투표할 것인가를 심사숙고하길 바란다. 우리 자손들의 미래에 투표하는 것이야말로 여러분이 완성시키지 못한 민주화와 산업화의 참된 열매가 맺어지는 지름길일 것이다. 여러분들의 아들 딸, 손자 손녀, 그리고 그들의 자손들이 대를 이어가면서, 사람 살기 좋은 나라, 대한민국에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태그:#413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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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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